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98
#1197.
베어내다 (2)
차갑다.
아니, 섬뜩하다.
공기가 칼날처럼 변해 버린 느낌이다.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가 페부를 찢고 들어와 가슴을 싸늘하게 식혀내고 있었다.
츠키카게는 이 이상 차가워질 수 없는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르다.’
확실히 강진호는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 온 어떤 적과도 달랐다.
장검을 양손에 늘어뜨린 채 무심하게 서 있는 그 모습만으로도 주변을 완벽하게 압박한다.
‘확실히…….’
격이 다르다.
보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다.
츠키카게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왔다. 그에게 죽은 이들의 수가 백을 넘어갈 시점부터 세는 것을 포기했다. 그때가 벌써 20년 전이다.
그중에는 그보다 약한 이들도 있고, 그보다 강한 이들도 있었다. 정면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강자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츠키카게는 그들 모두를 죽이고 살아남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간단하다.
사람과 싸우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승부라면 약자는 강자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서로 목숨을 노리는 전투라면 말이 달라진다.
간단한 예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총에 맞아 죽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총에 맞아 죽은 이가 총을 쏜 이보다 나약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아니다.
강자를 죽이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더 강한 무기를 드는 것도 좋고, 약점을 찌르는 것도 좋다. 그리고 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리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암살에는 정도가 없는 법.
츠키카게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상대를 죽여왔다. 돈을 써야 한다면 돈을 물 쓰듯 쓰는 걸 주저하지 않고, 사람을 써야 한다면 사람을 썼다.
희생자?
그런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상대를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정당하다.
그렇게 수많은 강자들이 츠키카게의 손에 죽어갔다. 수단이나 방법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츠키카게는 승리했고, 그들은 패배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 츠키카게에게는 그럴 능력이 충분하니까. 오히려 이 많은 이들을 단 한 사람을 상대하는 데 동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끼기까지 했다.
하나…….
강진호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처음 강진호를 보고 떠올린 생각은 ‘생각보다 평범해 보인다’였다. 하지만 전투에 들어간 강진호를 보고는 강자라 느꼈고, 직접 칼을 휘둘러 보고는 어마어마한 괴물이라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느낌이 달랐다.
‘다른 세상에서 온 생물 같군.’
강하다든가, 약하다든가의 문제가 아니다. 검을 늘어뜨리고 있는 강진호를 보고 있으려니, 저자가 자신과 같은 인간은 맞는지 의심부터 든다.
검을 늘어뜨린 채 적을 바라보는 저 오만한 자세가 저리 잘 어울리는 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왕.
어쩌면 조금 바래 버린 단어지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그것이었다.
츠키카케는 의문이 들었다.
현대에 왕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는 건 왕이라는 말이 시대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왕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까?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츠키카케는 전자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지금 이 세상에 강진호와 같은 이들이 여럿 존재한다면, 왕이라는 말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을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피가 앞 머리카락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거칠고 야만스러운 모습.
하지만 반대로 그 피에 젖은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눈은 너무도 무심하고 투명했다.
이질적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온 츠키카게이지만, 그가 부동심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전까지다.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사람을 죽인 뒤만큼은 뛰는 심장과 달아오르는 육체를 진정시키기 힘들다.
하지만 강진호는 시체로 산을 쌓고, 피로 강을 만들면서도 마치 산책을 하고 있는 듯 태연함을 유지한다.
그러니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죽여야 한다.’
이건 명령 때문이 아니다.
츠키카게는 알고 있다.
강진호를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귀는 인간을 집어삼키기 때문에 마귀라고 불린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강진호를 죽이지 못한다면, 강진호는 언젠가 그들의 목을 조여올 것이다.
더없이 잔인하고 강인한 손톱으로.
그러니 여기서 죽여야 한다.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말이다.
츠키카케가 소도(小刀)를 뽑아 들고 천천히 강진호를 향해 다가갔다.
손끝에 차가운 애병(愛兵)의 감각이 느껴지자 흥분했던 가슴이 차갑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강진호가 앞으로 돌진했다.
공간이 이지러지는 것 같다.
어둠이 그보다 더한 어둠을 피해 달아나듯 공간이 일그러지며 강진호의 모습이 쭈욱 늘어난다. 츠키카게급의 무인이 아니라면 그저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강진호가 그들이 츠키하[月刃]라 부르는 무사들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파아아아아아!
검이 공간을 가른다.
카카카캉! 카카캉!
검은 마기를 품은 강진호의 검이 새파란 검기를 발하는 십여 자루의 도와 맞부딪치며 귀를 찢어내는 금속음을 발했다.
정면에서 강진호와 맞붙은 이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튕겨난다. 감히 반격은 생각지도 못하는 얼굴들이다. 검에 실린 역도가 그들의 손목을 부러뜨릴 것 같다.
시큰한 손목의 고통을 채 느끼기도 전에 검을 통해 무언가가 밀고 들어와 전신으로 파고든다.
“어억!”
몸 안이 불타는 듯한 고통에 츠키하들이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대체…….’
지금껏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괴이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 고통에 정신을 빼앗길 틈이 없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진호가 다시 검을 휘두른 것이다.
