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265
#1264.
영입하다 (4)
“입사했대?”
“그렇다는 것 같습니다.”
“흐음.”
황정후가 영 마뜩찮다는 얼굴로 재떨이에 담배를 떨었다. 살짝 과격한 동작에 재가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테이블로 떨어졌다.
조규민은 재빨리 물티슈를 뽑아 테이블에 떨어진 재를 닦으며 말했다.
“애초에 강진호 씨가 찍은 이상 이렇게 될 일 아니었습니까?”
“그놈은 거!”
황정후가 미묘하게 역정을 내려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몸에 힘을 뺐다.
조규민의 말이 맞다.
강진호의 입에서 황민수라는 이름이 나온 이상,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건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황정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상 무심한 척 구는 놈이 알짜는 다 빼 먹으려 든다니까.”
“사실 황민수 사장이…….”
“누가 사장이야?”
“황민수 전 사장이 노는 것도 낭비입니다. 그만한 인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인재는 얼어 죽을.”
황정후가 그것만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역정을 냈다.
“인재라는 건 제자리에서 써먹을 수 있는 놈들을 말하는 거야. 아무리 능력이 있으면 뭐 해! 믿고 맡길 수가 없는데!”
조규민은 말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내리눌렀다.
황정후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황민수가 MK에서 일하는 것도 막았을 것이다. 강진호에게 피해가 가는 건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황정후니까.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음?”
“칼은 날이 서 있어 위험하지만,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는 좋은 도구가 되는 법이죠. 위험하다고 해서 칼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건 바보 같은 짓 아니겠습니까?”
“으음.”
황정후가 마뜩찮다는 눈으로 조규민을 노려봤다.
“내가 그놈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건가?”
“아니죠. 회장님은 그때 병상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회장님이 정정하셨다면 어디 감히 그분들이 회장님의 뜻에 거역할 수 있었겠습니까.”
“흠…….”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일리가 있다는 듯 황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다.
그게 황정후의 지론이다.
이 말은 사람을 잘 봐가며 써야 한다는 말도 되지만, 어떤 사람이든 다루는 이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말도 된다. 사람을 다루는 것 역시 사람이니까.
“하기야 강진호, 그놈도 만만한 놈이 아니지.”
“예.”
황정후가 피식 웃고는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가 타들어 가며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천천히 흩어진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말일세.”
“예, 회장님.”
황정후가 천천히 담배를 빨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 그놈들이 용서가 안 돼.”
“…….”
“아네, 내가 좀생이 같다는 것.”
“아닙니다, 회장님. 아무도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생각이야 하겠지. 말을 안 하는 것뿐이지.”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규민은 정말 황정후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황정후가 겪은 일은 가족으로서의 정마저도 깔끔하게 날려 버릴 만했다. 믿은 자식들이기에 그 배신감은 더 클 것이다.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가 황정후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놈들이 나를 배신한 건 용서할 수 있어. 아니, 뭐, 배신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애비가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의식도 없는데 그냥 손만 놓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예, 그렇죠.”
“하지만 내가 정말 놈들을 용서할 수 없는 건…… 그놈들이 재경을 무너뜨릴 뻔했다는 거야. 웃기게 들리겠지만, 내게는 재경이 내 목숨보다 중하네. 그런 회사를 말아먹을 뻔한 놈들을 무슨 수로 용서하겠는가.”
조규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황정후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황정후 같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가족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강진호가 대단한 거지.”
조규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분야든 마찬가지야. 끝까지 가버린 인간은 괴물이 되어버리거든. 연구자든, 기업인이든, 그게 아니면 정치인이든. 어느 분야든 마지막까지 가버린 이들은 인간성이란 게 거의 남아 있지 않는 법이야.”
“그렇죠.”
조규민은 황정후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나쁜 쪽만 그런 게 아니네. 좋은 쪽도 마찬가지야. 예수나 공자와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인이라 하는 거죠.”
“그래. 성인, 성인이지. 하지만 성인이란 결국 사람이 아니란 뜻이야. 어떻게 사람이 옳은 일만 하고 살겠는가. 방향만 다를 뿐, 마찬가지라는 뜻이지.”
황정후가 나직하게 혀를 찼다.
“그래서 강진호가 특이하단 말이야. 강진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이거든. 그런데 강진호는 자신이 하는 일보다 가족을 더 챙겨.”
“그렇죠.”
강진호의 우선순위가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가 있다는 사실은 강진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안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럴 수 있지. 하지만 큰일을 하는 사람은 그러기가 어려울 텐데 말이야.”
“겪은 일이 있어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겪은 일?”
“모든 걸 다 손에 넣어봐야 마지막에는 남는 게 없다는 걸 알아버려서 그럴 수도 있지요. 아시다시피 강진호 씨는 보통 사람과 다르잖습니까.”
“흐음…….”
