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15
00614 우리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
『회상(Reminiscence).』
“…여기서 재미있는 건, 바로 놈들의 성격이야.”
한창 거인들에 관한 설명을 잇던 김수현이 갑자기 성격이라는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성격?”
열심히 깃펜을 놀리던 김유현은 언뜻 머리를 들며 반문했다.
“그래. 성격.”
한 차례 머리를 끄덕인 김수현은 습관적으로 품을 뒤져 연초 한 대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김유현의 눈매가 자동적으로 가늘어지며 엄한 빛을 띠었다. 이내 김수현이 시무룩이 연초를 집어넣자 봄바람 같은 미소가 도로 자리잡는다.
“그래서, 성격이 어떤데?”
김수현이 헛기침을 했다.
“흐흠. 글쎄. 우직하지만 순박하다고 해야 할까?”
“우직하지만, 순박하다?”
“응. 어리석고 고지식한 면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짓이나 꾸밈없이 순수한 면도 있어. 나름대로 의리도 있고, 또 인정도 두터운 편이고. 사실 마음 같아서는 동료로 삼고 싶을 정도야.”
“오호. 동료라.”
열심히 귀 기울여 듣던 김유현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쳤다.
“혹시 그런 사례가 있었어? 아, 물론 1회 차에서.”
“아니. 안타깝지만 없었어.”
약간 기대하는 목소리로 물었으나 김수현은 단박에 머리를 가로저었다. 김유현은 “에이, 그럼 그렇지.”라고 중얼거리고는 계속 말해보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김수현의 말이 이어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거인들은 상당한 지성을 가진 놈들이야. 그 지랄 맞은 강철 산맥 제 3지역에 터전을 잡고, 하나의 부족 사회를 이루었을 정도니까. 물론 그만한 힘과 타고난 기량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아마 순수 전사로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전투 종족일걸?”
“흐음. 가장 완벽한 전투 종족이라….”
잠깐 받아 적는걸 멈춘 김유현이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간이 탁자에는 이미 빽빽이 적힌 기록 열댓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김유현은 기록을 하나하나 들추다가, 거인의 신체적 특징에 관한 부분이 나오자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거인들은 천성적으로 전투라는 관념 자체를 숭배하는 종족이다. 거의 싸움을 즐기는 수준. 덩치는 최소 5미터에 근력은 말할 것도 없고, 피에는 강력한 마법 저항이 흐르고, 감각도 예민하며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순발력…. 어휴. 진짜 전투 종족 맞네 뭐.”
소리 내어 읽던 김유현이 질렸다는 기색을 보이며 머리를 설레설레 젓자 김수현이 가볍게 웃었다.
“후후. 아무튼,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응? 이상하다니?”
“생각해봐. 비록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축복은 받지 못했지만, 반대급부로 정말 완벽한 신체 조건을 갖췄지. 또한 전투를 숭배하고 싸움을 즐겨. 그래서 사용자들이 거인들을 보고 전투 종족이라 일컬은 거고.”
“그런데?”
“그러할진대, 성격은 순박하고 우직하다…. 어때, 이 두 설명의 차이점을 못 느끼겠어?”
“…글쎄? 타 종족에 배타적인 태도를 가졌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김유현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들먹이며 말했다. 사실상 정론이기도 했다.
그러나 쯧쯧 혀를 찬 김수현은 그게 아니라는 듯 검지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아니야.”
“아니야?”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더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네가 말한 설명의 간극을 뒷받침하는 근거?”
“그렇지.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잘 들어. 이건 강철 산맥 공략이 끝나고, 누군가 아틀란타 내 비밀 도서관을 발견했을 때 드러난 사실인데 말이야.”
“오호. 비밀 도서관이라.”
형을 도와준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거기서 거인들의 기원과 관련된 아주 재미있는 기록이 나왔거든?”
김수현은 드물게도 진정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하고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클랜원들은 물론, 한소영한테도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태도였다.
형도 동생이 좋아하는 기색을 느낀 걸까?
김유현은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리고 “궁금하지?”라고 말하는 김수현을 보며 흐뭇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었다.
“응, 궁금해. 어서 말해봐.”
