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15
“대체 뭐 하러 이래요? 귀찮게?”
“응?”
신공이 목수들과 함께 힘차게 주조장으로 뛰어간 뒤, 향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저 찐 옥수수는 또 어디서 구해 온건지.
근래엔 볼 때마다 뭘 처먹고 있다.
“너, 몸 관리 안 해도 되냐?”
“몸 관리를 왜 해요?”
“뭐? 당연히 해야지. 은신을 기본으로 하는 무인들에게 몸무게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풉!”
“……”
“걱정도 사람 봐 가면서 해야지. 어디서 삼류들이나 할 걱정을……”
향이의 비웃음에 능운비가 입을 삐죽거렸다.
하긴, 그동안 그렇게 처먹었는데도 배 나오는 모습을 못 봤다. 고수는 신진대사 능력도 어마어마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귀찮다는 건 뭔 말이야?”
“전에 말했잖아요. 누가 강제로 무너뜨린 게 틀림없다고.”
“그랬지.”
“근데 뭘 이렇게 어렵게 가요? 정황상 누가 봐도 청운목향이라는 놈들이 신평장을 몰락시키려고 꾸민짓인데…… 차라리 범인을 색출해서 조지는 게 빠르지 않겠어요?”
물론 그 방법이 제일 빠르긴 하지.
주조장을 다시 짓기 전, 누군가 강제적으로 무너뜨린 흔적을 찾았다. 삭월대 애들을 풀어서 그 뒤를 쫓으면 금세 범인을 찾아낼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그 끝자락은 향이의 말처럼 청운목향에 닿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곤란하다.
청운목향은 그리 쉽게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그놈들은 차근차근 주춧돌까지 알차게 짓밟아 놓아야 한다.
또한, 마교가 전면에 서는 모양새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자칫 종남파의 개입을 유도할 수도 있는 일이다.
다행히도, 이미 운학이 정무맹에 연락하여 지부의 위치 변경이 결정되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본성의 교주가 힘을 제법 쓴 것인지, 화산이 일언반구도 안 했음에도 수월하게 승낙을 받아 내었다고 했다.
물론 이런 결정에는 검선의 이름값이 혁혁한 공(?)을 세워 주었을 것이다. 종남에서도 그 이름을 무시할 순 없었을 테니까.
아마 지금쯤 눈에 불을 켜고 자신들을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범인 색출을 해?
말도 안되는 소리.
별의별 꼬투리를 다 잡고 쫓아내려할 것은 자명하다.
해서 마교는 나서지 않는다.
대신, 대리인을 내세워서 근방의 상권을 조금씩 조금씩 집어삼키는 것이다.
뭐, 외부인들의 눈엔 마교의 삼공자로서 곧 옮겨 올 지부의 재정을 위한 이권 확보쯤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오산이다.
마교를 왜 돕는단 말인가? 이것은 순전히 청운목향을 무너뜨리기 위함이다.
“그나저나, 저 녀석 목수치곤 너무 어리지 않아?”
능운비가 화제를 돌리려 주조장 쪽에서 일하는 어린 목수를 가리키자, 향이가 옥수수 알갱이를 한 움큼 씹으며 말했다.
“실력도 제법이던데요?”
“응?
눈썰미 하곤. 그래서 마교의 주인이 될 수 있겠어요?”
“……?”
된다고 한 적 없었다.
고수면 고수지, 왜 사사건건 사람을 무시하는 건데?
두고 봐라. 나중에 실력을 쌓으면 그놈의 턱주가리를 부숴 주마.
그런데 잠깐만, 실력이 제법이란 건 무슨 소릴까?
어째 말하는 투가 목수로서의 실력을 뜻하는 건 아닌 듯한데?
“음, 어떤 재능이랄까요?”
“재능?”
“네. 배운 건지 본능적으로 아는 건진 모르겠는데…… 저 녀석 진법을 아는 것 같아요.”
“뭐? 진법?”
“네. 신공이라는 인간도 그런 점을 아는지 이것저것 묻던데?”
“……?”
향이의 말에 능운비가 신공의 옆에 있는 젊은 목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구릿빛으로 빛나는 피부를 가졌지만, 외모만 봤을 때는 능운비와 비슷한 또래다.
꽤 어릴 때부터 목수 일을 시작했는지, 망치질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구, 이놈아! 이건 그냥 주조장 이라니까? 그걸 여기에 놓으면 어떡해?”
“쳇!”
신공의 핀잔에 청년이 짜증스럽게 망차를 던지고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금 전 그가 나무를 덧대던 위치.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주조장과는 어그러지는 듯했으나, 그쪽에 놓으면 분명…….
