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83
“후우……”
힘차게 뛰어온 도사가 양측이 대치한 중간에 멈춰 서서 호흡을 골랐다.
염병할, 어째 많고 많은 기억 중에서 화산이 떠오르더라니…….
하필이면 도사고, 하필이면 화산이란 말인가?
나타난 도사의 헐렁한 소맷자락에 수놓인 선명한 매화 문양에 능운비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도사가 마교를 보았으니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분명 당장 검을 뽑을텐데.
그럼 어떻게 하지? 싸워야 하나?
아니면 좋게 좋게 상황을 설명하고 말로 풀어야 하나?
연소는 되었고, 근처에서 야숙을 할테니 서로 상관말자고 그리 말해야…….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으응?”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상상을 하고있던 능운비가 반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 근자에 무림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는 마교의 삼공자를 이리 보게되다니. 핫핫핫, 오늘 운이 좋구만그래?”
“……예?”
자신을 단번에 알아본 듯한 그 말에, 능운비가 미간을 찌푸렸다.
천주문 놈들…….
대체 용모파기를 몇 장이나 뿌려 댄거야? 얼마나 익숙하면 이리 단번에 알아보냐고!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마교의 능 공자가 아니십니까?”
“……맞긴 합니다만.”
다 알고 물어보는 것 같아서 아니라 할 수도 없었다. 이미 연소 주인은 물론이고 객들까지 알고 있는 판에, 부정하는 게 더 이상했다.
빌어먹을 왕천 같으니.
하여간 저 떠벌리는 성격 때문에 분명 큰 화를 당할 터다.
“헛헛! 맞구만, 맞아. 내 멀리서 마교의 일월기를 보고는 혹 능 공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어찌나 열심히 달렸던지, 도포가 땀으로 흠뻑 젖었지 뭐요. 으헛헛헛!”
“……”
도사가 쾌활하게 웃었다.
그런데 땀에 젖어? 어디가?
지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땀방울은커녕 보송보송하기만 한데?
“그나저나 참으로 대단하시오. 내 그대로 인해 마교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것을 반성했지 뭐요. 어찌 실체는 보지 못하고 소문만을 믿어, 그릇된 생각을 품느난 말이야. 헛헛, 아직 수양이 부족한 게지. 수양이 부족한 게야. 무량수불.”
급기야 혼잣말에 도호까지 뱉으며 자기반성을 하는 화산 도사의 모습에, 능운비가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이 새낀…… 뭐지?
딱 봐도 자신이랑 비슷해 보이는 나이인데, 말투는 어째 늙은이다.
뭐, 그 정도는 도사니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반가워하는 것도 모자라 마교인을 칭찬해? 도사가?
수많은 상상을 통해 대응법까지 예상해 두었고, 혹시나 싶어서 마기를 끌어 올릴 준비까지 마쳤는데…….
예상하지 못한 도사의 반응에, 능운비는 어찌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한데, 어찌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계십니까? 보아하니 쉬러 오신 듯한데?”
“아, 그게. 이들도 난감한지 연소에 머물지 못하게 막아서……. 여하튼 이제 되었습니다. 저희는 야숙을 하기로 결정을……”
“야숙이라니! 야숙이라니요! 연소를 두고 어찌 귀한 분이 야숙을 한단 말이오? 그리고 뭐요? 막아요? 어찌 그런일이 다 있단 말이오?”
“……?”
별안간 분개하는 도사에 능운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가 왜 흥분하고 지랄이야?
내가 야숙하기로 결정을 했다는데…….
황당함에 말문이 막힌 사이, 도사가 연소 주인 성일국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여기 삼공자님의 말씀이 참이오? 그대들이 연소에서 쉬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
“예? 아, 그것이……”
“이런, 어찌 이리 옹졸할 수가! 연소란 자고로 오는 이 막지 않고, 가는 이 잡지 않는 그런 곳인데 어찌 발도 딛지 못하게 한단 말이오?”
“그건 그렇지만…… 저분은 마교인지라.”
“뭬요? 마교가 왜요?”
“예?”
화산 도사가 두둔하고 나서자 성일국의 표정이 더욱 난감해졌다.
이해한다. 내 생각에도 저 도사 놈이 이상한 거다.
마인과 도인, 눈만 마주쳐도 칼질부터 하는 둘의 관계를 모르는 이가 없는데…….
