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78
577화.
허억.
알베르는 숨을 들이마시며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를 볼 수 있었다.
“…케…이지?”
“네. 접니다. 저하.”
알베르가 몸을 기대듯이 누운 소파 맞은편에는 잭과 케이지가 긴장 어린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베르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치겠군.”
깨자마자 내뱉는 험한 말에 잭과 케이지가 멈칫했지만 알베르는 그 모습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싸우다가 왔다.
조금 전까지 암흑 호랑이라는 괴물 몸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싸우다가 어느 순간 눈을 뜨니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천막 입구 틈새로 햇빛이 들어서고 있었다.
붉은 햇빛이었다.
케이지가 작게 읊조렸다.
“저녁입니다. 저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
알베르는 잠시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2배? 3배인가?”
“네?”
“아닐세.”
그는 케이지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내 알베르는 저를 바라보는 두 신관의 눈동자에 맺힌 궁금증을 볼 수 있었다.
‘분명 케일과 최한이 어떤 상태인지 궁금한 것이겠지.’
알베르는 자신의 배 쪽을 내려다봤다.
검은색과 흰색이 반반으로 나뉜 영상통신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그간 다른 일은 없었나?”
“네. 미리 준비해놓고 잠드신 덕분에 비상 통신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케이지와 잭은 담담하게 답하는 알베르의 행색을 유심히 살폈다.
사람은 차분했지만,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었다.
그래서 케이지는 알베르가 말한 시간이 되기 전에 중간에 깨워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식은땀을 흘리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평온해 보여 가만히 지켜보았던 두 사람이었다.
“…저하. 거래 내용은-”
“잠시.”
그는 입을 연 케이지에게 손을 펴 그녀의 말을 막았다.
맞은편에 앉은 두 신관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있는 소파 뒤로 천막 입구에서 작게 붉은 노을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의 의미는 간단했다.
“들어오십시오. 라온 님.”
보이지 않았지만, 천막 입구 천이 조금 더 들렸다.
냐아아옹.
냐아옹!
고양이 두 마리가 먼저 들어섰고, 그 뒤를 이어 천막 입구가 꽉 닫히더니 어린 검은 용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왕세자야!”
“네, 라온 님.”
라온과 온, 홍.
이 셋은 가끔씩 알베르가 있는 천막 입구 천을 살짝 들추는 것으로 알베르의 천막에 들어가도 되냐고 신호를 보내왔다.
아무래도 론과 비크로스가 셋을 챙겨준다고 하지만, 그들도 몰란 가문을 정비하고 현재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지라 많이 바빴다.
그 까닭인지.
아니면 쿠키 때문인지.
또 아니면 케일과 최한에 대한 소식을 듣고 싶은 건지.
이따금씩 알베르를 찾아오는 셋이었다.
“왕세자야! 어디 아프냐?”
“아프면 안 되는데!”
“…쉬어야 하는데, 못 쉬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 셋은 알베르를 그닥 어려워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어려서부터 자주 봐서 그런지 몰라도.
‘아니지. 케일을 닮은 것이겠지.’
케일이 그리 불경하게 행동하니, 이 셋이 그걸 보고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리라.
알베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저는 괜찮습니다.”
“진짜냐?”
“그럼요, 라온 님. 오히려 아주 좋은 상태입니다.”
괜찮다는 제 말에 안도하는 어린 용과 어린 묘족들을 바라보며 알베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케일과 최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침묵해야 할 것인지. 알베르는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하. 아니, 형님.’
‘왜?’
케일이 알베르의 등에 올라탄 채 이동할 때 짧게 나눴던 대화 한 토막이 떠올랐다.
‘형님은 앞으로 왔다 갔다 하실 거잖습니까?’
‘그렇지?’
‘그러면 그냥 다 말하지는 말고 짧게 안부를 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게 좋게요. 쉬운 부탁이죠?’
‘…빌어먹을 놈. 그게 어려운 일이다.’
알베르의 입이 열렸다.
“조금 전에 태양신과 거래를 해서, 그 대가로 케일 헤니투스와 가끔씩 영상통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온의 동그란 눈이 땡그랗게 떠졌다.
쿠키 바구니에 손을 뻗던 홍의 앞발이 멈췄고, 온은 딱 굳어 알베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성자 잭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저하. 이런 소식을 그리 다 말씀하시면-”
“말해도 돼.”
알베르는 단호하게 답했다.
“잘 지내고 있으니까.”
