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06
#2005.
포고하다 (5)
“대장로님…….”
장민이 위엄 넘치는 눈으로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 마교의 장로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기억하라.”
“예, 대장로님!”
“교에는 율법이 없다.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도 없다.”
“…….”
“내가 교를 지켜온 이유는 오로지 교인들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민이 가라앉은 눈으로 그의 교도들을 바라보았다.
장로라고는 하나 그의 손자뻘도 되지 않는 이들. 그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존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기에 이제 교도들은 더는 삶의 무게에 신음하지 않게 되었다. 너희 역시 마존께서 베푸신 가없는 은혜를 잊지 말도록 하여라.”
“명심하겠습니다, 대장로님.”
“하나 더 기억해라.”
“예!”
장민이 자애로운 얼굴로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교에 집착하지 말거라.”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장로님?”
“교가 더 이상 교도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교를 해산하고 모두에게 제 삶을 찾도록 해주거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두가 마존과 대장로님의 은혜를 입은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어찌 교를 저버릴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장민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집착일 뿐이다.”
장로들이 황망한 얼굴을 했다.
“대장로님, 이제야 교가 융성하기 시작했는데,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내 목적은 교를 융성시키는 게 아니었다. 갈 곳 없고 박해받는 교도들을 어떻게든 이끄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하지만…….”
장민이 미소를 지었다.
이들이 이리 반발하는 것도 결국에는 마존과 그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마존께서 교를 융성시키라 하시더냐?”
“그건…….”
“내가 너희에게 교를 존속하라 하더냐?”
“……아닙니다.”
장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존께서는 스스로 상징으로 남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 역시 교도들의 행복이지, 교의 번영이 아니다. 그러니 혹여 교가 교도들에게 짐이 되는 상황이 온다면, 너희는 미련 없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대장로님…….”
마교의 장로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장민을 바라보았다.
“그리하겠다고 말해주거라.”
“그리…… 그리하겠습니다.”
“그걸로 됐다.”
장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리 걱정할 것 없다. 어차피 이건 내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한 말이니까.”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저희 모두가 마존과 대장로님의 귀환은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굉장히 불길한 말이로군. 뭐가 착착 쌓이는 기분인데.”
“예?”
“아니다.”
장민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며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담배를 물고 있는 강진호가 말없이 장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없는 영광입니다, 마존이시여.”
모든 것을 건 싸움에서 그가 마존의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것. 그의 인생에 방점을 찍는 데 이보다 더 완벽한 상황이 존재하겠는가.
“다녀오마.”
“대, 대장로님!”
“무인들에게 박해받던 우리가 그 무인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움에 나서는구나.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마음에는 한 점 의혹도 없다.
그에게 있어서 이건 세상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오직 마존을 위한 싸움이다.
그가 원한다면 장민은 지옥의 불구덩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 것이다. 그보다 더한 지옥에서 그를 꺼내준 이가 바로 이 사람이니까.
“마존이시여.”
장민이 강진호와 똑바로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명하신다면 이 한목숨 마존을 위해 바치겠나이다.”
“명령이 아니야, 장민.”
“…….”
강진호가 빙긋 웃는다.
“부탁하지. 나와 함께 죽어줘.”
“얼마든지 그러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마주 웃었다.
* * *
“후우우우우우우.”
가부좌를 튼 바토르가 천천히 숨을 뱉어냈다.
외공.
그는 평생 외공에 매달렸다.
모두가 외공이 아닌 내공에 집착할 때, 바토르는 오로지 그의 육체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게 자신이 가장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틀렸는가?’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그 역시 자신의 무학에 한계를 느끼고, 그걸 돌파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그건 외공이 가진 한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무인은 그와 같은 한계에 부딪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법이니까.
‘나는 올바른 길을 걸어왔는가.’
무학에 대한 집착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 강한 이는 있지만, 그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 노력한 이는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옳았는지, 이제 알 수 있겠지.”
바토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우드드득, 우드득.
그의 육신이 그의 의지에 호응한다.
누가 옳은지 따위에는 관심 없다.
설사 흑왕이 옳고 그가 무인들을 극락정토로 이끄는 이라고 한들, 바토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바토르 역시 몽골 무인들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사람이지만, 그는 강진호와 다르다.
그는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는다.
무인들이란 극한의 이기주의자.
스스로의 무학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는 이다. 그렇기에 바토르는 흑왕에게도, 강진호에게도 공감할 수 없다.
그저…….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바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 강진호가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강진호를 본 바토르가 입꼬리를 뒤틀어 올렸다.
“시간이 됐나?”
“가자, 바토르.”
강진호가 비릿하게 웃는다.
“싸우다 죽을 자리를 마련해 주지.”
“크흐.”
바토르가 그 거체를 일으켜 세웠다.
“거절할 수 없는 말을 하는군.”
