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362
#361.
내보이다 (1)
“이거…… 뭐라고 해야 할까?”
공영길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전쟁하러 가는 거지?”
“그렇지.”
이명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리 놀러 가는 분위기가 나냐?”
“…….”
평소 같았으면 지금 그게 할 말이냐고 공영길을 타박했을 이명환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 역시 공영길을 탓하지 않았다.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은 이명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무슨 수학여행 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우르르 몰려서 버스를 타는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전쟁을 치른다는 비장함이 그 광경에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익숙한 버스의 냄새와 콩나물시루처럼 들어찬 시커먼 머리들을 보고 있으려니, 삶은 계란과 사이다라도 챙겨 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막상 그가 학교를 다니던 때는 그런 걸 간식으로 사 오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잘하는 짓이다.’
지금 그들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지금 총회가 생겨난 이후로 가장 큰 분쟁에 휘말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총회의 역사가 얼마인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사건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단언하건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보다 큰일은 없었다. 총회와 비슷한 수준의 단체와 충돌한 적도 없는데, 되레 더 큰 세력과 전쟁을 하는 것이다.
이명환은 무릎을 꽉 움켜잡아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켰다.
무인들끼리의 대규모 전쟁이라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악화일로로 치달아가던 총회와 영남회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건 그저 생각에 불과했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으니 언젠가는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가 정말 전쟁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 은연중에 믿지 않는가.
지금 이명환의 심정이 딱 그랬다.
머리로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그 일이 닥치자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명확하게 와닿지를 않았다. 꿈을 꾸는 듯이 멍하고 현실감이 없다.
공영길이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이러한 이명환의 심정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정신 차려.”
“……그래야지.”
이명환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슨 광경이 펼쳐질지 상상을 할 수가 없네.’
이만큼 대규모의 무인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은 건국 이래 없었다. 그러니 전투의 양상부터 그 결과까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다들 그런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명환은 불안에 시달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강진호 씨는 맨 앞 차에 탄 건가?”
“……그렇겠지.”
이명환은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쉬었다.
‘나대지 말아야 했는데…….’
공영길은 단순히 강진호가 앞쪽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한 것이겠지만, 이명환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앞쪽 차에 이중걸을 비롯한 총회의 핵심 인사들이 다 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가장 나중에 합류한 강진호가 자연스레 그 차에 올랐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총회의 상위층에 있는 이들이 강진호의 존재를 알고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방진훈이 강진호를 비호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죽겠네, 진짜.’
이명환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어쩌자고 그런 인간에게 도발을 날렸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가 파악하기로 강진호는 제정신도 아닌 인간이다. 앞으로 그 뒷감당을 해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당장 오늘이 문제지.”
“……왜?”
“그 인간 옆에 붙어 있어야 하잖아.”
“그렇지.”
“말이 쉽지.”
이명환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진훈의 의도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강진호가 피아 식별을 하기 힘든 상태이니 적당히 주변에 사람을 붙여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분명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명환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강진호가 이대로 계속 총회와 함께 활동을 하게 된다면, 총회의 무인들과 강진호 사이를 이어줄 매개체가 필요했다. 다른 이들은 어릴 적부터 서로 교류를 하고 총회를 통해 안면을 익힌다.
무인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우월한 존재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 대가로 일반적인 삶을 누릴 수 없다. 그 비애에 대한 공감대가 서로를 엮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뜬금없이 나타나, 뜬금없이 총회와 얽혔다. 당연히 그들과는 공감대가 없고, 친해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방진훈이라면 당연히 그런 상황을 짐작했을 것이고, 강진호가 총회의 인물들과 잘 섞여들 수 있도록 완충지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명환의 불행은 그 완충지대가 하필이면 자신이라는 점에 있었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강진호에 대한 반감은 아마 넘쳐 날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놈이 이사 자리를 운운하고 있었다. 계파에 따른 미묘한 이득은 있어도 실력이 보장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잘리는 총회에 처음 나타난 금수저가 바로 강진호였다.
강진호에 대한 반감은 지난밤 벌어진 일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된다. 그런데 그 반감을 몸으로 받는 방패의 역할이 이명환과 공영길에게 주어졌다.
“죽겠네, 진짜.”
이명환이 자꾸 한숨을 쉬자 공영길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명환아.”
“왜?”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나름 기회 아니냐?”
“기회?”
“어. 그러니까…….”
공영길이 살짝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찌 됐든 사실만 보자면 그 강진호라는 사람이 상부의 비호를 받고 회주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게 사실이잖아. 핵심 중의 핵심 라인 아니냐?”
“왜? 별명이라도 붙여주게? 방진훈의 황태자?”
“꼭 비꼴 일이 아니라…….”
공영길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 금수저의 라인을 잡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뭐?”
