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718
00717 등잔 밑을 밝히는 눈. =========================================================================
그리하여 안현과 이유정의 승부가 서서히 종착역을 향할 즈음.
“쟤가 저렇게 강했나?”
성의 정원 중앙 수로에 발을 담그고 있던 남다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남다은은 안현과 이유정의 전투를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딱히 관심이 있어서 보는 건 아니었고, 그냥 정원을 지나가던 와중 마침 대련하는 게 보여 구경하는 중이었다. 왜. 그런 말도 있잖은가. 구경에 한해서는 싸움도 X밥 싸움이 더 재미있다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유정은 딱 생각한 수준이었으나 안현은 다르다. 일견 현란해 보이는 발 재간에 휘둘리는 게 아닌, 조용히 자리를 지키면서 묵직하게 대응한다. 상대의 수를 모두 읽고 약점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검후’가 보기에는 아직 어설픈 면이 없잖아 있으면서도.
“사용자 안현은 확실히 성장했습니다.”
문득 강직하면서 차분한 음성이 말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련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윽고 남다은의 옆으로 누군가 조심스레 주저앉았다. 탄탄하면서도 매끈한 살결의 종아리가 수로 속으로 빠져든다. 흘끗 눈을 흘긴 남다은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차소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더워서요. 괜찮을까요?”
“…그러세요. 내가 전세 낸 건 아니니까.”
까닥, 두 여인이 서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같이 대련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련을 했다고요?”
이번에는 남다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북 대륙에서도, 강철 산맥에서도, 아틀란타에서도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가끔 제가 알게 모르게 지도해준 적도 있지요.”
“알게 모르게…. 아무리 그래도 저 움직임은 완전히 압도하는 수준인데요. 원래 저 정도로 차이가 났나요?”
“사용자 안현은 아마 강철 산맥에서 하나 된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아하. 그렇다면야. 그러고 보니 확실히….”
하나 된 경지. 일정 수준에 오른 근접 계열 사용자가 흔히 사용하는 은어로, 합일(合一)의 경지를 의미한다. 개나 소나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닌 만큼, 능력을 개화한 사용자와 그러지 못한 사용자의 차이는 갈릴 수밖에 없다.
남다은은 이제 의문이 해소됐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주억였다.
“사용자 안현이 올해 3년 차였나요? 제가 2년 차에 개화했으니까…. 나름 괜찮네요.”
“후후. 저는 3년 차 초기에 개화했습니다. …음? 거의 끝났네요.”
잔잔히 웃으며 대꾸하던 차소림이 눈을 반짝였다. 두 여인은 동시에 시선을 집중했다.
차소림의 말대로 전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안현이 행동을 개시한 이후로.
“……!”
안현이 창을 내지른 순간, 신 나게 달려가던 이유정은 돌연 이상한 감각에 빠졌다.
그것은 무어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멈추고 귓속에는 윙윙거리는 이명이 울렸다. 그냥 창을 한 번 찔렀을 뿐인데, 전신이 사슬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듯했다. 아니.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말이 정확할까. 실제로 안현의 일격은 이유정의 모든 움직임을 깨트리고 침묵시키면서 직선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아차 한 사이 창 끝이 눈앞에 잡혔다. 찰나의 순간, 황급히 벗어나려는 이유정의 두 눈에 멍한 빛이 스쳤다. 자신이 물러나려는 곳에서도 안현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 정면에서 달려오는 걸 확인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구덩이 전투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안현이 좌측, 정면, 우측에서 동시에 달려온다. ‘창술 사격’이 ‘신창합일’과 어우러져 발현된 능력. 폭발적인 가속을 기반으로 한 변화가 안현이 3명으로 나뉜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나마 주현호는 3명을 모조리 해치우는 방법을 선택했으나 이유정은 그 정도 수준이 되지 못했다. 또한 무엇보다, 그때의 주현호도 허공에서 창을 내려치는 안현은 깨닫지 못했다.
물러나지도 못하고, 벗어날 수도 없다.
