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30
#329.
선언하다 (4)
“왜 안 나와?”
최연하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대책 없이 강진호의 가게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근본적인 문제점에 생각이 미쳤다.
‘친구들이랑 같이 가버리면 어쩌지?’
강진호가 가게 문을 닫고 나와서 친구들과 같이 차를 타고 가 버리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예전이라면 태연하게 차를 타려는 강진호를 불러서 용무를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못하겠어.’
괴이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태연히 저지르던 일들에 창피함이라는 것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강진호를 불러내는 모습을 그의 친구들에게 보인다면, 최연하는 여배우 최초 수치사로 사망한 이로 역사에 남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그게 나을 수도 있는데…….’
대책 없이 이곳까지 오기는 했지만, 막상 강진호의 앞에 나서려고 하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가 왜 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이곳까지 와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가게 안의 불이 꺼지더니 네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아, 안 돼.’
네 사람이라는 것이 불안하다.
강진호와 주영기에게 차가 있으니, 두 사람씩 나눠 타고 가버릴 확률이 높았다.
까득.
손톱을 꽉 깨문 최연하가 긴장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가게 옆쪽에 대어져 있는 차에 강진호를 제외한 세 사람이 타는 모습이 보였다.
‘됐어!’
소리 없이 주먹을 꽉 움켜쥔 최연하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진호가 출발하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가 멀리 사라진다 싶어 보이자 최연하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후웁!”
이상하게 심장이 좀 떨리는 것 같아서 심호흡을 해 가슴을 진정시킨다.
‘오버하지 마.’
이틀 전에 본 사람이다. 그런데 그사이 뭐 대단한 일이 있었다고 가슴이 떨리겠는가.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암시 효과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크흐흐흠.”
강진호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음?”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최연하를 발견한 강진호가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최연하 씨?”
“흐흐흠!”
최연하가 다시 헛기침을 했다.
기회를 포착했다 싶어서 생각 없이 나오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게는 문 닫았는데요?”
“아, 아뇨. 가게 온 거 아니에요.”
“……남은 피자가 없는데.”
“피자 먹으러 온 거 아니에요.”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럼 어쩐 일로?”
최연하의 머리가 필사적으로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야밤에 사람을 찾아왔는데, 그 찾아온 이유를 댈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요즘 그쪽 때문에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서 얼굴 보면 확실히 정리가 될까 싶어 와봤어요…… 라고는 죽어도 말 못해!’
최연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건 자존심 문제다.
“아…… 지나가던 길에 그냥 잠깐 들렀어요.”
“그러세요?”
‘그럼 가던 길이나 마저 가지, 왜 여기 빤히 서서 사람을 잡고 있느냐’라는 눈빛이 최연하에게 꽂힌다. 강진호가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최연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차, 차가 고장이 나서요.”
“네?”
“근처에서 차가 고장이 났다구요. 그래서 집에 못 가고 있었어요. 저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최연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완벽해.’
이 밤에 순간적으로 생각해 낸 변명치고는 아주 적절했다. 이걸로 자연스럽게…….
“보험사 불러 드릴까요?”
“……네?”
“차가 고장이 났으면 고쳐야죠. 보험 부르면 된다고 하던데.”
“아, 아니요! 이 밤에 그럴 수는 없죠. 그냥 차 대놓고 집에 갔다가 내일 고치러 올 거예요.”
“그럼 택시 잡아드려요?”
“택시요?”
“네.”
최연하가 기겁을 하여 손을 내저었다.
“아, 안 돼요!”
“왜요?”
“연예인이 택시 타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택시기사님이 알아보시고 행적이 밝혀지거든요. 제가 밤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다가 들어왔다는 게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괜히 스캔들 터져요.”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최연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변명을 하는 중이었다.
“음…….”
강진호가 고민하는 듯하자 최연하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냥 좀 태워주면 되지! 밤에 혼자서 끙끙대고 있는 여자 집까지 모셔다 주는 에티켓도 없어요?”
“사실 그게 어렵지 않기도 하면서 좀 어려운 상황이라서요.”
“왜요? 데이트라도 하러 가요?”
“그게 아니고…….”
강진호가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몸을 돌렸다.
“잠시만요.”
“……네?”
강진호는 마저 대답을 해주지 않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쌔애앵.
낮은 파공음과 함께 지하에서부터 강진호가 솟구치듯 올라왔다.
“엥?”
최연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예요?”
“자전거죠. 금동이라고 합니다.”
“웬 자전거?”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예전에는 많이 타고 다녔는데, 최근에는 차에 익숙해지다 보니 너무 안 타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한동안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로 했습니다. 차가 있었으면 모셔다 드렸을 텐데, 보시다시피 이걸로 모셔다 드리기는 좀…….”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는 강진호이지만, 어쩐지 조금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되레 피할 방법을 찾아내 다행이라는 듯이 개운해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열 받는데, 이거?’
무려 자신이 밤에 찾아왔는데 귀찮아 죽겠다는 반응이라니.
강진호에게 다른 남자들 같은 반응은 바라지도 않았다. 저 무덤덤한 인간이 그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반가운 기색은 보여야 할 것 아닌가!
부아가 치민 최연하가 볼을 부풀렸다.
