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06
00305 역관광이란 무엇인가? =========================================================================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김수현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단 한 번 땅을 박찼을 뿐인데, 그는 정반대 편에 있는 마법사들과의 거리를 삼분지 일 가까이 줄여버렸다. 실로 가공하리만치 무서운 도약력이요, 속도였다.
부랑자들은, 동료를 가볍게 해치우고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김수현의 기세를 어렴풋하게 느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 또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지금 광장에 있는 부랑자들은 ‘진짜 부랑자’들이었다. 도시라는 안식처가 없이 항상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목숨의 위협을 받는 자들.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이를 상대한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에 따른 사선을 몇 번이나 헤쳐 넘어온 실력자들이었다.
“집중사격! 집중사격 준비!”
정 중앙에 위치한 마법사가 지팡이를 높게 들어올리며 외치자, 한창 주문을 준비하던 마법사들이 일거에 고개를 돌린다. 이윽고 쏜 살 같은 속도로 짓쳐 들어오는 김수현을 발견했는지, 그들은 일제히 지팡이를 겨냥했다.
지팡이 끝에 박힌 보석에는 각각 형형색색의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뒤늦게 주문을 준비하는 마법사들의 수까지 합친다면 물경 스물을 헤아리는 마법이 김수현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시시각각 거리를 줄여오는 김수현을 보고 있음에도, 부랑자 마법사들은 바로 마법을 발사하지 않았다. 아우성으로 가득한 광장이 신경이 거슬릴 법도 한데 그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한 채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중앙에는, 처음 집중사격을 외쳤던 마법사는 나직이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질속(疾速) 영창을 익힌 듯 그가 들고 있던 지팡이 끝자락에서 삽시간에 초록빛 구체가 생성되었고, 점점 둥글게 크기를 키워갔다. 이윽고 구체가 축구공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즈음, 마법사는 한층 우렁찬 목소리로 시동어를 외쳤다.
“───. ───. ───. 인스네어(Ensnare)!”
이윽고 김수현을 겨누던 지팡이에서 초록빛 구체가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구체는 이내 물결처럼 넓게 퍼지며 김수현을 덮을 듯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마치 그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도 일제히 마법을 발사했다.
“워터 스피어(Water Spear)!”
“아이스 캐논(Ice Canon)!”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ing)!”
“썬더 볼트(Thunder Bolt)!”
수많은 빛이 번쩍였다. 무시무시한 마력을 흘리는 마법들이 경쟁적으로 김수현에게 쇄도한다. 흡사 빗줄기처럼 우수수 쏘아지는 마법의 연쇄는, 폭격을 연상케 할 정도로 완벽한 화망을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폭격의 선두에 선 인스네어 마법이 김수현의 근거리에 닿았을 때였다.
바다 빛 도복을 묶고 있는 붉은 허리띠에서 일순 작열하듯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지랑이에 점차 푸른빛이 맺히며 구체화하는가 싶더니, 초록색 그물이 김수현을 덮칠 즈음 푸르스름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치이익! 치이이익!
인스네어 주문을 외운 마법사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물결처럼 밀려갔던 마법은 ‘하늘의 영광’과 ‘태양의 영광’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된 방어막에 허무하리만치 막히고 말았다. 인스네어는 물에 탄 물감처럼 확 번지더니, 고기 타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종래에는 초록빛 물보라를 뿌리며,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이어서 드러난 김수현의 모습은 한손 검이 아닌 양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어느새 일월신검은 왼손으로 옮겨 잡은 상태였다. 오른손에는 검신이 보이지 않는 손잡이만 남은 검이 들려있었다. 김수현은 폭풍같이 달리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몰아쳐 들어오는 무수한 마법을 향해 거침없이 검을 베어 들었다.
첫 타자는, 뾰족한 창 모양을 한 워터 스피어였다.
서걱! 촤아악!
보이지 않는 검은 놀랍게도 워터 스피어를 깔끔하게 베었다. 강제로 마력이 끊긴 마법은 목표를 잃어버렸고 허공에 잔 물방울을 흩뿌리며 사라져 없어졌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드는 마법은 아직 수없이 남아있었다.