그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강자와의 싸움.
적의 이상 따위는 알 바 아니다. 이 싸움의 결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도 그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싸우다 죽는다면 그걸로 좋고, 설사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때부터 펼쳐질 세상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 그는 어떤 세상이라 해도 지금과 다름없이 살아갈 테니까.
그러니…….
“그거면 충분하다, 주인.”
바토르가 걸어가 강진호의 어깨에 그 큰 손을 올렸다.
“이왕이면 흑왕도 내게 양보할 생각은 없나?”
“그건 좀 곤란하군. 놈은 내 몫이라서 말이야.”
“욕심하고는.”
바토르가 씨익 웃는다.
흑왕을 상대하지 못한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괜찮다. 흑왕과 강진호 중 살아남는 이는 그의 몫이 될 테니까.
“알고 있나, 주인?”
“뭘?”
“나는 요즘처럼 즐거운 적이 없다. 상대할 놈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는 지금이 내게 있어서는 극락이지.”
“…….”
“기다리기도 지쳤다. 움직이자고.”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지.”
* * *
“오셨습니까?”
“…….”
“조금 기다리십시오. 아직 준비가 덜 끝나서 말입니다.”
“……준비할 게 있나?”
위긴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다.
“몸 하나로 싸울 수 있는 분들이야 마음의 정리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타입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제대로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위긴스의 책상 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품들과 종이 위에 그려진, 복잡하기 짝이 없는 회로도들이 널려 있었다.
“흐음, 이게 연구자의 딜레마지요.”
“……뭐가?”
“연구가 끝난 물건을 딱딱 골라서 가져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연구라는 건 그렇게 깔끔한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진척률이 98% 정도 되는 것부터 30%쯤 되는 것들까지 제멋대로 널려 있는 판이라…….”
강진호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다 된 것들만 들고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준비가 덜 된 건 어쩔 수 없지.”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로드 같으시면 50의 위력을 낼 수 있는 100% 완성된 물건과 100의 위력을 낼 수 있는 80%짜리 물건 중 어느 걸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80%짜리 아닌가?”
“대신 80%짜리는 70%의 확률로 작동하고, 간간이 마나가 역류해 폭발합니다.”
“…….”
할 말을 잃은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위긴스가 빙긋 웃으며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적의 성향에 맞춰서 그중 무얼 준비할 건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안정성이 높은 물건은 제 실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해주지만, 저보다 더 강한 이를 이기게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위력이 높고 불안정한 물건은 일발 역전의 찬스를 만들어주는 대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지게 만들 수 있지요.”
“……난 모르겠다.”
“그렇지요. 이건 온전히 제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위긴스가 팔짱을 낀 채 침음을 흘렸다.
“어렵네요, 어려워.”
하지만 말과는 달리 이미 위긴스는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위긴스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물품 중 몇 가지를 아공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됐습니다.”
“……고민이라더니?”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로드를 뵈니 제가 하던 고민이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애초에 제가 그렇게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원탁을 버리고 로드의 밑으로 들어오지 않았겠죠.”
“…….”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원탁을 침공하는 로드에 맞서 싸우다가 로드의 손에 죽었을 확률이 높겠지요.”
“침공은 그쪽이 했겠지.”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위긴스가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장민이나 바토르와 같은 확고한 목표 같은 건 없다. 그는 그저 현실주의자다.
그가 강진호를 선택한 이유도 그저 강진호에게서 원탁 이상 가는 비전을 보았기 때문일 뿐이다. 딱히 강진호에게 대단한 의리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위긴스는 이 싸움을 피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로드를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당연히 안다.”
“로드는 이 싸움이 끝나면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시겠죠.”
“그래.”
위긴스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더는 로드가 싸울 적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로드는 군림하지 않으시는 분. 복잡한 정치의 세계의 발을 담그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로드는 상징으로 남으실 겁니다.”
“…….”
“로드가 일선에서 물러나시고, 장민 장로님이 은퇴하시고, 바토르 님이 강자를 찾아 여행을 떠나면…….”
위긴스가 씨익 웃는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총회를 맡아 운영할 수밖에 없겠군요. 우리가 이긴 세상에서는 그게 곧 무인계입니다.”
“……방진훈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로드도 아시겠지만, 방 이사는 총회를 지키고 싶은 거지, 외부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방 이사가 내부를 맡아준다면, 제가 외부를 맡으면 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저리 생각하고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여하튼 훗날을 위해서는 저도 반드시 업적을 남겨야 합니다. 강진호의 대리인이 되려 하는 자는 반드시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하는 법이지요.”
위긴스가 강진호를 똑바로 바라본다.
“이번 전투로 저는 그 자격을 증명하겠습니다.”
“……야심가이시로군.”
강진호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디 해봐.”
“흐음.”
위긴스가 강진호의 내민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