*
가히 수백은 넘어 보이는 괴조들이 일제히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유난히 커다란 몸집을 가진 괴조 한 마리가 선두로 치솟고, 상대적으로 1, 2미터는 작은 비슷비슷한 괴조들이 쫓아 오르는 형태였다.
하늘이 가려지고 어두운 그림자들이 드리워진다. 이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사용자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돌연 맨 앞에 있던 괴조가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
– 크롸롸롸롸롸롸롸!
하늘을 찢어발길 듯한 포효가 사방을 떠르르 떨쳐 울린다.
어제 들었던 괴성과는 사뭇 다르다. 김유현은 저 괴조가 무리의 우두머리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척 봐도 심상치가 않다. 크기도 크기지만, 괴성에 담긴 웅혼한 영력은 여느 짐승이 낼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더구나 상앗빛을 띠는 다른 괴조들과는 달리, 유독 홀로 은은한 푸른빛을 흘리고 있다. 아마 최소 수백 년 이상은 살아온, 그리하여 모종의 기이한 힘을 지니게 된 영물이리라.
그렇다면, 정말로 어쩌면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김유현이 음성 증폭 마법을 활성화한 채 있는 힘껏 외쳤다.
– 모두!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로 대응하지 마라!
마력이 충만이 담긴 목소리가 하늘 멀리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를 들은 걸까?
계속해서 메아리 치던 괴조의 포효가 갑자기 뚝 그쳤다.
이윽고, 어느 정도 거리에 이른 우두머리가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그대로 지면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쪽의 괴조들도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낙하를 시도한다.
목표는 야영지, 김유현의 건너편.
괴조 수백 마리가 모조리 강하하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은 괴조들이 무서운 기세로 한꺼번에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마침내 지면에 착지한 순간, 한 번의 간격을 두고 엄청난 흙먼지와 충격파가 불어 닥쳤다.
“크으으윽!”
“으아아악!”
땅이 크게 흔들리고 태풍과도 같은 바람이 사용자들을 휩쓸었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나동그라지는 사용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펄럭, 펄럭!
고오오오…. 고오오오….
크게 일어났던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을 즈음, 괴조 군단이 비로소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었다.
– 키르르르르륵….
– 끼르르르르륵….
나직한 으르렁거림, 날카로운 빛을 반사하는 이빨, 지면을 깊게 파고든 발톱, 그리고 흉흉하게 쏘아보는 눈동자….
날개를 차곡차곡 접는 괴조들이 사용자들을 향해 명백한 적의를 내뿜는다. 그 중 못해도 5미터는 돼 보이는 우두머리 괴조가 가장 심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으윽….”
간신히 정신을 차린 궁수는 어느새 손이 덜덜 떨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서히 오금이 저려오는걸 느꼈으나, 꿀꺽 침을 삼키고는 시위를 당긴 손에 억지로 힘을 준다. 아직, 김유현의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밀려나면 안 된다.’
강철 산맥은 원래 괴물들의 터전이다. 공략이라는 목적이 있다고는 하나, 어쨌든 안으로 들어온 이상 사용자들도 산맥 내 구축된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한다.
말인즉, 약육강식(弱肉强食). 여기서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저 괴조들은 차후 사용자들을 일종의 먹이로 여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김유현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두 눈이 삽시간에 황금빛으로 물듦과 동시에 전신으로 노란빛 스파크가 어지럽게 일어난다. 무시무시한 기운이 번개처럼 뻗어나가며 사용자들을 향하는 적의에 대응한다.
– 키륵?
그제야, 괴조들 사이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맹목적으로 보내던 적의가 한풀 꺾이며 일부가 주춤주춤 물러난다. 사용자들이 우두머리 괴조를 보고 놀란 것처럼, 괴조들 또한 김유현의 기세를 느끼고 크게 놀란 것이다.
한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두 무리는 서로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숨 쉬는 소리는 제외하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일촉즉발이 대치 상황이 이어지며 침묵이 내려앉으려는 찰나였다.
– 끼요오오!
문득, 이런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앙증맞은 울음이 들려왔다.
