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46
“그럼 할 말 없지?”
“……”
“알아들은 것으로 알고, 나도 협약에 따라서 강제적인 힘으로 마교를 핍박한 것에 대해 책임을 좀 물어볼까 하는데?”
“그, 그게 무슨?”
“무슨소리긴?”
이런 소리다!
사악한 미소가 머금어짐과 동시에 능운비가 발을 뻗었다.
가볍게 밟은 일 보가 떼어짐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미끄러지듯이 다가오자 기겁한 팽원길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멈추시오!”
상대가 상대였던지라 차마 검은 뽑지 못한 팽가 지부의 무인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차라리 검을 뽑았어야지!
파앙!
능운비는 도리어 이 보에 더욱 힘을 더해 팽가 무인들의 방어벽을 향해 뛰어들었다.
가히 섬전 같은 속도에 능운비를 놓쳐 버린 무인들이 당황하는 순간.
쩌어억!
힘차게 뻗어 나간 주먹이 방벽을 부쉈다.
“커어억!”
앞으로 꺾인 무인의 얼굴에 닿은 것은 솟구치는 무릎이었다.
빠가각!
당연히 상체가 들렸고, 급조된 방벽이 유지될 리 없었다.
“이런 망할! 검진을 펼쳐! 도련님을 보호해라!”
아, 어째 지부장치곤 나이가 어리더라니……도련님이셨어?
그것참 잘됐네.
그리고 검진을 펼치려면 처음부터 펼쳤어야지!
팽가의 무인들이 뒤늦게 대응을 시도했지만, 이미 지근거리로 파고든 능운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몸을 웅크리며 모았던 두 주먹과 양발에 마기가 회오리치며 모이더니, 단숨에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월식, 월광천하!
쾅! 콰쾅! 쾅쾅쾅!
망치로 쇠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무인들의 신음이 뒤따랐다.
팽가의 무인들은 능운비의 주먹과 발이 닿는 족족 땅바닥에 쓰러졌으니, 방벽은 있으나 마나 했다.
쿠우웅!
방벽을 부숨과 동시에 솟구친 능운비의 두 발이 땅을 짓밟아 놓자, 짜르르한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앞에 서게 된 팽원길은, 자신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으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능운비가 팽가 지부의 무인들을 쓰러뜨린 시간은.
“왜, 왜 이러시오!?”
“……”
넘실거리는 마기를 피워 내며 가공할 무위를 선보인 능운비의 모습에 팽원길은 남들의 시선조차 잊은 채 당황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능운비가 음산한 미소를 머금었다.
고작해야 스물이 조금 넘은 나이, 체면 따위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어렸다.
니가 무슨 죄가 있겠냐?
하지만 나는 교주 대리로서 마교의 명예를 지켜야 함이고, 니가 좀 맞아줘야 저 위에 있는 제갈 놈이 내려올것이 아니냐?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시오! 팽가가 두고 볼 것 같으난 말이오!”
“……”
팽원길이 제 가문까지 들먹이자 능운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두고 보면 안되지.
금쪽같은 내 새끼가 맞았다는 소식에 네 형이며, 아비며, 집안 어른들까지 길길이 날뛰며 찾아와 줘야지.
과연 그들이 어찌 나올지, 너보다 내가 더 보고 싶다.
그 빌어먹을 팽가가 마교라는 이름앞에 어찌 나올지 말이야.
그리고 착각하지 마라.
무사할 거 같냐고?
그건 니가 걱정해야지. 니들이 좋아하는 그 명분이란 게 애초에 나한테 있는데.
꾸우욱.
능운비가 스산한 눈빛으로 주먹을 움켜쥐자, 팽원길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자, 잠깐만……”
고개를 휙획 돌리며 사방을 둘러보는 꼴이 이 층의 제갈씨를 찾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놈이 벌써 내려오겠냐?
“딱 대라.”
“……!”
능운비의 주먹이 힘차게 내려꽂혔다.
콰직!
전의를 상실해 버린 팽원길은 방어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크악!”
흙바닥에 쓰러진 팽원길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했지만, 아직 멀었다.
쩌억!
