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78
#477.
갈구하다 (2)
사이토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뭐냐.’
저놈은 대체 뭐냐고!
강진호, 강진호, 강진호…….
최근 몇 달간 그의 귀를 가장 괴롭힌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건 귀찮고 짜증 난다는 의미였지, 결코 두렵거나 무섭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상황과 정황, 그리고 지역이 얽히고설켜 강진호를 보호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진호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활동했다면 결코 타국에까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존재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사이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진호가 한국에 있어서 그만한 영향력과 인지도를 가질 수 있던 것이 아니다.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강진호라는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가려진 것이다.
또 하나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사이토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가 직접 지도하고 가르친 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분노가 일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인식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마치 소리가 나지 않는 무성 영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기묘한 이질감.
그런 그를 현실로 끌어내린 것은 오이즈미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합니까!”
“…….”
유영하던 그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입술을 질끈 깨문 사이토가 앞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검이 우상에서 좌하로 내리그어진다. 그의 앞에 검은 무복을 입고 있는 조직원의 몸이 어깨에서부터 옆구리까지 잘리며 좌우로 튕겨 나간다.
“이…….”
일본은 전국시대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드러난 세계는 수백 년간 통일되어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세계는 달랐다. 야쿠자들이 지역을 나누어 항쟁을 하듯이 그들 역시 여러 계파로 나뉘어서 항쟁을 하고 있었다.
무인들의 항쟁에 피가 빠질 리가 없다.
그 역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았고, 그의 손으로도 수십, 수백을 죽였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삶에서 단 한 번도 이런 광경은 없었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느낌.
멀쩡히 살아 있던 사람의 몸이 순식간에 반으로 잘려 튕겨 나가는 모습은 끔찍함을 느끼기에도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비현실감을 더하는 것이 또 있었다.
좌우로 튕겨 나간 시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강진호의 모습.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검은 연기로 전신을 두른 강진호가 보기만 해도 심장이 덜컥거리는 핏빛 안광을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모습.
말 그대로 악마의 현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양손에 든 검이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난다. 새하얗게 빛나는 검을 든 악마라니, 그건 너무도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대체 뭐냐, 저놈은?’
무인에게도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상식을 아득하게 넘어섰다. 단순한 강함만이 아니다. 외형, 분위기, 그리고 사용하는 무학과 사고방식까지…… 모든 것이 그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그중 사이토가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무위였다.
파아아아앙!
귀를 찢어버리는 듯한 파열음이 터진다.
뭔가가 어디에 부딪쳐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검끝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다.
사람이 쇠를 잡고 휘둘러서 저런 소리를 낸다는 걸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바로 앞에서 보고 듣고 있는 사이토도 믿을 수가 없는데.
“저, 전멸합니다. 이대로면 전멸합니다! 대책을!”
멍청한.
패닉에 빠지지 말라고 그만큼이나 이야기했는데, 왜 패닉에 빠진다는 말인가. 사람은 패닉에 빠지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일단은 침착해야 한다.
침착…….
언제까지 침착하라는 거냐!
“빌어먹을 새끼!”
사이토가 도를 뽑아 들었다. 사람을 말 그대로 짚단처럼 썰어 넘기며 강진호가 전진하고 있다. 이제는 감히 그에게 맞서겠다는 용기를 가진 이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으으으…….”
달아나야 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로는 등을 돌리고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있지만, 몸은 머리의 명령을 거부하고 삐걱댔다.
“우으으…….”
강진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본 일본의 무인 하나가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뒷걸음질을 치려 했다.
꾸준하게 단련해 온 그의 몸은 결코 그의 의지를 배반하지 않았다. 느리지만 어떻게든 그의 말을 따르려 했다.
하지만 강진호가 걸어오는 속도는 그가 도망가는 속도보다 빨랐다.
턱!
강진호가 그의 바로 앞으로 다가와 목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조여오는 손이 금방이라도 목을 터뜨려 버릴 것 같았다. 방금 눈앞에서 십여 명을 도살한 살인귀가 자신의 목을 잡고 있다는 공포.
이성을 유지하려야 유지할 수가 없다.
“적이라는 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걸까?”
어둠이 뒤틀렸다.
입이 있어야 할 부분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틀린다.
그 뒤틀림이 의미하는 것은 너무도 명백했다.
비웃음.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적은 두 가지로 이루어지지. 적의와 가능성. 적의를 가지고 있는 자가 내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을 때, 적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건 물음이었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기도와 식도가 조여 숨조차 쉴 수 없는데, 어떻게 대답을 하란 말인가.
하지만…….
대답을 할 수 없는 와중에서도, 숨이 막혀 머리가 새하얘지고 코와 입으로 물이 줄줄 새어 나오는 상황에서도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지배했다.
강진호의 말이 그의 귀에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나에게 적일까, 적이 아닐까?”
