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47
#246.
조사하다 (1)
무엇을 떠들어 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상대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 강진호는 말해보라는 말 외에 다른 부연을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바라는 것이 뭔지 물어볼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정신이 없을 뿐이다.
이재석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고 또 말했다.
영남회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영남회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그가 강진호를 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번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시시콜콜한 일까지 떠들고 또 떠들었다.
필사적으로.
더욱 필사적으로.
처음 말을 시작할 때에는 그가 털어놓고 있는 내용 중에 강진호가 원하는 정보가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말을 하는 와중에 그의 생각은 점점 바뀌어갔다.
‘아직 안 돼.’
강진호가 그의 말에서 무언가 정보를 찾기를 빌던 마음에서 제발 아직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강진호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난 뒤에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그의 동료들과 같은 꼴이 될 것이 빤했다.
‘아, 안 돼.’
다급하고 간절하다.
하지만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말을 하는 것이 수명을 줄이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는 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저 가라앉은 눈을 무시하고 정보를 숨긴다거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는 느낌.
이재석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태가 세상에서 가장 괴이한 자살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살이라 지칭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만.”
“끄윽…….”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이 강진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충분해.”
그의 입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내가 무슨 말을 했지?’
강진호가 그의 말에서 무슨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었다. 중간쯤부터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이 제멋대로 움직여 정보를 토해낸다는 느낌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엇인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강진호는 그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것이고, 이제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앞서 죽어간 그의 동료들처럼 말이다.
“아, 아직 남았습니다! 아직!”
이재석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어떻게 해서든 강진호에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꼴이 될지는 너무도 빤했으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뭐가 그렇게 두렵지?”
강진호가 어둠 속에서 웃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선명한 흰 빛으로 빛나는 강진호의 이를 보며 이재석은 바람맞은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지.”
강진호가 가만히 이재석의 볼을 툭툭, 두드렸다.
“너도 수많은 이들을 죽여왔잖아. 그러면 언제든 너 역시 같은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나?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나 나만은 괜찮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 같더군. 그래, 그 착각이 깨진 기분은 어떻지?”
이해할 수가 없다.
듣고는 있지만, 말이 귀로 들어와 뇌로 올라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강진호가 다음에 한 말은 이재석의 뇌리에 완벽하게 박혀들었다.
“걱정할 것 없어. 난 널 죽이지 않을 테니까.”
“…….”
이재석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좋아할 것도 없어.”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 미소가 너무도 섬뜩하여 이재석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인간이란 모두가 선을 가지고 있지. 그 선을 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넘었을 경우에는 짐승이 되는…… 그런 선 말이야.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집에 강도가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칼을 들고 찔러 버리는 것 같은 선. 인간의 도덕과 규범을 규정해 놓은 선 말이야.”
강진호가 가만히 이재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희는 그 선을 넘었어.”
“…….”
이재석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란 말인가.
“세상에는 건드려서는 안 될 선이라는 게 있는 거야. 너희는 그걸 건드렸어. 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지금부터 알게 될 거야.”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다.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그 담담하던 목소리의 파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듯 소리가 선명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마지막쯤에 이르러서는 무저갱 속에서 신음하는 악마가 지껄이는 듯 음산하고 거칠고 껄끄러운 소리가 되어 이재석의 심혼을 물어뜯었다.
“가서 전해, 내가 곧 갈 거라고. 나를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직접 알려주겠다고 말이야.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 돌아간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다시 나를 보게 될 테니까. 그때는 이런 식으로는 끝나지 않아.”
짐승.
그의 귓가에서 으르렁대는 것은 상처 입은 짐승이었다. 오로지 자신을 상처 입힌 대상을 물어뜯어 찢어발기는 것만을 생각하는, 이성을 잃은 짐승.
“네가 말한 영남회라는 곳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지켜봐. 그리고 그때, 너는 나를 다시 보게 될 거야. 약속하지. 그때, 너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거야. 그러니 기대하라고.”
강진호가 이재석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보게 될 거야. 잊지 마.”
강진호가 몸을 돌려 천천히 공장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재석이 강진호의 등을 향해 멍하니 손을 뻗었다. 아이가 허우적대는 것처럼 흔들리던 손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다시 보게 될 거야.”
이재석의 머릿속에는 그 말만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 울리고 있었다.
