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88
콰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정문을 보며 멍하니 눈만 끔벅이던 무인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외쳤다.
“적이다!”
날카로운 고함, 그리고…… 도주?
아니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적이 온 줄 알았으면 검을 들고 덤비든지 해야지.
능운비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내, 무인의 외침을 들은 연락소의 무인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래, 겨우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면 찾아오지도 않았다.
저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여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알리게 하려면, 제대로 난동을 부려 줘야 하니까.
그리고 내 정체가 그냥 적이 아니라 능운비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 줘야지!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이완시킨 능운비가 천천히 마기를 끌어모았다.
“이노오옴!”
온몸이 마기로 충만해져 가던 그때, 좀 전에 도망갔던 무인이 되돌아와 힘차게 검을 휘둘러 왔다.
아마도 능운비라는 이름을 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 제 편이 많아졌다고 저리 용기를 내는 것이지.
하나 일검에 정문을 부수는 것을 보았으면, 숫자만 믿고 덤빌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어야지!
슈아아악!
긴 호선을 그리며 휘둘러진 검격을 허리를 뒤로 젖혀 피한 능운비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단, 목숨은 빼앗지 않으마.
네겐 죄가 없으니까.
후아악! 쩌어억!
일보를 내디디며 주먹을 휘두르자,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무인이 뒤로 넘어가더니 그대로 한 바퀴를 돌아 땅바닥에 철퍼덕 뻗어 버렸다.
“……!”
그 한 방의 주먹에 일순간 장내가 얼어 붙었다.
사방에 난무하던 고성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호기롭게 달려오던 무인들이 못 박힌 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쯧, 대체 나를 누구라 생각하는 거야? 개 한 마리도 못 잡을 검술로 덤비다니.”
“……?”
마기로 인해 검게 물든 눈동자가 흑요석처럼 번들거리자, 연락소의 무인 중 개방도로 보이는 거지 한 명이 기겁해 외쳤다.
“너, 너는…… 능운비!?”
“역시, 개방 거지답게 눈썰미가 제법이네. 맞아, 내가 바로 그 능운비야.”
연신 히죽대며 웃는 능운비의 모습에 개방도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놈이 어찌 이곳에?”
“저런, 아직 여기까진 연락이 닿지 않은 모양이지? 내가 또다시 종적을 감췄다고 말이야.”
“……?”
“그동안 내가 뭐 했겠냐? 설마하니 천라지망이 좁혀 오는 것을 알면서도 낙양에 머물러 있었을까?”
“빠져나왔다고?”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럴 수는……”
“없을까?”
개방도는 차마 답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정보를 최우선으로 취급하는 개방도들은 능운비의 용모파기를 외우다시피 했다.
그의 얼굴, 그리고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얇은 검까지.
분명 능운비다.
한데 어째서 혼자지?
현재까지의 정보로는 정무맹을 전복시키려는 무리 셋에다, 등봉현에서 도망친 그의 호위들과 함께 낙양에서 모습을 드러 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개방도는 홀로 나타난 능운비를 보며 의아함을 머금었다.
하지만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능운비가 비연검을 들어 개방도를 겨누었다.
“처음엔 그냥 마교로 튀어 버릴까 싶기도 했는데, 생각할수록 열 받지 뭐냐?”
“뭐?”
“이런 치욕을 경험하고 그냥 돌아가서야 마교의 삼공자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겠어?”
“그게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긴? 마교도답게 제대로 날뛰어 주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소리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발을 내디딘 능운비의 신형이 쭉 하고 늘어나는 것처럼 다가오자, 놀란 개방도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고작 개방의 하급 제자들이 쓰는 취행보 따위가 삼무보에 비빌쏘냐?
어림도 없는 소리!
단숨에 따라잡아 버린 능운비의 모습에, 그를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개방도가 허리춤에서 타구봉을 뽑아 휘둘렀다.
하지만 채 초식이 펼쳐지기도 전에 타구봉이 능운비의 손에 잡혀 버렸다.
“내가…… 개냐!”
“……!”
빠아악!
힘껏 후려친 주먹에 얻어맞은 개방도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고개를 털어 충격을 떨친 개방도가 황급히 능운비의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다행히 능운비는 이어진 공격 없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어?”
하지만 개방도의 얼굴에는 맞은 충격보다 더한 당황이 떠올랐다.
자신의 손에 있어야 할 타구봉이…… 어째서 능운비의 손에 들려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저 표정은…….
“이게 뒈질라고 사람을 개 취급하네? 타구봉이면 타구봉답게 개나 잡을일이지, 사람을 패려 해? 니네 방주가 그렇게 가르쳤어?”
“……”
타구봉을 들고 화를 내는 능운비의 모습에 개방도는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누가 타구봉이 개만 팬다고 그랬단 말인가?
그건 그냥 이름일 뿐이다.
“너도 한번 맞아 봐라. 개 몽둥이에 맞은 사람 기분이 어떤지 알아야지.”
“……아니,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라 말하고 싶었지만, 따지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이미 능운비의 손에 들린 타구봉이 만들어 낸 변화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월식! 월광천하!”
“……어어? 어어어?”
도망치려는 순간 타구봉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빡! 빠바바바바박!
“끄아아악!”
머리, 어깨, 무릎, 손가락에 발가락까지.
개방도는 자신이 가진 모든 신체 부위를 두들겨 맞으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끄으으……”
온전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이 눅진해질 정도로 매질을 당하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개방도는 열은 신음을 흘리다 끝내 정신을 잃었다.
“자, 그럼…… 다음은 너냐?”
