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661
660화.
박수를 치는 라온과 태연하게 할 일에 집중하고 있는 밀라. 그리고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고개만 창밖으로 돌린 채 히죽히죽 웃고 있는 케일.
늑대족 라크는 멍하니 테라스 창밖을 내다보았다.
“연, 연기 맞죠? 가짜죠?”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추락하는 에르하벤. 그의 모습은 연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가짜인 것을 아는데도, 심장이 떨려.’
라크는 애써 주먹을 말아쥐며 손에 힘을 주었다.
“라크야, 걱정 마라! 할배, 사자용 공격에 안 다쳤다!”
순간 케일은 라온을 묘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멀어서 보이지도 않을 텐데, 공격에 안 맞았다고 왜 저렇게 확신을 하지?’
케일은 라온의 대답에 의문이 들었으나, 라온은 그런 의문은 조금도 들지 않는 표정으로,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라크는 그 맑은 미소에 저도 모르게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라크. 일단 너도 계획대로 움직여라.”
“네, 공자님!”
라크는 케일의 말에 굳건히 답하면서도 이어붙이기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는 케일을 바라봤다.
“난 괜찮아.”
“…네, 알겠습니다.”
괜찮다는 케일의 말에 라크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집무실 밖으로 향했다.
케일은 라크가 나간 자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밖을 내다보았다.
추락한 용의 거대한 몸체.
용의 추락으로 불가피하게 건물의 일부가 부서졌다. 그 여파로 먼지가 연기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 장면은 몇몇을 제외한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아.”
마법사 중 몇몇은 털썩 주저앉았다.
용과 괴물의 싸움에서 오는 여파를 막기 위해 펼친 실드는 이미 해제되었고, 마법사들의 눈에는 마법의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용의 몰락만이 남아있었다.
“이리, 이리 허무하게-”
분명 치열하고 격렬한 전투가 펼쳐졌음에도, 이상하게 이 싸움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 괴물이야.”
용은 추락했으나, 괴물은 멀쩡했다.
괴물은 방패에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 가만히 쓰러진 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은 적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 사실이 지켜보는 이들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용도 못 한 일을 우리가 이제-”
우리가 이제 해야 한단 말인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마법사들.
하지만 그들보다 더한 공포와 두려움에 빠져드는 이들이 있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말로 드래곤이 추락했다는 거야?”
“나도 몰라! 보여야 알지!”
성벽 밖에서 대기 중이던 병력이었다.
병사들은 분명 드래곤이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쉬이 인정할 수가 없었다.
높다란 성벽 밖에 있던 그들은 성벽 안으로 추락한 용이 지면과 부딪치며 내는 소리를 들었지만, 보지 못했으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작게 수군거리던 목소리가, 하나둘 내뱉는 이가 늘어감에 따라 점점 더 커져갔고 불안감도 그에 따라 함께 증폭됐다.
“조용-!”
기사 한 명의 외침에 병사들은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본래라면 이런 허술한 행태에 기사는 조금 더 병사들을 다그쳐야 했으나, 그 역시도 경악과 두려움에 휩싸여 불안해하는 병사들에게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기사단장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 대기하라!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그의 손에는 영상통신구가 하나 들려 있었다.
단호하게 외치는 것과 달리 갑옷으로 가려진 그의 등에는 땀이 한가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하.’
그는 조금 전 짧게 통신을 나눴던 알베르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저 괴물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병사들의 시선이 하늘 위의 괴물에게로 향했다.
정말로 괴물은 고룡만을 응시할 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니 겁먹지 말아라!”
기사단장은 병사들에게 그리 외치고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바로 아래 급의 기사들이 따랐다.
그들은 속삭이듯 물었다.
“단장님, 그럼 저희는 어떻게-?”
“대기하는 겁니까?”
기사단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을 할 생각은 없다. 괴물의 약점을 찾는 건 물론이거니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왕세자 저하께서는 대기를 명하셨다.”
그는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그러니 병사들이 두려움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게.”
“…당분간 대치 상태로 간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저하의 뜻은 대치 혹은 소강상태로 시간을 끄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네. 병사들에게도 대강의 흐름에 대해서는 전해.”
기사들은 알겠다고 답하며 자신의 아래 직급 기사들 혹은 각각의 병사 대대를 이끄는 이들을 불렀다.
곧 그들의 입을 통해 당분간 시간 끌기에 들어간다는 말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일단은 싸우지 않음에 안도를 느꼈다.
