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69
#468.
부딪히다 (3)
“시작하자.”
“으응.”
박유민은 일단 얼굴을 두어번 문질렀다.
‘침착하자.’
그의 친구가 그를 위해서 와준 것이다. 프로 테스트를 받으려고 준비하면 스트레스가 얼마나 쌓이는가. 적당한 긴장은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긴장은 독이 되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박유민은 전 프로가 아닌가. 잃을 것이 없는 아마추어들에 비한다면 그 부담이 막중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훈련하는 내내 위장약을 달고 살 정도니까.
그런 박유민의 상태를 알고 긴장을 풀어주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틀림…….
“진호야.”
“응?”
“그런데 집에는 안 가도 돼? 지금부터 게임 시작하면 보나마나 반쯤 밤샐 건데. 너 언제가려고?”
“유민아.”
“응?”
“……요즘 집에 가도 좋은 게 없다.”
박유민이 눈가를 훔쳤다.
“그러니까 괜찮아.”
“으응.”
박유민은 어떻게든 강진호와 부모님의 관계를 회복시켜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어…… 이거 어떻게 하지?”
“왜?”
“아……. 나 지금 방송하고 있었거든.”
“방송?”
“인터넷 방송인데. 게임하는 화면 송출하면서 시청자들이랑 같이 채팅도 하고 그런 건데…….”
“응?”
강진호가 잠시 뭔가를 떠올리는 듯하더니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방송을 한다고?”
박유민이 빙긋 웃었다.
이런 단순한 말로 강진호에게 현대 문물을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휴대폰에 앱도 깔 줄 모르는 사람에게 뭘 바라겠는가.
‘진짜 영감님 같다니까.’
그와 함께 학교를 나온 20대인데 대체 왜 이렇게 현대 문물에 무지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리냐면.”
“알아.”
“……응?”
“알아. 인터넷 방송 말하는 거잖아.”
“어? 알아?”
박유민이 신기하다는 듯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박유민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인터넷 방송을 안다는 게 이상해?”
“아니. 너는 원래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으니까.”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
강진호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첫 번째 삶. 그가 스스로 포기했던 그 삶에서 강진호는 하반신마비 환자로 십 년을 넘게 살았다. 그 와중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말고는 없었다. 상반신은 나름 움직일 수 있었다지만 정확한 컨트롤이 불가능하다보니 게임도 불가능했다.
덕분에 그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의 동영상을 본다든가 방송을 보는 것으로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좋지 않은 기억이군.’
상황이 아니라 당시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지금의 그라면 하반신 마비가 온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가족도 잃고 친구도 없는 상황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지만 그것도 변명일 뿐이다.
자신보다 더 힘겨운 상황에서도 살아가는 이들을 두 번의 삶에서 수없이 보지 않았던가.
강진호는 살짝 반성을 했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삶은 보너스 같은 것이다. 그러니 더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계로 돌아왔을 초기에는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았는데 최근에는 지금의 상황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조금 더 열심히.’
마음을 다잡은 강진호가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그럼 지금 방송하고 있는 거야?”
“응. 여기 캠 있잖아. 여기로 얼굴이 나가는 거야.”
박유민이 채팅 창과 방송 화면을 강진호에게 보여주었다.
“시청자가 많네? 아마추언데? 이 게임이 그렇게 인기가 있어?”
“게임도 인기가 있고, 나는 예전에 프로를 했었으니까. 그때 팬분들이 봐주시는 거지.”
“게임을 하면서 방송을 할 필요가 있어?”
“혼자 게임하다 보면 사람이 지치고 그런 게 있는데, 그래도 누가 봐준다고 생각하면 좀 힘이 나는 것 같아서.”
“음. 그렇군.”
강진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었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더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 너도 보고 계시겠다. 인사할래?”
“인사?”
박유민이 채팅 창을 올렸다.
― 친군가?
― 존잘.
― 프로 테스트 얼마 안 남았다고 빡겜한다시던데, 친구가 와서 방해하네. 노답.
― 뭐야? 남캠방인가? 내가 방을 잘못 들어왔나? 와꾸가 왜 저래?
― 이름 뭐예요?
― 게스트 섭외력 보소.
채팅창이 주르륵 올라가더니 풍선이 마구 터지기 시작했다.
“이거 별풍이 왜 터지는 거야?”
“너 별풍도 알아?”
“……내가 알면 안 되냐?”
“신기하니까 그렇지.”
― 몇 없는 여자 시청자들 신난 거 보소. 미친 듯이 쏴대네.
― 청정 구역이었는데 이 방도 망했네.
― 박유도 여자 시청자들한테 인기 좀 끌어야지. 솔까 여기 과하게 남탕이잖아.
― 게임 방에 여자가 왜 필요하냐.
― 시청자 수 올라가는 거 보소. 정보력 오지구요.
“뭐라는 거야?”
“……너 잘생겼대.”
“응?”
박유민은 조금 서글픈 눈으로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게임 방에서도 얼굴만 보는 더러운 세상.’
그도 어디가면 못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다. 예전에 게임할 때도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강진호와 한 화면에 잡히면 그 역시 오징어 행을 피할 수 없었다.
웬만한 배우도 못 버티는 일을 그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이게 뭐냐?”
“……좀 떨어져.”
“왜?”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
“게임이나 하자.”
박유민은 우울한 화면으로 게임 창을 열었다. 강진호의 아이디를 찾아 듀오 큐를 돌린다.
‘게임이 잡히려나.’