현재의 이유정이 할 수 있는 건, 어느새 걸음을 멈춘 채 눈을 크게 뜨는 것뿐이었다.
뻑.
마침내 공중에서 내려온 창이 둔탁한 소리를 내는 동시, 이유정의 오른 어깨가 푹 주저앉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3 방향에서 달려온 환영이 가한 공격은 왼쪽 어깨, 복부, 허벅지를 차례대로 쳤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이어진 공격이라, 피격 당할 때마다 이유정의 몸이 크게 흔들리고 다리가 꺾인다. 그나마 손에 사정을 두어 망정이지, 안현이 전력으로 힘을 썼다면 첫 일격에 머리가 쪼개졌을 것이다.
풀썩!
결국에는 이유정이 허물어지듯 무너짐으로써 전투의 종료를 알렸다. 두 말할 여지도 없는 깨끗한 패배. 서로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 너무나 허무한 결과였다. 아픔을 견디면서 노력한 사용자와 어느 순간 안주한 사용자의 차이가 이 대련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윽고 가볍게 숨을 흘린 안현이 아래를 응시했다. 바닥에 무너진 이유정이 온몸을 웅크려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다. 언뜻 눈에 들어온 파르르 떨리는 입이 간신히 비명을 참고 있는 것 같다. 그러자 조금은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으나 안현은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백 번을 생각해도 이유정이 한 짓거리는 용서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형인데.
짝, 짝, 짝, 짝.
잠시 후, 가벼운 박수가 이어졌다. 한쪽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김수현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끝났네. 안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이 정도면 승복했겠지. 그럼 약속한 대로 이유정은 한 단계 등급 하락이다.”
“…….”
“안현. 너는 가서 사제 불러오고 치료하라 해.”
“…알겠습니다.”
애초 승부의 결과는 거의 확신했다. 별로 놀랄 것도 없다는 듯, 김수현은 무심한 음성으로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안현은 서서히 멀어지는 김수현의 등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중간에 흘끗 이유정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딱히 생색낸다거나 위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무리 안현이 무디다지만, 지금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하든 이유정의 자존심에 상처만 입힌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김수현과 안현이 떠나간 자리에는, 쓰러진 이유정만이 홀로 남게 됐다.
어느새 몸의 떨림은 잦아들었으나 망연한 눈빛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멀어지는 둘의 모습과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두 자루 카타나만이 눈에 들어올 뿐.
이후 안현이 사제를 불러올 때까지 이유정은 미동도 않은 채 계속해서 엎드려 있었다.
툭.
툭툭.
오늘 우중충하다고 느꼈던 게 단순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걸까. 화창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우고, 작은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불어온 매서운 바람이 성을 스치듯 지나가자,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분분히 흩날린다.
그날.
이유정은 등급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등급이 하락한 클랜원이 되었다.
*
등급제 시행은 확실히 머셔너리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좋은 반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신의 등급에 불만을 가진 클랜원이 적지 않고, 실제로 찾아와 따진 이도 여럿이니까. 이유정은 도를 넘어섰고 말이지.
물론 아직 속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 변화가 정착하기까지 시간을 두고 긍정적으로 지켜볼 생각이었다. 왜냐면 실제로 변화의 움직임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소수이기는 하나 이 등급제를 받아들인 클랜원이 없는 게 아니었다. 몇 명은 직접 나를 찾아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더 이상 시켜서 움직이는 게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우정민의 이야기는 나를 조금이나마 놀라게 했다.
“부랑자 척살 조를 부활시키고 싶다고?”
“아아. 네가 허락만 해준다면 말이지.”
우정민은 부랑자 척살 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용자라면 누구나 부랑자에 반감을 갖고 있고, 2년 전 전쟁 이후 증오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어디서 부랑자 한 명을 잡았다는 소문이라도 들리면 손뼉을 치고 기뻐할 정도였다. 우리 머셔너리도 부랑자 대 간부였던 백서연을 잡은 이후 명성이 크게 올라가지 않았는가.
