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85
각지로 날아든 전서에 찍힌 천급지인(天級之印)에, 중원의 정파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맹주가 구금되었다는 사실에 얼이 빠졌다가, 정무맹을 전복시키려는 이들과 그에 동조한 화산, 종남, 소림의 이름이 거론되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말미에 적힌 이름, 마교의 삼공자 능운비.
그가 모든 사건의 중심점이 되어 음모를 홱책(劃策)했다는 대목에서는 일제히 분노하기 시작했다.
뿐인가?
그간 능운비의 행적이 너무도 상세히 적혀 있고, 정무맹이 거론한 내용과 짜맞춘 듯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또한 지금껏 그가 중원에 나와 행한 의로움이 검은 속내를 감추기 위한 위선으로 표현되자, 중원의 무인들은 치를 떨며 검을 들고 뛰쳐나왔다.
치밀한 농간이었다.
공통의 적, 사람들의 편견.
그 모두를 이용해 대의와 명분을 더욱 공고히 하고, 단숨에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분위 기를 끌어 냈다.
* * *
“휴우……겨우 빠져나왔네.”
포위망을 뚫고 새벽 내내 크고 작은 싸움을 지나온 능운비가 겨우 숨을 돌렸다.
안전하다 판단되는 곳에 숨은 뒤 흔적마저 지웠지만, 여유를 부릴 처지는 되지 못했다.
앞을 가로막는 무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 더 많아질 것이다. 첫 그물질에 자신들을 놓쳤으니, 더욱 촘촘한 그물을 펼칠 것이다.
“천라지망……”
낮게 으르렁거리며 주변을 살펴 안전을 재차 확인한 능운비가 윤안로의 옆으로 다가갔다.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신예랑의 말에 능운비가 쓴웃음을 지었다.
좋을 리가 있겠는가?
“일단 치료부터 해야겠다.”
“예? 지금요?”
능운비의 말에 김산과 신예랑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치료라니? 자신들은 도주 중이 아니던가?
지금도 정무맹의 무인들이 자신들을 바짝 뒤쫓으며 포위망을 좁히고 있을것인데…….
“삼공자, 지금은 도망쳐야 합니다.”
“아니, 지금은 머물러야 할때다.”
“예?”
“벌써 하룻밤을 지나 보냈다. 이대로 두면 윤 단주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어.”
“그, 그건……”
능운비의 말에 신예랑이 얼굴을 찌푸린 채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옳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느긋하게 치료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부우욱!
하지만 능운비는 이미 결심한 듯 겉옷을 벗어 잘게 찢고 있었다. 상처를 감쌀 붕대를 만드는 것이다.
“피가 튈 것이다.”
찢어 낸 천을 건네는 능운비를 바라보던 신예랑이 이내 한숨과 함께 천을 받아 들었다.
쑤욱!
“끄으윽!”
지혈점을 눌러 놓았음에도 검을 뽑은 상처에서 피가 울컥거리며 쏟아졌다. 동시에, 정신을 잃은 윤안로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능운비는 상처를 세심하게 살폈다.
다행히 검이 장기를 비켜 간 모양인지, 내부에 고인 피는 많지 않았다.
비록 임시방편에 불과한 방법이었지만, 암살자로서 살아온 능운비에게 이만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 지금은 지혈제도, 금창약도 없었고, 찢어진 상처를 봉합할 수 있는 도구도 없었다.
또한, 추격받고 있는 처지인 만큼 의원 역시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피를 멈출 방법은 하나.
위험한 치료법이기는 하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후에 의원에게 치료를 받을수 있다.
결심을 굳힌 능운비가 윤안로의 아혈과 마혈을 점한 뒤, 신예랑과 김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점혈은 했지만, 고통이 심해서 버등거릴수도 있어. 꽉 잡아라.”
“예?”
동시에 묻는 둘이지만, 능운비는 이미 비연검의 날 부분을 움켜쥐고 있었다.
검을? 대체 무엇을 하려고?