“설마? 진의 축(軸)이었던 거야?”
“아마도? 그런데 지금 보니까 진법을 배운 것 같진 않네요. 아마 본능이었나 보죠.”
“……”
무서운 녀석.
역시 고수는 고수인 모양이다. 옥수수를 처먹으면서도 잘도 보고 있었구나……가아니라!
“저, 저건 어마어마한 재능 아니냐? 본능적으로 진축을 안다고? 그것도 목수가?”
“목수인 게 뭔 상관이에요?”
“어?”
“사람마다 타고나는 재능이라는 게 있는 법이에요. 그걸 알아본 누군가가 있다면 발현시켜 주는 거고, 모르고 지나가면 잊히는 거죠. 발현한다 해도 어디까지 성장할지 모를 일이고.”
“……”
향이의 말에 능운비가 청년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였다.
사람이 타고나는 재능,
무, 문, 기, 예.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향이의 말처럼, 모두가 그 재능을 꽃피우는 것은 아니다.
형편이 안 돼 가진 재능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저 청년도 마찬가지다. 아마 다른 목수들과는 다른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만약 일개 목수가 아니라 제갈세가와 같은 곳이었다면 그 재능이 멋들어지게 개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누구보다 기관 진식의 전문가들을 우대하니까.
하지만 청년의 신분으로 제갈세가와 연을 맺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턱이라도 넘어야 재능을 보여 줄 것 아닌가.
왠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먹고 살기가 넉넉했다면.
어디까지 발전할지 몰라도 누군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면, 지금보다…… 아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왜요? 신경 쓰이세요?”
“응?”
“하긴, 지금 삼공자님 상황으로서는 인재를 포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 중 하나죠.”
“……”
“교주께서도 그 때문에 중원으로 내보내신 것일 테고. 본성에는 삼공자께서 얻을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향이의 말이 옳다.
무위를 선보인 이후로 견제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세력이든 인재든, 아무것도 내어 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권좌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중원에서 인재를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손에 넣지 않는 편이 좋을걸요?”
“그건 무슨 소리야?”
“재능이 있다고 모두가 삼공자님처럼 빠르게 꽃을 피우는 건 아닙니다. 언제 꽃피울지도 알 수 없고, 심지어 피다 말수도 있죠.”
“……”
“그런데 고작 본능에 가까운 재능 하나만 보고 품어요? 어쩌면 그 재능이 중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잘 생각하세요. 삼공자님께 남은 시간은 적습니다. 당장에 기관 진식을 아는 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구요. 만약 필요하다면, 차라리 신공이라는 노인을 노리길 권해 드리죠. 별도의 진법가와 함께.”
역시나 맞는 말이다.
자신이 교주의 권좌에 앉으려는 생각이었다면.
하지만 숱하게 말했듯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직까지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그저 향이가 잡술이라 말하는 것들을 배우기 위함이다. 그녀를 통해 무공 또한 일취월장하고 있지 않은가?
중요한 건 청년에게 관심이 생겼다는것이다.
어쩌면 일종의 연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가 어쨌건 누군가는 길을 향해 인도해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척월린이라는 청년이 ‘그분’을 만나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 낸 것처럼.
부랑아에 불과했던 능운비가 교주 담운천을 만나 제자가 되었던 것처럼, 그 재능을 알아챈 누군가가 말이다.
“그래도……흥미가 생겼다.”
“예?”
“저 진구에 대해 좀 알아봐야겠다. 어차피 신공이 우릴 돕기로 한 이상 해야 할 일도 있고.”
능운비의 말에 향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쳇, 옥수수가 많이 남았는데……”
“따라오란 말 안 했다.”
“안 했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전 삼공자를 지켜야 하는 시비니까.”
“……그럼 그러든가.”
능운비가 옥수수를 가득 챙겨서 일어나는 향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양손에 한 개씩 쥐고 있으면서…… 식탐이 정말…….
하지만 어찌 나무랄까? 그랬다간 옥수수가 온몸에 박히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는데.
주조장으로 다가간 능운비는 청년이 아닌 신공에게 말을 걸었다.
“잘 되어가십니까?”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원체 마구잡이로 지어 놔서…… 전부 뜯어고쳐야 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아는 게 무공뿐인 자들이라.”
“아,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목공장 이름도 정하셔야겠습니다.”
“목공장 이름이요?”
“예. 다시 사업을 시작하셨으니까요.”
