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228
검게 빛나는 흑요석 눈동자와 함께 날아드는 검.
깡!
쳐낸 검에서 불꽃이 튀어 을랐다.
“크윽”
이어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능운비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까드득, 깡!
“이, 이놈이!”
능운비의 공세에 남궁무위가 방어에 급급하며 물러났다.
벌써 백여 합을 넘어가고 있었다.
쿵!
땅을 깊이 패어 놓은 족적과 함께, 능운비가 또다시 삼무보를 펼쳐 남궁무위를 따라잡았다.
뒤는 없었다. 쉴 틈 없이 몰아붙여야만했다.
그러나 이미 입 안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패왕수라결은 아직 완벽하게 깨닫지도 못한 강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몸에 막대한 무리를 주고 있었다.
처음 휘두른 검보단 두 번째 검이 더 힘들다. 몸은 무겁고 또 무거워졌다.
이미 한계점을 넘은 지 오래였다. 패왕수라결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령신단의 기운을 모조리 불태우고 나면, 언젠가 멈춰 버릴 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어떻게든 남궁무위를 쓰러트려야 했다.
속이 뒤집 히는 듯한 고통을 참아 낸 능운비는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사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무리 패왕수라결 덕에 한계 이상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지만, 절대의 길을 걸어온 백전 노장에게 어찌 상대가 될까.
이란격석이나 다름없는 싸움이다.
다만, 남궁무위는 손안에 많은 걸 쥐고 있었다.
권력, 재산, 명예 등.
그리고 그는 그러한 것들에서 벗어날수 없는 이였다.
어떻게라도 살아남아 그것들을 누려야 했기에 끝까지 살 궁리를 하며 검을 뻗었고, 반면 능운비는 한 수 한 수에 죽음을 담고 있었다.
그 차이가 둘의 싸움을 팽팽하게 만든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완벽한 기회가 찾아왔다.
거듭된 방어에 남궁무위의 발이 지면을 헛디뎠고, 잠깐의 비틀거림으로인해 틈이 생겼다.
“이, 이런!”
다급히 자세를 바로잡으려 하는 남궁무위였으나, 능운비의 검이 미세하게 빨랐다.
비연검이 목젖을 노리고 곧게 뻗어지는 순간, 남궁무위가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푸학!
피가 튀어 올랐고, 비트는 데 전력을 다했던 남궁무위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공격에 성공했음에도 능운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검에 힘이 부족했다.
그 탓에 살을 꿰뚫지 못하고 피부만 찢어 놓은 것이다.
“……제기랄.”
능운비의 시선에, 자신의 목을 움켜쥐며 일어나는 남궁무위의 모습이 보였다.
흐른 피가 상반신을 흠뻑 적시고 있으나 그뿐이다. 위축되기는커녕 상처입은 범처럼 눈을 번들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원하지 않았던 순간이다.
힘의 고갈.
남은 힘은…….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비연검이 잘게 떨리고 있다.
아니, 떨리는 것은 자신의 손이었다.
쉬지 않고 돌아가던 기관 장치에 덜컥 제동이 걸려 버린 것이다.
하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상황을 알아채는 순간 남궁무위는 공격에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아깝네. 모가지에 구멍부터 내놓을 생각이 었는데.”
능운비는 되레 잔인한 표정으로 웃으며 제 손에 묻은 피를 핥았다.
“크으…… 검제의 피 맛이라 그런가?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네.”
잔 떨림을 감추려 희열감에 몸부림치듯 과장되게 몸을 떨어 댄 능운비가 턱을 들어 남궁무위를 깔아 보았다.
“놈…….”
다행히 눈치채지 못한 듯, 남궁무위는 곧바로 공격해 오지 않았다. 여전히 피가 흐르는 목의 상처가 그를 주저하게 만든 것이다.
대략 삼 장.
지금의 힘으로 삼무보를 극성으로 펼칠 수 있는 거리는 딱 그 정도였다.
이번 일격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더는 없다.
물론,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한 가지 조치가 더 필요했다.
