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230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한 제갈민의 증언을 토대로 개방에서 수색한 결과, 능운비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음…….”
“윤안로, 신예랑, 김산의 시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수색조의 말로는……현장에 남아 있던 남궁가와 제갈가의 무인 백이십여 구의 시신도 회수하였다고 합니다.”
“검제는?”
“검제께선…… 돌아가셨습니다. 현재 시신을 수습해 근처 문파로 옮겼다고합니다.”
휘하의 보고에 제갈천우가 깊은 신음과 함께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이미 북쪽으로 이동한 창랑의 선단에서 능운비 일행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보고가 도착했다.
제갈청인의 무리한 선단 수색으로인해 되레 사파와의 관계만 악화되고 말았다.
“이것 참…….”
목표에 눈이 멀어 얕은 속임수에 당해 버린 것이다.
“어찌할까요?”
“어찌할까?”
“예?”
“허허.”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수하의 반문에도 제갈천우는 그저 헛웃음만 지을뿐이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검제가 죽어서가 아니었다.
남궁가와 제갈가의 무인들 다수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무인의 삶이란 게 원래 그러하지 않던가?
칼을 쥐었을 때부터 그들의 운명은 결정지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인인 이상, 허무한 죽음은 각오해야 하는법이었다.
문제는 자신이 느낀 지독한 패배감이었다.
이제껏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성공이든 실패든, 모든 것이 자신이 상정한 범주 안에서 벌어져야 했다. 자신이 짠 판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한데 단단히 틀어져 버렸다.
그 시작은 아마도 해현단.
그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일이 꼬인것이다.
놈들은 마치 품속에 파고든 빈대 같았다. 작디작은 몸집을 가졌으나,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귀찮게 했다.
하지만 고작 빈대 몇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愚)를 범할 수는 없었다.
해서 내버려 두었더니, 상처가 난 곳만 골라 쑤셔 대는 통에 내내 골머리를 썩이지 않았던가?
다행히 이제라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능운비 그 빌어먹을 놈.
안 그래도 복잡했던 상황이 그놈의 등장으로 인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해현단의 의지가 결국 또 이어진 것이다.
윤안로에게서 능운비에게로…….
하나,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었다.
윤안로는 빈대에 불과했기에 큰 위협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능운비는 다르다. 혹여 놈이 이대로 돌아가 마교의 수장이라도 되는 날에는 자신들의 조직에 크나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윤안로가 능운비에게 무엇을 어떻게 넘겼을지 모를 일 아니던가?
“이후 능운비의 행적은?”
“사막으로 이어진 것까지 확인했다고합니다.”
“사막?”
“예.”
“대처는?”
“이미 개방이 수색조를 보강하여 사막 안으로 들여보냈고, 마교와의 경계를 봉쇄하던 무인 중 일부가 남하하여 사막과 연결된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음…….”
역시 영민한놈이다.
사막은 무척이나 위험한 곳이다.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길을 알지 못하면 그 안을 헤매다 죽을수도 있다.
하나, 흔적을 지우는 데 그만한 곳은 없다.
그리고 능운비라는 놈이 이유 없이 그곳을 택했을 리는 없다.
길을 아는것이다.
또한 놈이 지금껏 해 왔듯, 도주할 자신이 있기에 사막으로 행로를 정한것이 분명하리라.
“허허, 이거 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는데…… 나는 놈을 모르고 있었구나.”
그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능운비에 대해서 아무것도 예상치못했다.
그의 지모가 예상외로 뛰어나다는 것, 그리고 그의 무공이 검제를 죽일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
또한 그가 윤안로를 구해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것까지.
한데 약관밖에 되지 않은 능운비가 과연 그만한 능력이 되었을까?
“설마…… 담운천이?”
제갈천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미 마교의 내통자를 통해 담운천이 능운비의 감찰 임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과연 정말 그랬을까?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 놈을 중원에 덩그러니 던져 놓고,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을까?
그럴 리 없다. 아니, 이번 일에 담운천이 끼어 있어야만 말이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담운천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담운천. 진짜 적은 네놈이었던 건가?”
제갈천우의 손이 팔걸이를 으스러트릴 듯 세게 움켜쥐었다.