“맞는 거 아냐?”
이명환이 살짝 놀란 얼굴로 공영길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는 진짜 뇌가 순박하네.’
이명환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강진호의 측근이 된다고 해서 그들에게 떨어질 수 있는 이득을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받아먹을 게 있어야 기회지.”
“원래 권력 옆에 먹을 게 나는 법이잖아. 강진호가 우리한테 뭘 주려고 안 해도 그 옆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뭔가 떨어지기 마련 아냐? 그게 아니면 미쳤다고 사람들이 권력에 붙겠냐?”
들어보니 맞는 말도 같고.
“이왕 이리된 거, 나는 그냥 확실하게 강진호 편에 붙으련다. 좀 냉정하게 보니까 상황이 나쁘지는 않아. 실력 좋은 거 증명됐지, 그 방진훈 회주에 이중걸 전 회주까지 지지하는 사람이면 권력 확실하지. 거기에 나이도 젊어서 한 이삼십 년은 권력에서 낙마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이보다 확실한 동아줄이 어딨냐.”
“……니가 그걸 계산할 머리가 있을 줄이야.”
“원래 내가 냄새를 잘 맡아.”
“지랄한다.”
이명환은 공영길의 말을 무시하고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도 계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 안 해?”
“인마, 오늘 싸워서 지면 권력이고 개뿔이고 총회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지금 삼십 년 후가 문제냐? 지랄하지 말고, 오늘 어떻게 잘 싸울 것인가나 고민해.”
“……에이, 씨바. 뭔 말을 못하게 해.”
공영길이 궁시렁거리면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려 버리자 이명환은 낮은 한숨을 쉬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야.’
오늘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공영길의 말이 실현될 확률이 높았다. 비록 그가 그들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해도 강진호의 측근이라는 사실을 잘 이용하면 먹을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듯싶었다.
다만…….
‘오늘 강진호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영남회와의 싸움은 총회의 운명이 걸린 한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싸움에서 강진호가 눈이 돌아갈 만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비토층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겠지만, 그가 뒤에서 구경이나 한다면 총회의 위기 때 나서지도 않은 놈이 어디서 큰소리냐는 말이 나올 것이다.
결국 그렇다는 것은 오늘 강진호가 험지에서 날뛰어줘야 한다는 뜻인데…….
“썩을…….”
그걸 해석하면 자신들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뜻이었다.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인 상황에 직면한 이명환이 머리를 창에 댔다.
둔중한 진동과 함께 차가운 유리의 한기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도착한 것 같은데?”
버스가 산길로 접어들자 긴장감이 팽팽하게 맴돌기 시작했다. 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이 전쟁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평소 장난기가 많던 놈들까지 얼굴에 철갑이라도 씌운 듯 잔뜩 긴장한 얼굴로 초조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지.’
무인이니 전투를 피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이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이 흔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상대가 상대가 아닌가.
이미 영남회에 비해서 힘이 딸린다고 인정하게 된 지가 십 년이 지났다. 그사이 차이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고, 이제 단독으로는 영남회와 결전을 벌이기가 힘들어진 상황이다.
‘상부는 무슨 생각이지?’
방진훈의 말대로라면 필승 카드가 있는 모양인데, 그 필승 카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보통 회원들은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전의 여하에 따라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버스에서 내린 이명환이 앞쪽을 살폈다. 아직 1초차의 앞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직 정리가 안 된 건가?’
그 순간, 문이 취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고, 방진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에서 내리는 방진훈을 발견한 이명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이 있나?’
방진훈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니, 단순히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뭐라도 씹은 듯이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지 그뿐이었으면 ‘작전 회의 과정에서 이사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구나’ 생각하겠는데, 뒤이어 버스에서 내리는 이중걸의 표정도 영 좋지가 않았다.
“……뭐야?”
버스에서 내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끔찍하다고 해야 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쟁을 지휘해야 할 지휘부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도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말이다.
“왜 저래?”
“그러게 말이다.”
마지막으로 강진호가 버스에서 내렸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강진호의 얼굴은 딱히 찌푸려져 있지 않았다. 일전에 그들이 본 그 강진호의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다.
‘내분이라도 있었나?’
이제 전쟁을 치러야 할 이들이 내분이라니.
좋지 않은 징조를 발견한 이명환이 머리를 굴리려고 할 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명환! 이명환 어딨어!”
“예!”
방진훈의 부름에 이명환이 부리나케 달려갔다.
자신의 앞까지 달려온 이명환을 도끼눈으로 훑은 방진훈이 이를 갈 듯 말했다.
“오늘 저 또라…… 아니, 강진호 씨한테서 절대 떨어지지 마. 알았어?”
“……예.”
저 또라이, 아니, 강진호가 무슨 일을 벌이는구나를 직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