적이 적의와 가능성을 갖춰야 이루어지는 개념이라면, 그는 강진호의 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미약한 적의는 이미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고, 그가 강진호를 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희망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목을 조여오는 고통과 반대로 머릿속에서는 혹시나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문제가 뭔 줄 알아?”
강진호가 사내를 자신의 앞으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검고 짙은 마기 사이로 피처럼 붉은 강진호의 눈동자가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야.”
우드득.
목이 부러진 사내가 길게 혀를 빼물었다.
적의를 가지지 못한 자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내렸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강진호는 무척이나 기준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죽은 이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손에 들린 시체를 바닥으로 무심하게 던져 버린 강진호가 공포에 질린 눈동자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이게 아니겠지.”
탁하고 낮은 저음이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그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겨우 이 정도가 아니겠지. 그렇지? 그게 아니고서야 나를 잡겠다고 몰려오지는 않았을 거 아냐.”
“…….”
사이토가 이를 꽉 깨물었다.
핏발이 선 그의 눈이 강진호를 쫓았다.
“덤벼봐.”
강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기회를 주지. 살아남을 기회를 말이야. 정비해. 그러고 나서 다시 덤벼.”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어차피 달아날 곳도 없잖아? 망망대해로 몸을 던져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지.”
움찔하는 이들도 있었다.
확실히 흘려들을 수 없는 제안이다. 보통 사람에게 이 밤바다로 뛰어들라는 것은 자살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지만, 그들은 무인. 보통 사람이 아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잘만 하면 헤엄을 쳐서 뭍에 닿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저 괴물과 싸우는 것보다는 백배 정도 살아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다만, 해안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어야겠지.”
맥이 탁 풀렸다.
실감이 난다.
함정에 빠졌다는 실감이.
얼기설기 짜여진 그물이라 만만히 봤지만, 알고 보니 그물이 하나가 아니었다.
이리저리 구멍이 나 있는 그물이라도 여러 겹을 겹쳐 놓으면 그 어떤 그물보다 촘촘해지는 법이다. 지금 그들은 그 그물에 걸린 물고기 꼴이었다.
남은 것은 그물 안에서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거나, 그물을 빠져나가려 발악하다가 질식해 죽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수치는 이걸로 충분하다.”
이를 가는 듯한 사이토의 음성이 새어 나왔다.
대일본제국의 무사들이 한낱 조선인에게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광경을 보았다. 이건 죽는다 해도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그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모조리 부서지는 광경이었으니까.
“죽어도 일본제국의 사나이답게 죽어라! 이것이 일본의 무사들의 모습인가!”
사이토의 피 끓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겁을 집어먹고 있던 무사들의 눈에 결의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장악력은 인정할 만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듯하지만 말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주면 좋겠는데?”
강진호의 태연한 목소리에 오이즈미가 몸을 떨었다.
차라리 조금 전의 끔찍한 그 목소리가 낫다. 지금 저 목소리에 어린 비웃음은 더 참을 수 없었으니까.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군. 네놈에게 이제 일본제국의 사나이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일본혼이 무엇인지 말이야!”
“알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사에는 나도 관심이 있었으니까. 너희가 말하는 그 일본혼이라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지. 그걸 중국에서는 뭐라고 하는 줄 아는가?”
“……중국?”
“당랑거철.”
“…….”
“전투기 하나 몰고 항공모함으로 돌진하는 것이 너희의 미학이라고 하더군. 재미있어. 중국에서는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그쪽에서는 찬양받는다니 말이야. 이게 문화의 상대주의라는 건가?”
“이놈이!”
“다만, 그것 역시 중국의 반응이겠지. 나의 반응은 아니야. 내 반응은 조금 다르지.”
강진호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조선인으로서 할 말이야 빤하겠지. 피해 의식만 머리에 가득 찬 것들!”
“아니, 아니야.”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국적이니 뭐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결론은 같으니까. 처음 내게 이를 드러낸 순간부터 너희의 운명은 결정된 거야.”
“…….”
“운명을 바꾸는 데는 모험이 필요하다고 하지. 자, 이제는 너희의 용기를 시험해 볼 차례야. 너희가 말하는 그 일본혼이라는 게 내게도 통할지 한 번 보자고. 결과는…… 빤하겠지만 말이야.”
“이 빌어먹을…….”
그 순간, 오이즈미는 보았다.
강진호가 거리를 좁혀 자신의 바로 앞에 나타난 것을 말이다.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새하얀 검이 그의 머리로 쇄도하고 있었다.
‘이, 이건 거짓말…….’
명백하게 다가오는 죽음.
죽음은 흰 빛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빛 너머로 보이는 붉은 안광. 살짝 호선을 그리고 있는 붉은 안광을 보며 오이즈미는 직감했다.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결코 이 사내는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이 사내를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언젠가 그들은 이 광경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후회라는 감정이 채 생겨나기도 전에 강진호의 적루가 오이즈미의 육체를 반으로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