MMR 차이가 너무 극심해서 대체 어느 구간으로 게임이 잡힐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에는 일반 게임을 돌려서 어떻게든 게임이 잡혔는데 지금은 연습을 해야 하니 랭크 게임을 돌릴 수밖에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아무리 프로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팀에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프로가 되어 대회에 나가면 그도 몇 번은 그런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연습이 입단 테스트를 해야 하는 지금 그에게 꼭 필요한 연습인가는 일단 접어두고 말이다.
박유민이 슬쩍 고개를 돌려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 브론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내가 방을 잘못 찾았나? 여기 심해 방이냐? 저기 똥색 뭐냐?
― 세상에 내가 챌린저와 브론즈가 듀오 돌리는 꼴을 보네. 이거 불법 아니냐? 대리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 과연 챌린저는 브5를 캐리할 수 있을 것인가? 희대의 난제다, 이거.
―다 음 시즌부터 2티어 이상 차이나면 듀오 안 되게 바꾼다더라. 이거 마지막 꿀잼이다. 개꿀잼!
“하하하하…….”
뭐 됐어. 팬분들이 좋아하시니까.
이런 날도 있어야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큐가 잡혔다. 픽 창으로 화면이 넘어가는 것을 확인한 박유민이 넌지시 물었다.
“진호야. 어디 갈래?”
“탑.”
그래. 어울린다.
너는 탑을 가야지. 그래.
정말 다행스럽게도 픽 창에서는 별 문제가 없이 원하는 라인으로 갈 수 있었다. 미드를 잡은 박유민의 눈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캐리한다.’
탑에 커다란 똥 덩어리가 있지만, 브론즈 5티어인 강진호와 MMR을 맞추다보니 상대편의 MMR도 그리 높지 않았다. 이 구간이면 강진호가 최소한만 해줘도 그가 강제로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빠르게 템을 산 박유민이 자신의 라인으로 올라갔다. 이 게임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박유민의 귓가에 섬뜩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직 미니언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뭔가 스킬을 쓰고 퍽퍽 거리는 소리가…….
“진호야?”
― 퍼스트 블러드.
“버, 벌써?”
기겁을 한 박유민이 고개를 돌려 강진호의 화면을 보았다.
“헐? 땄어?”
당연히 죽은 줄 알았는데 죽은 게 아니었다. 강진호가 당당히 탑으로 올라온 적 챔피언을 잡아내고 귀환하고 있었다.
― 다이아 잡는 브5 클라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저거 대리나 부캐네. 브5가 다이아 잡는 게 말이나 되냐? 신고해야지.
― 서로 템 없이 1랩이면 가능할 수도 있지.
― 아 화면 놓친 게 아쉽다. 박유민 진짜 그걸 놓쳐서 못 보여주네. 클라스. ㅉㅉ.
― 진짜 이거 꿀잼 같은데.
― 오빠 게임도 잘 하시네요.
그동안 그렇게 게임을 해도 잘 터지지 않던 풍선이 뻥뻥 터지기 시작했다.
‘묘하게 꿀잼 각인데.’
스크롤이 광속으로 올라가는 채팅 창을 보며 박유민이 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 그의 몸을 굳게 만들었던 긴장이 싹 날아간 기분이었다.
‘내가 조금 민감했네.’
그 강진호가 같이 게임을 하러 와줬는데 환영은 못할망정 불편하게 느끼다니……. 이건 반성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 일단은 게임을 즐기자. 즐기는 게 우선이야. 게임을 즐기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어.’
사소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된 박유민이 미소를 지으며 마우스를 잡았다. 어쩐지 이번 게임은 정말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채팅창의 스크롤이 올라갔다.
― 탑! 탑탑!
― 유민아! 탑 잡아라! 탑!
― 탑에 또 붙는다!
“헐?”
박유민이 깜짝 놀라 미니맵을 찍었다. 탑으로 올라간 화면에 강진호의 챔피언과 적의 챔피언이 죽어라 싸우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 탑신병자 오지구요.
― 남자의 싸움. 물러설 수 없는 승부.
― 이쯤 되면 병원 가야지.
― 저 사람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진성 또라이네. 또 붙는 거 봨ㅋㅋㅋㅋㅋㅋㅋ
― 이쯤 되면 CS는 의미가 없다. 누가 이기냐의 싸움이다.
묵묵히 게임만 해서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받던 박유민의 방송이 꿀잼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 적을 처치했습니다.
“또?”
박유민이 눈만 껌뻑거렸다.
‘이게 이상한 건가. 아니면 이상하지 않은 건가.’
브론즈 5 주제에 다이아몬드 클래스를 잡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강진호의 피지컬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강진호는 과거 갤럭시 크래프트를 프로 우승자급으로 하던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게임의 유형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다지만 기본 피지컬이 남다른데 브론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브론즈지.’
어쩌면 게임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저번에는 컨디션이 별로였을 수도 있고. 박유민은 오늘 강진호의 게임을 유심히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이전에 일단 내 라인부터…….
― 아군이 당했습니다.
“응?”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진호야?”
“정글이 왔다.”
“…….”
“아직 2:1은 못 이기는군. 이해했다.”
“그, 그래.”
솔킬을 두 번이나 땄는데 정글 와서 한 번 따인 정도야 별 문제가 없겠지.
박유민은 그리 믿었다.
하지만 곧 그게 착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아군이 당했습니다.
― 아군이 당했습니다.
― 아군이 당했습니다.
“……진호야, 진호야!”
“…….”
“왜 이러니 진호야!”
“다음엔 이길 수 있다.”
박유민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박유민이 자신의 챔피언을 뒤로 슬쩍 밀어놓고는 탑 라인으로 화면을 돌렸다. 그리고 가만히 강진호의 플레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