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484
#1483.
논의하다 (3)
“미국 측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주둔지를 정비하고, SOB라 불리는 미국 무인들을 보내오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 일에 있어서는 한국 정부와도 논의가 필요한 탓에 시간이 조금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예. 표면적으로는 미군을 더 늘리는 일인데다가, 주둔지의 문제가 꽤 큽니다. 미군 부대의 증설은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이라…….”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그는 복잡한 정치의 세계는 잘 모른다. 민감한 문제라면 민감한 문제겠지.
“처리가 어려운가?”
“시간이 필요할 뿐,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정 안 되면 기존의 미군 부대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편의성과 기밀 유지의 문제 때문에 그리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겠죠.”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문제가 얽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측에 의지가 있다면 결국은 이뤄질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이 적극 요청한다면 결국은 들어줘야 할 것이다.
‘묘한 기분이군.’
따지고 보자면 한국 정부에 좋은 감정이 있을 수 없는 강진호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요청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미묘해졌다.
딱히 애국심이 있는 편이라 생각하는 것도 아니건만, 이런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살아온 나라라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모양이다.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지.”
“물론입니다. 우리가 급할 필요는 없는 일이죠.”
위긴스가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무인계에서는 총회가 미국보다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과거의 원탁도 이루지 못한 일이다.
‘사실 총회라기보다는 회주님 혼자 이룬 일이지만.’
총회와 미15기계화사단이 맞붙었다면, 아마 총회의 피해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개활지에서 포격을 피할 수 없는 이들은 포탄이 한 번 떨어질 때마다 떼죽음을 당했을 테니까. 이사들과 강진호가 진입하여 화력을 모조리 날려 버릴 때까지 적어도 반수 이상은 죽을 게 분명하다.
미군의 단 1개 사단을 날리는 데도 그만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은, 실질적으로 미군과는 대항이 불가능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공군이 출동한다면 이야기 자체가 불가능할 테고.
저들이라고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저리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일정 경지를 넘어서 버린 단 한 명의 무인이 가져다주는 유용성이 말이 되지 않을 수준이라는 것을 체감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을 몇몇만 가진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 엄청나게 다양해진다. 당장 강진호가 전쟁터의 후방으로 강하하기라도 한다면, 상대는 지옥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사력이라면 환장을 하는 미국이 이런 것을 놓칠 리가 없다. 아마 저들은 이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고 무인들이 더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면, 거의 공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1년 국방 예산이 1,000조가 넘는데.’
강진호를 하나 만들어내는 데 국방 예산의 1%를 투자하라고 하면 거부할 국가가 있을까?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할 이들이라면 국가의 고위직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미국이 총회에 넘겨주는 것들의 가치를 아무리 높게 잡아도 10조는 어림도 없다.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니 너무 염가로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괜찮아.”
하지만 강진호는 태연했다.
“이쪽도 딱히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크게 한탕 해 먹고 미국과의 관계를 틀어버릴 생각이라면 조금 더 불러봤어도 괜찮겠지만, 항구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돈을 더 받으면 더 받을수록 저들의 목이 뻣뻣해질 것도 자명하지 않은가.
위긴스도, 강진호도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참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췄단 말이야.’
위긴스가 새삼 이현수의 협상 능력에 감탄했다.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그 적절한 지점을 육감과 계산을 동시에 활용해 찾아내는 것을 보면, 때로는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그 외에는?”
“게이트는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마법 병단의 능력이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이제는 제가 없어도 게이트를 작동하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활용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꽤 고무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중국에 게이트를 설치하는 문제는 바로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저쪽에서도 딱히 반대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리 협조적이지 않아 부지의 선정부터 설치까지 이쪽에서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정도인데…….”
위긴스가 볼을 긁었다.
“이건 딱히 문제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편해진 면도 있으니까요. 여하튼 보름 내로 설치를 완료하겠습니다.”
이걸로 총회의 게이트가 설치된 국가가 넷으로 늘었다.
미국, 중국, 일본, 영국.
전 세계에 게이트를 두고 이동하는 원탁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지만, 딱히 다른 나라로 이동할 일이 없는 총회는 이걸로도 차고 넘쳤다.
당장 문제가 생길 곳에 즉시 누군가를 투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는 것만으로도 대응에 유연성이 생기게 된다.
“마법 쪽 교육은?”
“순조롭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학구열이라는 건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더군요.”
“응?”
그게 뭔 소리냐는 강진호의 반응에 위긴스가 살짝 웃고 말았다.
“자발적으로 그렇게까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보통 어느 정도 배움이 끝나면 유럽의 마법사들도 학구열을 보입니다만, 그 이전 단계…… 그러니까 지식을 주입받는 단계에서는 무척 버거워하기 마련입니다. 단순히 외우고 이해해야 하니까요.”