추락한 용. 그리고 고전하는 영웅들.
마지막으로 승리의 상징과도 같은 사령관의 부재.
차라리 당장 싸우지 않아 다행이라고, 병사들은 생각했다.
기사단장은 그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알베르 크로스만을 떠올렸다.
‘저하. 저하께서 명하신 대로, 병사들에게 전했습니다.’
시간을 끈다.
그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게 하라고. 왕세자가 내린 명을 충실히 이행한 기사단장은 성벽 안을 바라봤다.
검은 본 드래곤이 급히 하강하고 있었다.
그 방향은 용이 추락하던 쪽이었다.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해?”
“일단 가봐야 하지 않겠어?”
퍼슬시 성안. 충격에 빠져있던 이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일단 추락한 용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어찌 보면 아군이었으니까, 그 상태를 당연히 확인하러 가야 했다. 특히 용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큰 마법사들은 조금이라도 용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발걸음을 놀렸다.
그때.
“멈춰라!”
하늘에서 들려온 외침에 다들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이 검은 본 드래곤의 갑옷 위를 박차며 아래로 하강했다.
쿠웅-!
그가 땅에 발을 내디딤과 함께 작은 울림이 퍼졌다.
알베르는 다급하게 뛰듯이 용에게로 다가갔다.
“왕세자 저하의 말씀대로 다들 물러서도록!”
그 뒤를 로잘린이 따랐다.
“위급한 드래곤 주위에 어떠한 마나 변화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함부로 접근해서는 곤란해!”
그녀의 말에 마법사들은 흠칫하며 다가가려던 것을 멈췄다.
로잘린의 말이 나름 합당하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호기심에 다가가고 싶어도 이곳에서 가장 권력이 세고 마법도 뛰어난 알베르 왕세자와 탑주로 기정사실화된 로잘린의 명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함부로 다가가기 힘든 큰 이유가 있었다.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얕은 숨을 내쉬는 드래곤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엉망이군.”
마법사는 감히 마법으로는 넘볼 수도 없는 드래곤을 보며 그리 말했다.
단단하기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을 드래곤의 피부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마치 메말라버린 땅이 갈라져 만들어진 거미줄 모양처럼. 용의 손에서부터 시작해 상반신, 날개 일부가 그렇게 갈라져 있었다.
찬란한 금빛의 가죽도 어딘지 모르게 그 색이 어두워져 빛이 바래 있었다.
“…에르하벤 님.”
로잘린은 그 모습에 다가가던 걸음을 저도 모르게 멈춰 세웠다.
괴물 사자용과 금빛 가루를 사이에 두고 싸우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에르하벤의 상태가 제대로 보였다.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에르하벤의 추락은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태를 본 순간, 조금만 더 에르하벤이 싸웠더라면 그 추락이 연기가 아닌 현실이 되었을지도 몰랐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아찔해져 왔다.
이 전쟁에서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그 누군가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하였다.
그럼에도 스승이나 다름없는, 아니, 스승이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그녀는 숨이 턱 막혀왔다.
“에르하벤 님.”
그때, 그녀는 알베르의 목소리를 들었다.
알베르는 투구를 벗어 던지고는 금발 벽안을 드러낸 채 에르하벤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하얀 별이 지켜볼지도 모르니, 어떻게 계속 연기를 해야 하나, 장단을 어떻게 맞춰줘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그는 에르하벤의 죽은 척에 어떻게 반응할까 고민했던 것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죽으실 작정이었군.’
에르하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알베르는 지금에서야 저 거친 숨소리가 모두 가짜가 아닌, 어느 정도 진짜도 섞였음을 깨달았다.
스윽.
그의 손이 갈라진 피부에 닿았다.
“괜찮으십니까?”
알베르의 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아 조금 갈라져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이들이 저절로 침음을 흘릴 만큼 좋지 못한 목소리였다.
“허억. 헉.”
고룡은 대답하지 못했다.
용이 위대한 존재임을 알고 있음에도, 가죽이 갈라진 채로 숨을 헐떡이는 모습은 그를 안쓰러이 바라보게 만들었다.
-왕세자.
하지만 알베르의 머릿속에 에르하벤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 계속 이대로 있냐?
용의 힘없이 감고 있던 눈 한쪽이 슬쩍 가늘게 떠지며 눈치를 보는 순간.
-난 못 하는 게 없군.
스스로의 연기에 자화자찬을 하는 순간.
