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18
#1317.
공조하다 (2)
‘최연하다.’
‘진짜 최연하네.’
‘얼굴이 주먹만 하다. 진짜 작아.’
‘너무 마른 거 아냐? TV에 나오는 애들을 실제로 보면 뼈다귀라더니.’
‘저게 마른 거라고?’
‘마름에 대한 관점이 좀 다른 것 같구나.’
승무원들이 목소리를 낮춰 쑥덕거렸다. 1등석 승무원들은 나름 유명인을 마주할 기회가 많지만, 최연하 정도 되는 배우를 눈앞에서 보는 경험은 그들에게도 특별한 것이었다.
‘중국에 계약하러 가나 봐.’
‘저번 중국 드라마 완전 대박 났잖아.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근데 이제는 중국에 한국 배우 못 나가는 거 아냐?’
‘모르지. 최연하급이면 또 다를지도.’
최연하가 가만히 시트에 등을 기댔다.
‘다 들린다, 이것들아.’
쓸데없이 귀는 밝아서 저런 말을 놓치지 못하는 최연하였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무던한 성격이 아니라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을 것이다.
그 순간, 최연하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을 확인한 최연하가 눈을 찌푸렸다.
“야, 뭐, 거기서 전화를 하고 그래.”
[갈 수가 없으니까 그러죠.]한은솔은 같은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에 앉아 있었다. 최연하는 같이 일등석을 타고 가자고 몇 번이나 잔소리를 했지만, 한은솔은 아직 매출도 얼마 안 나오는 회사에 그딴 낭비는 있을 수 없다고 부득불 이코노미에 앉았다.
‘하는 짓만 보면 지가 사장이야.’
무슨 직원이 회사의 비용 걱정을 해주는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건 좋지만, 이건 좀 너무 나가지 않았나 싶다.
‘하기야 사장이나 다름없지.’
일단 책임자는 최연하로 되어 있지만, 실무를 거의 모르는 최연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은 한은솔을 통해 해결되고, 한은솔은 최연하의 생각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일이 중요하지.’
최연하의 1인 기획사였다면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최연하와 한은솔은 MK 엔터테인먼트를 제대로 키워보기 위해서 신인들과 애매한 배우들을 꽤나 영입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게 정석이니까.
다른 톱스타?
남는 게 없다.
톱스타는 영업이 필요하지 않은 이들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톱으로 분류하는 이들은 딱히 소속사의 힘이 없어도 알아도 섭외가 들어온다. 그런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별게 없다.
톱스타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소속사를 정할 때 최대한 많은 비율을 정산받는 쪽으로 간다. 매니저를 붙이고 이것저것 부대비용을 대다 보면 딱히 남는 게 없다.
그래도 톱스타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업적 측면이나 이미지 측면에서는 이득이 많아서 대형 기획사들은 어떻게든 이름값 있는 스타를 영입하려는 추세지만, 최연하는 톱스타를 모조리 배제하는 선택을 했다.
‘돈도 안 되는 것들.’
최연하는 톱스타들을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신들은 평범한 이들과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장착하고, 심심하면 패악질을 부려 대는 것들이 톱스타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그 톱스타 중에서도 끝판왕 격으로 성격이 나쁜 사람이 최연하다.
하지만 지금 최연하는 그래도 최소한 남의 눈치를 살필 줄 안다. 그리고 자신이 별달리 대단할 게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물론 여전히 성격은 버리지 못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사람 됐다는 말을 써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최연하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야, 너는 내가 두 시간도 못 버티고 사고 칠까 싶어서 지금 전화질이야?”
[사고 칠까 봐 그러는 게 아니라 누나가 불편할까 봐 그러죠.]“말은 잘한다, 말은.”
최연하가 피식 웃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 사고 안 칠 테니까.”
[진짭니다.]“빡치는 것 있으면 거기로 달려가서 너 후려치고 돌아올게.”
[……감사합니다.]“끊어.”
최연하가 전화를 끊고는 피식 웃었다.
참 걱정도 팔자다.
“고객님.”
최연하가 고개를 돌렸다. 승무원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괜찮아요. 다 좋네요.”
최연하도 살짝 웃어주었다.
불편한 점이라…….
예전이라면 몇 개나 있었겠지. 미묘하게 불편한 시트라든가, 자리라든가.
하지만 지금은 참을 수 있다.
그녀가 불편함을 토로하면 그녀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불편해진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진짜 철들었네, 최연하.’
최연하가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철이 든 건 아니다. 사람이 철이 든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다. 인격이 성숙한다든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그저 조금 더 생각할 줄 알게 되는 것뿐이다.
‘아마도…….’
“실례합니다.”
최연하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의 옆자리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온다.
익숙한 얼굴.
하지만 매번 볼 때마다 익숙함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얼굴이다.
‘아는 척하면 안 되겠지.’
강진호가 업무상 다른 이름을 쓴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친분이 있다는 티를 내면 안 된다.
강진호가 시트에 앉는다.
나란히 이어진 좌석이기는 하지만, 퍼스트 클래스 좌석이다 보니 가림막으로 시선이 차단되어 있었다.
위이이이잉.
중앙 가림막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자리에 앉던 강진호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최연하가 그런 강진호를 보며 빙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옆자리에 앉아 가는데, 통성명이나 하죠. 저는 최연하예요. 아시죠?”
“아…….”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
“이름.”
강진호의 입술을 파르르 떨렸다.
