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308
00307 역관광이란 무엇인가? =========================================================================
“네? 워프 게이트가 작동하지 않는다고요?”
“예. 아무래도 부랑자들이 마법 진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확답하듯 말을 잇자 클랜원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이제 겨우 탈출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방법이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니 걱정이 될 만도 했다. 이윽고 나만을 쳐다보는 클랜원들을 보며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 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럼 어디로 나가느냐가 문제인데….’
여기서부터는 신중히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워프 게이트는 거의 중앙에 있는 만큼 거리는 비슷비슷하다. 그렇다면 최대한 안전한 곳, 즉 부랑자들이 없을 만한 곳을 선정해야 한다.
나는 아까 전 보석상의 건물 위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부랑자는 동문, 서문, 북문 총 삼 방향에서 습격해왔다. 그렇다면 남문으로 탈출로를 잡는 게 가장 옳은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선뜻 남문으로 달려가기엔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1회 차에서 시가전을 치를 적 겪었던 경험에서 기인한 일종의 직감이었다.
부랑자 말살계획이 이루어진 이후, 사용자들에 대한 놈들의 적개심은 엄청날 것이다. 대륙과 대륙을 횡단하며 복수를 차곡차곡 준비해온 것만 봐도 어느 정도인지 알만한 수준이다. 놈들이 남문을 틔운 의도는 알 것 같았지만 도망치는 사용자들을 순순히 보내주리라고는 생각기 어려웠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부랑자들이라면, 뭔가 수작을 부렸을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1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많은 것들을 고심했고, 정리했다. 그리고 막 클랜원들을 향해 입을 열려는 찰나 문득 안솔이 눈에 밟혔다. 그녀는 한껏 불안한 얼굴로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한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안솔.”
“네, 네?”
“잠깐만 이리 와봐.”
안솔은 한두 번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쪼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
깜빡!
어둡던 거리가, 한 순간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저 멀리서 솟아오르는 불길은 도시 외진 곳까지는 비추지 못하는지, 시가는 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오직 불규칙하게 깜빡이는 라이트 스톤만이 간헐적으로나마 어두운 거리를 밝혀주고 있었다.
그런 거리를, 한 명의 여성이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기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포복자세 그대로 멈춰 벌렁 돌아누웠다.
여성의 상태는 척 봐도 정상적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하의는 갈기갈기 찢겨져 골반 아래를 훤히 노출하고 있었는데, 새하얀 허벅지에는 두 개의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였다. 그리고 구멍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잠시 동안 숨을 고르던 여성은 주변에 사람의 흔적이 없다고 여겼는지, 끙 힘을 주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양손을 바닥에 짚고 천천히 바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쓱, 쓱, 쓱, 쓱.
여성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몸을 기댄 후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머지않은 곳에서 난도질 당한 시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부랑자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듯, 너덜너덜이 찢긴 시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여성은 더는 견딜 수 없었는지 “흑.” 흐느끼는 소리를 내었다. 그때였다.
“우리 귀여운 아기 고양이~. 어디로 갔나~.”
걸걸한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억지로 꾸며낸 억양이 거리를 나지막이 울렸다.
여성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흐느낌이 남아 턱과 어깨를 떨었지만 필사적으로 참는 모습이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여성의 목 울대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가죽부츠가 거리를 스치는 소리가 잦아졌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을 감은 후,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려고 한 순간이었다.
“여기 있었네~. 오빠가 많이 찾았잖아~.”
찾았다는 소리와 함께, 둥글둥글한 공 하나가 어두운 허공을 휙 가로지른다.
툭! 데구루루….
이윽고 바닥에 떨어진 공은 데굴데굴 굴러가 그녀가 있는 곳 앞에서 정확히 멈췄다. 여성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끔찍하게 뜯긴 목 아랫부분과,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핏물을 발견한 순간 크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꺄아아아아아아악!”
“크하하하하하하하!”
쿵! 우직! 우지직!
어디서 떨어졌는지, 커다란 몸집의 남성이 거칠게 웃어 젖히며 머리를 으깨어 부쉈다. 그는 끈적거리는 발바닥을 서너 번 비비곤 이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여성에게 내밀었다.
