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world on your own with an infinite capital RAW novel - Chapter 207
7화 비극의 서막이 열리다
대망의 2000년이 지나고 2001년이 시작되었다.
1월 20일 빌 클린턴은 미국 대통령 선서를 했다. 시혁은 이 장면을 TV로 지켜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참석해 달라는 간청이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올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수치감을 주고, 미국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새기게 되는 날이.
시혁은 이 사실을 부시 외에는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말한들 믿어 줄까? 딱 머리에 꽃을 꽂은 미친 X 취급받을 게 뻔하다.
알면서 막지 않은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맞다. 그 죄책감은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없이 클린턴 대통령과 울시 CIA 국장에게 경고를 해 왔던 것이다.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조심하라고… 할 수 있다면 사전에 그를 제거하라고…….
병신 같은 울시가 헛발질만 안 했다면, 끔찍한 최후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빈 라덴이 한 수 위였다.
제거 작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7명의 네이비 실과 최정예 데브그루 7명 모두 생환하지 못했다. 떼 몰살을 당한 셈이다.
그 뒤로 빈 라덴은 완전히 종적을 감춰 버렸다. 풀을 건드려 뱀에게 경각심을 준 정도가 아니라, 독뱀에게 물리고 정작 뱀은 수풀 속으로 숨어 버린 것이다.
이것도 운명이다.
역사가 예기치 않았던 일본의 침몰처럼 차라리 비틀어져 바뀌었다면… 하는 바람은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동안 시혁은 일에 집중했다. 엘리가 맡았던 비서실장은 이현 변호사를 취임시켰다.
이건 시혁도, 엘리도 신념이 확고했다. 일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딸의 양육은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아쉽다.
엘리는 어려서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의 집중 교육을 받은 처지다.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기업들의 동향, 각 기업들 간 딜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현 변호사는 그런 경험이 전무했다. 법률적인 부분에서는 적격이었으나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랐다.
정책을 결정하는 판단력이 엘리와 비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시혁의 책상으로 모든 서류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엘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시혁은 미친 듯 일에 매달려야 했었다. 이때부터 새벽 별 보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시혁아, 좀 쉬어라.”
“아닙니다, 삼촌. 괜찮습니다.”
“거울이라도 한번 보고 말해라.”
“…….”
“판다냐? 혹시 엘리가 때리든? 눈탱이가 시커멓게 변했다.”
“에이… 썰렁하기는. 저는 끄떡없다니깐요?”
“너, 코피 난다.”
무의식적으로 코를 훔친 시혁.
피가 묻어 나왔다. 얼른 휴지를 뭉쳐서 틀어막았다.
“너도 벌써 34살이다. 인생에서 갑자기 노화가 촉진되는 시기가 세 번 있다더라. 바로 네 나이와 60살 그리고 78살. 관리하지 않으면 훅 간다는 말이다.”
“…관리를 좀 하기는 해야겠네요. 그렇다고 일을 줄일 방법이 없으니.”
“미리내 엄마를 복귀시켜라.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는 법이다. 엘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왔는지… 나도 이제서야 확실히 알겠다.”
“안 됩니다. 미리내는 아직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엘리를 대신할 수 없어요.”
“있다, 딱 두 사람.”
“예……?”
“스님 그리고 미리내의 고모.”
“……!”
“스님도 좀 쉴 때가 되지 않았니? 그리고 네 딸을 누구보다 더 보고 싶어 하는 분이다. 또 혜림이는 청량리의 아이들을 돌보던 육아 경험을 가지고 있지. 초보 엄마 엘리보다 더 미리내 육아를 잘할 거다… 딱이다.”
“…그렇군요, 삼촌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저란 놈, 참 이기적이었군요.”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미처 생각을 못 한 거지.”
공사홍은 작정했다는 듯 계속 들이댔다.
“우리 그룹의 최대 약점이 뭔지 아니?”
“약점요?”
“응, 너다.”
“예……?”
“아무리 부정을 하려고 해도, 결국 우리 그룹은 네가 만들었고, 네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모든 계열사, 관계사를 다 합하면 백만 명 넘는 임직원이… 너 하나만 바라본다는 것, 이게 약점이라고 본다.”
“원맨쇼가 되어 버렸다는 말씀이군요?”
