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65
광마전생 (65)
제갈영의 재갈과 포박을 풀어 주자 그녀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그때 그……!”
“예, 감독관님. 오랜만이네요. 저는 당신이 먼저 저를 찾아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제가 직접 모셔 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네놈은 대체 뭐지? 일개 학관의 관도가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을…….”
“당연히 일개 학관의 관도가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죠. 일개 관도 따위가 곤륜의 소문주와 하오문의 청루주 그리고 호북의 녹림채주를 거느리고 다니겠습니까?”
일부러 한 명 한 명 짚어 가며 이야기를 하자 제갈영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훑어봤다.
“그럼…… 네가 지금 이 사람들을 움직여서…… 나를 그 벽옥에서 꺼내 온 것이란 말이냐? 그 제갈세가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뭐. 마음만 먹었다면 저 혼자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부하들이 있는데 제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으니까요. 앞으로 진행될 계획을 위해서도 저는 드러나지 않는 편이 좋으니까요.”
내 말에 제갈영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진가은을 쳐다봤다.
“곤륜의 소문주 진가은 대협, 당신은 정말로 이 흑도들과 손을 잡은 것입니까?”
진가은을 아는 듯한 제갈영의 말에 나도 깜짝 놀라며 진가은을 쳐다보자 그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오늘 처음 봤는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계신 겁니까?”
“우선 대답 먼저 해 주십시오. 곤륜이 흑도들과 손을 잡은 것인지.”
제갈영의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에 진가은이 곤란한 듯 나를 쳐다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는 여기 있는 이여립…… 아니, 모용진과 친우가 되면서 그에게 곤륜을 도와달라 부탁하였고 그 친우가 흑도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이니까요.”
“모용……진?”
내 이름에 제갈영의 고개가 홱 돌아가더니 나를 쳐다보며 아래위로 천천히 훑었다.
“그렇게 빤히 보면 부끄럽습니다만.”
“모용세가의 명맥은 분명 몇십 년 전에 끊어진 걸로 아는데…… 모용이라…….”
그리고 그녀는 잠시 후 말없이 나를 쳐다보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표정.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저 표정은 제갈벽운이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 아비에 그 딸이라더니.
외모로는 제갈벽운과 닮은 곳이 거의 없어 보이나 저 표정에서 나는 제갈벽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네 아버지도 고민이 있으면 항상 그런 표정을 했었지.”
내 말에 제갈영이 흠칫 놀라듯 몸을 옅게 떨더니 생각에서 빠져나와 내 두 눈을 곧게 응시했다.
“어……”
“제갈벽운에 관한 거라면 조금 있다가. 일단은 방금 네가 한 고민의 결과를 듣고 싶은데. 만일 네 생각을 말해 준다면 나도 제갈벽운에 관한 모든 것을 거짓 없이 알려 주도록 하지.”
제갈영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만일 네가 진짜 모용세가고 저 뒤의 두 사람이 정말로 하오문의 청루주와 녹림의 채주라면 그 과정은 알 수 없지만 모용세가의 복수를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거겠지. 그리고 곤륜의 소문주와 손을 잡고 백호학관에 입학했다, 이 말은 즉 둘의 적이 동일한 세력이고 지금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야. 고로 통합무림의 정체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제갈영의 말에 나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제갈벽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내 친우의 딸은 그를 넘어선 천재인 듯했다.
제갈이라는 성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솔직한 마음을 담아 박수를 쳤다.
“대단하군. 거의 없다시피 한 정보를 가지고도 그런 뛰어난 추측을 하다니 말이야. 아니, 이건 추측이 아니라 거의 사실이라고 봐야 하나. 혹시 그렇게 생각한 이유도 말해 줄 수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그 곤륜의 소문주가 너와 손잡을 리가 없으니까. 통합무림 새끼들…… 결국 곤륜을 저버리고 마교의 손을 들어 주었나 보군.”
솔직히 처음에는 그저 제갈벽운의 딸이니까.
혹시라도 내가 하는 일에 휘말리지 않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정도로 나를 돕게 할 생각이었다.
백호학관에서 살짝 도움을 받는 정도?
그런데 이렇게 그녀를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탐이 났다.
친우의 딸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불경한 쪽의 탐이 아니다.
그녀의 머리.
아주 작은 정보로도 저렇게 많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저 두뇌가 무척이나 가지고 싶어진 것이다.
나도 멍청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뇌가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저 그 두뇌를 뛰어넘는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
벽운과 비교하면 열 수는 접고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그 벽운이 열 수는 접어야 할 만큼의 두뇌가 내 옆에 있다면?
아마 내가 해야 할 일이 수십 배는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기대는 하지 않았어. 게다가 벽운의 딸이니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생각이었지.”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제갈영을 바라보며 그녀의 앞에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하지만 너는 내 생각 이상으로 기량을 보여 줬어. 네 아버지를 뛰어넘는 기량을 말이지. 고로 어쩔 수 없이 넌 이제부터 나랑 같이 가야겠다.”
“어딜 간다는 거지?”
“조금 힘든 길이야. 피로 물든 복수의 길이지. 하지만 이는 분명 너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일 테고 충분히 보답을 받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보답?”
나는 그녀의 되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녀의 손과 발에 묶인 밧줄도 풀어 주었다.
“너도 아버지의 복수를 할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까 말이야.”
* * *
그 후 나는 여태껏 해 왔던 것처럼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이거 이거, 새로운 인사를 영입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하니 매번 입이 아픈데 글로 적어서 보여 주는 게 더 편하려나.
