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51
“어헉!”
좁은공간, 호흡마저 멈춘채 치고 들어오는 능운비의 새파란안광이 줄을 그은 것처럼 길게 이어졌다.
일시적으로 기운을 뿜어 속도를 올리는 삼무보.
“젠장!”
얼굴로 날아오는 주먹 에 주승이 다급히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쉿!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몸을 꺾은 쪽 옆구리로 곧바로 솟구쳐 오는 무릎에 주승은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급히 숨을 참으며 들어 올린 양팔에 가해진 충격.
쩌어억!
“큽!”
너무 가까웠기에 막았음에도 충격이 팔을 지나 옆구리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중심이 흔들린 순간을 놓치지 않은 능운비가 주승을 악착같이 몰아붙였다.
“……이런 젠장! 정말 이러실 겁니까!”
방어에 급급해 능운비의 공격에 휘들리고 있는 주승의 모습에 왕천이 더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
능운비가 한순간 자세를 낮추며 주승을 휘감듯 돌아 뒤편으로 이동했다.
“억!”
졸지에 주승을 공격하게 돼 버린 왕천의 손길이 멈칫했다.
주승 또한 마찬가지다.
부지불식간에 공격당한 무인의 본능. 순간적으로 공격자를 왕천으로 인식해 버린 주승은 능운비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쩌어억!
“커억!”
공격을 허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능운비의 주먹엔 진심이 담겨 있었고, 주승은 방비하지 못했다.
와중에 뒤에서 맞은 터라 층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까드득.
“……이르시면!”
“……!”
주승이 이를 악물어 고통을 견딤과 동시에 몸을 비틀어 능운비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후아악!
주먹에 실린 경기가 회오리처럼 허공을 가른다.
자신의 뒤편에 붙은 능운비를 떼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한 가지.
능운비는 피할 생각 따윈 하지 않고 고개를 빳밧하게 세운 채 웃고 있었다.
“어어?!”
주승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다래졌다.
주먹이 볼에 닿을 듯하다.
졸지에 주군의 얼굴을 후려치게 생긴 주승이 주먹의 방향을 강제로 비틀었다.
물체든 사람의 몸이든, 움직이기 시작한 물체에 제동을 걸려면 더 많은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 위치가 극점이라면 더더욱.
치이익.
너무 가까웠기에 주먹이 사선으로 비켜 갔음에도 그 안에 실린 풍압이 능운비의 볼 어림을 할퀴고 지나갔다.
역시…… 널 믿었다, 주승! 아니 충승아!
쩌어억!
능운비의 주먹이 주승의 복부에 깊숙하게 파묻혔다.
“끄어억!”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도 척추까지 닿았을 충격을 버틸 수는 없다. 숙어진 목덜미에 능운비가 최후의 일격을 박아 넣었다.
털썩.
허망하게 정신을 잃고 쓰러진 주승을 내려다보던 능운비가 왕천을 향해 사악하게 웃었다.
“이걸로…… 일 대 일.”
“……”
일…… 뭐?
왕천이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였다.
“그게 무슨……?”
“뭐긴 뭐야? 이제부터 네 차례란 뜻이지.”
“……!”
능운비가 굳은 몸을 풀듯 이리저리 움직이자 왕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정당한 승부가 아니 었습니다.”
“뭐가?”
“비열하게 주승의 충성심을 이용했잖습니까!”
“비열하다니? 통상 이런 걸 전략이라고들 하지.”
“뭐요? 다짜고짜 공격하신 분이……”
“다짜고짜? 흠, 호위장을 자처하는 니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이거 실망인데?”
“……”
“살수는 밥 먹는 중에도 찾아와.”
“……”
“잠든 중에도 찾아오고. 니들에게 상황을 판단하고 준비할 시간 따윈 주지 않는다고.”
“그, 그건……”
왕천이 답하지 못한 채 얼굴을 찡그렸다.
“……궤변입니다.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상황? 내가 죽고 나서도 그런 말할래?”
“……”
“자, 시작하자고!”
주먹을 듬켜쥐고 자세를 취하는 능운비의 모습에 왕천의 코끝이 씰룩거렸다.
말했듯 궤변이다. 능운비의 말은 얼핏 그럴듯하지만, 기실 주승의 충성심을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건 실력의 입증도 뭣도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 승부인 것은 매한가지.
이용할 것은 모조리 이용해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단 말이지!
“……정말 이러실 겁니까?”
“……?”
“그럼 저도 더는 참지 않겠습니다. 호위로서 위험을 자초하려는 주군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 어떻게든 막아드리죠.”
일순 왕천의 표정이 변했다.
눈동자 위로 스치는 차디찬 한기와 함께, 입에서 허연 서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새끼…… 이제야 진심이네.
설산장의 무공이다. 그가 진짜 실력을 꺼낸 것이다.
최선을 다해 막으려 하는 왕천의 모습에 능운비가 히죽 웃으며 자세를 취했다.
좁은 방. 부수지 않아야 하기에 힘 조절은 필수다.
하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모자람 또한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것 역시 실력이 아니던가?
“오시죠!”