아, 그거.
그건 우리나라 학교에서 12년 동안 하는 일이지.
“그 단계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이 많은데, 아주 수월하게 넘겨 버리더군요.”
이현수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야 한국 학교에서는 3개월이면 끝날 분량을 6개월에 걸쳐서 강연하니까 그런 거죠.”
“……한국인들은 대체 학교에서 뭘 배우는 건가?”
“배우는 게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외우는 건 많습니다.”
여하튼 어쨌든 한국의 무인들도 고등학교까지는 기본적으로 다닌다. 제대로 공부를 하는 경우는 없지만, 하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는 익숙한 편이다.
그게 나름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지금은 자체적으로 연구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올라왔군.”
“그렇게까지 빠른 건 아닙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라고 해야 할 단계에 오른 거지요. 한 사람의 마법사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0년은 필요할 겁니다.”
“…….”
무학으로 따지자면 이제 겨우 검을 쓰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준이란 의미였다.
‘큰 전력을 바라는 건 무리겠군.’
30년 뒤에는 모르겠지만, 강진호는 지금 30년 뒤의 미래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당장 닥쳐올 위기들을 헤쳐 나가는 게 우선이다.
“활용성은?”
“저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걸로 충분할 겁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말을 인정했다. 위긴스가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미15기계화사단을 뭉개 버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파괴력의 집약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인에 미치지 못하지만, 공격의 범위와 편의성은 감히 무인이 범접할 수준이 아니었다.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큰 무기가 될 게 분명했다.
“필요한 지원이 있으면 말해.”
“이 실장을 통해 필요한 것은 즉시 조달받고 있습니다. 타국의 물품이 필요하거나 큰돈이 드는 문제라면 로드와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긴스야 알아서 잘할 것이다. 강진호가 없어도 홀로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니까.
문제는…….
강진호의 시선이 방진훈에게로 향했다.
“거, 위긴스 이사님 볼 때랑은 눈빛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오해다.”
“오해가 아닌 것 같은데.”
강진호에게 의심의 시선을 보내던 방진훈이 살짝 혀를 차고는 보고를 시작했다.
“저는 뭐, 하던 거나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애들 수준은 하루하루 올라가고 있고, 뭐…… 이제 곧 있으면 전수한 건 대충 마스터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때부터는 그냥 갈고닦는 거죠. 하던 대로 말입니다.”
방진훈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래서 그…… 하, 이거, 내가 내 무덤 파는 것 같은데, 총회식 기초 무학이 다 됐으니, 이제 고급편을 좀 만들어보고 싶은데…… 능력이 후달립니다. 다른 사람이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강진호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누가?”
“그게 문제죠, 그게. 누군가는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그걸 참,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총회 장로들을 다 살려두는 건데. 영남회도 좋고. 그럼 그 양반들한테 족쇄 채워서 연구만 시켰을 텐데.”
방진훈이 연이어 입맛을 다셨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총회 단위로 뭔가를 하려 하자, 장로들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방진훈은 장로들 중에 가장 강한 사람도 아니고, 그중 가장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실력보다는 성격과 인품으로 이중걸과 대적한 사람이 방진훈이다. 그런 이가 총회의 무학을 총괄하는 위치에 이르니 버거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흠, 실력의 문제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제가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 실력이…….”
말을 하던 방진훈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이제야 이해한 모양이었다.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실력을 더 키우면 되겠네.”
“…….”
“방 이사는 내일부터 하루에 한 번씩 나와 대련하도록 하지. 사실 그동안 다른 이들의 무학은 꾸준히 봐줬는데, 방 이사는 그러지 못해서 내가 못내 신경 쓰이던 참이었어.”
“아, 아니, 그게…… 그…… 궤가 다르잖습니까. 마공과 정공이 그…….”
순간, 장민이 눈을 부라렸다.
“이런 멍청한 작자를 보았나! 지금 감히 마존께서 그 정도 수준의 정공도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는 것이더냐?”
“그게 아니고…….”
범이 앞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는데, 등 뒤에서는 늑대가 진을 치고 있다.
달아날 곳이 없다는 소리다.
“실력이 부족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실력을 키우면 되지.”
“제가 나이가…….”
“뭐?”
이번에는 바토르였다.
“실력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방 이사는 여기에서 제일 젊은데!”
“…….”
“저 영감님이 저 나이에도 배우고 강해지는데, 엄살 피우지 마라!”
방진훈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
남의 불행이 본인들의 행복이라는 거겠지.
빌어먹을 양반들!
방진훈에게 소리치는 와중에 씰룩이는 입꼬리를 보면, 이 상황을 즐기는 게 분명하다.
‘어디, 같이 죽어보자.’
방진훈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