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50
00249 부수입 =========================================================================
‘이대로 대기할까, 움직일까.’
세 번의 통곡이 메아리쳤다. 이 말인즉슨 통곡의 평야 어딘가에서 누군가 살해당했다는 소리였다.
통곡은 사건이 발생한 뒤에 울린다. 일단 우리는 무사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점에 있었다. 사건 장소가 야영지에 가까이 있을지, 아니면 멀리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솔…. 백한결…. 이유정…. 빨리 일어나….”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는지, 안현은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애들을 깨우고 있었다. 잠시 주변의 기척을 향해 귀를 기울이다가, 나는 고연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고연주도 딱히 걸리는 건 없는 모양이다. 한동안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곧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주위에는 없는 것 같아요.”
“방심하지 마요. 혹시라도 그녀가 나타났다면 거리의 유무는 큰 의미가 없어져요.”
“그녀요?”
“통곡하는 소녀.”
나는 짧게 답해준 후 일월신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한별이는 언제 꺼냈는지, 왼손 손가락에 보석을 알알이 끼고 있었다. 곧이어 그녀는 내 옆으로 바짝 다가오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빠. 통곡하는 소녀라뇨? 상황 설명을 조금만 해주시면 안될까요?”
“일단 지금 뭔 일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지?”
“네. 아까 누군가 죽었다고….”
“그렇지. 그러면 살해 상황은 총 세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거든? 첫 번째. 사용자가 같은 사용자한테 살해당했을 경우. 두 번째. 사용자가 몬스터한테 살해당했을 경우. 세 번째. 어떻게 보면 두 번째 경우와 비슷하기는 한데. 통곡의 평야를 떠도는 망령, 통곡의 소녀에게 공격 당했을 경우. 뭔 소린지 알겠어?”
평소보다 빠른 말로 대답했기에 알아들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한별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주변만 경계하는 상태로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사위는 한없이 고요해져만 갔다. 고연주는 사방을 관찰하는 자세 그대로 뒷걸음질치더니 이내 내 쪽으로 거리를 줄이며 물었다.
“하지만 통곡의 소녀는 사람 앞에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드물다고 알고 있는데요. 일부러 자극하지 않는 이상 큰 해를 입진 않을 터인데….”
“그렇죠.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녀를 화나게 했을 경우 뒷감당을 해야 한다는 소립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통곡의 소녀를 화나게 했다는 소린가요? 어떻게요?”
“그냥 가능성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방법이야 많겠죠.”
“그럼….”
고연주가 말을 이으려는 찰나, 누군가 옆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아마 애들을 깨우러 간 안현인 듯싶었다.
“형! 큰일났어요!”
“뭔 큰일. 그리고 조용히 말해.”
“아, 네. 다른 게 아니고 지금 안솔이 이상해요.”
“솔이가…? 아직 안 깨어났어?”
“아뇨. 깨긴 했는데 깨자마자 헛소리만 자꾸….”
그 말을 들은 즉시, 애들이 자고 있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한결과 이유정은 진작에 일어났는지, 각자의 장비를 들고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안솔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침낭에 들어가 상반신만 일으킨 채 멍한 눈동자로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안솔?”
“…….”
“안솔. 대답해라.”
“늦었어요.”
밑도 끝도 없는, 말 그대로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안솔의 말을 듣는 순간, 뭔지 모를 섬찟한 기운이 등골을 쭈르륵 훑으며 내려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온 몸으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건….’
예전에 아카데미서, 백한결을 찾으러 갈 때 느꼈던 기운. 마음속으로 복잡한 감정이 일었지만 나는 그러한 감정들을 재빠르게 가다듬었다. 이미 안솔의 불안감지 효과는 증명된 바가 있다. 그렇다면, 일단은 당면한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뭐가 늦었다는 소리지?”
“둘 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봐.”
“기다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뭐….”
안솔이 꺼낸 말은, 내가 방금 전 했던 생각들과 거의 비슷했다. 속으로 밀려드는 놀라움에 가슴이 먹먹해지려는 찰나, 한줄기 바람이 야영지 주위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스스스스스스….
어두운 평야에서 수풀을 가르는 소리가 적막한 밤하늘을 울렸다. 그 소리는 너무도 미약해 언뜻 들으면 바람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나는 아까부터 청각을 예민하게 만들어 논 상태였다. 소리의 진원지는 야영지로부터 제법 떨어져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소리가 이곳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스스스스스스.
“웅…? 오라버니?”
