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251
00250 부수입 =========================================================================
한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 들어올리자 애들이 흠칫한 얼굴로 한 발짝 물러났다.
“아까 얘기해줬지? 얘가 통곡하는 소녀야. 나도 실물은 처음 본다 야.”
“오, 오빠!”
“?”
“그것 좀…. 으….”
이유정은 통곡하는 소녀를 보다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비단 이유정뿐만이 아니었다. 클랜원 대부분의 얼굴에는, 못 볼걸 봤다는 표정이 띄워져 있었다. 그 중 오직 고연주만이 처음의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녀를 향해 시선을 흘끗 던지고는 이내 시체가 있는 쪽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얘가 그렇게 무섭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왼손을 풀고, 꽂아놨던 검을 더욱 가까이 가져왔다. 통곡의 소녀는 예의 그로테스크한 모양새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리 심한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앞을 향해 다시금 시선을 던지자, 여전히 두려움에 물들어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두려움. 확실히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잠재되어있는 공포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 또한 인간인 이상 공포,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다.
다만 내가 애들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공포를 느끼게 되는 한계선이 다르다는 것.
‘지옥 최하층까지 떨어졌을 때. 그때 진짜 죽여줬는데.’
팔열 지옥 중 최하층을 담당하는, 가장 악질적인 녀석들만 모여있는 무간 지옥. 나는 그곳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적인 면에서 온갖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1회 차 홀 플레인 활동 중 최고의 행운을 지옥에서 다시 생환한 것을 꼽을 정도로, 그곳은 끔찍한 곳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항상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게 했던 지옥의 사자들과 비교하면 통곡하는 소녀는 그냥 애완용 토끼 수준이었다.
들고 있던 일월신검을, 반 바퀴 정도 비틀어 뽑아내자 통곡하는 소녀가 아래로 툭 떨어진다. 땅으로 떨어진 직후 남아있는 상반신은 삽시간에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전히 회색으로 변한 몸을 가볍게 걷어차자 그것은 이내 한줌 부스러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렸다. 웅장하게(?) 등장한 것 치고는 초라한 퇴장이었다.
“혀, 형. 죽은 거예요?”
“글쎄다.”
“네?”
“고연주. 뭐 알아낸 거라도 있나요?”
고연주는 쭈그려 앉은 상태로 시체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내 물음에 허벅지를 짚고 힘차게 일어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특이한 건 없어요. 이리저리 심하게 물어 뜯긴 걸로 보아 통곡하는 소녀에게 당한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뭐 건질만한 건?”
“개털이에요. 애초에 시신 훼손이 너무 심해요.”
“쯧.”
혀로 애꿎은 어금니만 핥고 있자 고연주는 내게 팔랑팔랑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어떻게 해요.”
“나도 설마 통곡하는 소녀를 그렇게 무식…. 아, 아니 그렇게 잘 잡을 줄은 몰랐거든요. 일단 일말의 위험은 없어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저 남자 혼자 당한 것 같지는 않네요.”
“흠….”
확실히 고연주의 말이 맞다. 정신 나간 사용자가 아니라면 이 밤에 혼자 탐험을 나올 리가 없으니까.
나는 잠시 동안 고민하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통곡의 소녀가 여기까지 온 흔적은 잡을 수 있겠군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뭐, 어차피 오늘밤은 잠자기도 그른 것 같으니….”
깨어있던 애들은 물론, 한창 달게 자다가 일어난 애들도 잠이 싹 달아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냥 다시 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뭔가 정황이 미묘한 게 없잖아 있었다. 그러면 일단 흔적을 쫓아보고, 그 흔적이 길어진다면 그때 중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안되면 그대로 야간 행군을 하면 되겠지.’
속으로 애들이 들으면 비명을 지를 생각을 하며, 나는 야영지를 향해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야영지 정리하자.”
*
야영지를 정리한 후 우리들은 고연주를 앞세워 통곡의 소녀가 들어온 길을 되짚어갔다. 그녀의 추적 능력은 확실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아직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행군을 단 한번도 멈추는 것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다행히 추적은 우려했던 만큼 엄청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냥 이쯤에서 포기할까 생각이 들 즈음, 야영지를 발견한 것 같다는 고연주의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공기중의 냄새를 맡다가, 대지를 자세히 살피다가 하더니 이내 손가락을 들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시죠? 풀이 다른 곳보다 짧게 눌린 곳. 아무래도 저기인 것 같은데요.”
