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66
#865.
개선하다 (5)
“부모님도 굉장히 좋아하시겠죠.”
이현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이현수는 기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주는 이현수가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이거, 중요한 문제예요.”
“……응?”
“이현수 씨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모르시겠지만, 아무리 회주님이 능력 있고 힘이 있다고 해도 부모님에게는 그냥 휴학하고 집에서 노는 아들일 뿐입니다.”
어?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까지 명문대를 보내놨는데, 다른 애들은 스펙 쌓고 학점 쌓는 동안 매일같이 차 몰고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놀러 나가는데,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이시겠어요?”
이현주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혹시 최근에 부모님의 시선이 조금 싸늘해지지 않았나요, 회주님?”
“…….”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싸늘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 ‘조금’이라는 말을 어느 정도로 수정해 주어야 하는지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떡락했지.’
한때는 강진호가 집안의 희망쯤으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어쩌면 그때가 강진호의 황금기였을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모두 강진호가 뭐든 알아서 잘할 거라 믿었고, 강진호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구박하는 어머니와 혀를 차는 아버지, 그리고 미묘한 눈으로 감시하려는 여동생까지.
사회적으로 볼 때, 강진호의 지위와 위상은 말도 안 되는 상승을 이뤄냈지만, 집안의 눈으로 봤을 때, 강진호는 취업 시장에 발을 들일 생각이 없는 백수일 뿐이다.
아직은 학생이라는 방패막이가 있을 뿐이지.
“……심각하게 싸늘하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현수는 여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게…….”
“잠시만요, 이 실장님. 제가 말을 끝까지 들어달라고 했잖습니까. 제발 좀!”
“……해봐.”
이현주가 한숨을 쉬더니 물병을 집어 들었다. 물을 꿀꺽꿀꺽 넘긴 이현주가 양 소매를 걷어붙였다.
“농담조로 말하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생각을 하셔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면 회주님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제거든요.”
“어?”
이현주가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실장님 집 있으세요?”
“……없는데?”
“집은 어떻게 사실 거예요?”
“돈 모아서 사면 되는 거 아냐?”
글렀다.
이 인간은 확실하게 글렀다.
심지어 위긴스뿐 아니라 강진호도 미묘한 시선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제,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현주가 고개를 내젓고는 말을 이었다.
“집을 사기 위해서 대출을 받는 게 바깥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별일이 아니지만, 무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왜냐면 직업이 없고, 고정 수입이 없거든요.”
“돈 주잖아.”
“어느 은행에서 출처도 없는 현금을 수익으로 보고 대출을 내줘요?”
“…….”
“현실을 보세요. 말이 총회이지, 외부에서 보면 여기는 직업 없는 백수가 만 명이 넘게 모여 있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곳이라구요.”
확실히 그렇다.
아무리 무인이 바깥세상과 거리를 두고 산다지만, 주민등록증은 나오지 않는가.
“그럼 청년 실업 통계에서도 총회가 큰 역할을 하고 있겠네.”
“지분율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럼 실제 실업률이 통계보다 낮다는 거니까 좋아해야 하는 건가…….”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기뻐할 일이지만, 총회의 입장에서 보면 서글픈 일이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애들이 다들 백수가 되어버리는 상황이니까.
“무인이라고 해서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죠. 상황에 따라서는 진짜 가족은 상황을 알아도, 친척들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다들 명절을 싫어하죠.”
이해가 간다.
“‘너도 이제 취업해야지’ 공격이 수도 없이 들어오겠군.”
“네. 그리고 ‘친구 아들은 이번에 대기업에 들어갔다던데’ 소리도 수도 없이 듣겠죠.”
“……지옥이네.”
이현수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챘다.
말이야 장난스럽게 했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위와 신분이 필요하다. 총회의 소속되는 대가로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건 심각한 페널티였다.
“확실히 이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음…….”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감투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 사람 앞에 붙는 지위가 사람을 얼마나 달라 보이게 하는지 강진호는 이미 알고 있다. 중원에서 명성을 얻을 때와 명성이 없을 때의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 수도 없이 겪어보지 않았던가.
“음, 알겠다. 그리고?”
“접점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이현주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총회를 언제까지 숨길 수 없습니다. 한계까지 숨기다가 어느 순간 드러나야 할 상황이 된다면, 그 파급력을 감당하기가 힘들 겁니다. 그럴 바엔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준비가 100년 뒤에 활용될 수도 있고, 당장 5년 뒤에 쓰일 수도 있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준비할수록 좋습니다.”
“이해했다. 또 있나?”
“큰 줄기는 대충 말씀드린 게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자잘한 이점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현주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패기롭게 말하고는 있지만, 자연스레 밀려드는 긴장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강진호가 그 손을 힐끔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단점은?”
“돈을 내야 합니다.”
너무도 간단하고, 간결하고, 그리고 치명적인 문제였다.