하지만 그랬다간 내 진실성이 떨어져 보일 것이다.
안 그래도 믿기 힘든 내용인데 글로 전한다면 더 믿기 힘들겠지.
그녀는 놀랍게도 내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었고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감정에 빠지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듯했고 중간중간 질문으로 신빙성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내가 ‘무림맹주 천기린’이었다는 말에는 크게 동요했고 아버지의 죽음이 통합무림의 짓이라는 말에 한 번 더 동요했다.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는데…….”
까득.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제갈영의 입가에선 피가 살짝 흘러나왔고 나는 그것을 소매로 닦아 주었다.
그 후로도 이야기는 길어졌고 밤이 지나 아침이 되었을 때 우리의 이야기는 끝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웠군.”
“그러게요. 적색기루에서 날밤을 샐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네요.”
“생각은 전부 정리 됐고?”
“전부 정리 하려면 아직은 좀더 걸릴 것 같네요. 과거는 모두 정리가 되었지만 앞으로의 일도 정리를 해야 하니까 말이죠.”
“뭐, 오래 걸려도 괜찮아. 애초부터 친우의 딸을 깊게 연관시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여긴 안전하니까. 제갈세가 놈들도 여긴 찾지 못할 것이고 설령 찾아온다고 해도 최양이 네 곁을 지켜 줄 테니까 안심해도 좋아.”
“산적을 곁에 두고 안심하라니. 고양이 곁에 생선을 맡기는 거 아니에요?”
“우리 고양이는 똑똑해서 생선은 안 먹어요. 가시도 많고 먹었다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으니까.”
내 말에 제갈영은 환하게 웃더니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응? 뭘?”
“저에게도 주셔야죠. 아저씨가 그 정도로 준비성이 없다곤 생각하지 않는걸요.”
그녀의 말이 뭘 뜻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뜻 내어 줄 수가 없었다.
이는 친우의 딸에게 몹쓸짓을 하는 거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 나는 친우의 딸을 의심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어.”
“아뇨. 이제 저도 한배를 탄 동료인데.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우리가 상대할 적은 실로 어마어마한 놈들이니까요.”
입맛이 씁쓸해졌지만 그녀의 선택과 말발을 이길 자신이 없었던 나는 품속에서 그걸 꺼냈다.
새하얗게 뜬 단환.
‘고독(蠱毒)’.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입에 넣었고 가볍게 물 한 잔을 들이켰다.
“이로써 저도 한배를 탄 동료가 되었군요.”
“꿈에 죽은 제갈벽운이 나올까 봐 두렵군.”
“제가 잘 이야기해 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아저씨. 아니, 흑제 님?”
“둘이 있을 땐 편하게 아저씨라고 불러도 돼. 아마 누구도 토 달진 못할 거야. 넌 지금 이 시간부터 흑천파의 ‘총군사(總軍師)’에 임명될 거니까 말이야.”
“그럼 제가 그만한 실력을 입증해야겠네요.”
“뭐, 그러지 않아도 알아서 잘 따르긴 할 테지만 그 제갈벽운의 딸이니 알아서 잘 할 거라 생각한다.”
짝짝.
내 박수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고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양과 청화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오늘부터 너희가 흑천파의 총군사로 모실 제갈세가의 제갈영이다. 최양은 적당한 자에게 호북 녹림채주를 넘겨주고 그녀의 호위 무사로 들어가도록.”
“명을 받듭니다.”
“청화도 앞으론 제갈영의 지시를 받아 부군사로 함께 움직이도록. 단 정보 수집에 관한 전권은 네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새롭게 ‘흑영단(黑影團)’을 꾸려 하오문을 통하지 않고서도 네가 부릴 수 있는 정보 집단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지.”
“감사합니다.”
이왕에 제갈영을 끌어들였으니 나는 그녀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나중에 죽어서 벽운에게 문책을 당할 순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볼 일이니까.
나는 이제 한배를 타게 된 제갈영을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할 수 있겠지?”
* * *
제갈세가가 산적에게 털렸다는 말은 이 백호학관까지 전해져 왔다.
지금 제갈세가는 무림맹을 대동한 총력으로 그 산적들을 찾기 위해 호북 전체를 뒤집고 다니고 있었는데 이는 내가 보기에 미련한 짓이었다.
이미 호북에 위치한 녹림도들은 내가 모두 섬서와 하남 그리고 중경으로 이동시켰고 몇몇은 백리세가에서 숨겨 주고 있었다.
제갈세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청화를 시켜 그 뒤처리까지 완벽하게 했으니 발각될 일은 없다.
아마 이번 일로 제갈세가의 가세는 크게 휘청거릴 것이고 중원의 웃음거리가 되겠지.
그런데 사실 제갈세가가 보여 준 행동은 나에게 있어서는 조금 의외였다.
왜냐하면 이렇게 당당하게 산적에게 털렸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밝혀 봤자 손해를 보는 것은 제갈세가였으니까.
하지만 그 멍청한 짓을 제갈세가가 했고 혹시나 해서 내가 녹림도들을 대피시킨 것은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 되었다.
오죽하면 제갈영조차 놀랄 정도였으니까.
그녀도 제갈세가가 이렇게 멍청한 일을 크게 벌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지금의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궁이 ‘무공 실력만 뛰어난 어리석은 자’라는 소문이 있더니만…….
아무래도 사실이었나 보군.
하여튼 그렇게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백호학관에 복귀하여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텁석.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얹기 전까지는 말이지…….
“네놈이 그 이여립이라는 놈이냐? 잠시 따라 나와라. 네놈을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