“기, 김철수입니다.”
순간, 최연하의 몸이 멈췄다.
씰룩.
입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아, 김철수. 네, 좋은 이름이네요. 매우 스탠다드하고.”
“……감사합니다.”
강진호는 중국에서 돌아오면 이종욱을 한 번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답답해서 가림막 내렸는데, 괜찮죠?”
“…….”
“괜.찮.죠?”
“아, 네. 물론입니다.”
“네. 가는 동안 예쁜 얼굴 보면 기분 좋을 테니까요. 서비스예요.”
강진호의 눈가가 꿈틀했다.
“불만이라도?”
“……그럴 리가요.”
최연하가 킥킥 웃으며 시트에 등을 기댔다.
“그럼 좋은 여행.”
“아, 네.”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는 강진호를 보고 있으려니 자꾸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이 사람 때문이겠지.’
최연하가 이리 변한 건 말이다.
물론 강진호에게 맞춰 바뀌고 싶은 생각은 없다. 최연하는 최연하니까. 스스로가 가진 당당함을 잃는다면 그건 더 이상 최연하가 아닐 것이다.
최연하가 빙그레 웃으면서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최연하의 시선을 느낀 강진호가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잘생겨서요.”
“…….”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뒤로 돌렸다. 승무원은 보이지 않지만, 다른 좌석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강진호가 목소리를 낮춰 작게 말했다.
“왜 이래요?”
“뭘요?”
“아는 척하면 안 된다니까.”
“아는 척 안 했는데?”
“…….”
최연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는 척하지 말라는 소리가 말도 걸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옆에 잘생긴 남자가 앉으면 말도 걸어보고, 그럴 수도 있지.”
“…….”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자 최연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작게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아, 혹시 방금 그 말 때문에 삐친 거면 마음 풀어요. 나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말 거는, 그런 여자 아니니까.”
강진호가 얼굴을 감쌌다.
‘잘한 짓일까?’
아무래도 최연하가 걱정돼서 함께 이동하기로 했지만, 시작부터 영 만만치가 않다. 차라리 이현수의 옆에 앉아 가는 게 더 속이 편할 뻔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네?”
최연하가 강진호를 빤히 보면서 말했다.
“강진호 씨랑 같이 가는 여행은 이게 처음이니까.”
“…….”
할 말이 없어진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뭐, 물론 업무상 가는 곳이고, 내가 지긋지긋해하는 중국이기도 하고, 아는 척도 못하고, 서로 바빠서 놀 시간은 없을 게 빤하고, 이것저것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무언의…… 아니, 유언의 압박을 느낀 강진호가 살짝 배어나는 식은땀을 소매로 훔치며 말했다.
“다음에는 제대로 여행 한 번 가요.”
“진짜?”
“…….”
“지금 이 상황을 넘기기 위해서 그냥 하는 말이라면 차라리 취소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 이런 거 절대 안 잊어버리거든.”
“지, 진짜로.”
“흐응.”
최연하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하지만 입가에는 장난기가 묻어난다.
“뭐, 좋아요. 어차피 반은 빈말이겠지만, 그 빈말을 할 줄 알게 된 것도 장족의 발전이니까.”
강진호가 웃고 말았다.
이종욱이 이 광경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말을 붙여보기도 어려운 강진호가 쩔쩔매는 꼴을 보면 웃어버릴까, 아니면 울상을 지을까?
강진호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연하가 작게 속삭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매번 해외는 중국만 가네요. 다음에는 반대 방향으로 가요.”
“그러고 싶네요.”
강진호가 쓰게 웃었다.
강진호도 새로운 삶에서마저도 이렇게 중국과 끊임없이 얽힐 줄은 몰랐다. 정말 전생에 중국과 인연이 있기라도 한 건지.
‘좋은 일로 얽히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강진호가 가볍게 눈을 감았다.
겉으로는 느슨하게 풀려 있지만, 몸 안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강진호에게 중국이란 그런 곳이니까.
딱히 대단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중국으로 간다는 사실만으로 피가 빨리 도는 느낌이다. 강진호에게 있어서 중국이란 언제나 싸우고 또 싸워야 했던 땅이니까.
‘달라지지 않는군.’
세상이 바뀌어도, 육체가 바뀌어도, 삶이 바뀌어도…… 그가 중국에 느끼는 감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미묘한 긴장과 조금의 불안, 그리고…….
“왜 웃어요?”
“네?”
“이상하게 웃던데?”
“…….”
웃어?
강진호가 살짝 당황하여 자신의 입가를 매만졌다.
딱히 웃을 만한 일은 없었을 텐데…….
“뭐, 또 이상한 생각 했겠지.”
최연하가 핀잔을 주고는 시트에 등을 기댔다. 그러면서도 강진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계속 그렇게 볼 겁니까?”
“내가 내 남자 얼굴 보고 간다는데 문제라도?”
“……아닙니다.”
강진호가 눈을 감아버렸다. 어차피 말로 못 이기는데, 괜히 말이 길어지면 고통만 받는다.
“이번에는…….”
최연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별 탈 없이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최연하의 말에 강진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마음이야 같지만.’
글쎄.
그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비행기가 움직이는 느낌이 나자 강진호가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중국이라…….’
엮일 일이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홍왕.’
아무래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가 않는다.
강진호는 가슴에서 들끓어 오르는 열기를 살짝 밀어놓고는 안전벨트를 맸다.
‘우선은 임무부터.’
지켜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