“……”
왕천의 호령과 함께 능운비가 바닥을 힘껏 지르밟았다.
상대를 공격하고자 하는 무인의 첫발은 당겨진 화살에 추진력을 더하기 위한 활시위와 다를 바가 없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힘이 실렸는가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여 바닥에 남은 족적이 얼마나 깊은지에 따라 상대의 내력을 유추할 수 있다.
하나 능운비가 사용하는 삼무보는 그 궤를 달리한다.
행한후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무흔(無痕)의 보법.
그 첫발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렇기에 바닥에 어떤 족흔도 남기지 않으나, 그 어떤 보법보다 빠르다.
팍!
“……!”
일순간 왕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가벼운 발걸음이었는데?
내디딘 동시에 호롱불이 입김에 닿은 듯 일렁거렸고, 능운비의 그림자가 순간적으로 육신과 분리된 것처럼 보였다.
본 적이 있는 보법이다.
설산장 암굴에서 몰래 수련하던 그것.
한 번 걷고 한 번 휘두름으로써 열두개의 홰를 잘라 냈던 그 보법이 왕천의 눈앞에서 다시 한번 펼쳐지고 있었다.
“……어헉!”
직접 대면하니 그때보다 훨씬 더 빠르다.
눈 뜨고 코 베인 심정이랄까?
그야말로 찰나였다. 똑똑히 보고 있었음에도 눈을 깜박인 것처럼 능운비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이어 송곳이 찔러 오는 것 같은 예리한느낌.
왼쪽…… 벽?
하지만 왕천이 고개를 돌리는 속도보다 벽을 밟고 뛰어올라 발을 차 낸 능운비의 공격이 더 빨랐다.
빠가각!
가까스로 막은 팔 위로 전해지는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막는 것조차 버거운 공격에 떠밀려 벽에 부딪힌 왕천의 등짝에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만약 검이었다면 육신이 분리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런 썅!”
저딴 보법은 대체 어디서 익혀서는!
하지만 사람을 너무 띄엄띄엄 보셨다.
눈으로 좇을 수 없다면……!
단번에 마음을 고쳐먹은 왕천의 응대가 한순간 달라졌다.
눈이 아닌 감각으로 좇는다.
팡!
어지럽게 교차하던 손이 거칠게 부딪혔다.
“……!”
팔목까지 시큰해지는 충격에 놀란 능운비가 황급히 뒤로 물러 났다.
슈아악!
곧장 뒤쫓은 왕천의 주먹이 예리하게 파고들어 온다.
……삼무보를 따라잡았어?
다급히 고개를 젖혀 주먹을 피한 능운비가 상체를 뒤로 넘기며 발을 차올렸다.
빡!
둔탁한 충격이 발에 고스란히 남는다.
“제법인데? 그걸 막을 줄은 몰랐다.”
“흥! 고작 그 정도로 놀라시긴 이릅니다.”
“……”
망할 놈.
맨날 말로만 충성이지, 발끝에 남은 충격으로 보아 적중했으면 턱이 날아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과연 호위장 중 최고라 자부할 만하다.
“후우, 이젠 안봐드립니다.”
왕천이 허연 입김을 뱉으며 눈을 희번덕 거렸다.
젠장, 과연 설산장 대공자인가?
본 실력을 드러낸 왕천은 주승보단 확실히 강했다.
상황 판단도 빠르고, 충성 따윈 개나줘서 이용할 수도 없고.
“좋아, 그럼 나도…… 전력을 다해주지.”
“전 그 두 뱁니다!”
유치한 대화였지만, 팽팽하게 맞선 둘의 기세가 살벌하게 끓어올라 방 안을 잘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
역시 쉬운 놈이 아니다. 대공자 위지혁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에 걸맞게 상대해 줘야지. 말했듯 전력으로!
“흡!”
“……!”
능운비가 마기를 모조리 끌어내 삼무보에 때려 박았다.
팡!
가벼운 발걸음에 터져 나가는 가볍지 않은 소음.
엄청난 내력 소모가 뒤따르겠지만, 일단은 승기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이, 이런 염병할!”
삼무보를 이용한 능운비의 움직임은 빠르기도 빨랐지만, 마치 공이 튀는 것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지 못한 왕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눈은커녕 기감마저 속이는 속도라니?
간간이 위치를 잡아 뻗어 낸 손발이 어느새 사라져 버린 허상만을 뒤쫓기 시작하자 왕천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사방(四方)을 내어줘선 곤란했다. 최대한 사각을 줄여야 한다.
퉁!
결정이 내려짐과 동시에 왕천의 발이 바닥을 밀었고, 등이 벽과 가까워졌다.
적절한 판단이다.
하지만 능운비로선 왕천이 벽을 등지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백중지세나 다름없는 실력인데, 자신의 움직임마저 제한당해서는 곤란했다.
그러니 벽을 등지기 전에!
파아앙!
내력을 일제히 터트려 버린 능운비의 공세가 더욱 빨라졌다.
쏟아지는 공격에 방어하기 급급해져버린 왕천이 다급히 한기를 모조리 끌어 올렸다.