“음. 가봅시다.”
고연주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가자 곧이어 고요한 평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참한 광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리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이리저리 널브러져있는 시체들과, 산산이 부서진 야영용 마정석이 더욱 눈에 밟히고 있었다.
“와.”
“으악!”
이윽고 야영지에 가까이 다가서자, 역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 들었다. 눈 앞에 벌어진 참혹한 광경에 몇 명은 할말을 잃었고, 또 몇 명은 약한 비명을 질렀다. 그 동안 잘 참아오던 백한결도 이번에는 도를 넘어섰는지 결국 그 자리에서 엎드려 구토를 하고 말았다.
야영지에는 총 세 명의 사용자가 쓰러져있었다. 남성 두 명, 여성 한 명. 즉 아까의 남성까지 합하면 총 네 명으로 구성된 캐러밴이 평야에 있었다는 소리였다.
두 명의 남성 중 한 명은 목이 크게 뜯겨져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복부의 장기가 줄줄 흘러나올 정도로 파헤쳐져 있었다. 그래도 둘의 사체는 여성의 시체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고 볼 수 있었다. 하얀 사제 복을 입고 있는 여성의 경우는 아예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찢겨진 사제 복 사이로 드러난 젖가슴은 크게 물어 뜯겨진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주변에 흩어진 눈알, 살점 등의 파편 조각들을 보면 이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조금 이상하네요. 복장을 보면 그렇게 실력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통곡의 평야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필드입니다. 통곡하는 소녀를 자극하면 안된다는 걸 몰랐을 리는 없는데.”
“자극하는 것 자체가 어렵잖아요? 애초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고 들었어요.”
“피해 상황이 아주 없는 건 아닐 겁니다. 바바라의 도서관에 있는 예전 기록들을 살펴보면 몇 번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어요. 그래서 통곡의 소녀를 자극하지 말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고연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반박하기는 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금 상황을 놓고 보면 이들이 일부러 통곡의 소녀를 자극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때 백한결의 등을 두드려주던 김한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사용자들도 피해자가 아닐까요?”
“응? 피해자?”
“네.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아귀가 맞아 떨어질 것 같아서….”
“피해자라고….”
만약 그렇다면, 통곡의 소녀를 자극한 누군가가 어그로를 일부로 이들에게로 돌렸다는 소리였다. 일리는 있는 소리였다. 그럼 그런 짓거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용자의 소행일까?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정보는 부족하고 열려있는 방향은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일단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여기서 더 머무른다고 해도 추가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더 이상 시간낭비를 하느니, 통곡의 소녀로 인해 어그러진 계획을 최대한 원위치 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워 뭐 챙길 거라도 없나 살펴봤지만, 안타깝게도 개털이었다. 입고 있는 장비들을 벗기려고 해도 대부분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라 거의 쓰레기 수준이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쉬었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
어스름한 새벽빛은 평야 전체를 비추어 서서히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날이 샐 무렵에 끼는 안개로 인해 시야가 조금 제한을 받았지만, 행군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시체들이 있는 야영지를 벗어난 이후로 나는 결국 야간 행군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빨리 통곡의 평야를 벗어날 셈이었다.
클랜원들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당장 몇 시간 전에 끔찍하게 살해당한 시체를 봐서 그런지 다들 말없이 묵묵히 내 뒤를 따르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럼 이쯤에서 잠시 휴식할까.”
그저 걷기만했던 야간 행군이 상당히 힘들고 지루했는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솔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예전 같으면 너무 힘들다, 못 따라가겠다 징징거렸을 터인데, 그래도 이번에는 군말 없이 따라오는걸 보니 조금이나마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저, 저기. 클랜 로드님. 물 드세요.”
“어. 한결아? 속은 좀 괜찮아?”
“네, 네. 괜찮아요.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헤헤.”
“큭. 그래. 물은 고맙다.”
백한결은 현재 자신의 처지를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성능 좋은 시크릿 클래스 신의 방패라고 해도, 현재는 자신의 능력이 제일 낮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전투에 도움이 되지 못하니 다르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
“아이고 힘들다.”
