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32
“웬 놈이냐!”
항산을 포위한 무장의 외침에 궁수들이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나무 위에서 휙 하니 땅으로 떨어져 내린 능운비가 그 앞에 서자, 군병들이 창검을 세워 그를 경계했다.
“웬 놈이냐 물었다!”
무장이 재차 외쳐 물었다.
하긴, 별안간 나타났으니 경계할 만도 하다.
더욱이 황성을 떠난 이후 쉬지도 못하고 뛰어왔기에 머리카락은 온통 산발이고, 몸은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가 아니던가?
매무새를 대충 정리한 능운비가 품에서 옥패와 교지를 꺼내며 물었다.
“그대가 대장인가?”
“뭐라?”
“대장을 불러와라. 그와 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
“이런 미친놈이! 보아하니 무림인 같은데 예가 어딘 줄 알고!”
“거참, 발끈하기는……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구만. 그러는 너는 내가 들고있는 게 뭔 줄 알고 그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건데?”
“뭐라고?”
능운비의 말에 무장이 그 손에 들려있는 옥패를 힐끗 쳐다봤다.
비취옥패에 각인된 금빛…… 용?
“서, 설마 그건!?”
“오? 알아보는 모양이네? 그런데 왜 멀뚱히 서 있어? 이게 그런 물건이 아닌 걸로 아는데?”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무장이 다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중군도독부 첨사 정일채가 병부령을 뵙습니다!”
힘차게 외친 그 말에 주변에 있던 군병들이 당황한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금룡패.
그것은 군부에서 명을 전하는 발병부와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천자가 직접 내린 명이었고, 그것을 가진 전령의 목소리는 천자의 그것과 같았다.
진위 여부?
그것을 논하는 것은 다음 문제였다.
“이, 이놈들! 황상의 금룡패를 지니신 분을 보고도 어찌 그리 멀뚱히 서 있는단 말이냐! 모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려라!”
정일채의 외침에 화들짝 놀란 군병들이 일제히 창검을 거두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금룡패를 건네주시겠습니까?”
“금룡패를?”
“예를 갖추어야 마땅하나 처음 뵙는 분이기에…… 진위는 확인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정일채의 말에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패를 건넸다. 첨사씩이나 되는 관직에 있는 노장수가 금룡패를 알아보지 못할 리는 없었으니까.
“진품이 확실하군요.”
순순히 금룡패를 돌려주는 그 모습에 능운비가 미소를 지으며 교지를 내밀었다.
“황상의 교지다.”
“예.”
교지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펼친 정일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황상께서 급히 전하라 하셨다.”
정일채는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교지에 담긴 내용은 천자의 명도 없이 군을 움직인 해공공에 대한 치죄를 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와 동조한 자들에 대해서도 역모에 준하는 죄로 벌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데 그대는 어찌 진영을 벗어나 군을 이끌고 이곳에 있는가?”
“그, 그것이……”
“훈련인가?”
“예?”
그 말에 정일채가 눈을 번쩍 뜨고 능운비를 쳐다보았다.
“하긴, 군영에만 머물러서야 어찌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을까? 밖으로 나와 실질적인 전술 훈련을 통하여야 효과가 큰 법이지. 아니 그런가?”
“그, 그야……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정일채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면죄부였다.
의도야 어찌 되었건, 금룡패를 들고와 황제의 교지를 전하는 전령이 자신에게 면죄부를 던져 주고 있었다.
“하나 시기가 좋지 않네. 황상께서 해공공이 군을 움직인 것에 대한 진의를 의심하기 시작하신바, 비록 훈련이라 할지라도 오해를 살 수 있음일세.”
그 말에 정일채는 지금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음을 깨달았다.
어찌해야 하는가?
황궁 소속으로 일하는 사람 중 황제와 해공공의 관계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물론 지금껏 황제 폐하께 충언한 이가 어디 한둘이었을까마는, 결국 누구도 해공공을 넘지 못했다. 되레 역공을 받아 삼족이 형장의 이슬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과정을 거처 해공공은 자신의 입지를 완벽하게 다졌고, 내각이며 군부에 그의 입김이 통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었다.
