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333
용과 참새.
그 어색하기 그지없는 조합이 멋들어진 조화를 이루며 검신에 새겨져 있기에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
용작이었다. 대장장이의 가문 신혈가에서 자신의 아들이 교주에 오르기를 바라며 필생의 염원을 담아 만들어낸 검.
그리고 이제는 일월신교의 교주 능운비의 상징이 된 그것이 해공공의 공격을 막아 내고는 허공에 떠을라 있었다.
동시에. 멀리서부터 짜릿한 압박감이 다가왔다.
섬짓함을 몰고 다가온 기운은 소요서원의 정문과 담벼락을 일시에 터트려 버렸다.
쿠우우우! 콰아아앙!
장내는 일순 얼어붙듯 정지했고, 모두가 훤하게 뚫려 버린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부서진 담벼락의 잔해가 사방에 깔리고, 그 위로 자욱하게 피어난 먼지가 일대를 에워쌌다.
그리고 막대한 기운이 바람처럼 몰려들었다.
휘이이이.
먼지를 밀어 내며 다가서는 것은 마기였다.
짙은 마기가 해를 가린 구름처럼 검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천천히 그 영역을 뒤덮었다.
자박.
걷히는 먼지 속에서 들려온 걸음 소리에 멈춰 있던 이들이 움찔거리며 물러 났다.
아는 것이다.
무를 익혀 온 자들이라면 누구나 있는 기감, 아니 무에 발을 들이지 않았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 그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짐승이 다가오고 있다고.
날카롭게 세운 손톱과 이빨로 모든것을 물어뜯어 버릴 강한 짐승이.
그리고 이내 먼지 속에서 짐승이 새파란 눈동자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순간, 향이의 얼굴에 격정이 떠올랐다.
“교주!”
그였다.
일월신교 십오 대 교주이자 중원을 정벌한 능운비.
“운황대주 주승이 교주님을 배알하나이다!”
“교주님을 배알합니다!”
주승이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고, 운황대의 무인들이 일제히 따라 외치며 무릎을 꿇었다.
당장 적들의 칼에 목이 베여도 이상하지 않을 치열한 전투 중이었음에도 그들은 능운비를 향해 예를 표했다.
그들에겐 죽음보다 그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또한, 적들은 감히 그들이 보인 틈새를 공격하지 못했다.
무방비한 상태였으나, 전혀 무방비하지 않아 보였다. 무릎을 꿇고 쭉 뻗어 낸 저 목을 내리치면 그만인데도 차마 칼을 휘두르지 못하고 머뭇거릴 뿐이었다.
“허허, 겨우 왔구만.”
“하여간 버르장머 리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는 몹쓸 놈이야. 노인네들을 이리도 고생시키다니, 쯧쯧.”
향이와 같이 해공공과 싸우던 막청주도, 제갈천우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부여잡던 종리강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말은 푸념이었지만, 두 사람 다 생애 그 어떤 순간보다 편안한 미소로 능운비를 맞이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 해공공과 제갈천우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놈이 뭐길래…….
고작 담벼락 하나 터트려 놓은 것이 전부였다.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섬?한 기운을 머금었으나, 대항치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데 어째서?
어째서 싸우다 말고 저리 기뻐하는가?
또한 어째서 그런 머저리 같은 자들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있는가?
저놈이 대체 뭐기에!
“이런 병신 같은 놈들! 뭣들 하고 있는 게야!”
분노한 해공공의 고성이 기파가 되어 확 하고 몰아치자, 퍼뜩 정신을 차린 무인들이 눈동자에 살기를 품었다.
이내 그들이 눈앞의 목에 집중해 칼을 높이 들었다.
“하지 마라.”
“……!”
나른함마저 느껴지는 능운비의 한마디에 높이 들었던 칼들이 움찔하며 멈췄다.
“내가 필요한 건 저 두 놈뿐이야. 괜히 귀한목숨 버릴 필요 없잖아?”
“으으으…….”
서원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다가오는 능운비의 말에 무인들이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각인되고, 칼을 쥔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이익!”
