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81
2부 123
무림맹이 있는 무한에서 곤륜이 있는 청해로 향하는 길은 상당히 멀었다.
동에서 서로, 꽤 긴 거리를 가로질러야 했다.
“인간아, 텔레포트 쓰면 안 되나?”
라온의 물음에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강시들이 있어서 안 쓰는 편이 좋아.”
2명의 생강시.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던 팀장 수이 칸이 입을 열었다.
“한 명은 제갈은소이고. 한 명은 누구랬지?”
다그닥. 다그닥.
마차는 꽤 빠른 속도로 달렸지만, 마차 안은 흔들림 없이 평온했다.
“정찬. 소림에서 파견 나온 자라고 하더군요.”
케일의 대답에 이수혁은 정찬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듯 슬그머니 마차 창을 열었다.
그러고는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바로 창을 닫았다.
“바깥 분위기가 아주 살벌하네.”
후발대에는 케일 일행이 탄 마차를 제외한 다른 마차는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경신법을 펼쳐 말의 속도를 따라오고 있었다. 케일 일행 중에서도 권왕 목현과 목희, 그리고 위 상선은 마차 밖에서 뒤따르는 중이었다.
“사파와 정파를 붙여뒀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느긋하게 말하는 이수혁은 왠지 재밌어하는 표정이었다.
케일은 이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끄응.”
그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큰 마차.
하지만 이곳이 꽉 차 보이게 만드는 데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인 툰카.
그가 앓은 소리를 내며 영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와 케일의 시선이 마주치자, 툰카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갑갑하다.”
그 얼굴이 참으로 흉하다 생각하며 케일은 답했다.
“조용히 있어라.”
“끄응.”
툰카는 다시 앓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인간아, 툰카가 불쌍해 보인다!
라온의 말에 케일은 조금도 동의하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을 만들 순 없지.’
툰카가 지금 밖에 나가면 사마정과 붙어서 다닐 것이다.
‘저 둘이 같이 다니다가 뭔 사고라도 나면, 아주 귀찮아질 거야.’
그래서 떨어뜨려 놓기 위해 툰카는 마차 안에 두었다.
“도련님, 이거 드시지요.”
케일은 론이 건네는 다과를 고분고분 받아들이며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어쨌든 조용하니까, 편하네.’
팀장이 바깥 분위기가 살벌하다고 했지만, 케일은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사파의 합류에 반발이 일어났다고 했지?’
사마가 세 남매를 필두로 한 8명의 사도련 일행의 합류에 대해 총군사 제갈미려가 찬성을 표했다.
‘혈교와 생강시 상대를 위해선 사파를 끌어들이는 것이 수순이었으니, 당연한 결정이지.’
당연히 맹주 고세범도 총군사의 뜻을 지지하였다.
그 결과로 무림맹 내부 곳곳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더불어 이번 협상단에 포함된 인물들 중 반대를 표하며 드러누운 자도 있다고 했다.
‘벽선이었지.’
정파의 오선 중 한 명으로, 관을 상당히 증오하며 더불어 사파에 대한 증오도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맹주와 총군사의 설득에 결국 벽선은 뜻을 바꿨다.
‘그리고 후발대로 자리를 옮겼지.’
더러운 사파 놈들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관찰하고야 말겠다고.
‘또 나를 관찰할 속셈도 있고.’
어찌 되었든 사마가의 남매들은 김 공자와의 동행을 명목으로 이 일행에 끼어들었다.
물론 무림맹 사람들은 그 안에 사파에서 정파와 마교의 협상을 탐색하려는 속셈이 끼어있거나 협상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여겨 반대하고 날을 세운 것이지만.
‘실제는 혈교 때문이지.’
적어도 사마단과 사마공은 이 일행의 목적을 알아채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물론 이는 케일이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니, 조용히 갔으면 합니다.’
그 말에 사마공이 아주 놀라워했다.
‘제, 제 생각을 알아챈 것이 확실하군요!’
라온에게서 전음을 들었다고 말할 수 없던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그에 두 남매는 진중한 얼굴로 답했다.
‘제 술을 걸고 비밀을 지키지요.’
‘누이와 저만 알겠습니다. 련주님께도 지금은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이를 어기면 제가 도박을 끊겠습니다.’
케일은 술과 도박을 거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표정이 떨떠름하게 굳었다.
‘그래도 뭐, 지금은 조용하니까 된 거지.’
무한에서 출발한 지 이틀째인 오늘, 생각보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어떠한 마찰도 없이 신속한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권왕 목현.
그가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고, 사파와 정파 사이에서 움직이는 바람에 섣불리 그 날을 내세우는 이가 없었다.
관과 사파를 싫어하는 벽선일지라도, 전대 고수인 3왕 중 한 명인 권왕에게만큼은 제 성질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 덕에 조용히 가는 상황에 케일은 꽤 흡족했다.
‘오히려 잘됐어.’
생강시인 제갈은소와 정찬.