담운천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마교가 중원을 정벌하지 못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육가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해서 능운비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는 제자 중 유일하게 마교의 세력들과 연을 맺지 않은 인물이었으니까.
“그렇군. 담운천 네놈이 벌인 짓이었어. 마교를 쇄신하기 위해서…….”
어쩌면 이 싸움은 애초부터 담운천과 자신들의 싸움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 마교 내부에서 자신들과 내통하고 있는 자들을 걸러 내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 의도를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큭큭, 과연 제천이구나. 결국은 나의 하늘마저 부수려 하는가? 하나 아직 패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제대로 반격해 주마.”
뿌드득.
제갈천우가 이를 갈며 일어났다.
“태장로님?”
“……?”
“어찌해야 할지요?”
명을 기다리는 수하의 얼굴을, 제갈천우는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찌하긴 뭘 어찌한단 말인가?
“북쪽으로 간 이들은 어찌하고 있느냐?”
“창랑의 선단이 유인책임을 깨달은 직후, 곧장 감숙의 북쪽 경계로 이동했습니다. 이틀 후면 당도해 봉쇄진과 합류할 것입니다.”
“그럼 되었구나.”
“예?”
“알아서들 잘하겠지.”
담운천이 끼어든 것이라 결론을 낸 이상,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했다.
능운비는 분명 도주에 성공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놈이 마교로 돌아간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다.
제갈천우는 의문이 가득한 수하를 남겨 두고 일어나 후원을 걸었다.
물론, 그의 모든 결론은 지독한 패배감이 만들어 낸 착각에 불과했다.
또한 자존심이었다.
이왕지사 패배한 것이라면, 그 상대가 능운비라는 애송이보단 담운천이 낫다는 자존심이 그 같은 결론을 내리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무림은 새로운 격류에 휩쓸렸다.
모든 일이 능운비의 몸에 깃든 척월린으로 인해 벌어졌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채.
그리고 그것이 초래할 결과 역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 *
길고 긴 도주가 이어졌다.
검제를 베었을 뿐, 정파의 영역을 벗어난 것도 포위망을 뚫은 것도 아니었다. 능운비 일행은 여전히 사선(死線)을 거닐고 있었다.
폐가 당장 찢어질 것처럼 숨이 가빠졌고, 근육들은 한참 전에 힘이 다해 기능을 상실했다.
그렇게 간신히 사막에 도착한 일행은 밤이 깊어지고 나서야 숨을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칠어진 숨소리가 어둠을 뚫고 곳곳에서 들려왔다.
일행 중 멀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흘린 피, 그리고 적들이 흘린 피에 젖어 혈신이나 다름없어진 지 오래였다.
“주군.”
“음…….”
왕천이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급히 도망친 터라 얼마 남지 않은 물. 그마저도 왕천이 능운비를 위해 아껴 놓은것이었다.
물주머니를 받아 든 능운비가 슬쩍 주위를 둘러보자, 삭월대 무인들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참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입술이 바짝 마르다 못해 갈라진 건 모두가 같을진대, 주군이라는 이유로 타는 듯한 갈증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던 능운비가 물주머니의 뚜껑을 열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웃으며 왕천에게 다시 내밀었다.
“주군?”
탁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의아함을 표하던 왕천이 이내 미간을 찡그렸다.
지쳤다 하나 어찌 물주머니의 무게를 가늠치 못하겠는가?
목을 축였음에도 무게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 그저 입술만 적신 것이다.
“주군.”
“물이 제법 많네. 나는 충분히 마셨다.”
그 말과 함께 능운비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버리자, 한참을 고민하던 왕천이 똑같이 입에 물주머니를 가져다댔다가 주승에게 내밀었다.
“젠장, 물이 진짜 많네.”
“……”
물주머니는 주승에게서 삭월대의 일조장 평수에게로 이어졌다.
그렇게 삭월대 무인 전원이 목을 축인, 아니 입술을 적신 뒤에도 물주머니의 무게는 거의 그대로였다.
“……물이 많네요.”
“뭐? 물?! 물이 남았어?”
마지막 삭월대원의 웃음에 분위기가 훈훈해지던 것도 잠시.