사방팔방, 전방위를 빼곡히 채운 집중사격은 아예 김수현이란 존재 자체를 산산이 파괴해버리려는 듯 살벌한 기세로 달려드는 중이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2차 공격을 준비하는 마법까지 합치면, 그 파괴력은 가히 지면의 일부를 날려버리고도 남을 것이다.
서걱, 펑! 서걱, 쨍그랑!
이윽고 김수현에게 마법의 다발이 다다랐을 때였다. 워터 스피어를 잘랐을 때부터 마법사들의 눈동자에 어렸던 불신감이, 연발이 들어가는 순간 한층 심해졌다.
펑! 펑! 펑! 펑! 펑! 펑! 펑! 펑!
그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오른손엔 보이지 않는 검. 왼손에는 일월신검. 김수현은 두 개의 검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연속해서 덮쳐 드는 마법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쳐내고 있었다. 마치 솜씨 좋은 정원사가 재빠르게 나무의 곁가지를 치는 것처럼, 김수현에게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차를 두고 들어오는 것도 거의 동시에 들어오는 것도 모두 예외는 없었다.
김수현의 사위로 수많은 검광이 번쩍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섬뜩한 궤적을 남기는 칼날의 빛은, 차마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라 흡사 정교한 검막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지간하면 한 발 정도는 들어갈 법도 한데 김수현은 단 한 발의 접근도 허용치 않았다. 그 정도로 김수현이 흩뿌리는 검광은, 세밀하고 촘촘했다. 김수현의 검이 한 번 훑을 때마다, 마법은 여지없이 잘라져 날개가 찢긴 종이비행기처럼 목표를 잃고 허공을 선회한다. 그리고 이내 힘없이 허공 속으로 사그라졌다.
이윽고 집중사격이 끝난 후, 폭발로 인해 발생한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김수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푸르스름한 방어막은 여전히 잔잔한 바다 빛을 띠고 있었고, 옷에는 그을음 하나조차 보이지 않는다. 두 발을 디딘 대지에 충격의 여파로 이리저리 쓸린 바닥만이 남아있을 뿐, 김수현은 자그마한 생채기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새 중앙광장은 조용해져 있었다. 살고 싶다는 생존을 갈망한 비명도, 이글이글 불타오르던 복수심을 반영한 광기도 모두 사라졌다.
광장을 가득 메우던 비명과 광기가 가라앉고, 경악과 불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사용자와 부랑자 모두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린 채, 단 한 명의 남성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사용자들은, 그 중 특히 보통 검사들에게는 검으로 마법을 막는 것은 비상식에 해당하는 행동이다. 두터운 장갑을 갖추고 검에 마력을 잔뜩 머금었다손 치더라도, 마력과 마력이 맞부딪침으로써 일어나는 폭발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마법사는 마력 능력치가 가장 높은 클래스에 속하기 때문에, 항마에 관련한 능력이 없다면 마법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은 검사들에게는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금기를 정면에서 깬 사용자가 출현했다. 그것도 한 발이 아닌, 수십여 발에 이르는 마법을 모조리 쳐내고, 파쇄했다. 비상식이라 여겼던 일을 현실로 실현한 것이다.
김수현이 모든 공격을 막아낸 후, 1초라는 짧은 시간이 흘렀다. 고개를 든 그의 눈동자가 한 번 번뜩이는가 싶더니 이내 전방의 허공으로 몸이 크게 튀어 올랐다. 궁신탄영과 오로쓰로스 부츠의 능력을 합쳤는지,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도약력과 속도였다.
눈 한 번 깜짝했을 뿐인데 김수현의 신형은 어느새 부랑자 마법사들이 모여있는 장소의 허공에 진입하고 있었다. 부랑자들은 멍하니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침 서서히 하강을 하려는지 김수현의 몸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제야 잠시 놓았던 정신을 붙잡았는지, 부랑자들은 여태껏 멈췄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쏴, 쏴라!”
슈슈슈슈슉!
궁수들의 화살이 쏘아졌다.
