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0
“총애라니! 혜심정의 주인께서는 어찌 교주님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게요!”
소설옥수가 대뜸 여주린을 향해 고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여주린은 그녀를 무시하고 담운천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말을 이었다.
“교의 지부는 중원 전역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상단, 표국, 문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쌓은 부와 무력은 교의 삼 할, 혹은 그 이상에 육박할 것입니다.”
여주린의 말에 연회장에 모인 수뇌 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들에게 내린 감찰 임무란 결국 미래를 위해 세력을 다지는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계속해 보게.”
“한데 삼공자에게 중원지부의 감찰을 맡긴다는 것은 곧 중원지부를 안겨주겠다는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흠, 그게 그리되는가?”
“당연합니다. 지금껏 중원 감찰에 제자를 지목해 파견한 적이 없으니, 모두가 교주님의 후광이 삼공자에게 드리워진 것이라 여길 것입니다.”
여주린의 말에 의자에 머리를 파묻고 고심하던 담운천이 한참 만에야 입을 뗐다.
“그렇군. 해서 내가 셋째를 총애한다고 여긴 게로군?”
“그렇습니다.”
“……”
“또한 중원지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영역 내의 세력들도 삼공자가 중원 감찰의 임무를 받았다는 걸 알면 인식을 달리할 것입니다.”
“동조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다?”
“예. 그로 인해 지금껏 다른 제자들이 쌓은 세력에 균열이 생기겠지요. 삼공자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교주님의 후광만으로 모든 것을 얻게 되는것이니, 총애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음…… 일리가 있어. 내 운비의 성취에 너무 기쁜 나머지 생각이 짧았던게야.”
담운천이 너무도 쉽게 여주린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운비가 혁이를 이겼다는 것은 실로 놀랍고 장한 일일세.”
“그렇습니다. 그 부분은 저희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장한 모습을 보였으니, 응당 보상을 주어야 하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지.”
여주린의 설득이 먹힌 듯하자 소설옥수를 제외한 수뇌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한데 문제가 있어. 비무 전에 운비에게 감찰에 관한 언질을 주고 말았지뭔가? 아니 그러냐, 운비야?”
“……예? 아하하, 예, 뭐.”
“……”
담운천의 말에 능운비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망할 교주가 왜 갑자기 자신을 걸고 넘어진단 말인가?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보낸다고 했다가, 안 보낸다고 했다가 왔다 갔다 하는 것만도 짜증나 죽겠구만.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능운비에게 집중되었다.
이것들아, 그만 쳐다봐. 얼굴 뚫리겠어.
내가 정한 게 아니잖아! 이야기의 당사자긴 하지만 나도 이용당했다고!
저 인간 좀 봐 봐, 교주의 저 표정.
음흉하기 짝이 없잖아!
“음, 어찌한다? 교주이자 스승으로서 체면이 있는데 뱉은 말을 물릴 수도없고……”
“……”
연신 말을 바꾸어 대는 교주로 인해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담운천이 좋은 수가 떠올랐다는 듯 탄성을 뱉어 냈다.
“오호라! 그래, 그럼 되겠군.”
“어떤……?”
“다들 운비가 내 후광을 업고 너무 많은 것을 손쉽게 얻을까 염려하는 게지?”
“……”
아무도 답이 없었지만, 드러난 표정을 보니 모두 한마음인 듯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보내긴 하되 아무것도 지원치 않을 생각이니까.”
“예?”
“감찰 임무만 맡길 것이야. 왕천을 비롯한 호위 정도는 딸려 보내겠지만, 자네들 말대로 형평성을 고려해야지.”
“……”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탄 발언에 한순간 장내에 고요함이 감돌았다.
마교의 삼 할에 해당하는 중원지부의 전력.
실로 어마어마한 힘이다. 만약 능운비가 중원지부를 자신의 휘하로 두게된다면, 단번에 굉장한 재력과 무력을 얻을 것이다.
그를 통해 후계 구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 또한 자명한 일이었다.
다만, 교주가 내세운 전제.
보내되 지원하지 않겠다?
“과, 관여치 않으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렇네.”
“무슨 일이 생겨도 말입니까?”