“응, 아무리 권한을 이양하고, 자율권을 부여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너무 커졌어. 조직이 커질수록 더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기 마련인데… 우리 그룹은 정반대다.”
“흠.”
“네가 너무 잘나서 그래. 또 그룹을 처음부터 하나씩 일군 것이 아니라 너의 능력으로 흡수하며 공룡이 되었기에 더 그렇다. 모두 너만 쳐다보는 거지.”
“썩 좋지는 않습니다. 개선이 필요하겠어요.”
“그래, 네 나이 34살이다. 아직 젊고 창창하니 후계를 거론할 이유는 없다만… 지금 체제로는 갈수록 더 힘에 버거울 거다. 대수술을 할 시기가 되었다.”
“삼촌, 스님과 혜림이를 모셔 오는 건 저도 찬성합니다. 그러면 엘리가 업무에 복귀할 수 있을 테고, 제 부담이 많이 줄어들겠죠.”
“그런데?”
“그룹의 전면 재조정은 조금만 늦추시죠.”
처음에는 시혁의 과도한 업무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그룹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 특히 지배 구조에 대한 문제로 불똥이 튀었다.
공사홍은 아직까지 시혁을 보조하는 역할 이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시혁이 하는 일에 반대한 적도 없었고, 시혁에게 충고를 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더 두고 보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공사홍에게 중요한 것은 그룹이 아니었다. 그에게 시혁은 삶의 원동력이자 전부였다.
공사홍도 곧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지만 하루하루 손아귀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내 아이의 미래를 다져야 한다. 하늘이 뒤집어져도 흔들리지 않도록.
“수술은 시기가 있다. 늦으면 사지 중 하나를 절단해야 살 수 있어.”
“압니다, 삼촌.”
“그런데?”
“지금 눈앞으로 폭풍이 오지 않습니까? 폭풍과 해일은 자연재해입니다. 하지만 순기능도 있죠. 바닷속을 헤집고 지상에 비를 뿌려서 영양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폭풍이라…….”
“네, 이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때는 맘껏 수술해도 문제없을 거예요.”
* * *
“이게 꿈이야, 생시야?”
“글쎄요.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그룹 본사에서도 화들짝 놀라고 있다.”
“불참 통보를 할까요?”
“미쳤어? 너, 자객이었냐?”
“네……?”
“황제의 초청을… 불참 통보한다고? 이 새끼, 내 자리가 그리 탐나든?”
“아니, 저는 지사장님께서 난처해하길래.”
“미친놈아, 좀 전에 본사 회장님 전화 오셨다. 혹시 자신이 참석하면 안 되겠냐고 묻더라.”
“여기 초청장에는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주재원에 한정한다고 못 박혀 있는뎁쇼?”
“나도 눈 있다. 몇 번을 봤는데 그걸 모르겠냐? 그래서 말씀드렸더니 본사 회장님 한숨 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더라.”
LB 증권 뉴욕 지사장과 총무 담당 대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빠졌다.
“지사장님, 뜬금없습니다. 왜 황제가 우리 같은 민초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만 받은 게 아냐. 현도 증권, 현도 자동차, 동보 캐피탈… 전부 받았단다.”
“모두 여기 월드 트레이드 센터 1, 2 빌딩에 입주한 한국 기업들 아닙니까?”
“응, 근처에 있는 다른 한국 기업도 초청을 받았는지 몰라도 하여튼 여기 있는 모든 기업은 다 받은 셈이지.”
“부럽습니다, 지사장님. 황제를 알현할 좋은 기회잖습니까?”
“너무 부러워하지 마, 너도 가야 하니까.”
“예? 저 같은 말단까지요?”
“응, ‘한국 주재원 전원 참석해 주시길 희망합니다.’ 이렇게 당구장 표시까지 해서 보내왔는데… 안 갈래?”
“언제예요?”
“그것도 이해가 안 돼, 아직 두 달이나 남았거든?”
“아이고, 답답해. 이리 줘 봐요.”
지사장이 들고 있는 팩시밀리 용지를 확 잡아채는 총무 담당 대리. 10년이나 차이가 나지만, 둘은 같은 지잡대 선후배… 형제 같은 사이다. 지사장이 끌어 주지 않았다면 뉴욕 같은 일급지로 발령받을 턱이 없는 놈이다.