주승의 곁에 있던 무인이 기어코 능운비가 만든 압박감을 끊어 내고 칼을 내리쳤다.
슈아아악!
하지만 주승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응하지도 않았다.
뭐 하러 움직인단 말인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일어나라 명하셨겠지만, 그러지 않으셨으니 교주께서 알아서 하신다는 것인데.
자신이 죽든, 적이 죽든.
퍼어억!
그리고 그의 목은 잘리지 않았다.
다만 능운비가 눈을 찡그리는 순간, 주승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무인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바로 옆에서 쏟아진 피를 흠뻑 맞아버린 주승은 당황하지도 않고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퍽! 퍼퍽퍽!
이어 칼을 내리치려던 무인들의 머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가며 피의 비가내렸다.
그리고, 더는 칼을 휘두르려는 자가 없었다.
“후우……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언짢은 듯 나무라는 그 목소리에 적들은 떨군 고개와 함께 칼을 내렸다.
“이 병신 같은 것들이……”
등장, 몇 발자국의 다가섬, 그리고 몇몇의 죽음.
그것만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압도해버린 능운비의 모습에 해공공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향아.”
“예?”
“물러나. 고생했다.”
“……예.”
서릿발 같은 기운을 머금고 살기를 풀풀 날려 대며 해공공과 싸우던 향이가 비수를 집어넣으며 미련 없이 물러났다.
“창랑 어른.”
“오냐, 이놈아.”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시간을 벌었습니다.”
“고생은 무슨? 해야할 일은 잘 처리 되었느냐?”
“뭐, 대충요.”
“대충 같은 소리 하네. 네가 여기 있으면 완벽히 처리되었단 소리겠지.”
막청주의 말에 능운비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뭐, 그럼 됐다. 네놈 하는 꼴을 보니 굳이 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난 좀 쉬어야겠다. 저 미친 돼지 새끼한테 하도 맞아서 뼈마디가 욱신거려.”
물러나는 막청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능운비가 종리강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르신께선…… 조금만 더 버텨 주십시오.”
“엉? 나는 왜?”
“그쪽은 언제 도망칠지 모르는 인간이라서요.”
“이런 썅!”
“보니까 그리 힘든 것 같지도 않으시구요.”
“누가 그래! 다친 건 나라고! 여기서 내가 제일 힘들단 말이다! 그게 누구때문인지 몰라서 그래?”
“제가 원한 건 아니었잖습니까? 어르신 마음대로 결정하신 거지.”
“뭐야, 인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
능운비의 부탁에 종리강이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망할 놈. 애초에 따라오는게 아니었어. 아프다고 드러누웠어야 했어.”
“그러니까요. 애당초 제가 부탁드린건 창랑 어르신인데 왜 굳이 따라오셔서는……”
“그건 저놈 때문에!”
능운비의 말에 종리강이 홱 하니 고개를 돌려 눈을 흘기자 막청주가 모른척 시선을 회피했다.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조금 전까지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그리고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천우는 속이 답답해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뭐란 말인가?
어째서 저리 여유를 부리고 있단 말인가?
해공공의 부탁을 받은 중군부의 군병들이 항산을 개미 떼처럼 포위하고 있었을 것이다.
뒤늦게 나타난 저놈이 그걸 보지 못했을 리가…… 서, 설마?
능운비를 바라보던 제갈천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병들을 뚫고 왔다고 하기엔 너무나 멀쩡한 모습이다.
그 말인즉 싸우지 않았다? 어째서?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능운비의 저 당당한 자신감이, 그리고 대체자까지 세우고 어딘가에 다녀온 그 시간의 공백이 미치도록 불안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네놈! 설마!?”
“역시 눈치 하나는 알아줘야겠네. 맞아, 당신이 생각하는 그거.”
“그, 그런……”
자신의 추측을 확신시켜 주는 능운비의 말에 제갈천우의 동공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가설은 하나뿐이다. 놈이 선택할 길도 하나뿐이다.
“황제를……”
“만났지. 대화도 나누었고.”
