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07
#1906.
절감하다 (1)
“……빌어먹을.”
홍왕계의 광저우 지부장인 장샹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아직도 종적을 못 찾았다고?”
“……죄송합니다.”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이!”
쾅!
책상을 내려친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써 지부가 스무 개 넘게 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놈들의 털 끝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고? 대체 이걸 뭐라고 보고를 해야 한단 말이냐!”
“…….”
수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지만, 그 반응도 장샹첸의 마음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놈들.”
장샹첸이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그도 나름 지금까지 홍왕계의 소속으로 수많은 적들과 싸워왔다. 하지만 그가 홍왕계에 처음 적을 둔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아 본 적은 없다.
“너희는 그냥 못 찾았다고 끝날 일이지만, 나는 직접 보고를 해야 한단 말이다! 며칠째 ‘저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놈입니다’ 소리를 해 대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아는 거냐?”
“저,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놈들이 하늘로 솟았는지 도무지…….”
“빤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그럴 시간 있으면 기어 나가서 길이라도 훑어!”
“죄,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장샹첸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무슨 꼴이야.’
상하이 지부가 통째로 날아갔다.
언론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연일 보도를 때려 대는 중이다. 정부가 나름 진정을 시킨 것 같지만, 그렇다고 보도가 중지되지는 않았다.
“테러 단체는 얼어 뒈질!”
지금 언론은 상하이 지부를 습격한 정체불명 테러 단체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호들갑을 떨어 대고 있다. 그 거대한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 아니지.
본질적으로 보자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이놈들은 분명 무인계에 대한 거대한 테러를 저지르는 중이었으니까. 기존의 법칙과 질서를 무력으로 강제로 뒤집어엎는 것을 테러가 아니면 뭐라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다들 명심해.”
“예!”
“이건 단순히 공적을 노리고 하는 말이 아니야! 상하이가 당한 이상 우리도 안전하지 않아!”
그 말에 모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밖으로 또 다른 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 역시 도심 한 복판의 건물에 입지한 지부. 과거였다면 어떠한 공격도 시도되지 않을 곳이지만, 이제는 그걸 장담할 수 없다.
“이건 우리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다!”
장샹첸이 이를 뿌득 갈았다.
“물론! 내가 있는 이상 저 상하이의 머저리들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아. 하지만 내가 나서기 전까지의 희생을 줄이려면 놈들의 행적을 반드시 발견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찾아내라! 어떻게든 찾아내! 그럼 내가 직접 놈들의 목을 따주겠다!”
장샹첸이 안색을 굳혔다.
상하이 지부가 당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광저우 지부나 상하이 지부나 같은 지부. 상하이가 당했다면 광저우도 딱히 손쓸 도리가 없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방식.
하지만 장샹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우선은 상하이 지부가 당할 때는 지부장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는 것, 그리고 장샹첸은 상하이 지부의 지부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고수라는 점이다.
“여기로 왔으면 목을 쳐버렸을 것을.”
“그렇습니다, 지부장님!”
“애초에 지부장님께서는 일개 지부에 머무를 분이 아니시지요. 갑자기 상황이 급하게 흐르지만 않았어도 이미 본문으로 영전하고도 남으셨을 겁니다.”
아부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이건 결코 아부가 아니었다. 창왕과의 전쟁이 급격하게 벌어지지만 않았어도 장샹첸은 이미 본문으로 자리를 옮겨 홍왕을 보좌하고 있었을 것이다.
“쓸데없는 말은 됐다!”
장샹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른 지부 놈들에게 질 수 없다. 반드시 우리가 먼저 놈들의 종적을 찾아낸다! 알겠느냐?”
“예!”
“그럴 것 없어.”
장샹첸이 눈을 찌푸렸다.
“어느 놈이냐!”
그가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지만, 그의 수하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
다시 한번 소리를 내지르려던 장샹첸이 입을 닫았다.
‘뭐지?’
그의 수하들을 가장 잘 아는 건 그다. 이들 중에서는 감히 그의 앞에서 그가 한 말을 비꼴 만한 담량을 가진 이가 없다.
하지만 지금 그는 분명 똑똑히 말을 듣지 않았는가.
“귀가 막힌 모양이군.”
장샹첸의 고개가 부러질 듯 뒤로 홱 돌아갔다.
‘뭐…….’
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조금 전에도 들린 그 목소리가. 그럼에도 장샹첸이 등 뒤에 있는 이의 존재를 바로 알아채지 못한 것은 등 뒤에서 사람의 종적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
장샹첸의 눈이 부릅떠졌다.
야경.
그의 등 뒤로 난 커다란 창으로 광저우의 야경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야경 한가운데 일부러 그려 넣은 것처럼 사람의 실루엣이 덮어져 있다.
‘사람?’
장샹첸의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사람? 사람이라고?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떠봐도 사람이다.
하지만 장샹첸은 눈앞에 있는 존재를 도무지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없었다. 이 가까운 거리에서 생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환영? 아니면…….’
차라리 홀로그램이라 믿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장샹첸의 기대를 배반하듯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저벅.
어색하다.
사람이 움직인다면 당연히 발소리가 난다. 하지만 지금 장샹첸의 귀에는 그 발소리가 너무도 어색하게 들렸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발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저벅저벅.