냅다 휘두른 발에 한참을 날아간 팽원길이 땅을 굴렀다.
자박, 자박.
능운비는 한 걸음, 한 걸음 느릿하게 걸어갔고, 그 소름 끼치는 소리에 팽원길은 도망조차 치지 못했다.
빡! 빠박!
멱살이 잡혀 들어 올려진 팽원길의 몸에 능운비의 주먹이 쉼 없이 틀어박혔다.
“그만…… 제발 그만…… 내가 잘못했소.”
“사과할 대상이 틀렸다.”
“……”
“그런 건 이유 없이 핍박한 마교 지부의 무인들에게 해야지.”
마기로 가득한 눈을 번들거리는 능운비는 거침이 없었고, 팽원길은 주먹에 몸을 들썩이며 애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가슴을 짓누르는 섬?함을 느꼈다.
용서? 아량?
능운비의 주먹에는 그 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무감(無感)했다.
그런데…… 나서지 않는다.
제갈씨 놈,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쉬이 네놈의 모습을 보여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털썩.
멱살을 놓아 버리자, 팽원길이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피와 흙먼지로 범벅이 된 그는 능운비가 쁨어내는 숨 막히는 마기에 두려워하며 울며불며 매달렸다. 바짓단을 붙든 채,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사, 살려 주시오. 내, 내가 다 잘못했소.”
“……”
가련하다. 지금의 그에게, 팽가의 자존심 따위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고작 이런 애송이를 지부장으로 내세우다니.
그저 팽가라는 이름만을 내세워 마교인들을 핍박하는 이런 놈을…….
마교 지부의 무인들은 더욱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마교라는 이유로 함부로 행하지 못한 채, 그 모멸감을 버티고 또 버텨야 했을 테니까.
스윽.
자신의 바짓단을 부여잡은 팽원길을 내려다보던 능운비가 비연검을 뽑았다.
빛을 받아 서늘하게 번쩍이는 검날에, 구경꾼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팽가의 자제.”
“……”
“스스로 너의 잘못을 시인했으니, 지금부터 그 책임을 묻겠다.”
능운비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사방을 짓눌렀다.
“나는 교주의 대리자로서, 강제적인 힘을 동원해 마교를 능멸한 네놈의 죄를 목숨으로 물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나 정마 협약이 체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니…… 팔 하나로 그 죄를 물어 천하 만인에게 본을 보이겠다.”
“……”
“마교를 우습게 여기면 어찌 되는지, 또한 굳이 마교가 아니더라도 팽가의 위세를 등에 업고 타인을 겁박하면 어찌되는지, 잘린팔을 보며 반성해라.”
“……!”
높이 쳐들린 비연검이 서슬 퍼런 빛을 발하자 팽원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인의 팔. 그것은 무림인으로서의 생명과도 직결된다. 팔이 잘리고 좌수로서 다시 일어난 것은 진산이나 되니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아, 안 돼!”
고개 들어 바라본 능운비의 눈빛에 한 점의 머뭇거림도 느껴지지 않자, 팽원길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쉬이익! 땅!
하지만 내리그은 검은 팽원길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자네, 왜 이러는가!”
능운비의 검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뒤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진산이었다.
물론 진짜 벨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원한은 그와 맺은 것이 아니지 않던가?
그저 제갈씨 놈을 불러낼 생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놈은 나서지 않았고, 놀란 진산이 먼저 나서서 막은 것이다.
“어르신! 물러나십시오!”
진산의 행동에 왕천과 주승, 삭월대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그를 겨누었다.
또한 어느새 향이의 비수가 날을 세운 채 그의 목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진산은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눈 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목 어림에 닿은 향이의 비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네답지 않네.”
“……”
능운비가 표정이 굳은 진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결국 제갈씨 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와중에 진산까지 나섰으니, 아무래도 상황을 정리해야 할 모양이었다.
보기 좋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능운비가 진산을 향해, 하지만 천하에 묻듯이 말했다.
“어르신.”
“말씀하시게.”
“저다운 것은 무엇입니까?”
“뭐?”
“그는 불의한 이유로 마교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교주의 대리자로서 중원에 나온 제가 참아야 합니까?”