주위를 살피겠다며 나갔다 돌아온 향이가 눈을 치켜뜨고 물주머니를 빼앗아 들었다.
“하, 한 모금? 이것들이!”
화가 잔뜩 난 향이가 단숨에 물주머니를 비워 버렸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물주머니를 거꾸로 들고 남은 물방울까지 깨끗하게 핥아 먹었다.
서른 명의 입을 거치고도 남아 있던물을 단번에 해치운 향이가 눈꼬리를 한껏 치켜올렸다.
“빌어먹을 새끼들! 니들이 어떻게 나한테 이래? 우리 가족 아니었어! 어?! 이런 족(足) 같은 것들이! 나만 쏙 빼놓고 지들끼리 물을 다 처먹어!?”
“……”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향이를 모두가 혼 빠진 눈으로 쳐다봤다.
가족 같아서…… 참는 거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삼공자 니가 그럴 줄은 몰랐다. 생사고락을 함께했으면서, 어떻게 나 마실 물은 고작 한모금이냐!”
섭섭함이 가득한 목소리에 능운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향아…… 그래도 니가 제일 많이 마신 거야.”
“뭐?”
“그 주머니가 꽉 차 있었어도, 모두가 한 모금씩 마셨으면 남아 있겠냐?”
“아…… 음, 그건 그렇네.”
물주머니를 들고 그 양을 가늠해 보던 향이가 이내 능운비와 삭월대를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갈증이 해소된 듯한 얼굴이 아니었다.
“크흠! 몸은 좀 어때?”
민망해진 향이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어쩌겠는가?
받아 줄 수밖에…….
그래도 덕분에 힘든 중에도 평소처럼 웃을수 있었다.
능운비는 슬쩍 주먹을 움켜쥐어 보이며 말했다.
“그럭저럭 버틸 만해.”
하지만 말만 그리했을 뿐, 속사정은 좋지 못했다.
패왕수라결.
완성에 가까웠지만,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양날의 검이다.
그로 인해 검제를 죽일 수 있었지만, 능운비의 상태는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었다. 세맥에 퍼져 있던 마령신단의 기운이 아니었다면, 진작 주화입마에 빠져 원정지기마저 불태우고 말았을 것이다.
“주변은?”
“조용해. 밤이 찾아온 이상, 놈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거야.”
“음…….”
향이의 말처럼 밤이 찾아온 사막에서 추격을 이어 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달과 별의 위치로 방향을 가늠할 수는 있으나, 능운비 일행의 위치를 찾을 방법은 전무했으니까.
와중에 적절히 불어오는 바람이 모래 위의 흔적마저 지워 주고 있지 않은가?
“불피운 놈들은?”
“없어.”
“제길…… 아깝네.”
향이의 말에 능운비가 얼굴을 찡그렸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온도에 저들이 불을 피웠다면, 움직일 수는 없어도 대강이나마 위치는 가늠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어쩔 거야?”
“뭘?”
“사막은 곧 끝나. 그리고 정파의 봉쇄선이 나올 거야.”
“알아.”
“괜찮겠어? 이제껏 지나온 곳보다 훨씬 더 힘들 텐데?”
“……하늘이 도와주길 바라야지.”
“젠장, 역시.”
“역시?”
“정파 놈들의 천라지망을 휘젓고 다니길래 혹시라도 방법이 있나 했지.”
“그럴 리가. 그물과 성벽은 달라.”
능운비의 말에 향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마교를 봉쇄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정파의 무인들이 사막의 경계에 잔뜩 몰려 있을 게 분명했다.
길고 긴 도주의 마지막 관문은 아마 그 무엇보다 견고한 성벽같을 것이다.
“고민해 볼게. 어떻게든 뚫어야만 하니까.”
“음…….”
능운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향이가 별안간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능운비의 감각에도 무언가 잡혔다.
설마 추격자가?
“왕천!”
능운비가 반쪽짜리 비연검을 뽑아들며 외쳤고, 왕천과 주승을 비롯한 삭월대가 재빨리 방어진을 갖췄다.
“……기다려!”
“뭐?”
적들의 내습에 대비하던 그때, 향이가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했다.
“적은…… 아니다.”
“그게 무슨?”
모두가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는데 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