“……”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나타났으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알 테지?”
“비, 빌어먹을…….”
제갈천우는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떠났어야 했다.
소요 서원을 찾아온 이들 틈에 능운비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놈이 무언가 일을 벌이리라는 것을 깨달았을때.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에 찾아온 무에 대한 희열에 발목이 잡혀서…….
“큭, 놀라는 꼬라지들 하곤.”
“……”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뭐?”
제갈천우와 능운비의 대화에 불쑥 끼어든 해공공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래, 네놈이 황제를 만났다고 치자꾸나. 그래서? 뭐가 달라진단 것이냐?”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왜? 그가 나를 버리겠다고 하더냐? 무단으로 군병을 동원한 나를 역적으로 몰 것이라고 네게 약속이라도 하든?”
해공공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고, 능운비는 가만히 듣기만했다.
“아이야.”
“……”
“내가 지금 몇 살인지 아느냐? 올해로 팔십이다.”
해공공이 허리를 쭉 펴고 뒷짐을 진채 능운비를 향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팔십. 참 오래도 살았지. 내 나이 열살에 궁에 들어가 칠십 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너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아느냐?”
“……”
“치정과 정쟁, 수많은 음모가 끝도없이 벌어지는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역모? 그까짓게 무어더냐? 너같은 자들이 어디 내 삶에 한둘이었을까? 선대 황제 때부터 지금의 황제까지, 간악하다는 말을 앞세워 나를 밀어내려 했던 놈들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해공공의 비웃음이 짙어졌다.
“그리고, 그놈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것 같으냐?”
“……”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나다. 고작 무림 하나 정벌했다고 거들먹거리는 너 같은 꼬맹이가 넘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해가 되었느냐?”
가르치듯 늘어놓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능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네. 참 대단해.”
“……”
“그런데 말이야, 결국 제갈천우와 같은 족속이라는 거 아냐? 제 사리사욕과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서 이런저런 비리를 저질렀겠지.”
“뭐라?”
“그 비리로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두르며 지금껏 그 자리를 유지했겠지.”
“어린놈이……”
“그래서 뭐?”
“뭐?”
“팔십 먹도록 궁에서 살아남아서 뭐 어쨌단 건데?”
“뭣이?”
“그냥 그렇게 살지 그랬어.”
“……”
“늙어 죽을 때까지 네놈이 만든 울타리 속에서 살았으면 좋았잖아. 그랬으면 일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 아냐?”
“이런 빌어먹을 놈이!”
짜아악!
“……!”
일순 능운비가 가볍게 발을 굴렀고, 해공공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벌겋게 달아오른 볼에 손자국이 선명했다.
비틀거리며 물러난 해공공이 눈을 크게 뜨고 능운비를 쳐다봤다.
대, 대체 언제?
움직이는 것조차 보지 못했는데…….
“삼무보.”
“삼무?”
“무음, 소리가 없고, 무형, 형체를 볼수 없으며, 무영,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보법.”
“……”
“그만큼 빠르다는 소리다. 내 의형이셨던 분이 너희 같은 개잡놈들을 상대하라 가르친 무공이지.”
“그게 무슨……”
쉬이익! 빠아악!
그 순간 능운비의 손이 휘둘러졌고, 동시에 날아온 빛살이 해공공의 얼굴을 강타했다.
“큭!”
해공공이 고통에 찡그려진 눈으로 능운비을 찾으려는 순간, 한 가닥 빛살이 수십으로 나누어지며 어지러이 펼쳐졌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바바바박!
“크억!”
실린 힘은 강하지 않지만, 도무지 어느 곳을 막아야 할지 쉬이 판단되지 않는 공격이었다.
그리고이내.
쩌어어억!
“커억!”
복부를 파고든 묵직한 충격에 해공공의 몸이 훌쩍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삼전(三戰)…… 빛살처럼 빠르고, 꽃비처럼 어지러우며, 무엇이든 부순다.”
쓰러진 해공공을 바라보는 능운비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오지 말았어야지. 개입하지 말았어야지. 적어도 우리 세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