이제 약발이 떨어졌는지, 안솔은 몽롱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안솔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어 그녀를 끌어내고는, 클랜원들이 있는 곳으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하체를 질질 끌리면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만 갸우뚱 기울였다.
“수현. 뭔가 오고 있어요.”
“저도 들었습니다. 모두 방진으로. 전투 준비.”
조용히 뇌까리듯 말했지만, 클랜원들은 착실히 내 명령에 따라주었다. 각각의 무기가 뽑히는 차가운 소리가 귓가로 흘러 들었다. 그 와중 한별이 라이트 마법을 준비할지 물었지만, 그냥 준비만 해두라는 말로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처음 소리가 우리와 떨어져있던 거리는 삽시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신속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애매모호한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클랜원들의 귀에도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모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김한별과 안솔이 조용히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리고,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더 흘렀을 때였다.
“마, 맙소사.”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아직 거리는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우리가 동시에 시선을 돌린 곳에서는 소리를 내는 범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다름아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이었지만. 서서 걸어오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대지에 몸을 붙인 채, 드러누운 자세 그대로 미끄러지듯 달려들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사람…? 꺅!”
유정은 더욱 자세히 보려고 했는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가, 순간 비명을 지르며 다시 걸음을 물렸다. 우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쇄도하던 사람이 야영지를 앞두고 순간적으로 방향을 비틀었기 때문이다. 옆구리 부분이 곡선으로 휘고, 그와 함께 흉부와 복부가 파도 치듯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나는 당황하는 클랜원들을 추스르며 가만히 그 움직임을 관찰했다.
‘누군가에게 끌리고 있다.’
안력을 돋우며 모습을 자세히 살피자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사용자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몸의 이곳 저곳이 심하게 훼손되어있었고,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릅뜬 눈이 닫히지 않는 걸로 보아 이미 절명한 것처럼 보였다.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놈은 곧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간을 보는 것처럼 야영지 주위를 S자로 옮겨 다니며 이리저리 배회하고만 있었다. 그 와중에 덜렁덜렁 달려있던 팔 하나가 뜯어지고, 발목도 데구루루 구른다. 가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야, 야! 너 마법사잖아! 저거 어떻게 좀 해봐!”
“네, 네?”
안현의 말에 깜짝 놀랐는지, 김한별을 말을 더듬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리며 허락을 구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맞출 수 있어?”
“네?”
“100% 맞출 수 있냐고. 참고로 쟤한테는 유도 마법도 안 통한다. 저 정도 기동이면 어지간한 좌표 계산이 아니면 빗나갈 거다.”
“그, 그럼….”
맞출 수 있냐는 말에 자신이 없는지, 김한별의 얼굴에 무거운 빛이 스쳤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앞으로 나섰다. 지금 저 움직임은 너무도 빨라, 하연이 있었다고 해도 자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나서자 등 뒤로 “수현. 제가 할까요?” 라고 말하는 고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용맹의 투구를 고쳐 쓰며 연신 목 울대만 움직이는 안현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창 줘봐.”
“네?”
“창 좀 잠깐 빌려달라고.”
“아, 네.”
놈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야영지 주변만 뱅뱅 도는 게, 조금이 틈만 보이면 곧바로 달려들 것이다. 나는 왼손으로 받은 창을 오른손으로 넘긴 후 왼발을 앞으로 크게 내밀었다.
참고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하나가 뭐냐면.
‘별것도 아닌 놈이 앞에서 까불어댈 때.’
창을 든 오른팔을 살짝 뒤로 젖히자, 자연스레 몸의 방향이 오른쪽을 따라 곡선으로 휘었다. 그 상태를 이으며 왼발이 땅에 닿는 순간, 나는 미리 계산해둔 지점을 향해 들고 팔을 크게 내리쳤다.
쐐액!
오른손과 팔이 일직선으로 뻗어지고, 칠흑의 창은 어둠을 날카로이 가르며 곧게 뻗어나갔다. 명중에 중점을 두느라 많은 힘을 싣지는 않았지만, 워낙 근력 능력치가 높다 보니 공기를 찢는 파공음도 무시 못할 정도였다.
이윽고 내가 예상한 진로에서 선회를 하느라 놈의 기동이 잠시 멈추는 순간.
푹!
칠흑의 창은 여지없이 사용자의 몸을 꿰뚫었다. 그 여파로 남아있는 팔과 다리가 허공으로 치솟음과 동시에, 놈의 움직임도 거짓말처럼 정지하는걸 볼 수 있었다.
“오, 명중! 형! 잡은 거예요?”
“아니, 아직 살아있다.”
“그럼….”