“───. ───. ───.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
“───. ───. ───. 파이어 랜스(Fire Rance)!”
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의 주문이 터져 나왔다.
다시 한 번 화살과 마법들이 허공을 향해 치솟았다. 김수현의 도약이 최고점에 닿고 막 내려오려는 순간을 노린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김수현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당황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입가에 미소까지 살짝 띤걸 보니 애당초 예상한 걸지도 모른다.
쐐액! 쐐액!
퍼벙! 퍼버벙!
화살과 마법은 여지없이 김수현을 꿰뚫었다. 전신에 숭숭 뚫린 구멍을 보며 부랑자들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희열 어린 표정은, 김수현을 맞추고도 여전히 허공을 가르는 화살들과 서로 부딪쳐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을 보는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윽고, 대기에 남아 이리저리 찢긴 김수현의 잔상이 천천히 허공 속으로 녹아 들었다. 이형환위(移形換位)였다.
“뒤, 뒵니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던 부랑자들은 허둥지둥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 집중사격을 지휘하던 부랑자 마법사도 외침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김수현은 이미 목표했던 부랑자의 후방을 점거한지 한참 전이었다.
급히 몸을 돌린 부랑자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보이지 않는 검을 크게 내리긋는 김수현의 모습과 허공을 수놓는 푸르른 궤적뿐이었다.
*
팍!
무검은 정수리부터 세로로 쪼개어 들어가, 입 부분까지 완벽하게 반으로 갈라버렸다. 아까 나에게 인스네어 마법을 구사한 놈이었다. 실력도 제법 괜찮았지만 지휘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첫 표적으로 잡은 것이다.
풀썩!
머리가 반으로 갈라진 마법사는 그대로 몸을 허물어뜨렸다. 쓰러진 목에서 피가 주룩주룩 흘러나와 광장의 바닥을 서서히 적셨다.
이로서 부랑자들의 한가운데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신속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접 계열이 몇 명 보이긴 했지만 대다수가 원거리 계열들이었고, 그 중 80%를 마법사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산전수전 겪은 부랑자들이라고 해도, 설마 이렇게 쉽게 뚫릴 줄은 몰랐는지 모두의 움직임이 정지한 상태. 기회였다. 나는 지체 없이 일월신검을 검집으로 돌리고 무검을 세게 쥐었다. 일월신검의 성능도 나쁘진 않지만, 이놈들을 최대한 쓸어버리려면 내 마력을 100% 소화할 수 있는 무검이 더 나았다.
우웅!
서서히 마력을 일으키자, 무검은 청명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장애가 없는 놈들이라면 확실히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몇몇 놈들이 몸을 움찔하는 것을 보며 나는 회로를 타고 도는 마력의 속도를 가일층 높였다.
이윽고 오른손을 통로로 삼은 마력이 짜르르 흘러 들어가자 무검의 주위로 심상치 않은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96포인트에 해당하는 마력 능력치를 온전히 담아서 그런지, 대기를 떨쳐 울릴 정도의 강렬한 진동이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을 즈음 나는 무검을 한 번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검을 타고 물결처럼 넘실대는 게 보였다. 사방에서 황급히 주문을 외우는 소리와 시위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옆으로 뛰어들어가, 마법사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있는 힘껏 무검을 후려갈겼다.
뻥!
빈 허공을 치자 아무것도 없던 대기가 크게 꿀렁거렸다. 그리고 오른손에 묵직한 반발력이 느껴지는 순간, 검신 전체를 타고 있던 마력은 이내 하나의 파동이 되어 마법사들을 덮쳐 들었다.
콰콰콰콰!
“씨, 씨발!”
“막지 말고 피해!”
대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파동은, 놈들과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부채꼴 모양으로 범위를 넓혔다. 그 범위에 포함된 마법사들은 전면에서 밀려오는 파동의 기세를 느꼈는지, 급히 좌우로 갈라지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피할 수 있었던 것은 호의 좌우 끝에 있던 운 좋은 놈들뿐이었다.
“끄아악!”
“꺄아아악!”