“그래서 아쉽지만…….”
“태워줘요.”
“네?”
“자전거로도 태워주실 수 있죠?”
“……가능이야 합니다만, 불편하시지 않겠어요?”
“어쩔 수 없죠.”
“차라리 매니저를 부르시는 게?”
“이 야밤에 사람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죠. 제가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강진호는 말문이 막히는 걸 느꼈다.
차가 고장 나서 매니저를 불러 집에 가는 것과 이 야밤에 자전거로 집까지 태워 달라고 하는 것 중에 뭐가 더 민폐인지 판단이 안 서는 건가?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밥도 안 사 줬잖아요.”
“그건 그냥 가시니까…….”
“여하튼 사 주실 거 하나 남았어요!”
“……예.”
강진호는 깔끔하게 설득을 포기했다. 말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최연하의 눈에는 어떻게 해서든 강진호의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가고 말겠다는 의지가 확연했다.
“그럼 타시죠.”
“……어디에 타야 하나요?”
강진호가 자신의 뒷 안장을 가리켰다.
“여기요.”
“으으음.”
단 한 번도 자전거 뒷 안장에 앉아본 적이 없는 최연하가 굳은 얼굴로 자전거에 올랐다.
“집이 어디시죠?”
“여, 여기요.”
휴대폰 지도로 최연하의 집을 확인한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니다.”
최연하를 태운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태운 자전거가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내달렸다.
조금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무척이나 로맨틱한 광경이겠지만,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법이었다.
“꺄악! 흔들리잖아요! 넘어지는 거 아니에요? 꺄아악!”
“아아, 머리! 머리카락 잡지 마세요! 머리!”
그날 강진호는 자신의 육체에 자신도 모르는 약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고 할지라도 머리카락을 단련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나마 모낭까지는 단단해서 머리가 뽑혀 나가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머리카락이 끊기는 것은 그조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꺄아악! 넘어진다니까! 넘어진다잖아요!”
“머리! 아! 내 머리!”
현대로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비명을 지르는 강진호였다.
“……미안해요.”
“…….”
“아니, 정말 무서워서…….”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마에 선 핏대가 지금 그가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화났어요?”
“아뇨.”
“화난 거 같은데?”
“아닙니다.”
“……화난 거 맞는데?”
“아니라니까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강진호를 보며 최연하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화났구만.’
화났으면 화났다고 하면 되지, 이상하게 남자들은 화를 내면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쪼잔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 여기, 이거…….”
최연하가 조심스레 손에 든 커피를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하…….”
강진호가 조금은 허탈한 얼굴로 최연하가 내민 커피를 받아 들었다.
‘마교의 그 괴물들 사이에서도 비명을 지르는 일은 없었는데…….’
심지어 몸에 칼이 박혀도 신음 한 번 내지 않던 강진호가 아니던가. 그런데 고작 머리채를 잡혔다고 비명을 지르게 될 줄이야.
청마가 이 꼴을 보았다면 배를 잡고 웃다가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진호는 최연하가 타 온 커피를 쭉 들이켰다.
“안 뜨거워요?”
“예.”
좀 뜨거운 느낌이 나긴 하지만, 이 정도로 강진호의 육체에 손상을 줄 수는 없었다. 펄펄 끓는 물을 원샷 해도 화상과 거리가 먼 강진호가 아니던가.
그런 강진호를 소리 지르게 만든 최연하도 대단하다면 대단한 여자였다.
강진호가 저 멀리 보이는 강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다니까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뭔가 말을 하려던 강진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살다 보니 정말 별일이 다 있네.’
오늘처럼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한 날은 없을 것이다.
“거, 걱정 마세요. 택시 타고 갈게요.”
“택시 타면 안 된다면서요?”
“……잘 해결해 볼게요. 그 자전거 뒤에 타는 건 안 되겠어요.”
“안 넘어집니다.”
“알아요. 아는데, 너무 불안해서…….”
최연하가 불안이 잔뜩 어린 얼굴로 금동이를 바라보았다. 5년 무사고를 자랑하는 금동이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겠지만, 다행히 금동이는 귀가 없었다.
“원래 그렇게 겁이 많아요?”
“아니요. 저 원래 겁 없는 걸로 유명해요.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어요.”
“자전거를 한 번도 안 타봤어요?”
“어릴 적에 세발자전거는 탔다고 하던데…….”
“…….”
“트라우마 때문에 그럴 거예요. 처음 자전거 배울 떄 엄청 넘어졌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자전거만 봐도 뭔가 좀 불안해서…….”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마요. 한심한 거 나도 아니까.”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강진호가 뭔가 설명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어버렸다.
“자전거 무섭다고 했죠?”
“예.”
“머리를 잡지 말고 허리를 잡아요.”
“네?”
“허리 꽉 잡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 들지 말아요. 그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쪽으로.”
강진호가 자전거에 타고는 그녀를 끌어당겼다.
“응?”
“타요.”
반쯤은 강제적으로 최연하를 뒤에 태운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기척이 늘어나고 있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살기에 절로 불쾌함이 치밀어 올랐다.
어느새 강진호의 주위를 어디서 나온지 모를 무인들이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