표정도, 말투도. 모두 단호하고 담백했다.
그 까닭일까.
“그리고 라온 님, 그리고 온, 홍은 잘 있냐고 묻던데. 밥 잘 먹고 있냐고.”
평균 9세는 서로에게로 다가가 뭉치더니 확 안색이 밝아졌다.
마찬가지로 케이지가 확 밝아진 안색으로 알베르에게 말했다.
“저,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 걱정 안 해도 돼.”
망설임 없는 대답을 하는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부드러운 알베르의 표정에 다들 안색이 밝아져 갔다.
“왕세자야, 왕세자야!”
“네. 라온 님.”
“론 할배랑 비크로스한테 말해줘도 되나?”
알베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만 먼저 론 몰란에게만 살짝 말해주고, 비크로스와 론을 여기로 바로 데려와 주십시오. 두 사람에게 제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알았다!”
“참고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가 따로 불러서 다 이야기할 테니까요.”
“알겠다, 왕세자야!”
라온이 온을 바라봤고, 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과 라온을 데리고 얼른 천막 입구로 향했다.
그러다가 온은 갑자기 멈춰서는 뒤돌아 왕세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하.”
알베르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맨날 ‘~는데’ 하길래, 그게 말버릇인 줄 알았더니 지금 모습은 꽤 의젓했다.
“아! 나도 고맙다, 왕세자야!”
“고마운데! 내가 보답할 건데!”
뒤이어 인사하는 라온과 홍까지 본 알베르는 가볍게 답했다.
“뭐, 이 정도쯤이야. 별것 아닙니다.”
그 태도에 평균 9세는 더 안도하는 기색으로 힘차게 천막 입구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에 신난 것 같았다.
알베르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케이지와 잭을 바라봤다.
“두 분도 사람들을 좀 데려와 주었으면 하는데.”
“아, 네!”
성자 잭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표정은 밝았다.
반면 케이지의 표정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았지만 지금은 조금 미묘했다.
“…누구를 데려올까요?”
그녀의 물음에 알베르는 입을 열었다.
“로잘린 씨를 부탁하네. 아, 그리고 성자께는 동생분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요. 얼른 가서 하나를 데려오겠습니다.”
“좋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다 같이 오랜만에 회의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알베르의 말에 성자 잭은 밝은 안색으로 케이지와 알베르에게 살짝 인사를 하곤 천막 밖으로 향했다.
케이지도 느릿느릿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잭이 천막을 나서자 따라 나가지 않고 천막 입구 천을 붙잡은 채 알베르를 바라봤다.
“저하.”
케이지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저기 다녀봐서 그런지 눈치가 좀 좋은 편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말인데요. 진짜-”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묻고 싶었다.
‘진짜 케일 공자님이 괜찮은 것 맞습니까? 저하 표정이 아무래도 꾸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묻지 못했다.
알베르가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하여 먼저 말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그 녀석들은.”
그 담백한 말에 케이지는 망설이던 입을 다물었다. 대신 인사를 하고선 천막을 벗어났다.
“얼른 로잘린 씨를 데려오죠.”
케이지마저 천막을 벗어나고, 이제 천막 안에는 알베르 홀로 남았다.
“후우.”
알베르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직 마르지 않은 식은땀으로 젖어있는 머리칼이 느껴졌다.
그 찝찝함에 얼굴이 구겨지던 알베르의 머릿속에 케일의 한마디가 다시 떠올랐다.
‘그러면 그냥 다 말하지는 말고 짧게 안부를 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게 좋게요. 쉬운 부탁이죠?’
좋게 좋게요.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빌어먹을 놈. 어려운 일은 나한테 떠넘기고 있어.”
알베르의 얼굴이 일그러진 채 펴질 줄을 몰랐다.
좋게 좋게 말하라고?
“그딴 게 어딨다고.”
알베르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그 전장을, 그 밤을 떠올렸다.
화염과 폭발.
그리고 광기가 난무하는 밤.
그 중심에 있던 두 녀석이 떠올라, 알베르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
박진태는 목소리를 높였다.
“야, 김록수!”
“왜?”
박진태는 케일의 단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 저 새끼는 이제 아주 말을 그냥 놓네, 놓아.”
그러면서도 이내 다시 목소리를 높여 김록수에게 들릴 정도로 외쳤다.
“야! 네, 네 형님이 이상해!”
그 말에 케일은 겨우 틈을 내어 뒤를 돌아보았다.
