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08
#907.
침몰하다 (2)
‘뭐야, 저거?’
이명환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급박하기 그지없는 상황임에도 그는 손을 멈추고 말았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막 소리를 지르려던 옆 사람도 이내 손을 놓고 이명환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바라본다.
멍하니.
눈앞에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현상을 말이다.
“저, 저게…….”
이명환이 이를 악물었다.
배 위가 검은 화염으로 넘실거린다. 하지만 이명환은 그게 화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기.
저건 마기다.
이미 몇 번이나 보았다. 강진호의 마기가 화염처럼 넘실거리는 것을.
너무도 검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마기는 상대적으로 이 바다 위에 내려앉아 있는 어둠을 밝게 보이게 만들 정도다. 짙고 짙어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어둠.
더없이 정적이어야 할 그 깊은 어둠이 더없이 요사스레 흔들리고 있었다.
몸이 떨려온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저런 게 가능한 거지?’
사람은 아는 만큼 보기 마련이다.
과거, 이명환은 강진호의 마공이 어느 수준에 올라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고수에 대한 이해가 없고, 마공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그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모호한 짐작만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과거와는 달라졌다.
마공을 익히면서 마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마공을 익히면서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졌다. 그렇기에 예전의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검은 화염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이제는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강기? 아니, 저건 강기 따위가 아니야.’
세상의 어떤 강기도 저런 식의 활동성을 가지지는 못한다. 그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다음 단계. 인간을 넘어선 초인들만이 설 수 있는 영역의 무언가다.
콰드득, 콰득!
불꽃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배 위에서 넘쳐흐른 불꽃이 난간을 우그리고 부러뜨린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겠는지 이제는 숫제 배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였다.
‘저…… 저거?’
으드드득!
강철로 만들어진 배의 모서리가 우그러진다. 이제는 숫제 처음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흉하게 박살이 나고 있었다.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명환 역시 무인이고, 마인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광경을 ‘무공’이라든가, ‘마공’이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고 있었다.
물론 이명환도 할 수 있다.
배의 난간과 모서리를 우그러뜨리는 일쯤은 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두 주먹으로 치고 부수고 밀어내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저건 차원이 다르다.
성인 남성이라면 다른 사람 하나 정도는 들어 올릴 수 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제자리에 앉은 채 손가락 하나로 사람들 들어 올리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어떻게’다.
흘러나오는 기운만으로 주변을 저렇게 초토화시킨다는 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사람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진호다. 그의 회주이자 그의 스승이다. 강진호가 강하다면 누구보다 좋아해야 할 사람이 바로 이명환이다.
하지만 지금 이명환은 기쁘지 않았다. 기쁠 수가 없다. 저걸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미친.”
어느새 전투가 멈춰 있었다.
서로 싸우고 있다고 한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무인이다. 자신의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힘의 향연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저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본다.
피아도 없고, 적아도 없다.
생전 처음 본 힘의 압제 앞에 그저 영혼을 빼앗긴 듯 몸을 떨 뿐이었다.
수십 줄기의 유성.
검은 불꽃에 대항하는 듯한 수십 줄기의 유성이 솟구쳐 오른다. 그러고는 불꽃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이명환의 눈에 그건 너무도 부질없는 몸부림으로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미처 뭔가 감상을 떠올리기도 전에 검은 불꽃이 충천하면서 푸른빛의 유성을 그대로 집어삼킨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앗!”
“뭐, 뭐야!”
충격이 세상을 뒤덮는다.
귀를 찢는 소음과 함께 배와 바다가 폭풍이라도 만난 듯이 흔들렸다. 하늘과 바다가 뒤집히고, 바다가 하늘로 거꾸로 솟구친다.
이명환은 배의 난간을 꽉 움켜잡았다.
이런 흔들림 앞에 이 작은 배가 무슨 버팀목이 되겠냐마는, 손에 잡을 것이 없는 것보다는 백배는 나았다.
출렁인다.
솟구쳐 오른다.
배는 마치 바텐더의 손에 들린 거대한 셰이커 같았다. 이명환은 셰이커 안에 든 얼음처럼 뒤흔들렸다.
“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배 위에 있는 그들이 이럴진대, 바다에 있는 이들은 어떻겠는가.
물에 처박힌 채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이들이 수면에서 사라져 갔다.
물 안에서는 한 번 방향을 잃어버리면 끝이다. 더구나 지금 그들에게는 위가 어디인지를 알려줄 빛조차 없지 않은가. 부력으로 솟구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바다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으니까.
“끄으으윽.”
이명환은 난간을 꽉 잡은 채 전율했다.
“빌어먹을, 이런 충격을 저 배가 버틸 수 있…….”
끼이이이이이이잉!
이명환의 두 눈이 떨렸다.
“야이, 빌어먹을 새끼야! 주둥아리 털지 말라고 했지!”