이윽고 거대한 파동이 마법사들이 모여있던 장소를 덮쳤다. 나 또한 파동을 뒤따라 달려가고 있었기에 놈들이 당하는 광경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쏘아 보낸 파동은 첫 번째 열에 있던 다섯 명의 신체를 거침없이 자르며 들어갔다. 그리고 두 번째 열에 있던 네 명의 몸 또한 잘라냈으며 세 번째 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절삭력이 무뎌진 듯, 남은 두 명을 허공으로 띄웠다. 물론 그렇다고 놈들이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파동에 담긴 충격파가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콰득! 콰드득!
파동은 남은 두 명의 몸을 자르지는 못했지만, 대신 철저하게 파괴했다. 광장의 중앙 게시판에 그들이 거세게 부딪치고, 그 여파로 우지직 소리를 내며 게시판이 무너졌다. 그리고 핏물이 왈칵 터져 나옴과 함께 사지가 폭발하듯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한 번의 일격으로 열한 명을 피 떡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에 도취될 시간은 없었다. 지금쯤이면 빠르게 정신을 차린 놈들이 주문을 완성했을 시간이었다. 일단 호를 벗어난 놈들을 먼저 처리하고, 나머지 놈들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때였다.
“으아아아!”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귓가를 세게 때렸다. 고개를 돌리자 한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 속도는 나를 살짝 놀라게 만들 만큼 신속하고 민첩했다. 어쩌면 민첩 능력치가 90을 넘을지도 모른다.
핑! 핑!
씽! 씽!
화살. 얼음 마법. 펼쳐놓은 마력 감지에 여러 기척들이 포착됐다. 우선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부랑자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놈은 양손에 삐죽한 바늘이 달린 너클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얼굴을 향해 정확하게 쇄도하는 중이었다.
붕!
확실히 빠르고 위력적이기는 했지만, 눈에 훤히 보이는 공격이었다. 가볍게 머리를 틀자 귓가를 스치는 거센 바람이 느껴졌다. 흘끗 시선을 내리니 왼손을 역으로 쥔 게 바로 연타를 먹일 생각인 것 같았다. 그에 한 발 앞서, 나는 적당히 힘을 조절해 비어있는 왼손으로 놈의 복부를 후려쳤다.
“컥!”
놈은 순식간에 등을 구부리며 앞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대로 검을 꽂으면 끝이었지만, 이놈은 할 일이 남아있었다. 나는 즉시 부랑자의 뒷덜미를 잡고 아까 느꼈던 기척들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들어올렸다.
퍽! 퍽! 퍽! 퍽!
머리에 화살 두 발, 복부에 얼음 송곳 두 발. 내구 능력치도 제법 높은지 다행히 화살이나 마법이 몸을 뚫고 나오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놈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손에서 놈이 몸을 부르르 떠는 느낌이 전해져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놈은 팔과 다리를 축 늘어뜨렸다.
나는 쓸모가 다한 놈의 시체를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나를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부랑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놈들은 서른 명이 약간 안 되는 정도였다. 얼른 처리하고 워프 게이트로 갈 생각에 곧장 대지를 박차려는 찰나였다. 그 순간, 등 뒤로 수백 명이 내지르는 거대한 함성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지금껏 압도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던 사용자들이 각자 무기를 쥐고 분연히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용자들의 눈동자는 지금껏 당한걸 되갚겠다는 듯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
“헉, 헉. 자네 정말 대단한 사용자였구먼.”
“뛰는 중에는 말씀하지 않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예끼. 비록 나이는 들었어도, 몸은 죽지 않았네.”
“그렇군요. 아무튼 곧 있으면 워프 게이트에 도착합니다. 먼저 나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제 뒤를 따라와주십시오. 그럼 고연주, 부탁합니다.”