두 사람은 정파와 사파가 서로를 경계하는 이 상황 덕에 움츠러들어 있었다.
변수가 발생할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이대로 곤륜까지 가서 마교까지 가면 좋겠는데.’
청해에 있는 곤륜산.
그곳에 자리한 곤륜파.
청해를 넘으면 신강이라는 지역이 나타난다.
그 신강에 마교가 존재했다.
신강은 사막과 척박한 환경을 지닌 땅을 가진 곳이었다.
‘마교에서는 천마만 설득하면 일이 쉽게 풀릴 텐데.’
천마는 마교에서 우두머리이자 신이었다.
그를 이 일에 끌어들이는 것이 관건일 터.
‘어떻게든 되겠지.’
케일은 미리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오독오독.
다과를 먹으며, 지금 이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텔레포트로 빨리 이동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런 쉬는 시간도 오랜만이니 즐겨야지.’
매일 저녁마다 근처 객잔에 들러 잠도 푹 자면서 이동 중이었기에, 케일로서는 꽤 몸이 편해서 좋았다.
‘그래, 언제 이런 여유를 또 즐겨보겠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음?”
그때, 갑자기 최정수가 벌떡 일어섰다.
최한은 검집에 손을 올렸다.
팀장이 묘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인간아!
그리고 라온이 케일을 불렀다.
케일은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뭔가 온다.
콰아앙-!
그때, 갑자기 마차 앞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크윽!”
말이 날뛰는지 마차가 흔들렸다.
“도련님. 제가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론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흔들리는 케일을 부축했다.
그 미소가 살벌하게 느껴지려는 케일에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뭔가 벌어졌구나.
“빌어먹을.”
좀 쉬려고 하면! 일이 터져! 일이!
케일은 저도 모르게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
문을 열었던 위 상선이 이를 듣고 당황하며 어깨를 흠칫 떠는 순간.
최한이 태연하게 물었다.
“밖에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것이-”
위 상선이 정신을 차리고 말을 하려는 찰나.
“감히 지금 산적 놈들이 우리를 공격한 것이냐!”
산적?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을 때, 위 상선이 다급히 답했다.
“녹림에서 갑자기 습격을 해왔습니다. 권왕께서 이를 막으셨지만, 잠시 길을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아.
케일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위 상선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러트렸다.
‘김 공자님같이 마음이 넓으신 분이-’
‘빌어먹을’이라고 거친 말을 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위 상선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절로 입안이 메말라갔다.
하지만 바깥 상황은 일촉즉발의 형태로 변해갔다.
현재 케일 일행이 지나는 길은 한쪽에 절벽을 두고 있었다.
쿠웅.
그 절벽에서 한 사람이 뛰어내렸다.
“크큭. 우리 땅에 발을 들였으면,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소?”
껄렁껄렁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이를 본 벽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놈이 여길 왜!”
“으음.”
그리고 사마단이 침음을 삼켰다.
하북팽가의 팽유는 남궁마희의 곁으로 다가가며 속삭였다.
“녹림의 2인자가 나타날 줄은 몰랐네요.”
현재 사도련은 양강으로 나뉘어 서로 간의 견제가 끊임없이 오고 가고 있었다.
각 세력의 중심은 사마가와 녹림.
그런데 현재 녹림의 2인자인 하문이 수십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절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딱 봐도 미리 와서 기척을 죽인 채 기다린 모양새였다.
“그쪽이 유명하신 권왕 어르신인가 보구려. 거칠게 인사드려서 미안하게 됐수다.”
하문이 그래도 나름 예의를 차려 권왕에게 꾸벅 인사를 해댔다.
“후후. 거칠긴 하군.”
권왕은 손을 살짝 털었다.
그의 앞에는 산산조각이 나 그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나뭇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야.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그 커다란 나무통을 고대로 다 날려버리시고. 역시 권왕이십니다! 크하하하하!”
뭐가 그리 웃긴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 하문의 귓가로 날카로운 음성이 내리꽂혔다.
“저런 오만방자한! 지금 감히 무림맹의 앞길을 산적 나부랭이 따위가 막은 것이냐!”
벽선의 서릿발 같은 호통에 하문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쿵.
그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도끼를 땅에 박았다.
웬만한 성인 남성 정도의 무게를 지닌 거대한 도끼였다.
“앞에서는 착한 척하고 뒤에서는 온갖 추잡하고 속 좁은 짓을 하는 정파 새끼들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뭐, 뭣이라?”
“왜? 벽선이라 불리더니, 아예 벽창호라도 된 거야? 귀가 안 들려? 응? 크크큭!”
“하! 이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펄럭펄럭.
벽선의 넓은 소맷자락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를 중심으로 내공이 서서히 휘몰아쳤다.
철컥. 철컥, 철컥.
그리고 다른 무림맹의 사람들도 그의 뒤에 자리하며 각기 무기에 손을 올렸다.
“할아버지.”
“하아.”