카아아아앙!
발이 바닥을 더 이상 딛고 있지 못했다.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내장이 뒤틀린다.
타닷!
바닥에 착지한 이가 피를 게워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인간인가?”
사람과 맞붙은 충격이 아니다.
엔진이 터질 듯 과속하는 30톤 트레일레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해도 이런 힘이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 괴물의 힘은 상식을 초월했다.
가볍게 휘두른 검만으로 이만한 충격을 전해준다면, 저 검에 전력이 실리면 대체 어떤 위력이란 말인가.
도를 든 이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도는 예(禮)를 추구한다.
기본적으로 검이란 술(術)에서 법(法)으로 발전하여 학(學)을 넘의 예(禮)에 이르는 법이다.
수많은 전쟁을 거쳐 살인술로 발전한 그들의 도이지만, 그 안에서도 절도와 예의를 놓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간결한 기술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다.
살인술을 살인예(禮)로 발전시켰다는 것이 그들의 긍지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다르다.
콰아아아아아앙!
검이 내려쳐진 순간, 손목과 팔목이 동시에 부러져 나간다. 바닥에 파묻힌 무릎이 부려지고, 척추가 뒤틀린다.
“끄으으으윽.”
그들의 무(武)는 미학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강진호의 검은 일본의 무학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법(法)도 예(禮)도 없다. 그저 야만만이 존재할 뿐이다.
간결하다.
그것만은 동일하다.
하지만 그들의 간결함이 나름의 미학을 위한 방식이라면, 강진호의 간결함은 최소의 힘으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효율일 뿐이었다.
보라.
끄그그그극.
강진호의 적루가 일본도를 파고든다.
“어…… 어어?”
천천히 자신의 도가 잘려 나가는 것을 본 이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챙!
반으로 부러져 버린 도와 함께 사람의 몸이 반으로 갈린다.
촤아아아아악!
‘벤다’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들의 도가 베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강진호의 검은 자르기 위해 존재했다. 순식간에 반으로 썰려 버린 육체를 보고 있으면, ‘벤다’라는 말이 얼마나 나약한 단어인지 실감할 수 있다.
야성을 뭉쳐 빚어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놓은 것 같다. 강진호의 무학은 단순하고 무식하고, 또한 거칠었다.
하나…….
‘어쩌면 저게 가장 완벽한 무학의 형태가 아닐까?’
무학은 살인술이다.
그 누구도 그걸 부정할 수 없다. 건강술과 스포츠로 갈려 버린 바깥세상의 무학이 아니라, 서로 죽이기 위해 발전한 무인계의 무학을 익히는 이라면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의 무학이 미(美)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을 죽이되 스스로가 인간임을 잊지 않겠다는 마지막 마지노선을 그어놓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무학을 익힌다 해서 살인 자체에 도취되면 인간은 결국 살인귀가 되어버린다.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 일본의 무인들은 스스로를 예의와 미학의 경계 안에 가두었다.
하지면 여기 있다.
그 예의와 미학의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살인이라는 죄악의 영역을 흙발로 짓밟는 존재가.
츠키하의 검술은 감히 평범한 무사들과 비할 바가 아니다. 아무리 단련된 부시[武士]라고 해도 츠키하에게는 미칠 수 없다. 그 부시들 중에 고르고 골라 발탁해 수련시킨 이들이 츠키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신니치카이의 총장으로서 이 군을 이끌고 있는 요시노부조차 츠키하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츠키하들조차 어린아이처럼 다루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츠키하들이 완전히 무력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한 가지만은 확연하게 다르다.
“끄…… 끄르륵.”
검이 심장을 파고들었음에도 츠키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입으로 피거품이 솟구침에도 원독과 증오에 찬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본다.
갈라진 심장이 피를 뿜어 대고 있음에도 아직 힘이 빠지지 않은 손으로 검을 휘둘러 강진호를 베어갔다.
캉!
반대쪽 손에 든 검으로 날아드는 도를 막아낸 강진호가 검을 뽑아냈다.
촤아아아아악!
가슴에 뚫린 구멍으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털썩.
한 사람의 죽음.
이제 이곳에서는 너무도 흔한 모습이 되어버린 일이지만, 죽음은 언제나 무거운 법.
“각오를 세워라.”
누군가가 나직하게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모두 죽는다. 하지만 저 악마와 함께 죽을 것이다.”
날카로운 눈빛들이 명멸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새파란 눈빛들만이 선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을 보며 강진호가 흡족한 듯 웃었다.
‘오랜만이군.’
저런 눈을 보는 것도 말이다.
과거에도 있었다.
그를 죽이기 위한 결사대들이. 스스로의 무가 미치지 못함을 알고서도 강진호와 동귀어진 하겠다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던 이들.
벼려진 칼날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다.
그그극.
적루와 청루가 맞닿으며 거슬리는 소음을 만들어낸다.
“쳐라!”
그 순간, 전방의 츠키하들이 강진호에게 돌진했다. 새파랗게 빛나는 검들이 강진호의 전신을 노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스르륵.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며 강진호의 등을 찔러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