“당연한 소릴.”
거듭 확인하듯 물어도 담운천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여주린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후광은 여전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일이 생겨도 관여치 않겠다고 공언한것이 중요했다.
죽일 테면 죽이란 말과 일맥상통하니까.
사실일까?
아니, 사실이 아니 라도 상관없다.
능운비는 묘목(苗木)이다. 그리고 위지혁을 이긴 것은 그가 명성을 쌓을 초석이 될 것이다.
어떻게든 쳐 내야만했다.
그리고 교주는 지금 자신들에게 위험한 거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목숨을 담보로 중원을 내어 주겠다고.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방치하면 묘목은 거목이 된다. 또다시 교주의 뜻이 이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마교를 지탱해 온 세가원, 원로원의 힘은 억압받게 될 것이다.
미리 잘라 내야 했다.
중원을 내어 주는 것에 동의한다고해도, 너무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가 중원을 얻기 전에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안됩니다!”
여주린의 고심이 깊어지던 그때, 소설옥수 선화연이 불같이 반대하며 일어 났다.
어찌나 분기탱천했는지 볼까지 푸들푸들 떨리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중원이 위험해서?
물론 오랫동안 척마(斥魔)의 기치를 세워온 중원이다.
마교가 발호하면 하루가 멀다고 싸워 대던 정사의 세력들이 약속이나 한듯 합심해 막아섰다.
자신들의 영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다만, 중원 정벌의 의사가 명확할 때나 그랬다.
마교의 지부? 누구도 그 부분을 큰 문제로 보지 않았다.
가진 전력이 마교 전체의 삼 할이나 된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곳에 뭉쳤을 때의 얘기다.
중원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전력쯤은 마음만 먹으면 각개 격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사였다.
그러니 신경 쓰일 만큼 큰 사건이 생기지 않는 이상 건드리지 않는다. 득보다 실이 많으니까.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불태우는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나아가, 자칫 지부를 건드렸다가 담운천의 분노라도 사게 되는 날에는 중원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이는 마교도 마찬가지다. 지부 한곳이 공격받았다고 무턱대고 중원에 쳐들어가진 않는다. 손해란 양측 모두에게 발생하니까.
해서 마교는 은밀히 움직이고, 정사는 힘들여 찾지 않는다.
또한 분쟁이 생긴다 해도 전쟁 이전에 물밑에서 다양한 협의가 오간다.
잘잘못을 따져 배상을 요구하고, 또 그것에 응한다.
본성 육장로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대외 협력의 업무를 맡은자니까.
그런데 중원이 교주의 제자를 해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싸우잔 생각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되레 정사가 발 벗고 나서서 막으려 할 것이다. 자신들의 땅에서 교주의 제자가 죽었다간 책임을 면치 못할 테니까.
즉, 능운비가 먼저 싸움을 걸거나 큰 사건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중원에서 그의 신변에 해를 끼칠 일은 없다.
하지만 교주가 능운비를 내보내기만하고 아무것도 관여치 않는다면?
다른 제자들을 교주로 만들어야 하는 능운비의 반대 세력들이 움직일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교주님! 절대로 안 됩니다!”
“……”
소설옥수가 소리 높여 반대하자, 지금껏 입 닫고 있던 이들이 반박하고 나섰다.
“소설옥수께선 어찌 그리 화를 내시는 것이오?”
“그러게나 말입니다. 조금 전까진 우리가 삼공자께서 날개를 펴지 못하도록 방해하니 어쩌니 하면서 타박하시더니?”
“이미 교주님의 결정이 내려지신 것을……”
입장이 대번에 뒤집혔다.
소설옥수는 안 된다고 하고, 다른 수뇌들은 된다고 한다.
“이자들이! 내가 그대들의 검은 속내를 모를 것 같은가!”
“……”
“만약 삼공자가 이대로 중원으로 나가면 쉬지도 않고 그 목숨을 노릴 터! 나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소설옥수가 눈을 살벌하게 치켜뜬 채 소리를 질렀다.
“교주님!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찌 삼공자를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시는 겁니까! 삼공자, 그대도 어서 말씀하세요. 못 하겠다! 안 하겠다! 그리 말씀하시란 말입니다!”