정일채 역시도 해공공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황제의 재가도 없이 군을 움직이지 않았던가?
그것이 승진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황상이 역모를 거론했다. 금룡패에 교지까지 하달되었다면, 곧 군 전체가 움직일 것이다.
애초에 대의명분은 그에게 있으니까.
당연히 더 나아가서는 안 된다.
어찌 권력을 손에 넣고 호사 좀 떨어보자고 황상을 갈겠는가?
그것도 고작 은퇴한 내시를 믿고…….
와중에 지금 눈앞에 있는 황상의 전령이 자신에게 천금 같은 기회를 주고있지 않은가?
“그대는 그만 군영으로 돌아가 다음명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네.”
“군영으로 말씀이십니까?”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귀하의 도움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정일채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자 능운비가 미소를 머금었다.
판단이 빠른 자를 만나 다행이다. 자칫 해공공과 막역한 사이의 인사였다면 전투를 각오했어야 할 텐데.
하지만 다행은 다행이고,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소요 서원.
그곳으로 향한 향이와 그 일행들이 걱정되었다.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출발한 둘이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달렸다고 해도 황성까지 다녀온 길이니, 시간이 꽤 지체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제 막 포위망이 산을 에워싸 오르고 있다면 싸움이 벌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터.
속히 구하러 가야 했다.
그러자면 항산을 포위한 군병들은 일단 정일채라는 이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충분히 잘 해낼 만해 보이니.
“흠, 도움은 됐고…… 나 대신 황상의 명을 항산에 ‘훈련’하러 나온 모든 장수들에게 전해 줄 수 있겠는가?”
“예?”
“동서남북으로 전부 돌아다니자니 다리가 아파서.”
“아!”
나무 꼭대기를 밟고 날아오는 것을 이미 보았다. 그런 자가 다리가 아플리 만무하지만,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생긴 정일채로서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군영의 전령들을 모두 풀어서 폐하의 명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하면 곧바로 시행해 주길바라네.”
“전령께선?”
“아, 이곳에 소요 서원이라는 곳이 있다지?”
“예?”
“황상께서 꼭 한 번 들렀다 오라고 하셔서 말이네.”
그 말에 정일채는 안도하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요 서원은 자신들의 목적지, 해공공이 있는곳이었다.
황제가 나무 꼭대기를 밟고 달릴 정도로 뛰어난 무위를 가진 자에게 그곳에 다녀오라 명을 내렸다면?
순간 등줄기가 섬?했다.
황제는 이미 아는 것이다.
해공공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설마하니 황궁 최강의 고수라 불리는 이를 상대로 고작 한 명만 보냈겠는가? 필시 황제가 몰래 숨겨 둔 모든 힘을 동원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론을 내린 정일채가 다시 한번 되물었다.
“속하들이 해야 할 일은 없겠습니까? 명하시면 산 아래에 숙영지를 편성토록 하겠습니다.”
대번에 스스로를 낮추는 말에 능운비가 피식 웃었다.
“아니, 지엄한 뜻이 담긴 교지를 받고 그리해서야 되겠는가? 그대들은 속히 철수토록 하게. 대신, 교지의 뜻을 전하였음에도 반항하는 자가 있다면…… 역모죄로 간주해 토벌토록 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능운비가 내민 금롱패를 공손히 받아 든 정일채가 힘차게 외쳤다.
“전군은 듣거라! 지금 즉시 항산에서 퇴각해 본영으로 돌아간다!”
“예!”
“천호장들은 지금 즉시 전령을 보내 나의 뜻을 항산에 훈련을 나와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라!”
“예! 장군!”
천호장들이 바삐 움직이고, 군병들은 철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면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부디 무운을 빕니다.”
“장군이야말로.”
정일채와 일별한 능운비가 산 아래로 썰물처럼 내려가는 군병들을 바라보았다.