능운비의 행동이 의아하기만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치이익!
능운비의 손에서 피어난 후끈한 열기에 검날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 삼공자!”
하지만 누가 막을 새도 없이 능운비가 열양공으로 달군 검날로 윤안로의 상처를 지졌다.
치이익!
살타는 냄새가 진동해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끄으으으…….”
정신을 잃었던 윤안로가 눈을 부릅떴다. 고통에 실핏줄이 터져 눈동자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아혈을 점해 신음이 전부고, 마혈을 점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학질 걸린 사람처럼 몸이 잘게 떨린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한, 소작(燒灼)이라 불리는 이 행위는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명백한 의료술 중 하나다. 비록 마음 한구석에 죄송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해도, 당장엔 이 방법뿐이다.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그를 잃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일단은 조금이라도 윤안로의 생명을 연장시켜야 했다.
이후 마교로 가기만 하면, 칠장로께서 치료해 주실 것이다.
이미 그의 의술이 하늘에 닿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까진 어떻게든 살려 놓을 것이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자신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아도…….
“끄르륵.”
몸의 앞뒤를 지져 놓은 충격에, 윤안로가 결국 눈을 까뒤집고 혼절했다.
“후우……. 일단 지혈은 했다.”
“……”
“고통이 극심해 혼절한 거야. 기운을 북돋워 주면 곧 깨어나실 거다.”
이내 능운비가 정신을 집중한 채 윤안로의 몸에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신예랑과 김산은 어안이 벙벙할뿐이었다.
몹시도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
타인의 기운을 보(保)하는 행동은 운기조식을 하는 것과 진배없다. 악한 의도를 품은 자가 옆에 있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도 있는 행위란 뜻이다.
한데 이자는 대체…….
대체 자신들을 어찌 믿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후우…….”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치료가 끝났을 때. 능운비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윤안로의 안색에는 평온함이 가득했다.
“예랑.”
“예?”
“상처를 동여매 주겠어? 보다시피 진이 빠져 버려서.”
“……예!”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능운비의 청에, 신예랑이 찢어 놓은 천으로 윤안로의 상처를 동여맸다.
검날에 화상처럼 지져진 상처가 보기 흉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좋은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어, 삼공자님.”
“말해.”
신예랑이 조심스럽게 윤안로의 몸에 천을 감는 동안 김산이 물었다.
“아까…… 어째서 지금은 머물러야 할 때라고 하신 겁니까?”
“아, 그거?”
김산의 말에 능운비가 피식 웃었다.
“낮이니까.”
“……예?”
“낮엔 잘보여.”
“……”
무언가 새로운 답을 기대했던 것일까?
당연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김산이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보았다면, 어젯밤 펼쳐진 포위망은 정무맹의 병호에 해당하는 천라지망이었어.”
“……?”
“정무맹의 천라지망은 모두 세 가지.”
이어진 능운비의 말에 김산은 물론 신예랑까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호와 을호, 그리고 병호. 그중 병호는 장로직에 있는 자가 직권으로 발동할수 있는거야.”
“그걸 삼공자께서 어찌……?”
내부자만 알 수 있을 법한 내용이 능운비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자 김산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능운비는 그저 웃기만 했다.
어찌 아냐고?
당해 봤으니까 알지.
“병호의 천라지망이 펼쳐졌다면, 이는 정무맹주의 명이 없었다는 소리야. 남궁학 그놈이 단독으로 처리했단 소리지.”
“그렇습니까?”
“그래. 그런데 새벽녘부터 성향이 달라졌어.”
“……?”
“병호의 천라지망을 구성했던 놈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놈들이 나타났거든. 즉, 천라지망이 을호로 승격되었단 뜻이지.”
“예?”
“물론 아직은 추측이야. 다만 정말 병호에서 을호로 승격되었다면, 그건 맹주의 명이 있었다는 뜻이야.”