“아, 아니, 내가 뭘…….”
“여하튼 진짜! 도움 되는 게 없어요!”
물벼락을 맞아 홀딱 젖은 마염들이 이명환에게 쌍욕을 쳐 댔다.
하지만 이명환은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입을 닫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명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객선이 천천히 옆으로 기우는 것이 확연히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자, 잠깐, 저거…… 애초에 좀 가라앉은 것 아닌가?’
수면이 워낙 요동치고 있어서 확실하게 확인이 되지는 않지만, 처음에 봤던 것에 비해 갑판이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 가라앉는다!”
“빌어먹을!”
기이이이이이이잉!
거대한 철골이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바다에 울려 퍼졌다.
“어떻게 좀 해봐, 인마!”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여기서 그가 뭘 하라는 말인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당황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저만한 배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누가 와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이었다.
“오오오오오오오!”
거대한 함성.
듣는 것만으로도 혼을 떨리게 만드는 거대한 함성 소리가 귀를 찢듯 울려왔다.
그러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바다가 반으로 갈라진다.
잠시 동안이나마 이명환의 눈에는 그 광경이 확실하게 보였다. 어마어마한 경기가 바다를 짓누르며 일직선으로 내뿜어진다. 물이 좌우로 밀려나며 갈라진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것처럼 바다가 정말 갈라지고 있었다.
그 경기에 휩쓸린 이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좌우로 튕겨 나갔다. 마치 바다 사이로 거대한 터널이 생긴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정신 차려라!”
커다란 목소리.
‘바토르 님?’
“이 병신들아!”
그 순간,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거야!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저 새끼들부터 떨어뜨려!”
이현수였다.
바닥을 굴렀는지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이현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난데없이 욕을 퍼먹은 덕분인지 정신이 번쩍 든다.
배가 가라앉든 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지금 타고 있는 배를 지키는 일이다.
“으라차아아아!”
이명환이 권풍을 날려 배에 달라붙어 있는 일본의 무사들을 후려쳤다. 예상 못한 일격을 맞은 이들이 추풍낙엽처럼 배에서 떨어져 나갔다.
“자리 지켜! 버틴다!”
크게 고함을 지르며 이명환이 난간에 들러붙었다. 그러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침몰하는 여객선을 바라보았다.
‘회주님은 괜찮으시겠지?’
그 사람을 걱정하는 게 황당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된다.
이명환이 고개를 들어 배 위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침몰하는 배가 그의 눈에 확연하게 박혀들었다.
* * *
모든 것은 끝났다.
생각보다 조금 싱겁게.
나카타 유지는 멍한 얼굴로 갑판 위를 바라보았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피로 물들어 버린 배 위에 오롯이 서 있는 한 남자뿐이다.
강진호.
양손에 검을 늘어뜨린 그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에 들린 검만 아니라면 누구도 저 모습을 바로 전까지 격전을 치른 자의 모습이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여유롭다.
나카타 유지가 실실 웃었다.
그래, 저게 강자다.
강자란 별다른 게 아니다.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기에 강자다. 나카타 유지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지는 이 전장도 저 남자에게는 집 앞의 정원과 별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위협이 없으니까.
조금 전, 그를 향해 목숨을 걸고 달려든 암월조원들은 강진호에게 있어서는 정원에서 귀찮게 날아다니는 날파리와 별다를 바 없는 것이다.
‘적어도 벌 정도는 됐어야 할 텐데.’
서른 마리의 벌이라면 충분히 위협적일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벌조차 되지 못했다.
모두가 죽었다.
너무도 허망하게.
차라리 눈앞에서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광경을 보았다면 지금 같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카타 유지가 본 광경은 유성처럼 낙하하는 암월조원을 강진호의 검은 불꽃이 모조리 집어삼키는 모습뿐이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처음부터 보지 않았다면 이곳에 암월조원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카타유지 역시 알고 있다. 세상은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아무리 완벽하게 짠 계획일지라도 실패할 수 있다.
나카타 유지는 이번 원정을 앞에 두고 100%의 성공을 자신하지는 않았다. 승산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실패했다.
그들은 패했다.
그 사실은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실패에도 격이 있는 법이다. 나카타 유지의 머릿속에는 이처럼 처참한 패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패배라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참패였다.
왜…….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
대체 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너무도 확연하다.
지금 그 이유가 고개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정확하게 나카타 유지를 바라본다.
“허…….”
나카타 유지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평범하다.
지금의 강진호를 본 나카타 유지의 감상은 그 것이었다. 양손에 검을 들고 있는 저 청년을 평범하다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조금 전까지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너무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괴리감.
배 속을 뒤집는 그 괴리감에 나카타 유지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 나서…….
저벅.
강진호가 나카타 유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이미 한참 기울어 버린 배를 마치 평지처럼 느긋하게 걸어온다.
나카타 유지의 떨리는 시선과 조우한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