“약간이지만 타격은 입었을걸. 이제는 직접 나오게 만들어줘야지.”
이미 아까부터 제 3의 눈과 마력 감지는 활성화해둔 상태였다. 나는 클랜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지시한 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움직임을 멈춘, 누워있는 사람의 몸이 조금씩 크게 보이고 있었다. 왼쪽 허리춤에 꽂아둔 일월신검을 빼어 들자 시원한 소리와 함께 눈부신 검광이 주변을 적신다. 지금을 달빛이 충만한 만큼, 사기 (邪氣)로 물든 놈을 상대하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으리라.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몸은 미동도 없었다.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곧 좋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놈에게 달빛에 반사된 검광을 몸이 쓰러진 장소 주변에 잔뜩 뿌려주기로 했다.
“가르르르륵!”
효과는 확실했다. 일월신검에 반사된 달빛이 사용자의 몸을 이곳 저곳 비추자, 견디지 못하겠는지 곧바로 신호가 온 것이다. 곧 쓰러진 사용자의 몸 아래서 뭔가 검은 인영이 하나 쑥 튀어나왔고, 나는 놈이 오는 방향으로 왼발을 내밀어주었다.
이윽고 양 손이 땅을 급하게 헤집는 소리와 함께 놈이 입을 쩍 벌리며 내밀어진 왼발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차분히 발을 뒤로 빼며 유인했다. 그리고 놈이 내 발목을 노리고 쫓아 들어왔을 즈음, 곧바로 칼을 아래로 찍어 내렸다.
푸슉!
“카라라라라!”
연한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썩은 통나무는 뚫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고개를 내려 자세히 살피자, 목 부분에 칼이 박힌 채 몸부림치는 머리긴 소녀 한 명이 보인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살가죽이 너덜너덜해 뼈가 보일 정도고 하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그 말인즉슨 양 팔로 땅을 짚으며 그 정도의 속도를 냈다는 소리였다.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를 퍼 올리듯 검을 들어올리자, 검 등에 꿰뚫린 채 아우성을 치는 모습을 더욱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흑!”
“끄, 끔찍해….”
클랜원들의 눈에도 보였는지, 탄식이 담긴 목소리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얘가 바로 통곡의 소녀구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1회 차에서는 이름만 들었지,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몰골은 1회 차의 명성만큼 확실히 끔찍했다. 눈동자는 어디 갔는지 퀭한 눈구멍만 자리잡고 있었고 코는 짓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입은 검게 변색한 잇몸이 훤히 노출되어있었는데, 그 주위로 검붉은 진득한 액체와 살점 찌꺼기들이 번들거리며 끼어있었다
곧이어 고개를 내려 실종된 허리 아래로 뭔가 주렁주렁 매달린 줄기를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혀, 형! 조심하세요!”
“응?”
안현의 경고에 고개를 올리자, 검 등을 쭉 타고 내려오며 이빨을 부딪치는 통곡의 소녀가 보였다.
‘어이쿠.’
그 동안 쌓인 사기 또는 원혼이 꽤 되는지 일월신검에 뚫린 상태서도 제법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양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벌려진 입 사이로 손을 넣어주었다. 그러자 망령은 얼씨구나 하며 내 손을 콱 깨물었다.
탁!
이빨과 장갑이 부딪치는 소리. 패기는 마음에 들었지만, 애초에 내구와 TOPG를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손을 우그러뜨리며 살짝 힘을 주었다.
뿌각! 뿌가각!
이빨이 부서지는 감촉이 장갑을 타고 내부로 짜릿하게 전해져 들어온다. 그렇게 입 안을 완전하게 박살낸 후, 손을 툭툭 털자 이빨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방방 허공을 휘젓는 손을 손수 감싸 쥐어, 똑같이 바스러뜨려주었다.
‘이 정도면 됐나?’
이빨을 박살냈고, 양 손도 조각 냈으니 설령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공격 수단은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일터. 나는 한결 안심한 마음으로 검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렇게 혹시 다른 위험한 게 있나 살펴보다가, 나는 왼손으로 통곡하는 소녀의 머리채를 쥐어 올렸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나를 보는 클랜원들을 향해 내밀며, 자랑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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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네. 요즘 들어 이상한 소문이 들리더군요. 제 이름이 로유미고, 성별이 여자라는 소문이요. 후…. 독자 분들. 저는 본명이 로유미도 아니고, 성별이 여자도 아닙니다. 엄연한 남성입니다. 항공모함급 모함에 속지 않으실 거라 믿었는데, 코멘트를 보고 많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정말 하체 인증이라도 해야 믿어주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