“뭐 이런 호랑말코 같은 도사가 있어? 상대는 마교라고! 지금 도사라는자가 두둔할 일이야?”
머뭇대는 객점 주인을 대신해 그 뒤편에서 신경질적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흠, 귀하는 누구요?”
“나? 나는 고량현의 이필성이다!”
“……무명이 있소?”
“있고말고! 천악산 산적 패를 토벌한 고량금창(膏粱金槍)이 바로 이 몸이시다!”
무인이 손에 든 자신의 창을 내세우며 위세를 떨었다.
고량금창 같은 소리 하네.
생전 처음 들어 본 무명은 둘째 치고, 말투며 행동거지가 저게 뭐란 말인가?
정파라고? 니까짓 게?
그리고 눈은 대체 왜 달고 다니는 건지.
뛰어오던 경공술만 봐도 상당한 고수가 분명하고, 소매엔 매화 문양이 선명하다.
섬서가 지척인데 어떤 미친놈이 화산 도사 흉내를 내겠는가?
한데 그 앞에서 고작 지방에서 이름 조금 얻은 놈이 꼴 같지 않게 나대는 꼴이라니.
짜증이 절로 치밀었지만, 입장이 입장인지라 능운비는 잠자코 두고 보기만했다.
“음…… 무량수불. 내견식이 모자라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구려.”
“뭣이? 이런 호랑말코 같은 놈이! 고량이 코앞이거늘! 정파의 한 갈래에 오른 내 이름을 모른다고?”
“거듭 사과하리다.”
화산 도사가 고개까지 숙여 사과하자, 이필성의 옆에 있던 이가 애써 말렸다.
“내버려 두게. 마교를 저리 칭찬하는 것을 보니, 사이비 놈이 분명하네. 아마 저 옷도 어디서 얻어 입은 것일게야.”
“젠장,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만……. 하긴, 이 근방에서 내 이름을 모르다니? 저런 놈이 명망 높은 화산의 도사일 리가 없지. 당장 그 옷을 벗어라, 이놈!”
이필성과 그에 동조한 이들이 도사를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마교라는 편견이 그들의 눈과 귀마저 가린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 도사가 미쳤나?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다들 저리 생각하는데 왜 너만 자꾸 나를 두둔하는 건데?
나 마교라니까?
그럼 도사인 니놈은 응당 저들과 같은, 아니 저들보다 더 극렬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도사는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음, 그런데 말이요.”
“……?”
“그대들의 위명만큼이나 저분의 위명이 높다는 것을 아시오?”
“뭣이 어째?”
“혹 들어 보지 못했소? 감숙 북방 천주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응? 천주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감숙에서 천주문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곳이었다. 비록 몇백 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무림과 연관이 없는 이들이라 해도 그 이름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아직 그곳의 일이 이곳까지 전해지진 않은 듯했다.
“실은 말이오. 며칠 전에……”
화산 도사가 환하게 웃으며 천주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천주문의 치부, 마교 삼공자의 선행, 그리고 마교 중원지부의 창설까지.
“뭐, 뭣이? 마교가 당당히 중원을 활보할수 있게 되었다고?”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거짓말이다! 이놈! 사이비 도사 놈 주제에 어찌 그런 망발을 지껄인단 말이냐!”
“저놈도 마교일 것이오! 암!”
“……”
화산 도사의 말을 믿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허참, 듣고도 못 들었다 하다니……. 어찌 중원이 이리도 옹졸해졌단 말인가? 옳은 일을 한 것은 이념이나 가치와 관계없이 옳다고 해야 하거늘…… 무량수불.”
“닥쳐라, 이 빌어먹을 사이비 놈! 내 중원을 대신해 네놈 목부터 벨 것이다!”
급기야 욕설까지 터져 나오자 화산도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능운비를 쳐다보았다.
“미안하오. 중원이 그대에게 못 볼꼴을 보이는구려.”
“아니, 저는 그다지……”
“아니오. 이는 명백히 사죄해야 함이 마땅하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하여 그대를 욕되게 하고 있으니 내 중원의 무인으로서 그대를 볼 면목이 없구려.”
“……”
희한한 도사 놈이었다.
이렇게까지나 마도를 항변하는 도사놈이라니…… 정말 미친 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이보시오 주인장, 내 이름으로 이분의 신변을 보증하리다. 그만하고 길을 내어 주시오.”
“예?”
