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world on your own with an infinite capital RAW novel - Chapter 156
6화 한국을 뒤덮은 피 구름
“지금 와 이 모양이고? 와 이카노? 대답 좀 해 보소.”
“각하, 면목이 없습니다.”
“당신 면목 따질 계제가 아니고, 뭔 일이오? 무슨 작당한 것처럼 차례대로 재벌들이 부도가 나느냐, 이게 중요한 거지.”
“면목 없습니다, 각하.”
“지금 약파요? 원인과 대책을 이야기 하라잖소? 명색이 경제 부총리 아인교? 이 상황이 되도록 뭐 한 긴데? 진짜 김시혁이 말대로 나라가 절단 나는 거 아이가?”
“…좀 유동성 부족이 생겼는데, 허약한 기업들이 견디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괜찮다, 이말인교?”
“네, 각하. 자산일보 보도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깡드쉬 IMF 총재도 한국 경제는 올해도 성장을 유지할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지금 태국이 작살났잖아요? 또 인도네시아로 그 불이 옮겨 붙었다는데, 우리는 괜찮다? 진짠교?”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경제 팬더멘탈이 그런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합니다. 아시아의 4룡 중 하나잖습니까? 또 우리는 1만 불 국민소득, 1천억 불 수출, OECD 가입국입니다.”
“글나? 맞제? 우리는 다르제? 내가 1만 불 시대를 열었는데,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후진국들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암!”
“예, 각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작금의 사태는 금방 정리될 것입니다.”
“그래, 정국이 어수선할 때는 안기부장, 당신도 중심을 잘 잡고… 알아들어?”
김양삼은 같이 배석한 안기부장을 윽박 질렀다. 벌써 검찰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냥 기침 한번 하면 그걸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알아서 기던 놈들이 도통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다.
검찰도 문제지만, 정작 더 두통거리는 언론이었다.
수서 특혜 사건이 다시 불거지고, 그 과정 중에 대통령의 차남 김형철이 한부그룹과 결탁했다는 신문 기사가 슬슬 세어 나오는 중이다. 아직 김형철이라고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통령’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었다.
국민들도 바보가 아니다. 누구를 말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다 깔아뭉개라고. 형철이 이름도 나오지 않도록 하란 말이야, 알았어?”
그래도 대답이 없는 안기부장.
“이 사람이 와 말이 없노? 그리 몬 한단 말이가?”
“…저 각하, 지금 심상치 않습니다.”
“뭐라카노? 뭐가 심상치 않아?”
“언론과 검찰이 동패를 먹고 칼을 갈았습니다. 옛날 군사정권처럼 막 잡아넣고 줘 팰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난감합니다.”
“그래서?”
“일단 살살 달래도록 하겠습니다. 정권 말이라서 검찰과 언론을 심하게 자극하면 역효과만 나옵니다.”
“아이고야, 이거 머리 아프네.”
그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비서관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노크도 없었다.
“뭐꼬?”
“가, 각, 각하, 큰일 났습니다.”
“……!”
“지금 TV 뉴스를 잠시 보셔야겠습니다.”
그리곤 테이블에 놓인 리모컨을 눌러 TV를 틀었다.
“헉!”
화면에 등장한 이는 방금까지 거론하던 사랑하는 아들 김형철이다. 화질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김형철.
그는 어딘지 모를 사무실 의자에 앉아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또렷한 목소리가 방송에 그대로 노출이 되고 있었다.
-장관님, 그리하세요.
-인사수석실하고 민정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대로 하시라고요.
-내가 책임진다고 안 합니까? YDN 사장은 보통 자리가 아닙니다. 24시간 뉴스를 내보내는 곳이에요. 거기다 한전이 절대 주주 아닙니까? 정연조는 내 사람입니다. 장관은 천거만 하세요. 나머지는 내가 청와대랑 협의할 테니까.
후와, 어떻게 이런 장면이 잡혔을까? 김형철이 혼자 통화를 하는 장면이지만, 누군지 몰라도 분명 상대방은 장관이다. 도대체 저기가 어디냐?
김양삼 대통령과 안기부장, 경제 부총리도 낯빛이 파랗게 변했다.
문제는 뉴스에 나오는 영상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연이어 다른 것도 나왔다. 똑같은 장소다. 내용만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것일뿐.
-그 고속도로 휴게소 입찰은 어찌 되고 있습니까?
-응, 응, 그래요. 내가 입찰서 맨 뒷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서 보낸 곳 있잖아요? 못 봤어요?
-글쎄, 그렇다니깐요.