“어쩌냐, 우리 아기 고양이. 네 동료들은 어떻게든 너를 살리고 싶었나 본데, 이렇게 되어버렸네…?”
“아…. 아아….”
거한의 손이 여성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여성은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지 목멘 탄식만 뱉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에는 이렇게 잡혀버렸네! 잡혀버렸어! 크히히히!”
“싫어! 싫어어!”
거한은 급히 허리춤을 풀었다. 연방 헛손질을 하는 게 지금 이 상황이 꽤나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곧 바지와 속옷이 스르륵 내려가고 빳빳이 고개를 치켜든 흉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여성의 양 허벅지를 꽉 붙잡아 벌린 후 그대로 위로 들어올렸다. 그녀는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주먹을 휘저었지만 남성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흉물을 조준했다.
이윽고 거한의 흉물과 여성의 소중한 곳이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싶을 즈음, 그는 허벅지를 잡고 있는 손을 거세게 내리꽂았다.
푹직!
“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접합부에서 미약한 피가 튀었다. 눈 한 번 깜박할 새에 거한과 여성의 신체가 겹쳐졌다. 그녀는 허리를 비틀며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가,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끄아…. 역시 사용자 년들은 죽이는구먼…. 그런데 너 처녀였냐?”
“끅…! 악…!”
“큭큭. 그러니까 어차피 이렇게 될 거, 뭐하러 그렇게 도망갔어. 응?”
“흑…. 읔….”
여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입을 열 정신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남성이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감싸 안자, 교접(交接)은 더욱 깊어졌고, 신체의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이윽고 허우적허우적 허공을 휘젓던 손이 거한의 어깨에 닿고, 여성은 반사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거한은 남은 한 손으로 여성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두드렸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긴 그녀를 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이구 우리 고양이. 이제야 애교를 부리네. 옳지, 옳지.”
“흑…. 흑….”
그때, 저기 멀리서 미약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거한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씩 미소를 머금으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흐흐. 이대로 나가는 것도 재밌겠군. 놈들에게 자랑해야지. 어때. 너도 좋지?”
“엉…. 어엉…. 오빠…. 오빠 살려줘…. 어어엉….”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하복부에서 밀려오는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거한의 말에 극심한 수치심을 느꼈는지. 찌푸려져 있던 여성의 눈에서, 결국에는 서글픈 눈물 한 방울이 흘러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때였다.
휭!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거한과 여성을 스쳤다.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웃음이 만면했던 표정을 지우고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 순간, 거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리고 재빠르게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가드 하려는 찰나였다.
썩둑!
그러나 손을 채 들어 올리기도 전, 거한이 생에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단 두 개였다.
그것은, 자신의 목을 바람처럼 훑고 지나간 섬뜩한 감촉과.
“처리했습니다. 지나갑시다.”
소름 끼칠 만큼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탈출로는 동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쪽 외곽구역을 우회해서 동문으로 빠져나간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괜히 동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도박이라고 볼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복덩이에게 확인을 받음으로써 승산이 높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우회에 성공에 동쪽 외곽인 거주민들의 주 거주구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 그대로 탈출을 시작했다. 외곽구역에 진입함으로써 한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고연주가 나를 적극적으로 원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부랑자들은 생각보다 많은 숫자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최대한 은밀하게, 그리고 불가피하게 만나게 됐을 시에는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명제아래 외곽구역을 돌파했다.
외곽구역에서 약탈을 자행하는 부랑자들은 가지각색으로 움직였다. 홀로 움직이는 놈이 있는가 하면 너덧이 뭉쳐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놈들은 처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놈들을 가볍게 처리하며 중반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탈출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외곽구역 중반을 넘어 거의 중 후반부에 다다를 즈음 우리는 17명이 뭉쳐 다니는 부랑자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놈들은 외부에서 침입해온 부랑자들이었고, 내부에서 호응한 놈들보다 한층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다행히 고연주의 대규모 그림자 마법이 놈들을 전방위적으로 덮쳤고, 놈들이 당황한 틈을 타 너덧 명을 베고 시작했기에 크게 시간을 지체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시 탈출을 재개했지만 부랑자들도 바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면 부랑자들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부랑자들도 그들 나름의 연락체계는 갖고 있을 테고 아니면 점령 약탈 도중 동료들의 시체를 보았을 수도 있다.