나는 고연주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후 바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결국 광장에 있던 부랑자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처리했다. 사용자들을 학살하던 화력의 중추를 이루는 곳을 한바탕 크게 휘젓자, 그때까지만 해도 가만히 구경만하던 사용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원호이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덕분에 더욱 빠르게 광장에 있던 놈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광장 전투가 끝나고 사용자들은 내게로 겹겹이 몰려들었다. 내가 출현한 이후로 전세가 뒤집어졌다, 살려줘서 감사하다, 당신이 우리의 희망이다 등등 수 없는 감사의 말이 쏟아졌지만, 그것에 일일이 대꾸해줄 여유가 없었다.
광장에 있던 놈들은 어디까지나 내부에서 호응한 인원에 불과하다. 지금 동, 서, 북문에서 달려오는 놈들이 진정한 정예 급일 것이다. 그놈들이 워프 게이트나 광장에 들이닥치기 직전 뮬을 탈출하는 게 내 계획이었다.
해서, 나는 얼른 클랜원들만 챙기고 광장을 빠져 나왔다. 내 뒤를 따르는 기척을 몇몇 느끼긴 했지만 솔직히 거기까지 신경 써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윽고 저기 앞에서 워프 게이트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달리는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안력에 한층 마력을 돋구었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점거 당했구나.’
이제 워프 게이트와의 거리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상황은 광장과 비슷했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의 주위에 있는 수십 명의 부랑자와 그 주위를 둘러싼 수백의 사용자들.
다만 몇 가지 다른 점은 있었다. 그것은 부랑자들이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는 게 아닌, 방어에 주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수백의 사용자들은 아우성을 치며 어떻게든 워프 게이트를 탈환하려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아무튼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광장보다 낫다고 할 순 있었지만, 삼 방향에서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는 비명소리는 부랑자들 또한 이곳에 거의 다다랐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달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아껴놓은 게 다행이군. 일단 한 번 쓰자.’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마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에 힘을 주어 바닥을 크게 굴렀다. 그러자 대지에 일렁이는 파문이 일었고, 그와 함께 주위로 수십의 기운이 퍼져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파르스름한 빛을 띠며 ‘검’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난, 곧장 심장에 잠들어있는 화정의 힘을 일깨웠다.
화륵! 화르륵!
화정이 깨어났다는 반증인 특유의 맑은 불소리. 그 순간, 지금껏 파르스름한 빛을 띠던 ‘검’에 붉은 기운이 섞여 들어갔고, 곧이어 화정이 발갛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워프 게이트가 망가지지 않도록.’
나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이며 오른손을 세차게 내뻗었다. 그와 동시에, 이글이글 타오르던 수십 발의 열화검이 워프 게이트를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아, 많은 분들이 오해하신 것 같네요. 전투를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하. 음 아무튼 뮬의 탈출은 2회 안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오니, 그 이후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시면 감사합니다.(귀환 챕터는 약 8회~12회 사이로 잡고 있습니다. 하하.) 날씨가 많이 덥네요! 독자분들 모두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한 밤 보내세요! 😀
『 리리플 』
1. 미월야 : 미월야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1등은 미월야 님이 하시는군요. 🙂 이번 회도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2. 사람인생 : 하하. 그래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참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
3. 플룻 : 김유현이 뮬에 나타나지는 않아요! ㅋㅋㅋㅋ.
4. EH연 : 흑흑. 한달 있다가 군대를 가시는군요. ;ㅇ; 저는 이제 2년 차~.(퍽퍽!) @_@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하하하.
5. superrobot : 생각해보니 여담이라는 말이 조금 안 어울려서 나름 문맥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
6. POWERED : 아마 당분간은 많거나 적거나 전투 내용이 조금 나올 것 같지 말입니다. 🙂
7. 독자분노하다 : 그렇죠? 저도 전투 내용은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8. 시룡 : 에이, 아무리 늦어도 귀환까지 12회 안으로 끝낼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무, 물론 오차는 있을 수 있어요.)
9. shadowΞghost : 40, 50회라뇨! 으잌ㅋㅋㅋㅋ.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아요!
10. 석양s : 그렇지요. 스스로 원해서 된 경우도 있고, 휩쓸려서 그렇게 된 경우도 있지요. 정답입니다.
11. 오피투럽19 : 하하, 코멘트는 언제나 읽고 있습니다!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