-자격 심사? 경쟁 입찰? 절차대로 하세요. 대신 그 업체에 만점을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3등? 그 점수를 누가 정합니까? 담당 부서장이 말을 안 들어? 그럼 그 부서장을 바꾸세요. 딴소리 마시고, 그 3등 점수표를 당신이 직접 다시 채점하세요. 1등으로 만들면 되는 거지, 안 그래요?
-업체 대표가 인사하면 그냥 못 이기는 척 받아 넣으세요. 다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내가 보증할 테니까 먹어도 괜찮아요.
“가, 각하!”
“비서관, 빨리 주치의 불러, 빨리.”
“물! 저기 생수병 가져와.”
김양삼은 뒷목을 잡고 넘어갔다. 저 미친놈이…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안기부장의 눈빛은 차가웠다. 입으로는 주치의를 부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속마음은 달랐던 것이다.
어차피 터질 일, 좀 빨리 닥친 거지. 차라리 잘됐다. 아버지가 대통령일 때, 처벌받으면 조금이라도 재판장 방망이가 가벼울 것이다.
* * *
[회장님, 뉴스 보셨습니까?]“예, 9시 뉴스는 놓쳤고 마지막 뉴스를 챙겨 봤어요.”
[나라가 시끄럽습니다.]“이 변, 기억 나요? 내가 경고를 했어요, 그들에게.”
[네, 회장님. 저도 그 자리에 있었잖습니까?]“그들은 몰락할 겁니다. 결코 벗어날 수 없어요.”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 동영상 테이프가 찍힌 곳은 한 병원 사무실이라 합니다. 평소 김형철은 그 병원 사무실에서 비밀스런 통화를 하곤 했는데, 그 병원 원장이 양심 고백을 하는 바람에 온 세상이 다 알아 버렸습니다.]“풉! 양심 고백? 그렇게 보입니까? 벌써 검찰과 안기부, 언론이 등을 돌렸습니다. 그들의 짬짜미 역공작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세요.”
[네. 회장님, 여기는 걱정 마십시오. 귀국하시는 그날, 삽시간에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습니다.]“권혜림 이사장은 어때요?”
[…….]“왜, 마땅치 않나요?”
[그게 아니라, 제가 드릴 말씀이 없어서요.]“무슨 뜻입니까? 예상 밖으로 능력이 부족한가요? 그래도 도둑놈보다는 낫습니다.”
이현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 시혁은 걱정이 되었다. 아직 어린 연치다. 물론 자신과 동갑이지만, 매서운 세상을 겪어 보지 못한 권혜림이라 이해가 되었다.
[회장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회장님을 보고 경악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권혜림 이사장님을 보면서는 전율을 느낍니다. 거의 똑같습니다.]“……!”
[확실히 세상에는 규격 외 천재가 많고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권혜림 이사장님은 제 머리와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분입니다.]“호오!”
[서류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몇 달 전에 보고한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해 되묻습니다. 복지 단체 사람들, 지금 죽을 지경일 겁니다.]“왜요?”
[재단이 정식 출범하지 않았지만, 소문을 듣고 알음알음 찾아와 지원을 부탁합니다. 자본금이 들어오면 먼저 받으려고요. 하지만, 30분간 권혜림 이사장님과 미팅한 사람치고 제정신으로 돌아간 이가 없습니다.]“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세요.”
[보통 지원 요청용 사업 계획서와 재무 계획을 짜서 오거든요. 권 이사장님은 대충 들춰 보고 그 허실을 1원 단위까지 파악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상대방은 지릴 수밖에 없죠. 그대로 줄행랑 친 놈이 태반입니다. 하하.]“반가운 소식이군요.”
뻔하다. 그냥 갓 서른 된 여성이 재단 이사장 내정자라고 하니까 한번 빨대를 꽂아 보려는 족속들이 무작정 들이밀었다가 개처발렸을 것이다.
엘리가 중간중간 한국으로 날아가 업무 협의를 해 보고 혀를 내두른 천재 아닌가? 나름 찐천재로 불리는 엘리조차 감탄한 권혜림이다. 어중간한 놈들은 말 몇 마디 건네 보면 사기꾼인지, 진짜 사회 사업가인지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시혁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상하게 권혜림을 떠올리면 기분이 업되곤 했다.
희한한 일이다. 가슴은 전혀 뛰지 않는다. 세속적인 사랑, 이성적인 감정은 한 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편안하고 따뜻하다.
[회장님, 재단 발족은 언제 하실 계획이십니까?]“터졌을 때.”
