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63
00662 1. 김칫국과 설레발의 차이점. =========================================================================
얘기 좀 하자는 말에 김한별은 처음에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옥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달라는 말을 덧붙이자, 그제야 내 곁에 쭈뼛쭈뼛 다가와 앉고는 하나하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말을 들어보니 지옥으로 들어온 직후 내 상태는 굉장히 심각했던 모양이다. 지옥 대공이 나를 보며 잔뜩 안색을 굳히고는 어딘가로 데려갔다고 하니까.
지옥 대공이 나를 어떻게 살렸는지 궁금한 마음에 물었으나 김한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옥 대공이 매우 황급하게 떠났기 때문에 이후의 일을 보기는커녕, 오히려 홀로 남겨졌다고.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던 와중 문득 한 해골 기사가 자신의 앞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 해골 기사는 한껏 놀라는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매우 정중한 태도로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 어느 순간 지옥 대공이 찾아와 이것저것을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어떤 질문을 받았냐고 물어보자 나와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처음에는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는데…. 딱히 나쁜 일을 당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나름 친절하게 대해주셨다고 생각해요.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김한별은 대략적인 설명을 마쳤다.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이후로 계속 같은 자리에서만 있었던 거야?”
“아까 말씀 드렸듯이 가끔 그분이 찾아와서 오빠를 보여주시고는 했어요.”
“그거 말고. 그러니까 혹시 활동에 제한을 받았다거나.”
“아니요.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그러자 김한별은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라치면 어김없이 그 해골 기사 님이 나타나주셨거든요. 그리고 저를 데리고 지옥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셨죠.”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구경을 시켜줬다고? 지옥을?”
“네. 음, 그러니까….”
김한별은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놀랐는데…. 그동안 지내본 결과, 이 지옥이라는 곳도 하나의 세상으로 생각돼요. 그러니까 집이 없는, 아니 집만 없는 세상이라고 할까요?”
집만 없는 세상이라. 재미있는 표현이다.
“아무튼 제가 아는 지옥이랑은 완전히 다른 개념의 세상이었어요. 자아를 갖고 돌아다니는 이들도 봤고, 또 우리가 있던 세상이랑 비슷한 시설들도 많이 봤고요.”
“시설도 있다고? 몇 가지만 말해봐.”
“말 그대로 에요. 대장간 같은 것도 봤고, 창고도 봤고, 제단처럼 보이는 것도…. 아! 여기에 기록 같은 것도 있더라고요.”
“…흠.”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약간 혼란이 오는걸 느꼈다. 나 또한 1회 차에 지옥을 경험한 만큼 김한별의 설명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보면 나는 그 당시에 현재 김한별이 말하는 시설들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한걸 수도 있다.’
그러나 별안간 오히려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생각해보면 1회 차서 지옥에 떨어졌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탈출이 목표였으니까. 팔자 좋게 이곳저곳 구경할 생각은 당연히 하지도 못했다.
“오빠. 괜찮아요. 저도 처음에는 정말로 생소한 기분을 느꼈으니까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걸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자 김한별이 조곤조곤 한 어조로 말하며 나를 다독였다. 마치 이런 반응이 정상이라는 듯이.
문득 지옥 대공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새삼 느껴졌다. 김한별이 말이 진정 사실이라면 지옥을 이루는 8구간 전부가 각각 하나의 세상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옥 대공은 8개의 세상의 정점에 군림하는 지배자라는 소리였다.
‘나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존재와 싸운 거지….’
돌연 까닭 없이 씁쓸한 기분이 엄습해 깊은 한숨을 흘렸다.
“오, 오빠…?”
그러자 나를 빤히 바라보던 김한별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얘는 또 왜 이래.
“…죄송해요.”
그 순간 김한별이 느닷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응? 갑자기 뭐가 죄송해?”
“생각해보니 지금 오빠 속은 타들어 가실 텐데…. 저 혼자만 신 나서….”
우물우물 말을 잇는 김한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나를 조심스레 살피는 기색이 보였는데, 이야기하는 내내 내 낯빛이 별로 좋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헬레나의 죽음에서 발로한 자책감 때문이지 김한별 때문은 아니었다.
“또 저만 아니었다면 오빠가 이곳으로 끌려들어올 일도….”
어느새 좌절 모드로 들어간 모습을 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침울하게 중얼거리는 김한별의 등을 가볍게 쳤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렇게 따지면 애초 채찍을 피한 내 잘못이 가장 크지.”
김한별이 아직 우울한 기색이 남은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순간 다음 말을 할지 말지 고민이 들었으나 이왕 말 나온 거, 아무래도 지금 해두는 게 낫겠다 싶어 말을 이었다.
“그때…. 먼저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김한별은 잠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러나 곧 김한별의 얼굴에 그늘졌던 우울함이 싹 걷히는걸 볼 수 있었다. 이내 아니라는 듯 괜찮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젓기 시작한다.
“아, 아니!”
“…안 어지럽니?”
그제야 고개를 멈춘 김한별이 떨떠름한 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저…. 저도 하나 여쭤봐도 되요?”
“뭘 새삼스레.”
“그때…. 왜 끝끝내 제 손을 잡아주신 거예요?”
“흠.”
이건 나름 정곡을 찌르는 질문인데. 그러고 보니 나는 정말 왜 김한별을 구한 걸까? 나도 모르게? 아니면 어차피 죽을 거 같이 죽겠다는 생각에?
