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19
“이런 빌어먹을!”
각지에서 날아드는 전서구에 제갈민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전쟁의 양상이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렸다.
섬서 전선의 붕괴와 일월신교의 거침 없는 진격.
정무맹에 반기를 든 화산과 종남, 소림.
그리고 종리강과 막청주의 등장으로 시작된 당가의 도하까지…….
모든 계획이 손 쓸 도리도 없이 어그러져 버렸다.
그런 와증에…….
“제갈천우.”
그가 사라졌다. 중원의 상황이 풍전등화에 이르렀는데,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맡겨 둔 채 종적을 감추어 버린 것이다.
“도제와 권제, 창제까지 사라졌다고?”
“그, 그렇습니다. 봉문한 세 곳 문파에 정무맹의 뜻을 전하러 가신 뒤로, 세 분 어르신과의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종적을 감추다니, 마치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것만 같지 않은가.
이리되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한단 말인가?
전세가 기울었고 패배가 자명하니, 남은 것은 능운비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일뿐이었다.
“결국 나는…… 꼬리가 되어 버린것인가?”
정영회가 저질러 온 모든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꼬리.
“군사, 이 일을 어찌하오?”
“……”
태사의에 앉아 당황스러움을 드러내는 맹주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와 똑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저 허울뿐인 자들이다.
이옥상을 숙청하고, 정무맹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앉혀 놓은 허수아비들이 아닌가?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갈민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도를 몰아내고 정영회의 비리를 터트려 천기자와 그 일당들을 전부 끌어내리려 했는데…….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천하를 경영한다는 꿈에 부풀어 제대로 보지 못했음이다.
손에 쥘 곶감만을 생각해 발밑에 채는 돌뿌리조차 신경 쓰지 못한 어린아이.
지금 자신의 꼴이 그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능운비는 어디에 있다더냐?”
“그것이, 황하를 건너 대별산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벌써 대별산이라고?”
“예.”
대별산은 하남성 남쪽에 솟아 있다.
산을 넘으면 정주까지 곧게 뚫린 관도와 맞닿는다.
그 길에 오르는 순간, 능운비는 한걸음에 달려 정무맹에 도착할 것이다.
어쩌면 일찍부터 예견된 결과다.
모든 전력을 섬서의 전선으로 보내고, 당가를 이용하려 했을 때부터.
하물며 그 대책으로 세운 인질 확보에도 실패해 버렸으니…….
“이옥상! 이옥상은 어디에 있나?”
“그야 뇌옥에……”
제갈민의 머릿속에 작은 희망이 샘솟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가.
어차피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그를 이용해 목숨만이라도 부지해야 했다.
“이옥상을 데려와라!”
“예!”
제갈민의 말에 전령이 다급히 뛰어나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구, 군사님. 이옥상이 사라졌습니다!”
“뭐?”
“이옥상이 온데간데 없이……”
두 눈을 부릅뜬 제갈민의 손이 툭 떨구어 졌다.
* * *
콰아앙!
휘저은 손길에 산자락이 통째로 터져 나갔다.
황하를 넘어 북진하는 능운비의 걸음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위라 불러도 좋을 무위에 능운비를 가로막고자 했던 중원의 무인들은 겁에 질린 채 불뿔이 흩어져 버렸다.
“후우.”
잠시 멈춰 선 능운비가 호흡을 고르며 자신의 앞을 바라보았다.
“으으으…….”
곧게 든 검극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검을 쥔 무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문득 웃음이 났다.
산적과 수적, 그리고 마교.
무림의 세 가지 재앙이라 부르던 이들 모두가 자신의 편에 서 있으니…….
“나는 그들에게 재앙의 화신이나 다름없겠군.”
피식 웃은 능운비가 걸음을 옮기자, 겁에 질려 있던 무인들이 속절없이 길을 내주었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저 명령에 따라 자신을 가로막은 것뿐이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나, 전의를 잃어버린 이들을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애초에 정영회 하나뿐이다.