“……”
한 손에는 비연검, 또 한 손에는 타구봉을 든 채 사악한 미소를 짓는 능운비의 모습에, 연락소의 무인들이 혼비백산한 표정을 지었다.
“뭐, 누구든 뭐가 중요하겠어? 니들이 내 눈에 띄었다는 게 중요하지!”
정무맹의 연락소는 중원 전역에 소식을 빠르게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즉, 명을 전파하는 데 목적을 둔 곳이지 무력 행사를 위한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해서 그리 이름난 무인은 없었고, 마기를 아지랑이처럼 피워 올리며 다가서는 능운비의 신위를 보고도 덤빌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무인도 없었다.
“전부 때려눕히고 곧장 정무맹으로 갈 참이다. 성곽이며 전각 몇 채 정도는 때려 부숴 버려야 내 속이 후련할 것 같으니까.”
이를 갈며 다가오는 능운비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으으…… 도, 도망쳐!”
그러다 이내 냅다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능운비는 이미 강기의 경지에 근접한 무인.
또한 오감을 초월해 주변의 공간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던가?
“멍청이들, 도망치게 둘 거면 굳이 내 발로 찾아왔겠냐?”
마령신단의 기운을 한꺼번에 개방한 능운비가 발을 가볍게 들었다가 힘차게 바닥을 찍어 밟았다.
월식, 월광옥(月光獄)!
꾸우우웅!
짓누른 기운이 바닥에 압축되었다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쾅! 콰콰쾅!
근처에 있던 담벼락이 일제히 터져나갔고, 휩쓸린 무인들이 사방에서 쓰러 졌다.
하나, 동료의 몸을 방패 삼은 몇몇은 겨우 살아남아 도주를 이어 나가려 했다.
“큭, 설마 끝일까?”
도주의 뜻을 포기하지 못한 무인들을 비웃은 능운비의 양손이 커다란 원을 그리자, 부서진 담벼락과 건물의 잔해들이 그 손을 따라 회오리치듯 움직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빡! 빠바박!
“크아악!”
잔해의 폭풍에 휩쓸린 무인들이 얼마 도망치지도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때.
“이, 이게 무슨 일이냐!”
“……?”
아직 낙양으로 떠나지 않고 근처에 있던 무인들이 갑작스러운 소란에 우르르 연락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수십? 아니 좀 과장하자면 백은 족히 넘을 것만 같았다.
하긴, 소란이 좀 컸던가?
연락소의 전각과 담벼락이 아예 무너져 내려 가루가 되다시피 했고, 무인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으니…….
“이보게, 괜찮은가!”
“으으…… 마교…… 능운비……”
“응?”
“능…….”
누군가의 부축을 받은 연락소의 무인 중 하나가 겨우 든 손가락으로 능운비를 가리켰다.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지만,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마교?”
“능운비?”
낙양에 있다는 그가 어찌 이곳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정도 무위는 절대 흔치 않다. 또한, 연락소의 무인들이 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도 없다.
더욱이 자신들도 그 얼굴이 익숙한 것을 보면…….
“능운비다! 저놈이 마교 삼공자다! 틀림없다!”
“……맞아! 저 얼굴이었어!”
이곳저곳에서 능운비의 얼굴을 알아본 자들이 속출했다. 심지어 몇몇은 품속에 지니고 있던 용모파기를 꺼내 대조하기 시작했다.
“쳇! 귀찮게 됐군. 서둘러 삭월대와 합류해 정무맹으로 가는 수밖에.”
능운비가 얼굴을 찌푸리며 연락소를 떠나려 했다.
“멈춰라, 이놈!”
“……멈춰?”
그러자 그의 앞을 가로막고 검을 겨누는 무인들.
그 모습에 능운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삐딱하게 꺽었다.
“막아 보게?”
“……다, 당연하다!”
말은 그리하지만, 검을 쥔 손이 떨리고 있다.
하긴, 겁이 나겠지. 니들 말로 대마두나 다름없는 난데.
더욱이 혼자서 연락소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놨으니…….
“그럼 막아 봐.”
“……!”
능운비는 그저 걸었다.
다만, 자신이 가진 모든 기운을 발산하며 걸었다.
그 거대한 존재감에, 앞을 가로막았던 무인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다 급기야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능운비가 그 바로 앞을 지나갔지만, 무인들은 그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막지도 못할 것들이……”
그들을 비웃은 능운비가 정무맹이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름을 알렸고, 혼선을 주려고 일부러 다음 목적지도 밝혔다. 연락소의 무인들이 깨어나면,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은 전서구를 타고 낙양에도 도착할 것이다.
그럼 활로가 열린다. 활짝은 아니더라도, 향이와 삭월대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비집고 빠져나올 수 있는 틈일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 정무맹으로 가는 척하다가, 방향을 틀어 삼문협으로 가면 된다.
향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
그리고 그 뒤부터는…….
사실, 그 뒤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으니, 제갈씨 놈이 의심을 품고도 남는다.
어느 곳이 진짜 자신인지 고민할 테지.
또한, 드러난 정황들을 놓고 세밀하게 살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쯤이면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윤안로 등을 먼저 탈출시켜 버렸다는 사실을…….
즉,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머리 좋은 제갈 놈들이 언제쯤 눈치를 챌 것인가?
향이와 삭월대가 자신과 합류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한다면, 북쪽 물길을 따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놈들이 너무 빨리 알아챈다면, 힘겨운 도주가 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묶어 두고 윤안로를 잡기 위해 별도의 추격대를 보낼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능운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정무맹 지부로 향했다.
향이와 삭월대가 낙양을 탈출해 삼문협까지 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터다. 그사이 놈들로 하여금 자신이 정말 정무맹으로 가고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