“어휴.”
알베르의 눈빛이 변했다.
-…너 왜 케일 쳐다보듯 나를 바라보지?
얼굴 코앞까지 다가온 알베르만이 보일 정도로 눈을 떴던 에르하벤이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베르는 에르하벤의 이마 부근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서글프게 읊조렸다.
“…정신을 완전히 잃으셨구나. 아직 의식은 있는 것 같으나, 헛소리를 하시는군.”
-뭐라?
“이런! 에르하벤 님, 죽으시면 안 됩니다! 의식을 놓지 마세요!”
-…허.
절절한 알베르의 음성에 에르하벤은 소름이 돋았다.
‘소름 돋는 연기력이군.’
웬만한 연극배우 저리가라였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다크엘프 쿼터임을 숨기며, 외가의 힘도 없이 스스로의 자리를 지켜온 알베르였다. 그런 그가 뛰어난 연기력을 지니지 않았다면 그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속으로 감탄하는 에르하벤에게 아주 작은 알베르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정신을 잃은 상태니, 이대로 계세요.”
-알았다.
곧바로 알베르는 목소리를 높였다.
“숨이, 숨이 더 약해지신다!”
에르하벤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알베르가 알아서 다 해주었다.
“저하! 제가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정신을 차린 로잘린이 이내 그런 알베르를 거들었다.
알베르는 그녀에게 에르하벤을 맡기며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눈이 마주친 마법사에게 말했다.
“당장 주위 신전에 연락하도록!”
다급하게 신전을 찾는 이유는 드래곤 치료를 위해서이리라. 마법사들이 즉시 영상통신구를 꺼내 통신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알베르는 이로는 부족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부족해. 성자, 성자께 연락을 해봐야겠다.”
성자 잭. 그를 가리키는 말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동조를 표해왔다.
드래곤을 치료하는 일. 어쩌면 성자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내가 직접 가야겠어.”
그때, 알베르의 눈동자에 다가오는 라크가 보였다.
“저하.”
라크는 알베르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약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알베르는 얼른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호랑이족과 늑대족이 드래곤 님 주변에 경계를 서줬으면 하네.”
“네!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 하도록, 저희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라크가 늑대족의 어른을 바라봤고, 시선이 마주친 늑대족은 고개를 끄덕이며 에르하벤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부탁하네.”
알베르는 라크를 지나치며 나직이 속삭였고, 라크도 작게 속삭였다.
“걱정 마십시오. 에르하벤 님의 상태를 들키지 않게, 누구도 접근 못 하게 하겠습니다.”
라크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공자님은.”
알베르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공자님은, 아닙니다. 그냥 보십시오.”
라크는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알베르도 더 묻지 않고 대신 라크 어깨 너머로 보이는 눈 감은 고룡을 바라봤다.
-내 걱정은 마라. 덕분에 편히 쉴 틈이 생겼어.
고룡의 말에도 알베르는 조금도 안도감이 들지 않았다.
“걱정 마십시오, 저하. 살릴 수 있습니다.”
대신 라크의 확신 어린 목소리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라크의 확신이 어디서 오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베르는 더 이상 에르하벤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검은 본 드래곤. 용 혼혈과 최한이 공중에 자리해 있었다.
최한도 땅에 내려오고 싶었지만, 누군가는 괴물 사자용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하얀 별을 위해서도, 아군을 위해서도.
최한은 알베르에게 어서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동시에 네크로맨서 메리가 해골 비행 몬스터를 타고서 검은 본 드래곤 근처로 향하고 있었다.
용 혼혈, 메리, 최한.
이 셋이면 충분히 사자용을 경계하며 위급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터.
“서둘러야겠군.”
그는 성자 잭에게 연락을 하러 급히 가는 것처럼, 퍼슬 시청 집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케일과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 했다.
“저하-.”
그런 그의 발걸음을 붙잡은 이가 있었다.
“…공작.”
데르트 공작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알베르는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지만.
“대기하고 있길 바라오.”
그에게 함께 가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여의주. 지구와 연결된 그 구슬이 케일에게로 간 상태다. 더욱이 케일의 몸은 엉망이었다.
그는 차마 아들을 위해 이곳까지 온 데르트 공작을 데려갈 수 없었다.
“곧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대신 이런 위로를 건넬 뿐이었다.
데르트 공작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초조함 대신 부러지지 않을 듯 올곧은 눈빛이 자리해 있었다.