정무맹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민낯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
그것이 중원 정벌의 목적이었다.
“대별산을 지났으니, 곧 관도가 나오겠군.”
능운비는 비켜난 무인들의 사이를 지나 산을 벗어나고자 했다.
쉬이익! 퍼억!
“……!?”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는 동시에 잔인한 소음이 들려 왔다.
고개를 돌린 능운비의 눈에 어느 무인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버러지 같은 것들.”
콰아아앙!
뒤이어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땅바닥이 폭발하듯 솟구쳐오르며, 자신이 지나쳐 온 무인들이 산산이 찢겨나갔다.
“쯧쯧, 아무리 억지로 끌어모은 어중이 떠중이 라고는 하나 마도놈들에게 이리도 쉽게 길을 내어준단 말인가. 이런 놈들이 있어 중원이 그리 쉽게 무너진게지. 이러니 우리가 손놓고 방관할수가 없는 게야.”
자욱한 먼지속에서 조소를 머금은채 모습을 드러내는 노인.
“다, 당신.”
피 묻은 주먹을 닦아 내고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터는 노인은 잊으려야 잊을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일세, 능 공자. 아니, 이제는 능 교주라고 불러야 하나?”
“황보문천?”
“허, 이거야 원, 아무리 마교의 주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말본새가 참으로 달라졌구만.”
피식 웃는 그를 바라보던 능운비의 시선이 죽은 무인들에게 닿았다. 한순간에 전멸해 버린 무인들은 사지조차 보존하지 못했다.
“지금 무슨 짓을?”
“단죄다.”
“단죄?”
“당연하지 않으냐? 중원을 노리고 찾아온 네놈에게 길을 내어 주었으니, 이보다 큰 죄가 어디에 있을까?”
“뭐라고?”
그 싸늘한 목소리에 분노가 확 치미는 동시에, 두 눈이 불을 지핀 것처럼 뜨거워졌다.
전의를 잃은 자들이었다. 그들의 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전장으로 나선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흠, 그나저나…… 천우의 말대로 혼자로군.”
“……?”
“허허, 이것 참. 용기가 대단하다 해야 할지, 아니면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하긴, 제천도 그랬었지. 마치 제 놈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면서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황보문천의 모습에 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문 능운비가 주먹을 움켜 쥐었다.
“쯧쯧, 젊은것들은 이래서 안 돼. 아무리 악연이라곤 하나 보자마자 화부터 내니 말일세.”
“……”
“화를 내기보단 내가 어째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인지 이유부터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
“무슨 개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만큼 큰 원한을 품은 인물인지라 능운비의 말투는 곱지 않았다.
“천우가 너를 만나고자 한다.”
“제갈천우가?”
“그래.”
그 말에 능운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째서?
정무맹에 있어야 할 그가 왜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재미있군. 제갈천우가 나를 보고자한다라…… 한데 내가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누어야 할 이유가 있나? 죽이는 것이라면 몰라도?”
“흠, 글쎄다?”
“……”
“천우가 그러더구나. 오지 않으면 이옥상은 죽을 것이라고.”
“뭐라고?”
“그가 죽어도 좋다면 그냥 가거라. 잡지 않을 것이다.”
황보문천의 말에 능운비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전 무림맹주 이옥상.
설마 놈이 그를 인질로 잡고…….
함정이다.
과거가 반복되는 것이다. 동료들을 사로잡고 자신을 함정에 밀어 넣었던 그때와 똑같이.
이옥상이 어찌 되든 눈을 감고 지나쳐야 함을 알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똑같은 함정이지만, 그때와는 다른 상황이 아닌가?
그때와 같은 천라지망 따위는 없었고, 지금 자신을 뒤쫓고 있는 이들은 정무맹의 무인만이 아니니까.
“……어디냐?”