남궁무위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천천히 간격을 좁히던 능운비의 부름에 향이가 티 나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
[우측 바위다.] [뭐?] [딱한 번 기회를 만들어 주마.]뜬금없는 부탁이었지만, 향이는 알아들은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림자에 스민 듯 사라져 버린 그녀였으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남궁무위가 그것을 눈치챌 리는 없었다.
턱.
어느덧 삼 장의 거리에 다다른 능운비가 걸음을 멈추었다.
남궁무위, 그리고 뒤편의 바위와 일직선이 되는 지점.
“남궁무위.”
“…….”
“내가 가진 최고의 수다. 이번 일격에 전부 담겠다. 막을 수 있으면 네가 이길 테지.”
“최고의 수?”
“서로 길게 갈필요 없잖아.”
능운비가 발검 자세를 잡고 몸을 앞으로 내밀듯 낮추자, 남궁무위의 울대가 불쑥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긴장되긴 매한가지일 것이다.
“후우…….”
한 차례 길게 숨을 내쉰 능운비가 남궁무위를 응시했다.
비스듬히 세워 든 채 겨눈 검.
최고의 수를 운운하며 현혹하는 말에, 남궁무위가 준비를 마친 듯 눈빛을 빛냈다.
믿지 않을 리 없다. 능운비는 이미 남은 마기를 바닥까지 박박 긁어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강기의 무인이 지배하는 공간.
그 두 개의 공간이 삼 장의 거리 내에서 점점 더 공간을 넓히다 맞닥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능운비의 발이 떼어짐과 동시에 다시 바닥을 지르밟았다.
쿡!
발자국이 남을 듯 말 듯 가볍 게 밟고 도약한 능운비의 신형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오너라, 남궁무위.
네가 할 수 있는 최강의 힘을 보여다오!
극성의 삼무보가 펼쳐짐과 동시에 뽑혀 나온 비연검이 백광의 꼬리를 달고 휘둘러진다.
“흡!”
그와 동시에 남궁무위의 검이 높이 치들려 한계점에 도달했다가 수직으로 내리 그어진다.
종과 횡.
세상을 갈라 놓은 두 개의 검이 십자를 이루며 맞부딪혔다.
콰아아앙!
거칠게 터트려진 둘의 기운이 만들어 낸 충격파에, 땅이 파헤쳐져 떠밀리고 나무가 통째로 뽑혀 나갔다.
휘리릭! 쿡!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부러진 검의 반쪽이 허공에 떠올랐다 바닥에 박혔다.
“크윽!”
“끄으으…….”
황폐해진 격전의 중심에서 터져 나온 두개의 신음.
하나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남궁무위는 겨우 두 발자국 물러난 채 찢어진 손아귀에서 피를 홀리고 있었고, 능운비는 깊이 베인 어깻죽지를 붙들고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반쪽이 되어 버린 비연검이 들려 있었다.
검제라는 이름을 결국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두 발자국을 밀어 냈다. 덕분에 남궁무위의 검격이 능운비의 어깨를 완전히 잘라 내지 못했다.
“젠장…… 져 버렸네.”
능운비가 지친 눈으로 남궁무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남궁무위의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큭, 크크크, 크핫핫핫!”
능운비가 보여 줄 검의 위력에 지레 긴장했었기에 자신 역시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모아 막았더랬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본 검의 위력은 그저 그랬다.
아니,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만약 검이 잘려 나가지 않았다면, 잘려 나간것은 능운비의 팔이었을 것이다.
한껏 기세등등해진 남궁무위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고 오만하게 걸어왔다.
“정말 대단했……었다라고 해야겠구나. 약관의 나이로 여기까지 이루었으니.”
“……그런가?”
“당연한 소리. 하나 여기까지다. 나의 검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남궁무위가 희열에 찬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해를 가리고 선 탓에 그늘을 드리운 그의 모습을 올려다보던 능운비가 이내 피식 웃었다.
“……왜 웃지?”
“그냥, 네 꼴이 우스워서.”
“뭐?”
“좀 전까지만 해도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이긴다는 확신이 든 이후엔…… 이리 다른 모습인지라.”