“……”
“그런데 이상하더군. 왜 처음부터 을호가 아닌 병호였을까? 만약 저들의 주장대로 해현단을 정파를 전복시키려는 단체로 점찍었다면 응당 맹주가 나섰어야 했는데……”
“그럼 삼공자님 말씀은…… 설마 맹주가 아닌 다른 이가?”
“그래. 필시 맹주에게 변고가 생겼음이 틀림없어.”
추측이긴 했지만, 능운비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윤안로에게 씌워진 죄는 전부 누명이다.
과거의 그때처럼…….
놈들은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그를 묻어버리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정무맹에서 본 바가 있지 않은가?
그곳은 맹주 측 인사와 장로 측의 인사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다.
한데 장로측이 주도하고 있다면, 당연히 맹주가 밀려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자신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테고.
“삼공자님.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말씀대로 을호가 발동됐다면 더욱 위험한 일이 아닙니까?”
“물론, 그물망이 더욱 촘촘해지니까 도망치는 처지에서는 더 위험해진다고 봐야지.”
“그런데 어찌……”
“곧 갑호로 바뀔 테니까.”
“예? 갑호요?”
“그래. 우릴 잡기 위해 이른바 총동원령이 떨어지는 것이지.”
분명 그럴 것이다. 이미 판을 다 깔아 놓은 이상, 사태를 수습하려면 모든 이들에게 증거를 내밀어야 할 테니까.
와중에 맹주까지 물러나게 했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다.
“하면…… 어찌합니까? 지금이야 단주님의 상세를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리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 듯한데.”
“맞아.”
“……예?”
“하지만 천라지망에는 커다란 단점이 하나 있단 말이지.”
“예?”
“생각보다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게 되거든.”
“……”
능운비의 설명에 김산이 언뜻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쉽게 설명하자면…… 아, 자네가 어부라고 생각해 봐.”
“어부요?”
“그래. 작은 그물을 던졌을 때랑 큰그물을 던졌을 때. 어떤 게 더 힘들겠어?”
“그야…… 큰 그물?”
“맞아.”
“……그게 왜?”
“천라지망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걸 통제해야 하는 쪽에서는 부담이 커질수밖에 없지.”
“음, 그렇군요.”
“그리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물을 던진 쪽은 점점 지쳐 갈 거야.”
“……”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통제하는 쪽과 그물을 구성한 쪽 사이에선 마찰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 특히나 물고기를 잡지 못하면 더욱 그렇게 되겠지.”
“혹 그래서……”
“아니,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순 없지. 천라지망이 진짜 그물처럼 펼쳐져 있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럼요?”
“수색, 추적. 수많은 방법으로 우릴 찾으려 할 거야. 그들도 알거든. 천라지망의 단점을.”
능운비의 말이 오락가락하자 김산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지기만 했다.
“해서…… 혼란을 주는 거야.”
“혼란이요?”
“그래, 놈들의 통제에 혼선을 주는거지.”
“어떤?”
“물고기가 이쪽이 아니라 다른 쪽에 있다고.”
“예?”
김산은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이 었지만, 능운비는 빙긋 웃을 뿐이었다.
“일단 쉬어 둬. 그래야 밤이 되었을때 전력을 다해 헤엄칠 수 있을 테니까.”
“……”
능운비는 멍하니 눈만 깜박이는 김산을 뒤로한 채 밖을 살피기 위해 일어났다.
두고 봐라. 아무것도 모른 채 네놈들에게 당했던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천라지망?
그 안에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 가며 미친 듯이 날뛰어 보았던 나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천라지망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직 한 대상에게 그 힘이 집중되었을 때다. 목표가 분산되면, 천라지망의 위력은 약해진다.
또한 사방에서 날아드는 첩보에 중앙에서 통제하는 쪽은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고, 그 혼란은 즉각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해서 능운비는 향이를 내보냈다.
삭월대와 합류하라고.
아무 죄도 없는 그들을 정무맹으로부터 구하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나아가 지금의 상황을 대비하고자 함이었다.
오직 향이만 할수 있는 일.
밤이 찾아오면, 또 다른 능운비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