화를 꾹꾹 눌러 잠재운 능운비가 황보문천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야 따라오면 알 것이 아니냐?”
황보문천은 히죽 웃으며 휙 하니 몸을 날렸고, 잠시 고민하던 능운비는 이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대주님, 능 교주의 흔적이 이곳에서 끊어졌습니다.”
“음.”
먼저 간 능운비를 뒤쫓아온 당가의 정예들이 뒤늦게 도착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능 교주가 어찌 이토록 잔인한…….”
사방이 시신으로 가득한 곳에서 능운비의 흔적을 찾던 그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줄곧 능운비를 쫓아온 그들이었다.
황하를 넘은 이후 그 앞을 막은 수많은 적과 싸움이 벌어졌지만, 능운비는 최소한의 힘만을 사용하여 함부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법이 없었다.
부상자는 많았으나 목숨을 잃은 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을 막아선 자들에게도 자비를 베푼 것이다.
한데 지금 이곳의 상황은 사뭇 달랐다.
무자비한 손속, 갈가리 찢긴 시신들.
“방성.”
“예, 대주님.”
“아무래도 능 교주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다.”
“예? 이상이라니요? 대체 누가?”
“글쎄……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겠지.”
“음.”
“지금 즉시 가주님께 연락을 보내 증원을 청하라.”
“알겠습니다.”
“나머진 일대를 샅샅이 뒤진다. 반드시 능 교주의 흔적을 찾아내야만 한다.”
“예!”
당가의 무인들이 빠르게 산자락을 훑기 시작했다.
* * *
대별산 인근의 계곡.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녹림 십팔채중 하나였던 대별산 산적들이 머무는장소가 있었다.
산채가 자리 잡은 곳 대부분이 그렇듯 외부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었고, 오가는 길이 하나뿐인 산 중턱의 공터는 천혜의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녹림이 정무맹의 추격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 뒤, 사람의 온기가 사라져 버린 그곳은 흉가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저곳에서 기다린다고?”
황보문천을 따라 산채로 가는 외길에 오른 능운비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껏 선택한 장소가…… 산채라니?
“종리 어른께서 아시면 정말 통탄하시고도 남겠군. 주인 없는 집을 이리도 멋대로 차지하다니.”
이죽거리는 사이, 능운비는 산채의 공터로 들어섰다.
타닥, 타닥.
작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 주위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
도제와 창제, 막 도착한 권제.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 앉아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제갈천우까지.
“어서오시오, 능교주.”
짐짓 반갑게 인사해 오는 제갈천우의 모습에 능운비가 피식 웃었다.
“이거 황송하군요. 그 이름도 대단하신 분들이 전부 모여서 저를 기다리시니.”
“당연한 일 아니오? 중원을 이리도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인데…… 이 정도 예는 갖추어야지요.”
“예를 말씀하시니…… 제가 어찌 불러 드려야 할까요? 정영회주? 아니면 천기자?”
그 말에 제갈천우의 눈 주위가 살짝 굳는 듯하였으나, 그는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자, 이리 와 앉으시오. 내 안그래도 교주에게 대접할 귀한 차를 우리는 중이니.”
“뭐, 그럽시다. 만나고 싶은 이들이 전부 모여 있으니, 정무맹까지 그리 급히 가지 않아도 될 테고.”
능운비가 휘적휘적 걸어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그들의 반대편에 앉았다.
“가까이 앉지 않으시고.”
“원체 속이 검은 분들이시라 홀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걱정되어 그러니 양해하십시오.”
“왜요? 저희가 못 할 짓이라도 할까봐 두려우십니까?”
“설마요? 늙은 개새끼 몇 마리 모여 있다고 범이 겁을 내기야 하겠습니까?”
능운비는 제갈천우의 말을 담담히 받아치며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속셈 일까?
이리 전부 몰려나와 자신을 기다렸다면 승부수를 띄운것이 분명한데…….
아직은 두고 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