백한결에게 물을 한 병 건네 받은 안현은, 죽는 소리를 내며 내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넘기다가 문득 모닥불에서 안현과 나눴던 말들이 떠올랐다.
“안현.”
“네?”
“그러고 보니 너 아까 나한테 물어볼게 있다고 하지 않았냐. 모닥불 앞에서.”
“아아. 그거 실은 별거 아니었어요. 그냥 환각의 협곡에 정말로 유적이 있을까 궁금해서요.”
안현은 정말 별 것 아니었다는 말투로 싱겁게 웃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클랜원들은 다들 말없이 이곳 저곳에 앉아있었다. 애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그늘지어있었다. 이 밍밍한 분위기를 쇄신할 겸, 그리고 휴식 시간도 때울 겸 나는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환각의 협곡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볼래?”
“형 말이면 당연히 들어야죠. 피가 되고 살이 되는데요. 어떤 이야기인데요?”
“홀 플레인 고대 기록.”
“고대 기록? 신화나 전설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슬쩍 시선을 돌리니, 내 쪽을 향해 모여드는 시선과, 쫑긋쫑긋 움직이는 귀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미미한 웃음과 함께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반부는 별것 없는 이야기였다. 그냥 어디 흔한 동화나 소설에서처럼, 고대 홀 플레인 의 대륙에는 위기가 있었고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용사들이 모였다. 인간 검사, 인간 사제, 인간 마법사, 요정 궁수, 용족 마법사 등등 여러 명의 실력 있는 용사들.
그들은 숱한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결국 마지막 관문인 악의 세력과 대결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결국 홀 플레인 의 대륙은 평화를 되찾았다는 내용이었다.
안현은 처음에는 진지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홀 플레인 이 평화를 되찾은 후, 용사들의 대장이었던 인간 검사와 궁수를 맡은 요정 여왕이 약혼식을 올렸다는 말을 듣자 김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에이. 뭐에요. 되게 흔한 얘기잖아요.”
“여기까지는 그렇지. 그런데 정말 재밌는 점은,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야. 아까 내가 말해줬던 인간 마법사 기억나니?”
“음. 마지막 전투에서 용사들 대부분이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 중 한 명이었죠?”
“그렇지. 영웅, 요정 여왕, 대마법사, 성녀. 이렇게 총 네 명이 살아남았거든. 그런데 기록을 보면 대마법사가 요정 여왕을 남몰래 흠모했다는 내용이 몇 번 나와.”
안현은 아직까지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금 손을 놀려 물 뚜껑을 열려다가, 이어진 내 말에 다시 멈추고 말았다.
“에에. 대마법사 엄청 늙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요정도 나이가 많은가? 그래도 외관상 차이가 심할 것 같은데…. 아무튼 그 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데요?”
“둘의 약혼식이 끝난 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영웅과 요정 여왕을 자신의 본거지로 초대하지. 그곳이 바로 환각의 협곡에 있는, 협곡 도시라고 하더라고.”
“오호. 그렇구나. 그리고요?”
“그게 끝이야.”
“네?”
“뭐라고요?”
대답은 한 명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다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이야기에 푹 빠져있었는지, 허무한 결론이 나오자 맥이 빠지는 모양이었다.
“영웅과 요정 여왕은 기꺼이 대마법사의 초대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환각의 협곡으로 들어갔지. 그게 끝이라고.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어. 이제 왜 이걸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고 하는 줄 알겠지? 그 뒤에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없으니 기록이 거기서 멈춘 거야.”
“형. 그러면 그 세 명은 그대로 행방불명 된 거예요?”
“히잉. 말도 안 돼. 그럼 다른 사람들이 본거지로 사라진 용사님들을 찾으러 가면 되잖아요오….”
“그게….”
안솔의 칭얼거림에 막 대답을 이으려던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고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감지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기척이 잡히는 순간, 탐험 후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건…. 네 발자국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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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실은 오늘 후기를 자크를 풀고 “제가 바지를 벗으면 믿어주시겠습니까?” 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짐작하신, 또는 “아.” 하고 느끼실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는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독자 분들이 진짜로 “응. 벗어봐. 그럼 믿을게.” 라고 하면 어떡할래? 라고요.
…….
네. 그래서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그냥 조용히 있겠습니다.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