“합법화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금 흐름을 공개한다는 것이고, 그 자금 흐름에 발생되는 이익에 대한 세금이 발생합니다.”
“감안해야 하고?”
“네. 이득이 훨씬 크니까요.”
이현주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단점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일단 합법화를 하게 되면, 과거보다 조금 더 엄밀한 자금 흐름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가욋돈으로 들어오고 있는 불법적 자금이 원천 차단된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이현주가 어깨를 으쓱한다.
“할 수는 있겠죠.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회주님께서 포토 라인에 서셔야 합니다. 하긴 수많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사진 찍는 경험도 일반인은 웬만해서는 해볼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기는 합니다만…….”
“사양하지.”
그건 절대로 사양이었다.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큰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세금의 발생이고, 두 번째는 등록을 대가로 지금까지 누적되어 있던 세금을 왕창 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바깥 세계와 가까워지는 만큼 우리의 노출이 늘어난다는 것. 뭐, 그 정도겠죠.”
“그리 쉽게 말할 게 아냐.”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바깥세계와 가까워진다는 것, 그리고 노출이 증가한다는 건 위험성도 증가한다는 뜻이야. 현실과 무인계가 접촉할 때 무슨 사단이 나는지 몰라서 그래?”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장님, 지금도 충분히 위험해요.”
“…….”
“드러나서 얻는 손해보다 숨겨서 지속되는 손해가 더 큽니다. 웬만큼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게 진행되면 제게 과부하가 쏠린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괜히 귀찮은 일 건드려서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원망만 듣는다는 것두요. 그런데 그걸 모두 감안하고도 진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마치 최후 변론 같은 말이었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어찌 생각하나?”
“조금 투박하지만…….”
위긴스가 빙그레 웃는다.
“세련되게 진행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련되게?”
“기업화를 이쪽에서 직접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와줄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도와줄 사람?
그런 이들이 있었나?
“재경 말하는 건가?”
“흐음, 재경. 재경도 좋은 조언자가 되겠죠. 하지만 재경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우리를 공개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죠. 상부의 몇몇이라면 모를까, 실무진에게 공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당연히 정부가 그 일을 해주겠죠.”
“……정부?”
나라?
의문 어린 강진호의 시선에 위긴스가 미소로 답했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굉장한 호재입니다. 빤히 돈을 쓸어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건드리지 못한, 오히려 자신들이 자금을 은폐하는 걸 도와줘야 했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겠다고 선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입속으로 알아서 들어와 주는 호구를 내칠 이유가 없죠. 온갖 편의를 다 봐줄 겁니다. 정보를 공개하고 세금을 충실하게 내겠다는 조건으로 이번 해까지의 이익분은 건드리지 않게 하고, 법적으로 애매해진 명의를 다 되찾게 해달라고 하면 됩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이현수가 눈짓을 준다.
모르겠어도 일단 알겠다고 하라는 뜻이다.
“그, 그렇지.”
“흠, 이런 설명이 별 의미가 없겠군요. 로드께서는 단 하나만 선택하시면 됩니다. 할 것인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진행하고, 총회를 가장 최선의 상태로 만들려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진중한 위긴스의 시선이 강진호에게 와닿았다.
“그 선택은 로드의 몫이죠.”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군.”
“예. 충분히 드리지요.”
“위긴스.”
“예, 로드.”
“진행하는 방향으로 추진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
“결정하신 겁니까?”
“아직 결정을 내린 건 아니지만.”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을 수놓은 작은 무늬들이 어지럽다.
“결정이 어떻게 될지는 알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변화는 언제나 두렵고, 언제나 껄끄럽지. 내게 익숙하던 것들을 버리고 다른 길을 걷는다는 건 언제나 그래. 심지어 지금의 생활이 나쁘지 않다면 더더욱 그렇겠지. 다만…….”
강진호가 이제는 확신에 찬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움직이지 않는 자가 도태된다는 건 알고 있어. 어쩌면 이 변화가 우리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두려워서 멈춰 있다가는 결국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로드.”
“현명한 결정이세요.”
이현수는 무표정했다.
강진호가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다른 생각이면 말로 해봐.”
“회주님.”
“응?”
“저는 조언을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 조언이라는 것은 결국 방향성을 결정하기까지의 문제죠.”
“…….”
“회주님이 방향을 정하셨다면, 저는 그 방향을 따릅니다. 말이 되지 않는 방향이라면, 그걸 말이 되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만드는 게 제 몫입니다. 결정하셨으면 의견을 구하지 말고 명령을 내리십시오.”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이현수의 의도는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처음 그가 총회에 왔을 때와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달라지고 달라져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더 달라질 것이다.
“움직여. 가장 완벽한 방법을 찾아내.”
“알겠습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사람들이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강진호는 가만히 소파에 몸을 묻었다.
‘바쁘군.’
총회는 빠르게 변하고 또 변한다.
제대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조차 이 흐름에 휘말릴 것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나아간다. 조금씩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