“……”
그녀는 어느새 능운비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위협을 왜 자신에게 한단 말인가?
그런데 듣고 보니 좀 위험할 성싶다.
눈앞에서 찬성한다며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목숨을 노릴 것이 뻔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잘됐다 싶기도 했다.
감찰? 그까짓게 무슨 문제인가?
그 핑계로 중원의 어느 곳이든 갈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왕천과 삭월대 외에는 어떠한 감시도 붙이지 않겠다고 하니 더욱 잘된 일이다.
흠, 그럼 어찌한다?
하자니 목숨줄을 내놓고 다녀야 하고, 안 하자니 마교에서 도망칠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고…….
입장이 다른 두 패 간에 설왕설래가 오고 가던 그때.
“그럼 반대는 없군.”
“교주님!”
“……”
“저는 반대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아니, 교주님께서 돕지않으실 거면 저라도 도울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저희 설산장이 삼공자를 지지하고 있음을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소설옥수의 간곡한 청에 담운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대라…… 자네에게도 권한이 있었나?”
“예?”
“자넨 가주 대리이지 가주가 아닐세. 그저 원로의 한 사람이란 말이지.”
“교주님!”
선화연이 화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지만, 담운천은 그녀를 단호하게 무시했다.
하지만 선화연이 어디 보통 사람이던가?
“교주님! 정말 이러실 겁니까? 삼공자를 기어이 사지로 보내실 생각이냔 말입니다!”
자신을 노려보는 선화연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담운천이 술잔을 털어 내며 말했다.
“이보게, 소설옥수.”
“……”
“나는 범을 키우는 것이지, 고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 아닐세.”
그 싸늘한 목소리에 선화연은 말문이 막혀 버린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애초에 그녀는 교주의 말대로 반박할 권리가 없었다. 가주 대리로서 주어진 권한은 설산장의 행보를 정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그럼 다들 동의한 것으로 알겠네. 내 곧 삭월각에 명령지를 내릴 것이니, 다들 그리 알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담운천의 말에 소설옥수를 제외한 모두가 공손하게 답한다.
어찌나 싸늘한 공손함인지. 아주 대놓고 죽여 버리겠다고 광고를 하지 그러냐?
그 모습을 지켜보는 능운비로선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저기, 스승님?”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
능운비가 부르자 담운천이 온화한 스승의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중원 감찰 임무요.”
“그게 왜?”
“저는 아직 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요?”
그랬다.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별 지랄을 다하는 통에, 능운비는 아직 한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허허, 운비야.”
“예.”
“이건 명령이란다.”
“명령요?”
“옳지. 부탁 같은 게 아니고 명령. 스승이 아니고 교주. 이해하였느냐?”
“그럼 혹시…… 거부권 같은 건?”
“거부? 핫핫핫! 이 녀석, 농이 제법 늘었구나.”
“……”
“내 교주에 오른 지 십수 해 만에 그런 당돌하기 짝이 없는 농은 처음이었다.”
능운비는 너털웃음까지 터트리며 제 어깨를 두들기는 담운천의 얼굴에 술을 뿌려 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사람 심리가 그렇다.
궁금한 건 꼭 물어보고 싶달까? 특히 답해 줄 사람이 앞에 있으면 더더욱.
“만약에, 혹시라도 제가 하기 싫다고 버티면요?”
“허허,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우리 셋째가 이 스승의 명령을 두고 그럴 리야 없겠지만…… 물으니 대답해 주마.”
파삭!
“……”
담운천이 들고 있던 잔이 산산이 부서졌다.
조각도 아니고 가루……로 화해 흩어진다.
“답이 되 었을까 모르겠구나?”
“……”
답이 되었습니다, 스승님.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신 마음에 절로 의욕이 넘치는군요.
능운비는 그저 웃었다.
이건……무조건해야 한다.
괜히 뻗댔다간 중원으로 나가 암습당해 죽기 전에 여기서 뒈지게 생겼다.
“마셔.”
“……예.”
그렇게 술자리는 무르익어 갔고, 사람들은 취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