비웃음이 가득한 그 말에 남궁무위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그런데 들고 있는 검이 떨리는 것을 보니, 힘을 과하게 썼나 보지?”
“……?”
“아둔한 놈, 잘 가라.”
능운비가 두 손을 바닥에 축 늘어뜨린 채 남궁무위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잘 가라니?
곧 죽을 놈이 자신에게 할 인사는 아니지 않은가?
잘 있으라고 하면 또 모를까.
“미친놈, 죽을 상황이 되니 머리가 어찌 돼 버린 모양이구나. 내 고통스럽게 죽일 생각이었으나…… 나를 이만큼이나 몰아붙인 자에 대한 예의로 단칼에 목을 쳐 주마.”
남궁무위의 살벌한 눈빛과 함께 검이 내리꽂혔지만, 능운비는 더욱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
“죽어라!”
스걱!
힘찬 외침과 함께 그어진 붉은 실선.
한데 그 실선의 위치는 능운비의 목이 아닌 남궁무위의 목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내가 반드시 니놈 목을 잘라 버린다고 했지!”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향이가 능운비의 곁에 내려섰고, 검을 든 채 멈춰있던 남궁무위의 목이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푸학!
피가 솟구치는 힘을 이기지 못한 남궁무위의 몸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하아…….”
그제야 긴장이 풀려 버린 능운비가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향이 덕분에 겨우 검제를 죽였다.
비겁하다고?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싸움에서 그딴게 어디 있단 말인가?
일대일이든 이 대 일이든 이기면 그만이지.
“삼공자, 괜찮냐?”
“……아니. 아파. 속은 한참 전부터 난리고.”
옷을 찢어 자신의 어깨를 동여매는 향이의 말에 능운비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투정을 부렸다.
“향아.”
“왜?”
“고마워.”
“고맙긴…….”
능운비의 말에 향이가 어색한 듯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래도 고맙다.
이전부터 계속…….
그녀가 없었다면 검제를 죽이는 건 물론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 싸움을……끝내자. 힘들다.”
“알았다.”
능운비의 말에 향이가 바닥을 구르는 남궁무위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외쳤다.
목이 갈라져 쇳소리가 날지언정 모두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다들 보아라!”
“……?”
“남궁무위는 죽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무려 검제씩이나 되는 남궁무위의 머리였다.
누군가는 복수심에 불타 덤벼들 테지만, 대다수는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기 마련이다.
분노로 달아올라 향이를 향해 몸을 날린 몇몇 무인들은 왕천과 주승, 삭월대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그로 인해 와해되어 버린 남궁가의 진형은 더 이상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 뒤로 이어진 싸움은 무자비한 살육이나 다름없었다.
“주군! 도망치는 놈들은 어찌할까요?”
“내버려 둬.”
“예?”
“지금은 도주가 먼저다.”
“하지만…….”
“남궁무위와의 싸움 전에 제갈민이 도망쳤다. 지금쯤 안전한 곳으로 피해 전서구로 상황을 알렸을 거야.”
“……!”
“놈들이 우릴 쫓아올 거다. 어쩌면 북쪽에 봉쇄선을 이루고 있던 놈들까지도 내려올지도 모르고.”
“끄응.”
“속히 떠난다. 사망자들의 유품을 챙기고, 부상자들을 수습해서 최대한 빨리 사막에 도착해야 해. 그래야 잠시나마 추격에서 벗어나 쉴 수 있다.”
“알겠습니다.”
능운비의 명을 받은 왕천이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향이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킨 능운비가 전장의 한 곳을 감정 없는 눈동자로 바라봤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 셋.
윤안로, 신예랑, 김산.
“형님…….”
능운비는 자신의 과거나 다름없던 자들을 슬픔조차 어리지 않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불러 보았다.
그리고 이내,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들의 시신은 척월린이었던 과거와 함께 놓아두고 갈 것이다.
중원의 품에…….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 그들의 위령비를 세울 것이다.
마교의 땅이 되어 있을 이곳에.
“가자!”
능운비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홱 하니 몸을 돌렸다.
남은 것은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스산한 바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