일단 막는 게 급선무니, 주군의 몸이 조금 상해도 어쩔 수 없었다.
“하압!”
왕천이 아는 한 가장 강력한 방어 초식. 한기를 머금은 내력을 꽃잎처럼 활짝 펼쳐 모든 공격을 방어하는 백련화(白蓮華).
쩌저적!
힘을 끌어냄과 동시에 왕천의 몸에서 룸어진 한기가 방 안을 싸늘하게 얼리기 시작했다.
객방이 조금 상할 것이다. 주군이 다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죄는 나중에 청할 것이다. 백련화에 자신의 내력을 전부 쏟아 낸 이상 주군이 아무리 빨라도 공격을 해 오기는 불가능…… 어?
그 순간, 왕천의 동공에 희한한 모습이 투영되었다.
빠드드득.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백련화를 깨부수며 하얀 서리를 머금고 다가오는 손바닥 하나.
“끝이다, 이 자식아.”
“……”
이어진 능운비의 사악한 웃음 위로,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가 겹쳐보이는 듯했다.
아…… 씨부랄.
쩌어어억!
왕천이 마음속으로 욕설을 뱉은순간, 활짝 펼쳐진 손바닥이 그의 명치 아래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커억!”
몸 안의 장기가 모조리 떠밀려 등짝에 붙는 듯한 충격에, 왕천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내력의 흐름이 끊어지고, 방 안을 가득 채우던 한기가 사라진다.
털썩.
힘이 빠진 듯 무릎을 꿇은 왕천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지 입을 벙긋거리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자신의 전력이 담긴 백련화를…….
그리 묻는 듯한 눈빛이다.
무지막지한 방벽을 뚫어 낸 터라 온몸에 상처가 그득해진 능운비가 가쁜숨을 몰아쉬며 왕천을 내려다보았다.
“하악, 하악…… 패배자.”
“……”
본인도 숨을 헐떡거리면서 굳이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파 놓는다.
하지만 답할 말이 없었다. 충성심을 이용당한 주승은 변명거리라도 있지, 자신은 실력으로 져 버렸으니까.
“……염벼……엉.”
무릎을 꿇고 있던 왕천이 그 한마디를 끝으로 털썩 쓰러졌다.
잠시 호흡을 정리한 능운비가 두 사람을 이불 위에 눕혀 두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주…… 대표두님? 이게 대체……”
취객을 가장해 널브러져 있던 삭월대 무인 중 하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슥 둘러보니 다들 비슷한 표정이다.
방 안에서 벌어진 소란에 주위를 잔뜩 경계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들은 사람 없지?”
“……예.”
“그럼 니들도 더 자라. 별일 아니니까.”
“……”
“내 말 못 들었냐?”
파파팍!
능운비가 짜증스럽 게 눈썹을 치켜올리자 당황해하던 삭월대 무인들이 일제히 그 자리에 널브러져 자는 척하기 시작했다.
말은 참잘 듣는다.
“후우……”
숨을 한 번 길게 내쉰 능운비가 잘게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왕천 놈, 설마하니 전력을 다할 줄이야.
하지만 그를 오래 보아 온 터다. 항상 둘이 붙어 있었던지라 가끔 그가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파훼할 방법도 고민했었다.
다만, 척월린의 것으로는 부족했다.
삼무의 보법은 쾌속함을 자랑하긴 했으나,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운 왕천의 한기를 뚫을 순 없었다.
또한, 그가 익힌 삼전검은 오직 죽이는 것에만 목적을 둔 검법이기에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물러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능운비가 선택한 것은 월식(月式)이었다.
바로 교주의 제자들이 익히는 마공. 마공이면 마공답게 이름이나 무시무시할 일이지, 월식이 뭐란 말인가?
쓸데없이 이름이 예뻐서는…….
어쨌든 가전 무공을 익힌 다른 제자들과 달리, 능운비는 그 한 가지 마공만을 익히고 있었다.
금단의 마공도 익히긴 했지만, 뒈질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고서야……. 무엇보다 이제는 기억도 잘 안 났다.
하여튼 왕천의 백련화를 뚫은 기술의 정체는 침삭(侵削), 상대의 기운을 뚫고 파고드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승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기실, 순전히 요행에 가까웠다.
자신은 왕천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나, 왕천은 능운비만 알 뿐 척월린은 몰랐다. 또한 마령신단의 기운이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한기를 버틸수 있었다.
“마공이라……”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정파를 수호하고자 어둠 속을 걸었던 자신이…….
그분이 봤다면 당장에 괴성을 질러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뭔 상관인가?
마공이면 어떻고, 선도의 비기면 어떠하단 말인가?
이젠 더 이상 척월린이 아닌데.
그래도 수련은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능운비가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쏟아질 듯 창창한 별 중 가장 환하게 반짝이는 별 하나.
어떤 모습으로 찾아갈진 모르겠지만 잠시 머물다 가겠습니다.
외면하기엔…… 그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젠장, 망할 왕천 녀석 때문에 내력을 전부 써 버렸네.”
운기를 하자면 잠자긴 틀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