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7
#96.
대기하다 (2)
“사, 사단장님요?”
하진남은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단장이라니.
일개 병사에게 있어서 사단장은 눈이 캄캄해질 정도로 아득한 높이에 있는 사람이다.
그럼 간부에게는 어떨까?
간부에게 있어서 사단장이란 그냥 신과 같은 존재였다.
일반 병에게 사단장이란 그저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일 뿐이었다. 아무리 말 한마디로 산을 깎을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2년만 버티면 영원히 안녕을 고하는 병에게 사단장의 위엄이 제대로 와 닿을 리 없었다.
하지만 간부는 아니다.
그들은 앞으로의 군 생활을 계속 사단장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사단장의 눈 밖에 나기라도 하는 순간, 진급은 물 건너가는 것이고, 한직 중의 한직으로 계속 돌 수밖에 없었다.
군인으로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 그래! 사단장님 방문하신다니까, 당장 서류 들고 다시 들어와.
“사, 사단장님이 왜 오시는 겁니까?”
― 강진호 때문에 오신다잖아!
“강진호가 사단장님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인마!
하진남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신병이라 서류라고 해봤자 신교대에서 넘어온 것밖에는 없습니다만?”
― 그거라도 일단 들고 와!
“예. 당장 가겠습니다.”
하진남은 전화를 끊고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철승아! 차 대기시켜라! 빨리! 대대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하진남은 행정반으로 전력으로 달렸다.
“이게 뭔 일인지.”
대대장은 어안이 벙벙하여 헐레벌떡 뛰어오는 하진남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다면 아무 준비도 없이 사단장님을 맞을 뻔했다.
“대대장님!”
하진남이 손에 든 파일 철을 대대장에게 내밀었다.
“이리 줘봐.”
서류를 본 대대장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서류를 다시 하진남에게 내밀었다.
“혈연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
사단장님의 인척 관계는 이미 꿰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물론, 강진호의 부모님들도 사단장님과 인척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사단장의 사돈의 팔촌까지 꿰고 있는 그가 그걸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럼 뭐지?”
그런데 왜 강진호 때문에 방문을 한다고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의문이 채 풀리기도 전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단장님 위병소 통과하셨습니다.”
“야! 자세 잡아!”
대기하고 있던 간부들이 다들 차렷 자세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올라오고 있는 1호차의 위엄이 그들을 일순 긴장하게 만들었다.
“오십니다.”
이윽고 1호차가 천천히 그들의 앞에 멈추어 섰다.
딸깍.
문이 열리고 두 개의 별을 이마에 단 사단장이 차에서 내렸다.
“필승!”
대대장이 커다란 목소리로 경례를 하자 사단장이 손에 들고 있던 지휘봉을 까딱이며 경례를 받았다.
“언제 또 연락 받고 나와 있었나?”
“위병소에 도착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쯧쯧.”
사단장이 영 재미가 없다는 투로 고개를 젓고는 대대장을 가리켰다.
“들어가지.”
“예, 사단장님!”
하진남은 거의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평소 시크하고 담담한 태도로 귀감이 되던 대대장이 갓 전입한 신병처럼 고함을 지르며 경례를 하는 모습이 너무 어색하기만 하다.
“찰리 포대장!”
“대위 하진남!”
“따라와.”
“예! 알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치 신병인 것처럼 꽥꽥 소리를 지르며 대답한 하진남이 군기가 잔뜩 든 얼굴로 대대장과 사단장을 따라 대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상석에 앉은 사단장이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사단장님께서 워낙에 공사다망하시다 보니 뵙기가 힘들었습니다.”
“내가 신경을 많이 못 쓴 것도 사실이지. 화력은 포대에서 나오는 법인데 말이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다름이 아니고…… 이번에 대대에 강진호라는 신병이 새로 들어왔지?”
“예, 그렇습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그 신병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사단장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자 대대장이 고개를 돌려 하진남을 바라보았다.
하진남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쩌라고?
그도 나름 포대장인데 며칠 전 새로 온 신병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일일이 신경을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트러블은 없고?”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좀 볼 수 있겠나?”
하진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강진호 이병은 지금 포대에 있습니다.”
“포대?”
대대장이 부연을 했다.
“강진호 이병은 현재 찰리 포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아, 찰리는 독립 포대지.”
사단장이 깜빡했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럼 지금 여기에 없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흐음, 그래?”
사단장이 지휘봉을 잡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찰리로 넘어가 볼까?”
하진남이 전력을 다해 소리쳤다.
“지금 당장 차를 보내서 강진호 이병을 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뭐, 굳이 그럴 필요 있나. 내가 가면 되는데.”
“아닙니다, 사단장님! 병사가 오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래?”
하진남의 필사적인 설득에 사단장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그럼 불러봐.”
“예! 알겠습니다!”
하진남이 자리에서 튀어 나가자 대대장은 이마에서 배어 나오는 땀을 닦고는 물었다.
“그런데 사단장님.”
“말하게.”
“외람된 말씀이옵니다만, 그 강진호라는 병사와 어떤 관계이신지……. 저희도 최소한은 알아야 앞으로 방향을 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 관계 없네.”
“예?”
“아무 관계 없다니까.”