가면 갈수록 점점 부랑자들과 부딪치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껏 외곽 지역을 거의 돌파하면서 내가 도륙한 부랑자만 예순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사태가 이지경이 되었으니 그들 또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을 터.
언제부터인가 끊이지 않고 들리던 거주민들의 비명 소리가 잦아들었다. 사방팔방으로 퍼져있던 기척이 일부는 뭉치기 시작하고 일부는 망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놈들은 점령 약탈을 중지하고 동료를 살해한 놈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전방에서 느껴지는 수십의 기척에 잠시 숨을 죽이고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수현. 어떻게 할까요?”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고연주는 벽면에 바짝 몸을 붙인 채 덜덜 떨고 있는 안솔을 보듬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창백한 안색의 김한별과, 살짝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영감님도 보였다.
“아무래도 전방에 부랑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쪽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중입니다.”
“저도 그렇게 느껴지고 있어요.”
나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방에 우뚝 선 거대한 성벽을 보건대, 이곳만 지나치면 성문은 금방이었다. 앞에서 느껴지는 수는 어림잡아 스물 남짓. 고연주의 원호만 이어진다면 순식간에 처리할 자신은 있다. 다만,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고연주. 전방 말고, 혹시 부근에 다른 부랑자들의 기척이 느껴지지는 않나요?”
“있어요. 우리들이 지나온 곳으로 한 무리, 그리고 오른쪽 방향으로 한 무리 정도?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흔적을 찾으면서 오는 것 같아요.”
“그럼 지금 그들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 떨어져있죠?”
“거리는 약간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고연주는 뒤를 한 번 흘끗 돌아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실은 방금 전부터 뒤쪽 방향에 있는 무리의 움직임이 멈췄어요. 그리고 오른쪽 방향에 있는 무리의 일부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고요.”
“설마….”
순간 샌드위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고연주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제 생각에는 다른 사용자들을 우리로 착각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용자들 이라고요?”
“네. 수현이 전방 전투에 집중하는 동안 저는 후방을 담당했잖아요? 많지는 않지만, 실은 광장이랑 워프 게이트부터 수현의 뒤를 따라온 사용자들이 몇몇 있어요. 지금 거의 기척이 겹치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들을 발견했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나는 고연주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오면서 사용자 몇 명이 나를 부르고 붙잡은 기억이 있었다.(물론 바로 뿌리쳤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보면 이것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다른 사용자들이 시선을 끌어주는 동안 눈앞의 놈들을 처리하느냐, 아니면 사선으로 방향을 트느냐.
나는 바로 고연주에게 물었다.
“고연주. 혹시 사선으로 방향을 튼다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 아무래도 거의 몰이 식으로 망을 구성한 모양인데….”
“…….”
“성문은 바로 앞이잖아요?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로 갈 필요가….”
나와 고연주의 생각이 일치했다. 나를 뒤쫓아온 사용자들이 얼마나 버텨줄지도 불투명했고, 최악의 경우에는 사방에서 부랑자를 맞을 수도 있다. 더구나 여기서 방향을 틀어버리면 시간을 지체하게 되고 다른 구역의 부랑자들이 추가로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차라리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더라도 눈앞의 부랑자들을 처리하는 선택이 나아 보였다.
‘최대한 빠르게 놈들을 정리한 후 지체 없이 빠져나간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후, 나는 클랜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전투가 될 것 같습니다.”
“…….”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와 똑같을 테니까요. 제가 그들을 처리하는 즉시 이곳을 탈출합니다.”
“오, 오빠.”
“그럼 고연주. 아까와 같이 부탁합니다.”
한별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앞으로 크게 뛰어나가며 있는 힘껏 도약했다. 그와 동시에, 지면을 타고 흘러가는 수 갈래의 그림자들을 볼 수 있었다.