사용자들은 물론, 괴조들의 시선도 한쪽으로 쏠렸다. 아기 괴조가 종종 걸음으로 파닥파닥 뛰어가고 있었다. 동족이 온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 이런!”
“그냥 보내세요!”
누군가 황급히 아기 괴조를 잡으려 했지만 김유현이 재빠르게 제지했다. 뇌신의 기운을 일으킨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는 먹이가 아니라는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헌데 지금 저 아기 괴조를 인질로 잡아버리면, 그건 대놓고 전쟁하자는 말과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그러자 우두머리 괴조가 사용자들을 쭉 훑어보고는, 앞으로 살짝 나가 달려오는 아기 괴조를 맞이해주었다.
– 끼요! 끼요끼요! 끼요오오오오오오!
무에 그리 서러운지, 아기 괴조는 다다르자마자 서러운 소리로 울어 젖혔다. 무언가 고자질이라도 하듯이 쉴 새 없이 주둥이를 놀리며 양 날개를 팔락팔락 움직인다.
허나 이러한 상황에서 그 누가 아기 괴조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할까? 차라리 백진하처럼 노심초사하며 떨면 떨었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던 아기 괴조의 울음이 서서히 그쳐갈 무렵,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던 우두머리가 흘끗 김유현을 흘겼다. 그리고는 끔찍하게 박살 난 동족의 시체와 공룡 괴물의 시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크르릉, 낮은 소리로 울었다. 김유현의 뇌리에 한 생각이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모두 열 걸음 뒤로 물러납니다.”
사용자들도 어느 정도 눈치는 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읽은 터라, 군소리 않고 걸음을 물렸다. 오직 김유현만이 가만히 서 있을 뿐.
사용자들이 조용히 물러서자, 괴조들이 비로소 움직임을 보였다. 우두머리 괴조와 서너 마리 괴조들이 추가로 걸어 나와 신속하게 시체를 수습한다.
물론 수거한 건, 동족의 시체 뿐이었다.
꽝!
거센 진동이 사용자들의 귓전을 울렸다. 다른 괴조들이 시체를 물고 돌아가는 사이, 우두머리가 이미 죽은 공룡의 시체를 거칠게 밟아버린 것이다.
이윽고 괴조가 육중한 발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고개를 빠끔히 올린 사용자들은 납작이 눌리다 못해 곤죽이 돼버린 공룡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두 시체를 처리한 우두머리는 이번에는 기둥에 꽁꽁 묶인 거인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거인을 노려보는 두 눈에서,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살기가 폭사하듯이 흘러나온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한 눈초리였다.
그때, 지금껏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던 김유현이 드디어 걸음을 움직였다.
– 크륵?
그러자 살기를 풀풀 날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던 우두머리의 두 발이 우뚝 정지했다. 김유현은 전혀 아랑곳 않고 천천한 걸음으로 괴조와 거인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기 괴조나 방금 두 시체는 넘길 수 있지만, 거인은 넘길 수 없다는 의미였다.
– 크르르르….
한껏 가늘어진 괴조의 눈이 김유현을 집중적으로 노려본다.
김유현도 지지 않고 맞섰다.
한 순간.
아주 살짝 풀린 것 같던 긴장이, 각 우두머리가 대치한 중앙을 기점으로 팽팽하게 되살아나 사용자들의 목을 옥죄어 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참 동안 김유현을 노려보던 괴조가 돌연 살그머니 주둥이를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 인간은….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김유현은 순간적으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어떠한 전조도 없었다. 그저 무척이나 갑작스럽게, 김유현의 머릿속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저음이 웅혼하게 울렸을 뿐. 비록 진동을 동반한 음성이라 아주 명확하게 들려온 건 아니었으나, 확실한 건 조금 전 괴조가 분명한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
– 내 구역에서 보는 건 거의 800년 만인가….
물론 영물의 출현이나 존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알고만 있을 때와 직접 대면했을 때와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는 김유현이었기에,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 말해라, 인간. 이 숲에는 무슨 일로 들어온 거지? 이제야 정복이라도 하러 들어온 건가?
