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068
#1067.
수정하다 (2)
“회계 부분은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등록 절차뿐입니다.”
“음…….”
강진호가 이현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들이 모두 나가고 이현주와 이현수만이 남아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군.”
“저희 쪽에서 다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행히도 전임 회주님 때부터 연을 이어온 회계사님들이 많이 계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흠?”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리자 이현주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총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신 분들입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습다니까.’
무인계는 바깥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건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협의였다. 그 어떤 무인계도 자신들의 정체를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외부에 무인들의 존재가 알려질 시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가 너무도 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총회를 운영하다 보면 느끼는 게, 이놈의 정체라는 건 알 놈은 벌써 다 안다.
‘모르는 사람 찾는 게 더 어렵겠군.’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기야.
세상에 어디 비밀이라는 게 있겠는가.
이만한 이들이 세상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그게 완벽하게 숨겨진다는 게 몇 배는 더 이상하다.
“그럼 이제 법인 등록만 하면 되는 건가?”
“몇 가지 문제 때문에 내일 이 실장이 부처 사람을 만나러 갈 겁니다.”
“흠.”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이현수에게로 돌렸다.
“괜찮겠어?”
“예?”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죠. 그러니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내가 같이 가줄까?”
“사양하겠습니다.”
“…….”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꺾었다.
“그래도 내가 회주인데, 내가 가면 무게감이 좀 실리지 않을…….”
“가벼워도 됩니다.”
“…….”
강진호가 묘한 눈으로 이현수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회주님, 제가 이런 말씀까지는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응?”
“협상을 하는 자리라면 회주님은 안 계시는 게 낫습니다.”
“…….”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으려는 찰나, 이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애초에 회주님은 협상이라는 걸 잘 모르시잖습니까.”
“응?”
“협상이라는 건 내줄 것은 내주고, 받아올 것은 받아오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회주님이 뭔가를 내주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
이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정치인이라는 부류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내려다보기 마련입니다. 깔본다는 뜻이죠.”
“그렇겠지.”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그렇겠지가 아닙니다. 회주님이 그 자리에 나가셨는데, 거기서 나온 자가 회주님을 우습게 보고 툭툭 던져 대면, 회주님이 어떻게 할 것 같으십니까?”
“그야…….”
참아야지.
중요한 일이니까.
참아야 하는데…….
이현수가 강진호를 빤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멱살 잡고 벽에 처박지라도 않으면 다행이죠. 그러고는 ‘돌아간다’라면서 홱 돌아 나오시겠죠.”
“…….”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아니고 부정하고 싶지만, 차마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이현주조차도 팔짱을 끼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회주님이 하시는, 그 ‘협상’이 무척 효율적일 때가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식의 협상을 할 때가 아닙니다.”
“음…….”
강진호가 살짝 힘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 ‘높으신 분’들을 만나는 건 강진호도 그다지 선호하는 일이 아니다.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지.’
마교가 중원을 완전히 장악하고 천하를 발아래 둔 상황에서도 황궁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마교를 윽박질렀다. 그들이 현실을 파악하기까지는 수많은 목숨이 필요했다.
‘게다가…….’
상황을 좋지 않게 몰아간 것은 의외로 황제가 아니었다. 황제의 위엄을 등에 업은 것들이 더 난리를 쳐 댔다.
지금이라고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그 일은 이 실장에게 맡기지.”
“예. 걱정 마십시오.”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이현수만 한 적임자가 없다. 그건 총회의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은 없나?”
“권한만 주시면 됩니다.”
“권한?”
“예. 그 자리에서만큼은 제가 회주님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것만 공증해 주신다면, 완벽한 결과를 이끌어내겠습니다.”
“원래 그렇지 않나?”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충분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건 해결된 건가?”
“예. 그리고 한 가지를 더 해주셔야 합니다.”
“뭘?”
“새로 생길 법인의 이름을 지어주셔야 됩니다.”
“……이름?”
“네.”
강진호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자, 잠시만 이 부장.”
“예?”
“그거,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
이현수가 이현주를 제지하고 나섰다.
“이게 생각하고 말고 할 거리가 있는 일인가요?”
“……보통은 생각할 거리가 없는 일이겠지만, 회주님과 관련되면 생각할 거리가 생기지.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회주님 자전거 이름이 금동이고, 자동차 이름이 붕붕이거든.”
“…….”