“자, 이걸로 관부의 개입은 잘라 놓았고…… 남은 건 해공공 그 내시 놈인가?”
능운비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소요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산 깊숙한 곳을 쳐다보았다.
* * *
쾅! 콰드드득!
세 곳에서 벌어진 싸움.
주승과 운황대는 적은 수였지만, 학사로 분한 적들에 맞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싸웠다.
까드득, 쾅!
제갈천우의 도주를 가로막은 종리강은 비록 내력이 부족하였음에도 차츰 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제갈천우의 희끗희끗한 머리는 산발이 되어 휘날렸고, 입고 있던 옷은 몽둥이에 맞아 바닥을 뒹굴며 흙투성이로 변한 지 오래였다.
“내가……이길수 있어.”
패색이 짙은 싸움이니 진작 도망쳐 버렸어야 할 제갈천우가 좀처럼 종리강을 놓지 못한다. 평생을 학사로 살아야 했던 그가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욕심이었고, 고집이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승산을 점치고 있었기에 마음이 놓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라진 능운비가 마음에 걸리기는했지만, 항산을 포위해 오고 있을 군병들의 존재와…….
뻐어억!
“크으윽!”
해공공의 주먹에 막청주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까드득! 쾅!
“큭!”
이어진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움직인 향이마저 그의 발길질에 차여 바닥에 처박혔다.
“큭큭큭, 노인과 계집년이라. 아주 재미있었다. 모처럼 즐길 거리는 되었어.”
몸 이곳저곳이 상처로 가득한 해공공이 음산한 눈빛을 발했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균형이 깨져 버린지 꽤 지났다.
만약 막청주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향이의 비수가 약간만 더 빨랐다면 좋았으련만…….
막청주는 해공공의 주먹에 더는 버티지 못했고, 단시간에 싸움을 끝내지 못한 향이의 비수는 점점 더 느려지고 있었다.
살수의 검이라는 것이 그렇다. 육체의 모든 힘을 단번에 끌어내어 상대를 죽이는 무공인 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
장기전이 최대의 단점인 것이다.
“끄으…….”
“하악, 하악, 괜찮아요?”
“너는 어떠냐?”
“폐가 찢어질 것 같아요. 창랑 어르신은?”
“보면 모르겠냐?”
“하긴……”
온몸에 성한 곳이 없다. 아까부터 한쪽 팔이 축 처진 것이, 부러진 게 틀림없었다.
“그러게 괜히 화 돋우지 말라니까.”
“조금만 버텨요. 반드시 올 거니까.”
“믿지, 나도 믿지.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이번엔 제가 먼저 갈게요.”
“네가?”
“어차피 틈을 노리는 전략은 이미 통하지 않아요.”
“음…….”
양손에 든 비수를 힘껏 움켜쥐는 향이를 보며, 막청주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방법은 없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천휴 그놈이라도 데려올걸.”
푸념과 함께 막청주도 남은 힘을 짜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큭큭, 그리 당하고도 계속 싸워 보겠다는 말이지? 지금까진 봐준 줄도 모르고.”
둘의 모습에 해공공이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봐줘? 누가? 이런 썅! 성별 구분도 안되는 노친네가!”
“그래! 향이 네 말이 옳다. 봐준 건 우리지! 오줌은 서서 누냐? 어?!”
막청주도 더는 참지 않았다.
이리된 마당에 해공공이 더 화를 내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차라리 놈이 흥분해서 실수라도 해주면 감사할 따름이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오냐, 그 입부터 찢어 주마!”
생각대로 열이 잔뜩 받은 해공공이 쏘아진 포탄처럼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쐐애애액!
무언가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해공공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건 또 뭐야?”
쩌어어엉!
주먹을 휘둘러 날아든 물체를 후려친 해공공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검?
심지어 그 안에 담긴 기운에 발이 밀릴 정도다.
대체 어떤 놈이?
얼굴을 찡그린 채 돌아보던 순간, 향이가 해공공의 주먹에 튕겨 허공에 떠오른 검을 알아보았다.
“용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