…둘 다 정답은 아닌 것 같아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동안 김한별이 무언가 기대하는 듯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봐, 뜻 모를 부담감을 느껴야만 했다.
결국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버릴 수가 없었던 것 같아.”
“왜요?”
“왜라니? 야, 네가 내 입장이 돼 바라. 나 좋다고 고백한 애를 어떻게….”
“자자자자자자잠깐만요!”
그때였다. 갑자기 김한별이 빽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더니 삽시간에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애, 애으애?(왜, 왜 그래?)”
너무 심하게 틀어막다 보니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최대한 이게 무슨 짓이냐는 의미를 담아 시선을 올리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숨을 씩씩 몰아 쉬는 김한별이 보였다. 설마 지금 부끄러워하는 건가?
“그,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
김한별은 기세 좋게 입을 열었으나 곧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래. 스스로 생각해도 상관이 없다고 말은 못하겠지. 아마 구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어.(치워.)”
나는 이제 그만 치워달라는 의미로 내 입을 막은 손을 톡톡 두드렸다.
“…….”
그리고 잠시 기다려보았으나 김한별은 손을 치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틀어막는 압박감이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만 지을 뿐.
‘이렇게 나오시겠다.’
딱히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입에 닿은 손바닥 감촉도 상당히 보들보들했고 김한별의 반응도 상당히 신선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 켠으로는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입을 살짝 벌린 후 혀를 내밀어 손을 핥았다.
“꺅?!”
그러자 김한별이 펄쩍 뛰었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발라당 나동그라지기까지.
‘얘 정말 김한별 맞아?’
평소 보여오던 태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모습에 한순간 도플갱어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제 3의 눈으로 확인한 결과 확실히 김한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참. 이미 다 말해놓고는 이제 와서 뭐가 부끄럽다고.”
“대, 대답해요!”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찰나, 돌연 뾰족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시선을 내리자 이제는 자포자기한 듯 넘어진 채로 나를 한껏 노려보는 김한별이 보였다. 아랫입술까지 꽉 씹고 있는 게 무언가 굉장히 분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대, 대답하라니까요! 빨리!”
“…뭘?”
“뭐, 뭘? 지금 장난해요?!”
“아. 그거야 당연히 고맙지. 한별이가 고백해준 건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
나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그러나 김한별의 표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태도를 보이더니 지면을 박박 긁기 시작했다. 흡사 발정 난 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아, 암 걸릴 것 같아….”
이윽고 김한별이 간신히 내뱉은 혼잣말을 들은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말을 잘못했음을 직감했다.
‘…암에 걸릴 것 같다 라.’
곱씹어보니 왠지 모르게 이상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어, 나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
내가, 웃었다고?
나는 재빠르게 얼굴을 매만졌다. 아니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김한별이 이제는 거의 울기 직전인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으니까. 자신은 심각해 죽겠는데 내가 웃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듯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웃었다는 것. 억지 웃음이 아닌 말 그대로 진심에서 발로한 웃음. 그러고 보니 어느새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 게 느껴졌다. 아마 김한별과 옥신각신 다투는 동안, 복잡하던 내면이 나도 모르는 사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대에게는 현 상황과 내면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설마 지옥 대공은 이런 효과를 노리고 김한별을 데려온 걸까?
그거야 본인 외에는 모르는 일이겠으나, 여하튼 지옥 대공은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는 이제야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현재 내가 있는 장소는 지옥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한 가지. 자책하면서 주저앉는 게 아니라, 다시 돌아가 원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짝!
그렇게 생각한 나는 두 손을 들어 있는 힘껏 뺨을 쳤다. 한 번으로는 모자란 것 같아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 쳤다. 그제야 볼에서 얼얼한 기운이 느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에 가득하던 무력감이 서서히 사라지는 기분이다.
“에? 오, 오빠?”
그러자 조금 전까지 나를 노려보던 김한별이 떠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하기야 갑자기 자해를 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정신병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우두둑, 우두둑!
그렇게 뺨을 친 후, 나는 몸 군데군데에서 느껴지는 뻣뻣함에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리고 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김한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별아. 우선은 일어나자. 어서.”
“…네? 네…. 가 아니라. 잠, 잠깐만요. 치사하게. 오빠 지금 은근슬쩍 화제 돌리려는 거죠?”
“그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잖아. 네가 원하는 대답은 나가서 해줄 테니까. 약속할게.”
“갑자기 무슨 말씀을….”
김한별은 아미를 잔뜩 찌푸리며 반문했다. 그러나 돌연 말을 끝맺지 못하고 흐리더니, 종래에는 화등잔만 해진 두 눈에 강렬한 이채가 스쳤다.
김한별도 기본적으로 머리가 영리한 사용자인 만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가자.’ 라는 의미를.
이윽고 동그래진 눈을 서너 번 감았다 뜬 김한별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어떻게요?”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한결 진정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지옥 대공이 걸어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 몸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도록 하지. 그대는 생각이 정리되면 나를 찾아오도록.’
지옥 대공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아까는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몰랐으나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비록 정확한 장소는 알기 어려우나 지옥 대공의 기운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돌아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법은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가장 큰 걸림돌은 지옥 대공이 우리를, 아니 나를 순순히 놔주지 않을 거라는 것. 이게 바로 내가 당면한,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오빠?”
이내 김한별이 채근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여인과 담판을 지어야 할 것 같다.”
============================ 작품 후기 ============================
오늘의 교훈.
강제로 무덤에 눕혀질 지언정 스스로 무덤은 파지 말자.
후기는 삭제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주세요.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