[……!]“내 돈을 썩어 빠진 현 정부 구제용이나 더 썩은 재벌들 지원금으로 쓸 생각 일체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들… 내 동포들이 고통에 빠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요.”
[네… 회장님.]“저는 그 타이밍을 재고 있습니다.”
결국 김형철은 포토 라인에 서고 말았다. 검찰은 주저하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김형철에게 영장을 쳤고 법원도 이를 즉각 받아들여 구치소에 가두었다.
아버지가 현직 대통령이지만, 이미 국민도, 검찰과 여론도 등을 돌렸다. 대통령의 말빨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극심한 레임덕으로 식물 대통령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는 독감처럼 번지고 있었다.
쌍방올 그룹이 넘어갔다.
루머가 무성하던 헤테제과 그룹도 자빠졌다.
거대 유통 체인을 가지고 있던 뉴코어 그룹도.
은누리여행사가 뒤를 이었고, 한려그룹이 부도를 선언했다.
금융기관 중 처음으로 교려증권이 문을 닫았다.
이 정도면 뭔가 사달이 났다는 확고한 증거다. 그래도 정부는 한국 경제의 팬더멘탈을 거론하며, 기업들이 잠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지만 한국 경제는 끄떡없다고 언론 플레이에 몰두했다.
“우짤래? 당신이 그토록 까딱없다고 해 놓고… 뭐시라? 겨우 몇 달 지났는데… 돈을 안 빌려 오면 나라가 거덜 난다꼬?”
“…죄송합니다, 각하.”
“빌려줄 곳은 있어요? 일본은? 미국은?”
“일본은 제일 먼저 외환을 회수한 놈들입니다. 종금사들이 그동안 일본의 싼 단기 외채를 빌려다 롤 오버 연장을 하면서 국내 기업들과 태국에 장기로 빌려주는 식 영업을 해 왔는데, 그 길을 틀어막은 게 일본입니다.”
“남은 건 미국뿐이네. 어찌 발이 통합디까?”
“…미국도 씨알이 안 먹힙니다.”
“그러면 우짜란 말이오? 달러 빌려올 곳이 없다, 이 말 아인교?”
경제 부총리는 입을 닫아 버렸다. 이 상황에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대통령도 알고 있다. 다만 입밖으로 꺼내기 싫은 것이다. 대통령이 그러는데 경제 부총리가 나서서 먼저 꺼낼 수는 더욱 없지 않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교?”
“한 달도… 솔직히 어렵습니다.”
“돌겠네. 한다알? 지금 한 달이라 캤어요?”
“네, 각하. 11월 중순만 지나면 달러가 한 푼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를 선언해야 할 지경입니다.”
발등의 불이네. 강 건너 불 구경이 아니라 당장 내 발등의 불. 이걸 어떻게든 틀어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진짜 끝장이 난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던 김양삼이 결국 말을 꺼냈다.
“거, 뭐꼬. 김시혁이 만든다는 재단, 그거 자본금이 100억 달러라 캤제? 그 돈 안 들어왔어요?”
“아직 설립 허가서도 접수가 안 됐습니다. 듣기로는 설립 위원회가 열심히 활동을 하는 모양인데, 모든 것이 김시혁 회장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험, 험, 당신이 전화를 한번 해 보면 어떻겠는교? 이왕 넣을 거 쪼매 빨리 부치라꼬.”
“각하, 전에 청와대 영빈관에서… 워낙 안 좋게 헤어진 것 기억 안 나십니까? 김 회장이 경고를 한다고 도발하는 바람에 각하께서 격노하셨잖습니까? 당장 나가라고, 다시는 보지 말자고.”
“험, 험, 그건 그거고, 그래도 글마가 생각은 바로 박힌 놈인데… 전화라도 한번 때리 보지?”
“…저는 급이 안 맞습니다, 각하.”
제기랄, 직접 하란 말이네.
내 말인들 먹힐까? 면전에서 경고를 사정없이 날리길래 김양삼도 악담을 퍼부었다. 다시는 보지 말자고, 당장 나가라고.
“그래, 일단 글마는 제끼 두고, 남은 방법은?”
“네, 각하. 그럼 유일한 선택지는 거기뿐입니다.”
김양삼의 얼굴색이 급기야 상한 돼지 간처럼 변했다.
“하아… 결국 아엠에프, 갸들한테 손을 벌리야 되는 기네?”
“각하,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습니다.”
피를 머금은 먹구름은 결국 비를 뿌릴 준비를 마쳤다. 이 소나기가 내리는 순간 피바다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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