만일 우정민이 비슷한 일을 해낸다면 그것은 머셔너리의 명성 상승과 직결되는 일이다.
“음. 좋아. 허락하지. 아주 좋은 생각이야.”
“또한…. 응? 그, 그래?”
너무 쉽게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한 걸까. 한창 말을 잇던 우정민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정말인가?”
“그럼. 생각해보니 강철 산맥 공략에 힘을 쏟는 동안 놈들이 힘을 키웠을 수도 있으니까. 이제 슬슬 토벌할 때도 됐지.”
그냥 허락해준 게 아니라,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붉은 송곳니’ 우정민. 1회 차 시절 사용자와 부랑자의 악연을 끊어낸 장본인. 과거를 알고 있는 만큼, 부랑자 척살에 눈앞의 사내 이상의 적임자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튼,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흐흐. 선유운이 워낙 자랑을 하니까 배알이 꼴리더군. S 등급 대우받는 거 보니까 조금 부럽기도 하고.”
“이런. 네 등급이 너무 박했나?”
“아니. 전혀. 그동안 안주한 건 사실이니까. 또 설령 네가 나를 F 등급 명단에 올렸다고 해도, 나는 조금도 불만을 갖지 않았을 거다. …이건 진심이야.”
허락 받은 것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우정민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나도 살며시 웃었다. 은혜는 바다같이, 복수는 칼날같이. 우정민은 현재 이 격언 그대로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 안건은 선유운이 먼저 말을 꺼낸 거거든. 자신이 도와줄 테니까 한 번 얘기를 꺼내보라 하더군.”
“음~. 사용자 선유운이 도와준다고. 그럼 이왕 하는 거 남다은한테도 한 번 얘기해봐. 부랑자에 대한 증오라면 남다은도 누구 못지 않으니까.”
“오…. 검후께서 참가해주신다면 두려울 게 없겠지. 그리고….”
“……?”
그때였다. 우정민의 낯에 갑자기 한 줄기 수심이 어렸다. 우정민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딱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원혜수는 잘 지내나?”
“잘…. 지내고야 있지.”
“들려오는 바로는 딱히 문제는 없는 것 같던데.”
“…바로 그게 문제다.”
원혜수 이야기가 나오자 우정민의 음성이 침중해졌다. 잠깐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곧 입을 열었다.
“무언가 가슴에 응어리가 있는 건 확실해. 그런데 풀지를 않아. 차라리 한 번 시원하게 터트렸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를 않아.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생활하면서 계속 쌓아두는 것 같거든. 애 문제도 그래.”
“…애 문제? 엄마 노릇이라도….”
“하기는 해. 젖을 먹이거나 울면 잠깐 봐주거나 하는 등등 안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누가 봐도 마지못해 한다고 생각할 거야.”
“흠….”
“사실 이것도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야. 나는 정말 내 애라고 생각하면서 노력하는데, 애는 자꾸 엄마만 찾고. 아니. 이해는 해. 그래. 한창 크는 중인데 당연히 엄마가 보고 싶겠지. 그런데 혜수는….”
“…….”
평소답지 않게 빠르게 말을 잇던 우정민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하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미안하다. 어딘가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나 봐. 그냥 못들은 걸로 해줘.”
“아니. 나야말로 괜히 물어본 것 같네.”
우정민은 쓰게 웃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허락해줘서 고맙다. 그럼 조만간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그리고 바로 몸을 돌렸지만, 몇 걸음도 채 가지 않아 우뚝 걸음을 멈췄다.
“아차. 이 말을 전하지 못했군. 신전에서 너를 호출했다고 한다.”
“응? 신전에서?”
“1층에서 올라오다가 거주민 전령이 찾아온 걸 봤거든. 내가 대신 전해주겠다고 했는데, 깜빡 잊고 있었어.”
“아하….”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로 호출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구출 의뢰를 완수한 보상이 이제 확정된 모양이다. 천사를 보는 건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보상은 받아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우정민이 나간 이후, 간단하게 채비를 하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계단을 걸어 내려가려는 찰나, 아래 계단에서 아장아장 올라오는 한 여아와 작달막한 영수를 볼 수 있었다. 마르와 도도였다.