김유현은 여기서 말을 잘 골라야 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김수현이 신신당부했으니까. 쓸데없는 적을 만들지 말라고. 무조건 거인만 상대하라고.
그렇다면.
“아닙니다.”
– 아니다?
반문하는 의사가 울려옴과 동시에 사용자들 사이로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괴조가 상대의 머릿속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에 반해, 김유현은 직접 일을 열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김유현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가 원하는 건 숲의 정복이 아닙니다. 그저 다른 대륙으로 가려는 길을 트려고 왔을 뿐입니다.”
– 길을 트려고 왔다?
“예. 남쪽 방향으로 진군하는 중이었습니다.”
– 남쪽 방향이라면….
괴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김유현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살짝 눈매를 찌그러트렸다.
– 설마…. 그 저주받은 산맥의 지배자들한테 도전하겠다는 건가?
“…저주? 산맥의 지배자?”
– 모르는 건가? 저놈 말이다.
“저놈이라면….”
김유현의 의아한 낯빛을 비추자 괴조가 주둥이 끝으로 기둥을 가리켰다. 김유현의 얼굴에 아차 한 빛이 떠올랐다.
“모릅니다. 어제 처음 존재를 확인했거니와, 그냥 거인 정도로만 알고 있으니까요.”
– …….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지만.”
– 알고 있다. 너희 인간들이 우리 동족을 해치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괴조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사를 전달했다.
김유현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예. 하지만 그것 말고도 우리는 저 거인이 필요합니다.”
– …….
“복수의 명분은 이해하지만…. 저 거인이 우리가 가려는 방향을 가로막은 종족이라면, 지금 포획한 거인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만 합니다.”
– 흐음….
사실 딱히 그렇다기 보다는, 괴조 군단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꺼낸 말이었다.
– 재미있군…. 수백 년 만에 들어온 인간이, 수천 년 동안,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한 산맥의 지배자들한테 도전장을 내민다고….
약간 벌어진 괴조의 입에서 마치 피리를 불듯이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시퍼렇게 빛나는 눈이 여전히 황금빛 스파크를 튀기는 김유현의 전신을 샅샅이 훑는다.
다시 한 번, 기나긴 정적이 흘렀다.
– …좋다.
그리고 오랜 정적을 깨고 전달된 괴조의 의사는 다름 아닌 승낙이었다.
– 사실 너희의 목적은 우리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거니와, 앞선 두 번의 호의를 봐서 우선은 물러나 주도록 하지. 적어도 한 번 지켜볼 가치는 있겠어.
“그러면…!”
– 하지만, 이번 기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도록 하마.
“음?”
– 예전에도 그래왔듯이…. 우리는, 인간들을 믿지 않는다.
“…….”
우리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그러한 의사를 전달한 괴조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키루루룩 울어 젖혔다. 그러자 아까 내려올 때 그랬던 것처럼, 일제히 날개를 펼친 괴조 군단이 힘찬 날갯짓을 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수백의 괴조를, 김유현은 약간 멍해 보이는 눈으로 하염없이 응시했다.
잠시 후.
“클랜 로드….”
백진하가 비틀거리듯이 다가와 김유현의 어깨를 건드렸다. 안색이 하얗게 변한 게 마음 고생이 꽤나 심했던 모양이다.
“후유…. 이제 괜찮아. 잘 끝났어.”
김유현은 지체 않고 마력을 풀어버리고는 깊은 한숨을 흘리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나 백진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김유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게 아니라….”
“응?”
“아무래도 서서히 깨어나려는 것 같아요.”
“깨어나려는 것 같다고?”
이어지는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김유현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반문했다.
그러자 백진하가 옆으로 힐끔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기둥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거인이요.”
============================ 작품 후기 ============================
퇴고에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_(__)_
오늘 한소영 일러스트를 그려주시기로 한 분과 만남 약속을 잡았습니다. 비비앙 일러스트는, 현재 일러스트레이터 분과 접촉 단계에 있습니다. 약간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는데, 예전에 그려주시던 분이 현재 일본에 계신 걸로 알고 있어서요. 그러면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애로사항이 생겨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PS. 다음 회에서는 김수현의 시점이 일부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