*
삽시간에 건물 하나를 뛰어넘었다. 저기 앞쪽에서 부랑자들이 보인다. 그들은 뭔가 이상한 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걸어오던 도중 슬쩍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고연주가 쏘아 보낸 수 갈래의 그림자들이 부랑자들을 덮쳐 들었다.
“아악!”
“꺄아악!”
그리고 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착지한 순간, 수 명의 부랑자들이 허공에 떠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문득 열화검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워프 게이트에서 한 번 사용하고 말았다. 얼마나 더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면 최대한 체력을 아껴놓을 필요가 있었다.
해서, 나는 내려앉기가 무섭게 그들에게로 다가가 검을 찔러 들었다.
멋을 부리며 싸울 여유도, 그럴 생각도 없다. 오직 탈출을 위한 전투만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연주의 그림자들이 부랑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사이에 최대한 수를 줄여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않고 전투에 집중하기로 했다.
해서, 첫 시작으로 허공에 묶여 버둥거리는 세 명을 향해 검을 날렸다.
푹! 푹! 푹!
그렇게 순식간에 세 명의 목숨을 빼앗은 후, 나는 그들 사이로 그대로 뛰어들었다. 부랑자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혼란에 휩싸였다가 이내 순식간에 회복하며 외쳤다.
“찾았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젠장! 어둠을 다루는 놈이다! 만만히 보지마!”
‘놀고 있네.’
휘이익! 휘이익!
신호가 나오자, 주변에서 망을 구성하고 있던 부랑자들이 몰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렸다. 그러자 나에게 달려오던 부랑자들 중 몇몇이 움찔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 내가 오히려 달려오며 거리를 줄여주니 제법 당황한 듯 싶었다.
파박! 파박!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뭔가 꽂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정면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가볍게 피한 후 부랑자 무리들에게 잽싸게 달려들었다.
“미, 미친! 뭐가 이렇게 빨라!”
“조심해!”
가장 앞에 있던 놈에게 검을 휘두르자, 놈은 자신만만하게 방패를 들었다.
콰드득!
무검은 여지없이 두꺼운 방패를 자르며 지나갔고, 부랑자는 자신만만한 표정 그대로 얼굴이 반으로 갈라졌다. 뭔가 더운 것이 나를 흠뻑 적시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주변에 있는 놈들이 다시금 당황한 기척이 느껴진다. 그 틈을 노려, 나는 주특기 중 하나인 마력 파동을 사방으로 뿌렸다.
“───! ───! ───! 시, 실드!”
펑! 퍼벙!
몇몇 마법사들이 재빠르게 방어막을 펼쳤다. 하지만 푸르스름한 마력의 파동은 반투명한 막을 꾸깃꾸깃 접어 들어갔고, 이내 깨뜨려버렸다. 이윽고 마법사는 파동에 직격으로 부딪쳐 울컥 피를 쏟아내었다.
“칵!”
“뭐,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겨우 한 놈에게 이게 무슨 꼴이냐! 멍청한 놈들!”
콰앙!
그때 옆에서 분노 가득한 노호성이 들리더니, 뭔가 거친 굉음이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굉음이 들린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에 묵직한 충격과 함께 노란빛 광선이 잘라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광선은 이내 나풀나풀 떨어지며 속절없이 사그라졌다.
“이, 이럴 수가!”
거칠었던 노호성은 금세 경악으로 바뀌었다. 광선을 날린 쪽을 쳐다보자, 활을 들고 있는 놈이 주춤주춤 물러나는 게 보였다. 나는 곧장 그 놈에게로 뛰어들어 검을 찔러 넣었다.
미약한 비명소리가 들린 듯 싶지만, 가슴팍을 한 번 걷어차주고 바로 다음 상대를 찾는다. 부랑자들은 나를 보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황하면 할수록 좋고, 혼란스러워하면 할수록 좋다. 놈들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폭풍처럼 몰아붙여 끝내야 한다.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단 1초도 검을 쉬지 않고, 조금의 틈도 주지 않으며 몰아붙였다. 한 놈을 베었다 싶으면 바로 다음 놈에게로 달려가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삽시간에 10명을 쓰러뜨렸을까.