“아빠!”
마르도 나를 발견했는지 힘차게 계단을 올라와 함박 웃음을 짓는다.
무에 그리 좋은 걸까? 팔락팔락 움직이는 뾰족한 귀를 보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응. 마르구나. 어디 가고 있었어?”
“도도랑 같이 아빠 보러 가고 있었어요!”
마르는 아기 페가수스를 두 손으로 들어올리며 말했다. 도도는 나를 보자마자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가 이를 딱딱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놈이?
“그런데 아빠는 또 어디 가시는 거예요?”
아니. 또 어디 가시는 거냐니. 저렇게 해맑은 얼굴로 말하니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다.
“어? 아…. 하하. 잠깐 신전에 볼 일이 있어서. 어떡하지?”
“신전이요?”
그러나 마르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되레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이제는 귀는 물론, 등의 날개까지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아빠. 그러면요.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네가? 신전에는 왜?”
“그냥…. 오랜만에 아빠랑 같이 외출하고 싶기도 하고….”
“…하고?”
“또 엄마도 오랜만에 보고 싶고…. 헤헤.”
“…….”
방실방실 웃으면서 말하는 마르.
그러나 나는 돌연 기분이 착 가라앉는 걸 느꼈다.
“엄마…? 아.”
그와 동시에, 아차 한 기분도 느꼈다. 아무래도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낸 모양이다. 찰나의 순간이기는 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마르의 얼굴이 떠름히 굳고, 두 눈에서 실망의 빛이 스쳤으니까.
이내 애써 미소를 보이기는 했으나 아까와는 다른 억지 웃음이다. 정신 없이 움직이던 귀도 어느새 축 늘어져 있었다.
“죄, 죄송해요. 아빠. 제가 무리한 부탁을….”
“아니, 아니야. 괜찮다. 그리고.”
‘그 천사는 네 엄마가 아니란다.’ 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안 그래도 기대가 꺾인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렇게 잔인하게 말할 용기가 차마 나지 않는다. 폭풍처럼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마르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했다.
“…미안하다.”
“아빠 정말 죄송해요.”
“괜찮다니까. 그럼 아빠 다녀올게?”
“네에….”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하는 마르의 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어주고 나서,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와중 계속해서 뜻 모를 죄책감이 느껴졌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라프는 마르의 엄마가 아니다. 더구나 최근 방문에서 더는 데려올 일이 없으니 신경 끄라고까지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 나는 정말로 더 이상 마르를 소환의 방에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애는 자꾸 엄마만 찾고. 아니. 이해는 해. 그래. 한창 크는 중인데 당연히 엄마가 보고 싶겠지.’
왜 하필 그 말이 마르의 주눅 든 얼굴과 겹쳐서 떠오르는 걸까.
‘젠장. 괜한 말을 들어서는….’
결국,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내려온 계단을 오르자, 아직 복도를 걸어가는 마르의 시무룩한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르야…!”
조금 높은 목소리로 외치자, 터벅터벅 걸어가던 마르가 우뚝 멈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같이…. 갈래?”
그러자 마르가 토끼 눈을 뜨는 동시.
“응! 아니, 네!”
땅을 향하던 날개 끝이 활짝 하늘로 치솟는다.
마르는 득달같이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렇게 북 대륙으로 이동하는 내내, 나는 “아빠 최고.”, “아빠 사랑해요.”를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연신 가슴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마르를 안은 채 신전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소환의 방으로 입장한 순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용자 김…?”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엄마아!”
마르를 확인한 세라프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어…. 아…!”
잔잔히 흐르던 날개가 사정없이 일렁인다.
…어째 둘이 놀랄 때 보이는 반응이 똑같은 것 같은데 말이지.
============================ 작품 후기 ============================
『본처의 기분이 상승했습니다!』
『고유 능력, 남편 내조의 랭크가 EX로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