암흑 호랑이가 어딘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암흑 호랑이와 케일의 눈이 부딪쳤고 케일은 말했다.
“닥치는 대로 쓰러트려!”
순식간에 암흑 호랑이의 눈동자에 빛이 감돌며 암흑 호랑이는 아무 말 없이 거대한 몸체를 움직였다.
“박진태! 너도 싸워!”
“아, 누가 보면 내가 쉬는 줄 알겠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지만 이미 케일은 다시 고개를 돌려 싸움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 모습에 박진태는 얼굴을 구기면서도 손에 쥔 총을 매만졌다.
그의 손가락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온몸이 자잘한 상처로 가득 차 군데군데 피가 흘러내렸다.
“짜증 나. 짜증 난다고!”
아직 어두웠다.
해가 뜨지 않는다.
대신 사방에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아니다.
괴물들의 고약한 체액이 사방에서 흘러왔다.
콰아앙!
그는 시선을 돌렸다.
“뭐해요?”
김민아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박진태는 옆을 바라봤다.
김민아가 박진태를 몰래 옆에서 덮치려던 괴물을 창으로 꿰뚫어버렸다.
1등급 괴물이다.
뱀 머리 거인으로, 이전에 케일에게 김민아가 싸우는 법을 배웠던 그 괴물이었다.
“…더럽게 힘 세네.”
“힘이야 원래 세죠.”
김민아는 박진태를 지나치며 한마디를 남겼다.
“다만 제대로 싸우는 법을 이번에 배워서 그렇지.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아요?”
맞다.
박진태도 이번에 제대로 배우며 깨달았다.
사방이 혼란과 피와 광기로 가득했지만.
그는 느끼고 있었다.
‘…인간이 이길 수 있다!’
1등급 괴물들을 김록수의 데이터에 따라 하나씩 처리할수록 점점 더 속도가 붙었다.
특히 김록수가 공격조로 지목한 이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저 괴물들과 달리 성장하고 있다.
해볼 만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
빌어먹을 밤이 너무나도 길어도.
아무도 멈출 수 없었다.
박진태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탄환이 날아가 괴물의 눈을 맞췄다.
대격변 후, 능력의 발현 후. 왠지 모르게 뒷걸음질했던 본래의 사격 실력이 나타나고 있었다.
콰아아앙–!
굉음에 박진태는 시선을 돌렸다.
“크아아!”
“크르, 크르르!”
괴물들이 쓰러졌고, 그 사이로 반짝이는 검은빛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꽤 떨어졌건만 어둠 속에서도 그 광경만은 잘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짝이는 검은빛 곁에는 적금빛 전류로 몸을 감싼 이가 있었다.
더불어 흰색으로 도배를 한 이도 그 전류빛에 비춰졌고, 그 흰색 옷의 주인인 주호식이 두 손을 맞잡았다.
“믿습니다!”
미친!
박진태는 그 목소리에 웃으면서 욕을 뱉었다.
저 세 사람. 아니, 두 사람.
최한과 김록수.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이 어느 곳에서나 잘 보였다.
저 적금빛 전류 때문에.
2, 3등급, 더불어 1등급까지 휘몰아치는 이 전장에서 너무나도 눈에 잘 들어왔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케일도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
사방에서 저와 최한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허억, 헉.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이지요?”
뒤에서 주호식의 숨 가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믿습니다’를 외치던 주호식은 최한과 케일 곁에 어떻게든 따라붙으며 그 둘에게 막대한 서포트를 하고 있었다.
케일은 손목에 시계가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시계를 볼 틈이 없었다.
“크아아아!”
케일은 달려드는 1등급 괴물 세 마리를 보며 몸을 움직였다.
왼쪽으로 2m, 5시 방향으로 뒷걸음.
그리고 전방을 향해 벼락.
파지직!
작은 적금빛 벼락이 괴물의 몸을 때렸다.
서걱, 서걱.
그리고 최한의 검이 다른 두 1등급 괴물을 베어버렸다.
“괜찮으십니까?”
최한이 물었고 케일이 웃으며 답했다.
“네 숨이나 고르고 말해.”
조금 전부터 최한의 숨이 조금씩 가빠지고 있었다.
“형은 상태가 더 엉망입니다.”
하지만 최한은 케일의 앞에 서며 그가 나서지 못하게 등을 보였다.
최한의 말이 맞았다.
케일은 제 상태가 상당히 엉망임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씩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입가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존재했다.
안색은 창백해져 갔다.