“아싸! 재수! 9월 11일은 별도 월차 안 써도 근무로 인정하는 거죠?”
“나가, 이 자식아. 저런 걸 후배라고… 아이고, 속 터진다, 속 터져.”
* * *
“칼리프시여!”
“준비는?”
“명령만 내리시면 바로 실행 가능합니다.”
“수고했어. 바야흐로 때가 도래했다. 저 양키 놈들에게 불의 지옥을 보여 줄 순간이다.”
예멘의 깊고 깊은 동굴 속.
으스스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칼리프,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락하네.”
“세계 무역 센터는 이미 거사를 치뤘던 곳입니다. 그 뒤로 경계가 강화된 곳이죠. 그런데 굳이 이곳을 재차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물음을 던지는 자는 알 카에다의 이인자 부관이고, 대답을 하는 자…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저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족속이야. 자신들이 신처럼 행세하면서 우리 아랍 형제들을 갈취하고 핍박하기를 서슴지 않았지.”
“네.”
“1993년에 우린 똑같은 장소를 공격했네. 조금 아쉬운 절반의 성공이었어. 그때 큰 교훈을 얻었지. 높은 건물일수록 코어만 흔들어 버리면 붕괴시킬 수 있다는 사실. 이번 계획은 거기서 출발한 거야.”
“코어라 하심은……?”
“음… 코어(Core)란 말은 핵이나 중심을 뜻하는 말일세. 또는 속에 빈 공간이 있는 형체를 만들기 위해 설치하는 또 다른 틀을 뜻하기도 하고.”
“……?”
“빌딩의 서비스 공간, 교통 공간 같은 공공 부분이나 설비용 배관이 모여 있는 내력벽이 집중된 곳… 한마디로 쉽게 표현하자면, 그렇지. 저기 우리 동굴을 바치고 있는 중심 지지대 보이나?”
“예, 칼리프.”
“저기에 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단단한 동굴이라도 무너져. 내려앉아 버릴 거야. 저게 코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대강은 알겠습니다.”
“당시 우리 전사들이 지하 주차장까지 침투했지만, 계획했던 곳에 공간이 없었어. 할 수 없이 조금 구석진 곳에 세우고 자폭하는 바람에 건물 전체를 붕괴시키지 못했어. 정확히 중심만 무너뜨리면 아무리 큰 건물도 내려앉는다. 그 중심점이 코어일세.”
“아! 네, 이제 이해되었습니다.”
“촛불 밑이 더 어두운 법일세. 양키들은 우리가 같은 장소를 공격할 것이라 생각도 안 하겠지. 전처럼 차량에 폭탄을 싣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으니까 말이야. 설마 할 거야. 절대 두 번 당하지 않는다 생각하겠지. 흐흐흐.”
“저… 다른 표적은?”
“우리에게는 성전이지만, 양키는 우리를 테러리스트라 부르네. 이건 명백한 전쟁이야. 쌍둥이 빌딩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이고, 백악관은 그 수괴가 있는 곳이며, 펜타곤 역시 그들의 야욕을 실행하는 군의 중추… 이 세 곳만 무너뜨리면, 흐흐흐. 미국도 무너져.”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미국은 너무 강합니다. 대통령이 죽어도,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도, 펜타곤이 박살 나도, 쉽게 끝장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빈 라덴은 부관의 걱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만큼 적은 강력하다. 어쩌면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한 번씩 출몰하던 정복자들, 칭기즈칸의 몽골군이나 로마제국 또는 나치 독일 히틀러도 비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만큼 미국이라는 나라는 무섭다. 강하다. 버겁다.
“코어만 흔들면 아무리 높은 빌딩도 무너진다. 미국도 마찬가지… 그들이 아무리 큰 힘을 가지고 있어도 이번 거사만 성공하면 똑같이 무너져. 전 세계의 무슬림 형제들이 지켜볼 걸세. ‘미국도 저렇게 처참하게 당할 수 있구나’라 생각하며 용기를 얻겠지.”
“…….”
“그것이면 충분해. 미국의 코어만 흔들 수 있다면 말이야.”
미국이 키웠고, 미국의 지원으로 성장한 알 카에다. 그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최종 승인이 떨어졌다.
네 곳의 공항에서 팀으로 나눠진 어둠의 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꿈에도 이들의 존재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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