황정후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조규민의 말은 황정후를 찌르는 면이 있었다. 지금의 황정후도 어쩌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에게는 이제 남은 게 없다.
아내도 먼저 세상을 떠났고, 공들여 키운 자식들은 그를 실망시키며 그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재경뿐이다. 그렇기에 황정후가 더욱 재경에 집착하는 건지도 모른다.
‘후회하는 건 아니다.’
절대로.
지나온 삶에 미련 같은 건 없다. 황정후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했다. 때로는 그 선택이 틀린 적도 있지만, 그건 삶을 사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겪는 시행착오다.
그러니 미련은 없다.
다만…….
‘내가 강진호처럼 다시 한 번 삶을 살아간다면, 정말 지금과 같은 길을 걸을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자신이 없다.
괜히 노곤한 느낌이다.
몸이 소파를 넘어 어딘가로 떨어지는 느낌.
‘허무함이라는 건가.’
황정후는 밀려오는 감정의 찌꺼기를 밀어냈다. 잠시 잠깐 감상에 빠진 것뿐이다.
돈을 이만큼이나 벌어놓고 허무함을 느끼니 마니 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재경이라는 회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다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잃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지. 세상은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큰 걸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잃은 게 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잃어버린 것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음…….”
잃어버린 것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황정후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서 강진호가…….”
어림짐작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강진호는 자신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덜 소중한지를 황정후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황정후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를 테니까.
“그래. 확실히 그런 면에서는 강진호가 나보다 그 녀석을 좀 더 잘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군.”
조규민은 대답하지 않고 어색하게 웃었다.
머리를 굴려봐도 황정후가 기분이 좋을 만한 대답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으시네.’
입으로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황정후의 표정은 오랜만에 조금 편해 보였다.
그렇겠지.
감정이 쌓여 있다고 하더라도 장성한 자식들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모습이 부모에게 기꺼울 리는 없으니까. 조규민도 황정후의 그런 마음을 짐작하기에 굳이 황민수를 강진호에게 추천한 것이다.
“잘하시겠죠?”
“누구? 강진호?”
“아니요. 황민수 전 사장님 말입니다.”
“별걸 다 걱정하는구나.”
“그래도 현장에서 오래 떨어져 계시지 않았습니까. 복귀해서 감을 찾는 데 한참 걸릴 텐데, MK의 특성…… 아니, 강진호 씨의 특성을 감안하면 그런 것 고려 안 하고 시작부터 마구 굴릴 텐데.”
조규민이 살짝 몸을 떨었다.
‘그러고도 남지.’
강진호와 같이 일을 해본 사람은 안다. 강진호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많은 부분이 어긋나 있는 사람이다.
그런 강진호의 스타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황민수의 처지가 꼭 좋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그 정도야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지.”
“음…….”
“게다가…….”
황정후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그놈들의 인성은 다잡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능력을 키우지 못한 건 아니야. 능력적인 부분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는 놈들이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황정후의 아들들은 재경의 후계자 수업을 마친 사람들이다. 그들이 권력 암투를 벌일 때, 재경 내에서도 누가 재경의 회장이 되느냐에 관심을 가질 뿐, 경영권이 넘어간다는 것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았다.
물론 황정후의 빈자리를 쉽게 메울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겠냐마는, 일반적인 그룹의 총수로는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 양반이 MK 하나 감당 못할 리가 없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조규민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새삼스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저…… 회장님.”
“음?”
“굉장히 외람된 질문이라 해도 되는지 조금 불안합니다만…….”
“해봐. 외람은 얼어 죽을.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허락이 떨어졌지만 조규민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머뭇대던 조규민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만에 하나…….”
“만에 하나?”
“황민수 사장님이 일선에 복귀해서 예전과 같은…… 아니, 예전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다면, 혹시 재경에…….”
황정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조규민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힘에 조규민이 어깨에 힘을 바짝 주었다.
“복귀시킬 생각이 있냐고?”
“……그렇습니다.”
“흐음.”
조규민이 조심스레 부연했다.
“아무래도 이제는 후계에 대한 문제도 있다 보니 고려를 해보시는 것도…….”
“일없어.”
황정후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한 번 정한 일이야. 번복은 없어.”
“하지만…….”
“없다니까.”
조규민은 더 이상 밀어붙이지 못했다. 여기서 더 들어갔다가는 황정후의 역린을 건드릴지도 모른다.
“복귀라…….”
담배를 입에 문 황정후가 피식 웃었다.
‘화가 나지 않는 걸 보면 나도 아주 생각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군.’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일단은 거기서나 잘하라고 해.”
“잘하실 겁니다. 능력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확실한 건 없지. 하지만…… 뭐, 잘하겠지.”
황정후의 얼굴에 미묘한 자부심이 피어난다. 그 모습을 보며 조규민도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
지금 황민수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문제에 봉착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