‘그래도 버틸 만해.’
기절은 안 한다.
‘주호식 덕분이야.’
주호식의 ‘믿음’은 신기하게도 케일의 고대의 힘과 최한의 오러까지 증폭시켜주었다.
아니,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주호식의 힘은 케일과 최한에게 더 큰 서포트가 되었다.
‘주호식이 나와 최한을 더 믿는 건가?’
주호식의 힘은 믿음의 강도에 따라 달라졌다.
‘왜?’
왜 그런 것인가?
의문이 가득했지만, 케일은 다시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는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들린다.
괴물들의 울부짖음이.
하지만 전보다 확연히 줄었다.
화염과 폭발로 상당수의 2, 3등급 괴물들이 무너졌고, 쉬다가 갑자기 기습을 받은 1등급 괴물들은 그 거대한 몸체 때문에 서로 우왕좌왕하다가 인간들의 약점 공격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이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았다.
괴물들은 베고 또 베어도 나타났다.
특히 광기로 인해 1.5배 강해진 2, 3등급 때문에 힘들었다.
광기에 가득 차, 겁을 먹고 쓰러지고 물러날 상처를 입었음에도 달려들었다.
그것만 멈추면 좀 더 편할 것인데.
“하아.”
케일은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언제.
언제 해가 뜨지?
해만 뜬다면.
그때부터는 인간은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꾼이 될 것이다.
케일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시간을 묻는 주호식과 얼이 빠져 보이던 박진태를 떠올렸다.
그리고 점점 더 사람들의 공격이 더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 공격에 끌어들인 이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자신의 기량을 뽐내더라도.
그 사람들이 지쳐간다.
힘이 빠진다.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장기적인 전투를 그들은 해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아직은 지쳐선 안 된다.
“최한.”
“네.”
“흑룡. 한 번 더 가능하나?”
최한이 사용하는 반짝이는 검은 오러와 달리, 흑룡은 최한도 꽤 많은 힘을 사용해야 했다. 그 때문에 지금은 오러를 이용해서 싸워왔다.
하지만 케일은 전장의 분위기를 읽었다.
사람들이 지쳐갈 때쯤.
“네.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하지.”
아군의 위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후우.”
최한이 잠시 숨을 내쉬더니, 이내 검을 하늘로 치켜올렸다.
그의 검 주위로 검은 오러들이 모여들며 조금씩 흑룡의 모습을 갖춰갔다.
“주호식 씨. 저에게 능력 좀 사용해 주십시오.”
케일의 말에 최한이 멈칫했으나, 그는 집중력을 깰 수 없어 가만히 있었다.
주호식의 외침과 함께 케일은 양손으로 불벼락을 끌어들였다.
케일은 주호식의 능력으로 크게 증폭되는 불벼락을 느꼈다.
최한과 함께 불벼락을 펼쳐 한 번 휩쓸자.
그러면 1등급 괴물들도 상당수 뒤로 물러설 것이고 아군은 힘을 얻을 것이다.
케일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로 향한 최한의 검 끝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곧 흑룡이 그 입을 벌리며 전장으로 쏟아질 것이니까.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아.”
케일의 입이 벌어졌다.
그는 손을 뻗어 최한의 어깨를 잡았다.
“…형?”
그 행동에 최한이 멈칫했을 때, 케일이 툭 내뱉었다.
“해 뜬다.”
조금씩 밤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고 있었다.
“됐다.”
케일은 내뱉었다.
“고비가 지났어.”
케일은 지난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보았다.
새벽이 올수록, 세상이 밝아질수록 광기가 사라지는 2, 3등급 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약해진 2, 3등급 괴물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케일 기억 속 문헌 기록에 적혀 있었다.
케일의 시선에 1등급 괴물들이 닿았다.
아직 살아있는 1등급 괴물이 많았다.
그러나 광기에 찬 2, 3등급 괴물과 인간, 우두머리 괴물들. 그리고 화염과 폭발. 온갖 것들이 만든 혼란에 당한 1등급 괴물들이 상당수 죽어 있었다.
그리고.
박진태, 김민아, 배푸름, 배철호, 채수정 등등.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다들 지친 모습이었다.
그들이 밝아지는 하늘을 보다가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아남았음을, 이겨냈음을 알려주는 미소였다.
그리고 말했다.
“마저 끝내고 새로운 터전으로 가죠.”
사람들은 웃으며 떨리는 손으로 각자의 무기를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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