“으으으으…….”
이재석의 얼굴이 공포와 절망으로 완전히 물들었다. 사람이라면 도저히 지을 수 없을 것 같은 표정이 떠올라 있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이재석이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토하며 몸을 떨고 또 떨었다.
텅!
강진호는 일그러진 공장의 문을 뜯어내고는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찰칵.
담배 끝이 타올라 가며 어둠 속에서 담뱃불에 비친 강진호의 얼굴이 드러났다.
“휴우우.”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은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군.’
처음에는 이성이 거의 끊어졌다.
분노가 극에 달해 세상 모든 것을 부숴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은 진정되었고, 머리는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명경지수처럼 머리가 맑아진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한 일이 생각보다 크게 터지지 않아서 안심했든가.
어느 쪽인지는 강진호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단 한 가지.
영남회는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고,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강진호의 낮은 목소리에 구석 쪽 나무 뒤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따, 딱히 숨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이리 와.”
강진호의 말에 모습을 드러낸 이현주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강진호는 하얗게 질려 있는 이현주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그게…….”
“날 미행했나?”
“아니! 아니에요!”
이현주가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조 실장! 조 실장님이 전화를 했어요.”
“……조규민?”
“예! 조규민 실장님이 여기를 가르쳐 줬어요.”
강진호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이현주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구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기로 가라고! 여기에 가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고, 이곳으로 가라고 했어요! 진짜예요.”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주와 시선을 맞추다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리할 사람이 필요하기는 하다.
날이 밝아 공장의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발견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것도 큰일이니까. 아무래도 이런 일을 처리하는 것은 재경보다는 이들이 제격이기는 했다.
‘하지만…….’
강진호가 얼굴을 살짝 굳혔다.
그 말인즉,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이현주가 속해 있는 총회와 공유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이들과 한 배를 탄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강진호로서는 껄끄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용하라는 건가.’
하지만 조규민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봤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이현주를 이리 보냈다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이들과 손을 잡고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강진호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이현주는 자신도 모르게 허벅지를 꽉 움켜잡았다.
무섭다.
이자는 보면 볼수록 더욱 괴물 같은 작자였다.
이제 와서는 처음 강진호와 충돌한 기억 정도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어버렸다.
외도를 벌레 같은 몰골로 만들어 죽이고, 악명 높은 영남회의 처리단을 한 줌 핏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과 날을 세우고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되레 감사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은 사양이었다. 조금만 더 이리 마주 보고 있다가는 심장마비로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으니까.
“저, 저희가 잘 처리할 수 있어요.”
“처리?”
“예. 이런 일은 저희가 전문이거든요. 민간인들이 상황을 알아채기 전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요. 경찰 윗선에도 줄이 있어서 말이 퍼져 나가지 않게 할 수도 있구요.”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 없이 그런 일을 해준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딱히 이들과 손을 잡는 것도 아니니까.
“부탁하지.”
“예! 걱정 마세요!”
이현주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대답하고는 스스로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강진호는 그런 이현주의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들의 소속이 영남회인 것은 확실한가?”
“네? 아, 제가 제대로 확인을 못해봐서…….”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
“사, 살아 있어요?”
“어떤 것 같아?”
강진호가 나직하게 웃었다.
이현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부르르 떨었다.
‘내가 미쳤지.’
이런 사람에게 잠시나마 호감을 느꼈다는 사실이 저주스러웠다.
강진호는 지금까지 그녀가 보아오던 미친놈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완전히 돌아버린 인간이었다.
“살아 있지, 아직은.”
“……아직은?”
“그래. 그러니 확인해. 그리고 놈의 소속이 영남회가 맞다면, 너희가 알고 있는 영남회의 정보를 모두 가져와.”
이현주는 굳이 그 일의 대가를 묻지 않았다.
너무도 빤했으니까.
영남회에 대한 자료를 가져다주는 것만으로 영남회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보다 확실한 대가가 있을 리 없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하죠?”
강진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보내줘.”
“보내줘요?”
“그래. 어차피 다시 보게 될 테니까.”
강진호는 그 말을 남기고는 몸을 돌려 천천히 국도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런 강진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현주는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일까?’
강진호와 손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지만, 이현주는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마귀가 내민 손을 잡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사실이 이현주의 가슴을 못내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