목희의 부름에 권왕은 한숨을 내쉬며 골치 아프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제라도 싸움이 벌어질 듯한 태세였다.
“이야. 진짜 우리랑 싸우게?”
하문이 손을 들었다.
그 모양새에 권왕은 곧장 주위를 살폈고 산의 정상을 확인하고는 침음을 삼켰다.
저 멀리, 감각으로 알아챌 수 없는 산꼭대기.
일련의 깃발들이 치솟아 올랐다.
누가 보아도 녹림도들이 모인 채 대기 중임을 알 수 있었다.
“크크큭. 우리 부하들이 이제 내려올 건가 보네!”
하문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참에 싸우면 나야 좋지! 하도 오선, 오선 하길래 궁금했는데. 벽선 노인네랑 싸울 수도 있고. 아주 좋아!”
“하, 말이 통하지 않을 상대군!”
벽선이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차는 순간, 하문이 툭 던졌다.
“그래도 한 가지 안 싸울 방법은 있지.”
“뭐?”
“쟤네 버리고, 우리 데려가.”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 대협. 그것이 무슨 소리이신지요?”
하문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 사마단이 차분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그에 하문이 코웃음을 쳤다.
“흥! 대협은 얼어 죽을 대협. 산적 새끼보고 대협이라고 하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해대는 것을 보니 술에 취했나 보구만?”
“늘 취해있지요.”
담담하게 답하는 사마단의 모습에 하문이 멈칫했을 때.
“지금 이게 무슨 소린가!”
벽선이 분노를 토해내었다. 지난 며칠간 그는 점점 한계치까지 화가 쌓이고 있는 와중이었다.
“벽선 어르신.”
하북팽가의 팽유가 다가와 그를 말리며, 하문에게 말했다.
“갑자기 데려가 달라니, 앞뒤가 없는 말이라 뭔 뜻인지 모르겠소. 설명을 해주시오.”
“흥.”
하문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우릴 아주 바보 취급한 모양새군.”
“뭐요?”
“지금 정파, 사파, 마교끼리 뭔 수작을 부리려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 자리에 사파의 중심인 우리가 없다니! 대가리만 쓸 줄 알고 비리비리한 사마가를 데리고 이딴 짓을 벌이려는데, 우리 사파의 중심인 녹림이 어떻게 가만히 있느냔 말이야! 어?”
“네?”
금시초문인 상황에 팽유도, 권왕도 의아해할 때.
사마공이 뭔가 알아챘는지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한 발 앞으로 나서려 할 때.
“그것이-”
“뭣이라? 비리비리한 사마가?”
사파의 망나니. 사마평의 둘째 아들.
사마정의 눈이 뒤집혔다.
“이 도적질밖에 할 줄 모르는 산새끼들이!”
그가 날듯이 달려들었다.
하문을 향해.
“흥! 애송이 주제에! 좋다! 와라! 네놈들을 다 죽이고, 우리가 간다!”
하문은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절벽 샛길로, 혹은 밧줄로 하나둘 내려오던 산적들도 땅에 닿자마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 이런 무식한 놈들이! 역시 네놈들은 우리 정파의 일에 끼어들 속셈이었구나! 감히 우리 일에 끼어들려고 해?”
“벽선 어르신! 딱 봐도 오해 같은데, 참으시는 것이-”
“싫다! 애초에 이 사파 쓰레기들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었어! 이 쳐죽여도 모자랄 놈들! 오늘 내가 끝장을 봐주지!”
“어, 어르신!”
벽선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하문과 사마정이 부딪치려는 곳으로 보법을 내디뎠다.
“이런.”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형세에, 아니, 이미 싸움판이 벌어진 상황에 권왕이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을 때.
“!”
그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한층 더 높은 경지로 오른 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위기의식.
죽을지도 모른다는 감각.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싶은 거대한 존재감을 마주한 감각.
그는 숨을 들이마시며 겨우 누군가를 불렀다.
“···기, 김 공자-”
달칵.
마차 문이 열렸다.
도끼를 들고 있던 하문도.
달려들던 사마정도.
고함을 내지르던 산적들도, 사마가 남매를 지키려고 방진을 짜던 사파 사람들도.
그리고 벽선을 따라 뛰어들려던 무림맹 사람들도.
“어, 어찌 이런 기운을······.”
마지막으로, 분노에 휩싸여 눈이 뒤집혔던 벽선도.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한낮이건만.
마치 어둠 속에 잠긴 것처럼, 그들의 위에는 태양이 없는 것처럼.
한기가 온몸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히는 듯했다.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 사람은 마차에서 내려섰다.
케일은 저를 보는 이들에게 무심하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태연하게 말하는 그에게서 감히 마주하기 힘든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기세를 피할 수도 없었다.
그저 돌처럼 굳어 바라볼 뿐.
짜증이 한가득 난 케일의 입이 열렸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라도 하게? 그런 싸움이 하고 싶나?”
당장이라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그가 지배하는 공간 속에서 쉬이 입을 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