사단장이 혀를 차더니, 앞에 놓여 있는 커피 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커피는 좀 식어야 제맛이지.”
잔을 내려놓은 사단장이 대대장을 보며 빙긋 웃었다.
“정말 아무 관계 없네. 이 사람아, 내가 나와 관계있는 사람을 따로 찾아오고 신경 쓸 사람으로 보이는가?”
“아닙니다. 아닌 걸 잘 압니다.”
“그렇지.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이쪽 사단으로 데리고 오지도 않았겠지. 중간에 발견했다면 전입시켜 버렸을 거야.”
“예. 사단장님의 그런 성품을 저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대대장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왜 신병 하나를 보겠답시고 여기까지 찾아와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가, 이 말인가?”
“사, 사단장님!”
사단장은 껄껄 웃더니 지휘봉으로 대대장을 가리켰다.
“이보게.”
“……예.”
“나는 내 친인척에 대해서는 특혜를 허락할 생각도 없고,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야. 문제는 이 신병은 내 친인척이 아니라는 것이지.”
“…….”
“정확한 사정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신병은 매우 중요한 분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네. 생각하지 말게. 자네도 곧 알게 될 거니까. 하지만 하나 미리 말해두자면, 자네가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람이 보호하려 드는 사람일세.”
대대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 신경을 쓰게. 배려를 하라는 것이 아니야. 부조리에만 얽히지 않게 해주게나.”
“명심하겠습니다.”
대대장은 그 후로 입을 닫아버린 사단장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물었다.
“그런데 사단장님.”
“으음?”
“죄송합니다만, 그 중요한 분이라고 하신 분이?”
사단장은 뚱한 얼굴로 대대장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분의 말씀대로라면 한 달에 한 번쯤은 이곳을 방문하실 생각인 모양이니, 미리 말을 해두긴 해야 할 듯싶었다.
“황정후 회장님일세.”
“황정후 회장님……. 네? 뭐라구요?”
군대에서 써서는 안 되는 말투가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대대장은 기겁을 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 황정후 회장 말입니까?”
대대장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황정후 회장이라니.
그도 사단장의 태도를 보고 현직 정치인이라든가, 장관 자제 정도는 미리 예상을 했다. 그런데 황정후 회장이라니.
차라리 대통령의 숨겨둔 아들이 들어왔다고 하는 게 더 부담이 적을 지경이었다.
재계에 살아 있는 거인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아마 황정후 회장님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부대를 방문하여 강진호 이병을 면회한다고 하시니, 잘 준비해 두게.”
대대장은 넋이 빠진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정신 좀 차리게, 이 사람아.”
“……숨겨둔 아들이라도 된답니까? 아니면 손자?”
“그게 참 이상한 부분이란 말이야.”
사단장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썼다.
“황정후 회장님의 인품은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분이 어디 자신의 혈육에게 특혜를 줄 분이신가. 이번에 복귀를 하면서 회사를 엉망으로 만들어놨다고 자식들을 다 쫓아냈다고 하시는 분이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
황정후 회장의 복귀와 이전 경영진들의 사퇴는 한때 재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군인인 관계로 사회의 알력에는 큰 관심이 없던 대대장도 알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연일 뉴스에서 대서특필을 해 대지 않았던가.
“선배님의 말씀으로는 실제 성격도 별다를 바가 없다고 하시더군. 그런 분이 왜 새파란 젊은 놈 하나를 챙기려 드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단 말이지.”
“그렇습니까?”
대대장은 사단장의 말에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황정후의 성격이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두 번째는 이 청탁이라면 청탁이 사단장급도 아닌, 그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는 점이었다.
‘하기야 황정후 회장인데.’
사단장이 그에게는 하늘 위에 있는 존재라고는 하나 황정후와 비교를 한다면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했다.
병으로 쓰러지기 전에는 대통령에 출마해도 무혈입성을 할 거라고 평해지던 재계의 거인 아닌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대장님, 찰리 포대장입니다.”
“그래, 들어와.”
문이 열리고 찰리 포대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훤칠한 청년 하나가 그를 따라 들어왔다.
“필승!”
찰리 포대장이 큰 목소리로 경례를 붙이자 뒤에 따라오던 청년도 가볍게 거수로 경례를 했다.
“자네가 강진호인가?”
“예.”
“그래, 자리에 앉지.”
하지만 강진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앉으면 돼. 어서 앉아.”
강진호가 가만히 사단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 사단장이 말한 자리에 앉았다.
“생활에 불편한 것은 없나?”
“이제 막 전입했습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선임들은 잘해주나?”
“그렇습니다.”
딱딱한 강진호의 대답이 긴장한 탓이라 생각한 사단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있다면 언제든 내가 연락을 하도록 하게.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불이익은 받지 않도록 돕겠네.”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사단장을 바라보았다.
“황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으음…….”
대놓고 물어보자 조금 민망해진 사단장이었다.
“그렇다고 해두지.”
“그렇다면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단장을 향해 강진호가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군 생활에 관련된 어떠한 특혜나 관심도 받지 않겠습니다. 황 회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든 모두 잊어주시고 저라는 사람이 군대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주십시오. 저는 특혜나 받겠다고 입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황 회장님도 부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사단장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