“이 사람아, 그런 말이 아니지 않은가?”
“그는 팽가의 이름을 앞세워 다른 이들도 똑같이 핍박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진산 어르신께서는 참으셨겠습니까?”
“그, 그건…… 하지만 과하네.”
“무엇이 과합니까? 저는 홀로 나섰고, 팽가는 다수가 맞섰습니다. 제가 과한 것이었습니까?”
“그 말이 아닐세. 나 또한 상황을 보았는데 어찌 자네를 탓하겠는가?”
“하면 제 행동이 정마가 맺은 협약에 어긋났습니까?”
“어긋나지 않네. 하나 과한 처사임은 분명하네.”
“무엇이 과합니까?”
“상대는 팽가일세. 팽가의 이름을 등에 업은 아이의 팔을 자르고 나면, 그 뒤는 어찌 감당할 참인가?”
“……”
진산의 말에 능운비가 조소를 머금었다.
“팽가의 이름이라……. 저를 막으신 것이 고작 그런 이유였습니까?”
“뭐?”
“지부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
“……!”
비웃음과 함께 뱉어진 말에 진산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어렸다.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이름은 모두가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누구도 그 이름이 가진 권력이나 힘 앞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법입니다.”
“음…….”
“좋습니다. 여기서 멈추도록 하지요.”
“……”
능운비가 비연검을 거두었다.
“하나, 마교는 팽가나 정무맹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옳다고 믿은 것을 행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멈춘 것은, 저를 마교라는 이름으로 속박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보아 주신 어르신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습니다.”
“으음.”
“다만 팔을 잘라 본을 보이지 못했으니, 마교의 명예를 더럽힌 팽가에 책임을 묻지 못한 것입니다. 현명한 처사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능운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홱하니 몸을 돌려 버렸다.
진산을 향해 겨누었던 검을 거둔 왕천과 주승, 삭월대가 그 뒤를 따랐다.
마지막까지 진산을 노려보던 향이도 이내 비수를 거두고 일행을 쫓았다.
주륵.
진산의 목에 피가 흘렀다.
향이의 비수가 닿았던 곳이다. 아마도 정말로 죽일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허허, 이거 참……”
하지만 상처에서 전해지는 고통보다 부끄러움이 더 컸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이름이 지닌 무게로 타인을 핍박해서는 안 된다는 말.
능운비의 그 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자신도 안다.
이름이 가진 힘. 때로 그 하나만으로도 타인의 존경을 받고, 때로 그 하나만으로 타인을 억압한다.
그러한 이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무림이다.
어쩌면 능운비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하지도 않은 일들에 손가락질받은 그들이 아니던가. 그저 마교라는 이유로…….
“후우, 인생을 헛살았구만. 내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으니, 이제 능 공자의 얼굴을 어찌 본단 말인가?”
진산은 생각 없이 뱉어 버린 말을 반성하며, 마교 지부의 무인들에게 다가가는 능운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삼문협 지부장, 정효상이 삼공자님을 뵙습니다.”
“능운비 입니다.”
“죄송합니다.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효상이 굳은 얼굴로 사죄했지만, 능운비는 개의치 않았다.
“됐소.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검을 뽑고 싶어도, 실력 행사를 하고 싶어도 못 했음을 압니다.”
“저희는……”
“일단 지부로 갑시다.”
책하지 않았다. 머저리 같은 모습을 보였다며 야단할 수도 있는 일인데…….
또한 팽가임을 알고도, 정무맹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임을 알고도 직접 나선 능운비의 모습에 정효상은 감격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삼공자님을 뫼셔라! 지부로 간다!”
“예!”
지부의 무인들도 정효상과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감격이 어려 있었고, 미래의 주인을 바라보는 듯한 충성심이 가득했다. 좌우로 늘어서 호위하는 모습이 사뭇 위풍당당했다.
하지만 능운비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대충 둘러대지 않았던가?
지부장무명지초?
염병, 그딴 말은 갑자기 왜 생각이 나서는…… 끼워 맞추느라 혼났다.
어쨌든 개떡같이 말했어도 진산이 찰떡같이 알아들은 표정이니 됐지 뭐.
나머진 그에게 맡겨 두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