“이미 정무맹이 마교의 중원 거취를 허락했으니, 그대가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거요.”
“하, 하지만……”
성일국이 자신의 주위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이들을 의식하며 난감해 했다.
와중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눈앞의 도사는 사이비가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가 입은 옷이 신경 쓰였다.
매화 문양이 선명한 도포. 분명 화산의 것이다.
사람들 말처럼 가짜라면 몰라도, 진짜 화산 도사라면?
일단 확인은 해야 했다. 그래야 후환이 없을 테니까.
“도사님.”
“말씀하시오.”
“정 그러하시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도명이라도……”
성일락의 말에 도사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쓸데없는 짓이오. 저런 사이비 놈이 무슨 수로 신분을 증명해?”
“맞소! 저 옷도 가짜가 틀림없소. 도명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당장에 잡아다가 화산에 죄를 청하게 해야 할 것이오!”
“빌어먹을 놈! 어찌 감히 화산을 사칭한단 말인가!”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도사가 허리춤에서 작은 옥패를 꺼내 보이며 빙긋이 웃었다.
“이, 이건?”
“연소의 주인이시니 알아보시리라 믿소. 본파 무인들이 표주 중에 사용하는 매화패라오.”
“……”
그 말처럼 옥으로 만든 패에 매화문양이 선명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그걸 본 성일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괜히 연소의 주인이겠는가?
화산의 매화 옥패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정도의 눈은 있었다.
눈앞의 도사는 진짜다. 사이비 따위가 아니라 진짜 화산파의 도사.
아직 몇 대인지는 모르나, 속가도 아니고 본산의 무인이 틀림 없었다.
“이런, 제가 하마터면 큰 결례를 범할 뻔했습니다.”
성일락이 대번에 허리를 숙이자 좌중이 고요해졌다.
“뭐야? 진짜 도사였다고?”
“화산파라고?”
“정말?”
내내 흠집을 내려 하던 이들이 작은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혹, 도명이 어찌 되십니까?”
“본도는 화산의 운학(雲鶴)이라 하오.”
그 순간, 분위기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얼어붙었다.
“과분하게도 매화검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소.”
“……”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미 연소 주인이 그가 화산의 도사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운학이란다.
화산검룡(華山劍龍)이라 불리는 도사. 무림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라면 절대로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어디 그 유명세가 하루 이틀인가?
중원 검객 중 항상 첫손가락에 꼽히는 화산검선(華山劍仙)의 뒤를 이은 제자.
나이 열다섯에 후기지수의 틀을 벗어나 당대에 이름난 무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
그리고 매화검수?
약관의 나이에 화산을 대표하는 무인들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저, 정말로 운학 도장이십니까?”
“그렇소.”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도사 운학의 답에, 모두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자신을 고량금창이라 소개했던 이는 부끄러움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였다. 운학의 이름에 비하면 그의 무명은 밑 닦을 새끼줄만도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이전까지만 해도 마교를 막기위해 서 있던 이들이 이제는 운학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저마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 모습에 능운비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그런데 저 도사 놈이 제법 대단한 위치에 있는 모양이다.
운학이라…….
들어 봤을 리가 없다. 자신의 기억은 삼십 년 전의 중원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어떻습니까? 제가 보증을 서도 되겠습니까? 일단은 저들이 쉴 수 있도록 하시고, 머무는 동안 연락을 보내 확인하면 될 것입니다.”
“아, 암요! 당연합니다. 말씀대로 해야지요. 화산검룡께서 보증하신다는데, 제가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운학께서 보증한다는데야.”
“하면, 진짜로 천주문이 그런 패악질을 한 게야?”
“빌어먹을 놈들! 어찌 정파의 탈을 쓰고 그 같은 짓을!”
“음, 마교에도 간혹 착한 이가 있는 모양이구만.”
“가뭄에 콩이 난 게지.”
성일국의 말에 사람들이 대번에 태도를 바꾸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리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무량수불.”
운학이 성일국과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능운비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자, 들어가시지요. 괜히 모두가 오해하여 다리만 아프게 했습니다. 중원을 대표한다고 할 순 없으나, 제가 대신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
운학의 인사에, 능운비의 얼굴이 짜증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래, 덕분에 여론이 바뀌어 연소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누가 화산 따위의 도움이 필요하대?
도와 달란 적도 없는데 왜 지가 나서서 지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