몸을 마저 돌린 사내가 장샹첸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외양의 사내를 본 장샹첸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너는…… 너는 누구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
“그래서 말했지, 굳이 찾을 것 없다고. 내가 이렇게 왔으니까.”
장샹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방금 그가 한 질문이 얼마나 멍청한 질문이었는지 그도 모르는 게 아니다.
누구냐고?
누구겠는가.
장샹첸이 이를 한 번 악물고는 칼날 같은 눈빛으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흑왕계냐?”
“그렇게들 부르더군.”
“……놈.”
장샨첸이 주먹을 말아 쥐고는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상하이 지부를 공격한 게 네놈이냐?”
“아니.”
사내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뭐, 다르다고 해서 딱히 의미는 없지.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테니까.”
“이름을 말해라.”
“……굳이?”
“누가 여기서 뒈졌는지 정도는 알아둬야지.”
무표정하던 사내의 얼굴에 작은 균열이 간다. 오른쪽 입꼬리만을 가볍게 끌어올린 사내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좋군. 나는 너 같은 타입을 좋아하지.”
“어떻게 여기까지 잠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여긴 상하이 지부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야!”
“그랬으면 좋겠군. 아니면 너무 시시할 테니까.”
“이놈이…….”
장샹첸이 공격 신호를 내리려는 찰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딱히 이곳을 어찌하려던 건 아니지만, 신창이 너무 화려하게 저질러 준 덕분에 나도 적당히 눈에 띄는 짓을 해야 하거든.”
“뭐?”
“사과의 의미로 대답은 해주지. 나는 공령이다. 기억할 수 있으면 기억해라.”
공령이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무심하게 손가락을 살짝 당겼다.
장샹첸이 의아한 눈으로 공령을 바라보았다. 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스슷!
스스슷!
아주 미약하고도 낯선 소음이 장샹첸의 귀를 파고들었다. 얆디얇은 무언가가 무명천 위를 스치는 듯 작은 소리.
그 소리를 들은 장샹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런 후에야 그는 보았다.
그의 뒤를 지키고 있던 수하들의 몸이 마치 장난감처럼 동강 나는 모습을 말이다.
“뭣…….”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수하들의 육체를 가볍게 갈라 버린 무언가가 그를 향해 날아든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다.
“큭!”
장샹첸이 있는 기운을 모두 끌어 올려 몸 주위를 두른다.
카각! 카가가각!
잔뜩 끌어 올린 호신강기를 무언가가 파고든다. 포탄도 막을 수 있을 호신강기가 이지러지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 뒤틀렸다.
마치 커다란 풍선을 실로 친친 감은 것처럼 호신강기가 기괴한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은사?’
아니. 와이어라고 해야 하나?
“아아아아악!”
장샹첸의 입에서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호신강기를 짓누른 와이어가 그의 육체를 파고든다. 단번에 잘리는 것은 막아냈지만, 칼보다 더 날카로운 와이어가 육체 곳곳을 파고들고 조여낸다.
“끄으…….”
“흠?”
공령이 흥미롭다는 듯 장샹첸을 바라보았다.
“지부에 있는 이가 이걸 막아낸다라…… 재미있군.”
“끄으으…….”
장샹첸의 몸이 덜덜 떨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와이어는 그의 몸을 파고들고 있었다. 기운을 조금이라도 뺀다면 단번에 그의 몸을 잘라내, 저 뒤에 널브러져 있는 수하들과 같은 꼴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처럼 대가 센 이를 좋아하지. 단번에 잘리는 걸 잘라내는 건 딱히 재미가 없거든. 잘리지 않는 걸 자를 때가 재미있는 법이지.”
공령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점점 굽혔다.
“끄으윽…….”
자신의 몸을 조이는 와이어에 힘이 더 실리는 것을 느낀 장샹첸이 덜덜 떨며 공령을 바라보았다.
“걱정할 것 없어. 곧 다들 같은 꼴이 될 테니까.”
“네가 같은 꼴이 되겠지.”
“음?”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새파란 검기가 안으로 날아들었다.
팅! 티잉! 팅!
피아노 현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장샹첸을 조이던 와이어들이 끊어져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
공령이 무표정한 얼굴로 와이어를 회수했다.
그러고는 그의 시선이 문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쫓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무인들. 이런 지부에 모습을 드러낸다기에는 과도하게 강한 이들이다.
“……함정인가?”
“우리가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네놈들의 움직임 따위는 애초에 차이커창 님의 예측을 벗어나지 못한다.”
십여 명.
안으로 들어온 십여 명의 무인을 본 공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희가 전부인가?”
“너 하나 잡는 데 우리면 충분하지.”
“…….”
“하지만 일은 완벽할수록 좋은 법. 이미 이 주위는 완전히 포위됐다. 놈! 감히 홍왕계의 지부를 습격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공령이 슬쩍 밖을 내다보았다.
딱히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살기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기이하군. 딱히 계획 없이 온 길인데…… 차이커창이라고 했나?”
“그분의 이름은 들어본 모양이구나.”
“생각보다 뛰어난 자로군. 하지만…… 멍청해.”
공령의 미소가 짙어졌다.
“나를 잡으려면 이런 걸로는 안 되지.”
그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렸다.
“조무래기를 얼마나 끌고 오든 시체만 늘어날 뿐이다. 너희의 조각난 사체로 그 사실을 알려라!”
그의 소매에서 뿜어져 나온 와이어들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홍왕계의 무사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