“모두 비켜! 이놈은 내가 상대하고 있을 테니 모두 집중사격 진을 구성해라!”
이번에는 중후한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고, 그와 동시에 왼쪽에서 매섭게 짓쳐 드는 참격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지금의 나는 최대한의 마력을 활성화했고 모든 능력치를 최고조로 뽑아 올리고 있었다. 흡사 형이 죽었을 때 피에 미쳐 날뛰었던 것처럼, 짐승과도 같은 야성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왼발로 대지를 딛고, 아래서 위로 있는 힘껏 검을 쳐올렸다.
챙! 서걱!
“어….”
‘응?’
나에게 들어오던 부랑자도, 그리고 나도 순간 놀라고 말았다. 놀란 것은 우리 둘뿐만이 아니었다. 집중사격 진을 구성하던 놈들도 급히 숨을 들이키는 게 들렸다. 부랑자는 반으로 갈라진 자신의 검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1초도 안되긴 했지만 잘라지지 않고 버텼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조장! 일단 피하세…. 크아악!”
“혀, 현철아! 뭐야! 분명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빠드득! 빠드득!
그 순간 고연주의 원호가 또 한 번 적절히 이루어졌는지 사방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나와 검을 맞대고 있던 부랑자를 향해 최고 속도로 가슴을 찔러 들었다.
푹! 꿍!
무검은 육중한 장갑을 뚫고 가슴 깊숙이 박혔다. 손잡이를 타고 들어오는 짜릿한 손맛. 그 상태 그대로 마력을 폭발시키자, 웅혼한 폭음과 함께 놈이 크게 몸을 떨었다.
“우욱!”
“…….”
“너, 넌 도대체…. 누구…. 쿨럭!”
대답 대신 나는 검을 크게 비튼 후 거칠게 뽑아주었다. 가슴에서 나온 피가 검 끝과 이어져 가느다란 실선을 이루었다.
그래. 이것은 사냥, 사냥이다.
나는 바로 다음 먹잇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주위로 나를 멍하니 보고 있는 5명의 부랑자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하나같이 공포감이 맺혀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을 목표해서 들어간 순간 나는 커다란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도…. 도망쳐!”
“으아아아아아아악!”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입니다.
(후기 일부 삭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분량 조절에 실패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ㅜ.ㅠ 원래 이 다음 내용이 부랑자들 도망치고, 성문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허허허. 유구무언입니다.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_(__)_
『 리리플 』
1. 미월야 : 1등 축하합니다. 하하. 백서연은 뮬을 침략한 부랑자들 중 다섯 손가락 이내에 꼽히는 실력자입니다. 동문의 침략을 이끄는 지휘관이기도 하고요. 1회 차에서는 수현이랑 악연이었습니다.
2. DarkOfSoul : 미월야 님은 강자입니다. 저도 못 이겨요. ㅜ.ㅠ
3. 냐~암 : 걱정 마세요. 저 악독한 것들은 자기들이 당했던 행동 그대로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
4. 오피투럽19 : 일단 이번 회는 살짝 단서를 드렸고요(이 정도만 해도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요!), 다음 회에 진짜 이유가 나올 거예요. 하하.
5. QuistA.Gw*() :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부 실패했어요. T^T
6. 센서티브 : Yes. 정답입니다. 정답! 짝짝짝짝!
7. 天上天下唯我獨尊 : 아, 유현아요? 걔 아직 뮬에 있어요. 뭐 유현아는…. 조금 불쌍하네요. ㅜ.ㅠ
8. 피네이로 : 전 대륙적으로 보면 그 정도 나옵니다. 하하. 아, 어디까지나 수현이 화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이기지는 못해요. ㅎㅎ.
9. 시룡 : 아 시룡 님. ㅜ.ㅠ 제 마음이 다 뜨끔합니다. 죄송합니다. _(__)_
10. 실비안 : 네! 그래서 이번에 안쓰고 학살했어요! 😀 칭찬 좀….(퍽퍽!) @_@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큰 힘이 됩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