“음……”
“말씀드렸듯이, 마교는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거야 원, 자꾸 그리 말씀하시니 새삼 또 거짓말 같군요.”
“……나중에 무인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때 고용하셔도 될 일입니다.”
“보호세 없이요?”
“그런 폐단은 없어져야지요. 어찌 그저 관계를 맺은 것만으로 보호세를 받겠습니까?”
“하지만 궤짝의 금들은……”
“무상투자라고 여기십시오.”
“무상요?”
“예.”
신공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니, 미래에 마교가 어찌 나올지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내 돈도 아닌데…….
“정 신경 쓰이시면, 투자금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투자금요?”
“예. 일단은 쓰시고, 후에 이득을 보시면 조금씩 갚는 것으로 하시죠. 대신 청운목향은 반드시 무너뜨리셔야 합니다.”
“음…… 좋습니다. 그럼 그리하죠.”
“그보다,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목수들 몇 명만 내어 주십시오.”
“목수들을요?”
“예.”
“뭐 하러……?”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돈이 있고 사람이 생겼으니 슬슬 움직여야지요.”
“하면?”
“청운목향의 일거리를 좀 뺏어 볼 생각입니다.”
능운비의 웃음에 신공은 속으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오늘 만났거늘 마치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던 사람 같지 않은가.
더욱이 자신이 그의 손을 잡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좋습니다. 그리하시죠. 삼공자님께서 무얼 하실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구요. 몇이나 내어 드리면 되겠습니까?”
“다섯이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 친구를 데려가게 해 주십시오.”
능운비의 손가락질에 신공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창이를요?”
“이름이 창이입니까?”
“윤창입니다. 제가 제자로 삼은 녀석이지요. 한데 원체 고집불통이라……”
“자고로 기술자는 고집스러워야 하는 법이죠.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가 목수 일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알겠습니다. 창아! 이리 오너라!”
“……?”
신공이 부르자 젊은 목수 윤창이 뛰어 왔다.
“인사드리거라. 삼공자님이시다.”
“윤창입니다.”
“능운비 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능운비는 조금의 거들먹거림도 없이 인사했고, 그 모습에 신공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대하였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건만…….
왠지 황자성이 그랬듯, 그를 믿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인부들은 어쩌실 요량이십니까? 모든 일을 목수들이 다 할 수는 없을 텐데요? 혹, 휘하의 무인들을 쓰실 건가요?”
“그럴 리가요? 신평장 안에서라면 몰라도, 밖에선 남들의 눈이 있어선 곤란합니다. 인부들은 나가서 알아보도록 하지요.”
“정운목향 놈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을 것인데……”
신공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황자성이 대뜸 화를 내며 말했다.
“어허! 어찌 저를 잊으셨습니까?”
“……예?”
“인부라면 차고 넘치지 않습니까?”
“……”
“주조장이 재건될 때까지 술 빚을 일도 없으니, 신평장 인부들을 데려가십시오.”
“아!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무렴요! 앞으로 이 황자성은 마교 사람, 아니 삼공자님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 예, 하하.”
뭘 또 그렇게까지야. 지금 자신에게 사람이 늘어서 좋을게 뭐가있다고…….
그래도 도와준다니 일은 덜었다.
“다들 들었는가! 삼공자님께서 인부가 필요하다고 하시니 갈 사람이 있으면 지원해 보게!”
“제가 가겠습니다!”
“저도 갑니다!”
황자성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손을 드는 이들이 속출했다.
순식간에 목수 다섯과 인부가……여하튼 많이 꾸려졌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위해선 차고 넘칠 정도로.
“한데 삼공자님.”
“예.”
“아까 청운목향의 일거리를 뺏는다고 하셨지요?”
“예.”
“어찌하실 요량입니까?”
“그들이 경쟁 업체를 무너뜨렸던 방법 그대로 돌려주려구요.”
“경쟁 업체…… 설마? 그놈들처럼 헐값에 공사를 맡아 주시려고요?”
“아뇨.”
“예?”
“아예 무료로 해 줄 생각입니다.”
“무, 무료요?”
“예. 말하자면…… 재능 기부인 게지요.”
“재능…… 예? 기부요?”
“계약된 공사까지 모조리 뺏어 볼 생각입니다. 필요하면 위약금까지 부담해 주고요. 돈은 넘치니까.”
능운비가 입꼬리를 쭉 찢어 을리며 음흉한 눈빛으로 웃었다.
이른바 ‘눈눈이이’다.
청운목향 놈들, 이참에 눈깔을 찌르고 이빨까지 몽땅 뽑아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