이현주가 경악과 공포가 담긴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이름이야 그냥 입에 착 달라붙는 걸로…….”
“예. 그런 이름으로 제가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
강진호는 조금 서글퍼졌다.
“서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회주님.”
“음?”
“저, 정말 연수 갑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이냐는 뜻이다.
“아니……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이럴 때 자리를 비워도 되나 싶어서요.”
“괜찮아.”
“하지만…….”
강진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딱히 이 실장이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상황도 아니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게 역사적 트라우마라고 해야 하나, 저놈들이 쳐들어온다고 하면 만전을 다해 대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응?”
강진호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하자, 이현수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조선 시대 이야기를 여기에다 끌고 오는 게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방심했는지, 아니면 최선을 다했는데 중과부적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어느 쪽이든 결국 일본에게 유린당한 것은 사실이 아니던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려는 정황이 미리 발견되고, 그 침략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과거와 비슷하게 흘러가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대비는 이미 충분히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성격상 중심에서 멀어져서 응원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습니다.”
“그럼 해.”
“……예?”
“연수도 받고, 대비도 하면 되지. 어려울 것 있나?”
이현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악덕 사장 같으니!’
대한민국의 수많은 중소기업 사장들이 하는 대사가 아니던가!
“저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서…….”
“그럼 신경 안 쓰면 되고.”
“그러자니 신경이 쓰여서…….”
“……이현수.”
“예?”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어쩌라고?”
“…….”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비난하시는 요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몸이 일에 절어버려서 일을 손에 놓으려니 영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슬픈 일이군.”
강진호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연수를 가는 게 놀러 가는 것도 아니니까, 이번에는 한 번 물러서도록 해.”
“하지만…….”
강진호가 이현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놈들이 언제 밀고 들어온다는 게 명확하게 밝혀졌다면 나도 너를 보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저들의 계획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언제 쳐들어올지도 모를 놈들을 대비한답시고 모두가 거기에 발이 묶여 있다면, 저놈들의 의도대로 되는 거지. 불안한 건 알겠지만, 지금은 우선 하던 일을 그대로 진행하는 게 맞다.”
머리가 조금 깨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강진호의 말이 맞다. 대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대비만 하고 있다 보면 발전이 더뎌지게 된다. 무슨 일이든 밸런스가 중요한 법이다.
다만, 뭐랄까…….
‘그것도 상황 나름일 텐데.’
일본이 쳐들어온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강대국이 한국으로 쳐들어온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강대국이고 나발이고 일단 일본이 한국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면 저도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일본이잖습니까.”
“아니.”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일본이 쳐들어오는 게 아니다. 홍왕계가 쳐들어오는 거지. 이 전쟁은 일본과 우리의 전쟁이 아니야. 홍왕계와의 전쟁이지.”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이현수.”
“예, 회주님.”
“평소답지 않군. 평소의 너라면 일본은 부차적인 문제고, 그 뒤에 있을 차이커창에게 관심을 집중했을 거다.”
“…….”
허를 찔린 이현수가 입을 닫았다.
‘조급했나?’
생각하면 할수록 강진호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쳐들어온다는 사실에 홀려서 그 뒤에 있는 차이커창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침략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다.”
“……그게 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발전하는 것. 강해지는 거지.”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대비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일회성에 지나지 않아. 진정한 강자에게는 적이 없는 법이지. 타국의 침략이 걱정된다면 어떤 식으로 대비할 것인가를 고민할 게 아니라, 어떻게 더 강해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맞다. 우리는 일본만 상대하는 게 아니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일본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가장 와닿는다. 총회의 궁극적인 적은 일본이 아니라 홍왕계다. 일본에게 시선을 빼앗겨 발전의 시기를 놓친다면 그 뒤에 쳐들어올 홍왕계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이현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는 정말 핵심을 잘 짚으신다니까.’
평소에는 맹하다 싶을 정도로 반응이 없는 강진호지만, 정말 중요한 시기에는 이현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확실한 맥을 짚을 줄 안다.
어이없을 정도의 냉철함으로 말이다.
“어설프게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마. 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저쪽이다. 그러니 하던 일부터 마무리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회주님.”
강진호의 말을 확실하게 이해한 이현수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서류 더미를 안아 든 이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어?”
강진호가 눈을 꿈뻑이자, 이현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하던 일부터 마무리하겠습니다. 우선 제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부터 받으시죠.”
“…….”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