“기다리겠습니다.”
알베르는 고맙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이내 집무실로 향했다.
***
케일은 밀라를 바라봤다.
“선생님, 이제 마지막만 남았어요.”
케일의 온몸에 드러났던 금은 실처럼 된 베이지색 마나로 그 틈이 다 메꿔져 있었다.
“이모야! 그러면 이제 인간 다 낫는 거냐?”
“그릇만 이어붙이는 거니까, 무리해서는 안 되지?”
“이모야, 대단하다!”
라온의 통통한 볼살이 즐거운 듯 씰룩거렸다. 라온은 케일을 바라봤다.
“인간아! 이거 마무리되면, 뭘 할 거냐?”
다음 작전이 궁금한 라온이었다.
케일은 무심히 답하며 두 개의 구슬을 바라봤다.
“집 가야지.”
“응? 집?”
라온도, 밀라도 의아했지만, 케일은 지금 이 소강상태 동안 반드시 갔다 와야 할 곳이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 어머니의 무덤.’
그곳에 갔다 와야 했다. 왠지 모르게 그곳에 힌트가 존재할 것 같았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며 두 개의 구슬. 여의주와 영상통신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 꺼?”
론이 인자한 얼굴로 답했다.
-네, 도련님. 안 끕니다.
그리고 여의주 속 이수혁과 김록수, 최정수가 나란히 앉고 박진태는 뒤에서 기웃거린 채, 이수혁이 대표로 답했다.
-내가 끄는 방법을 몰라.
두 사람 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눈빛은 상당히 살벌했다.
케일은 찝찝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는 밀라를 바라봤다.
“선생님, 조금 따가울 거예요.”
“어서 부탁드립니다.”
밀라는 걱정 말라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짓고는 이내 케일의 곁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우우우—우우–
베이지색 바람이 그녀 주위에 일었다.
라온은 두 개의 구슬을 놔둔 채 뒤로 물러섰고 케일은 눈을 감았다. 밀라는 라온을 힐끗 보더니, 라온의 바로 앞에 서며 시야를 가려버렸다.
라온은 그 모습에 자기도 보겠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이내 집무실에 휘몰아치는 밀라의 마나에 입을 다물었다.
“라온. 가만히 있으렴. 중요한 순간이란다.”
밀라의 말대로, 중요한 때였다. 케일을 치료하는 일을 자신의 호기심으로 방해할 수 없었다. 라온은 몸을 웅크린 채 정말 가만히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밀라의 마나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아.”
눈을 감은 케일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몸에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시작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온몸에 간 금. 그 틈을 메꾼 베이지색 마나였다.
마치 아침 햇살처럼, 겨울 한낮의 태양처럼. 따스한 그 기운에 케일은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드디어!
-케일, 곧 그릇이 이어 붙겠구나!
-대단한 용이야!
고대의 힘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케일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벌컥-!
그때, 문이 열렸다.
“음!”
급하게 온 알베르였다. 그는 방안을 가득 채운 베이지색 마나를 보고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멈칫했다.
그런 그의 눈에 케일의 꼴이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 마나가 거미줄처럼 드리운 몸. 절로 얼굴이 찡그려지려는 찰나, 편안한 미소의 케일이 눈을 떴다.
거기까지였다.
“허억!”
케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
그는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
따스한 햇살이 갑자기 돌변하였다.
틈을 메꾼 베이지색 마나가 포근함 대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온몸을 헤집는 것 같았다.
몸 곳곳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그 뒤에 격렬한 통증이 일어났다.
능력 ‘찰나’를 사용했을 때 느낀 통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통이 온몸을 뒤덮었다.
“…어, 억-!”
케일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고통은 처음 겪어보았다.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아픔이었다.
사지가 덜덜 떨렸고, 그의 이마는 물론이거니와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 되어갔다.
우우우—우우—
집무실을 뒤덮은 밀라의 마나가 일으키는 진동 소리.
그 중심의 케일은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질려가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여의주 속 세 사람도, 영상통신구 속 대표로 자리한 론과 용병왕 버드도.
문밖에 석상처럼 굳어버린 알베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지만, 밀라에 가려 케일을 보지 못한 채 주변을 살피는 라온도.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조금씩. 베이지색 마나가 케일의 몸에 스며들수록 금과 상처가 사라져갔다.
나아가는 케일의 몸과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케일.
보지 못한 라온과 달리, 어른들은 보았기 때문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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