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a world on your own with an infinite capital RAW novel - Chapter 236
6화 빚 받으러 왔는데요?
회의실로 일곱 명의 젊은 친구가 들어섰다.
안내를 해 준 여직원은 그들 앞에 A4 백지 한 장씩과 검정색 펜 한 자루를 기계적으로 놓았다. 그리고 잠시 나가더니 쟁반을 들고 와서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나눠 주었다.
기계적인 모습,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바꿔 말하면 흔한 방문객이라는 뜻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곱 명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곤 후줄근한 옷차림이었으며, 개중에는 청바지에 목이 늘어진 후드 티를 입은 이도 있었다.
여기는 삼송전자의 본사 소회의실. 이런 개발자 부류가 하루에도 수십 명이 노크를 하는 곳이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세상을 바꿀 것이다.’와 같은 한결같은 레파토리로.
여직원은 이들도 그와 별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 색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 모두 미국에서 날아왔다는 정도?
잠시 후 스무 명의 삼송 측 참석자들이 들어와 탁자 반대편에 섰다. 그럼에도 일곱 명의 청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동양 문화에 서툰 탓이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삼송전자의 기술 부분 사장이 들어와 자리에 앉자, 서 있던 스무 명도 일사불란하게 의자를 당겨 앉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일곱 명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이들은 여기가 비즈니스 회의장인지 군사 재판장인지 헷갈렸다.
-시작합시다.
의례적인 명함 교환이 끝나고, 사장의 묵직한 말이 나오자 사장 옆에 배석하고 있던 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시작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앤드루 루빈은 이를 악물었다.
‘잘못 왔어, 이런 조직에서 우리의 기술을 알아봐 줄까?’
없는 돈을 탈탈 털어 한국까지 왔다, 삼송전자라는 이름 하나를 믿고.
삼송전자는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이 노스 코리아인지, 사우스 코리아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삼송의 브랜드 파워는 다들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팅을 해 보자는 한마디 답신 메일에 환호하면서 왔던 참이다.
그런데 이 분위기는 뭥미?
아마 먼저 들어온 20명이 다 찬성해도 마지막에 들어온 꼰대가 고개를 저으면 꽝일 것이다.
그러나 내친 걸음이다.
앤드루 루빈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빔 프로젝터를 켰다. 주어진 시간 30분을 꽉 채워 열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수십 번 연습했던 액션을 섞어 가며 모든 내용을 피력했다고 생각했다.
왜 이 운영체제가 필요한 것인지, 이 운영체제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인지, 삼송이 투자를 해 주면 앞으로 어떤 결과물을 볼 수 있는지, 우리 운영체제가 심송과 합치면 얼마나 큰 시너지를 발휘해서 윈윈할 수 있는지…….
‘…….’
조용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만이 회의실을 감싸고 있었다.
박수도 없었고, 기침 소리조차 없었다. 맞은편의 스물 한 명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앙에 앉은 꼰대와 그 옆의 임원이 소근거리기 시작했다. 낮선 언어라 앤드루 루빈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쟤들 무슨 소리야?
-네, 사장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대로 저 거대한 구조를 다 만들 수 있다는 거야?
-글쎄요……?
-미팅 신청서에 의하면 직원이 6명… 저기 발표한 친구 말고 여기 있는 6명이 전부 개발자란 말이네? 기가 막힌다.
-저도 조금 아리까리합니다. 내용은 그럴싸합니다만.
-약 빨았어? 말로야 뭘 못 해. 나는 지구도 들어 옮긴다.
-…….
-에이, 이번 미팅 주선한 책임자가 누구야?
-…신기술 개발 사업부입니다.
-지랄, 신기술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사장님, 먼저 나가시죠.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마지막 끝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그가 상무, 전무를 거쳐 사장까지 참석하도록 설득해 이 자리를 만든 당사자였다.
그는 오늘 루빈의 프리젠테이션 내용을 다 알아들었다.
진짜였다.
대충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보다 훨씬 앤드루 루빈은 더 깊숙이 들어갔던 것이다. 여기서 삼송이 조금만 힘을 보태 주면 세상을 뒤집을 운영체계가 탄생한다. 틀림없다.
당장은 삼송의 핸드폰에 적용할 수 없을지라도, 두고두고 삼송에게 황금 거위처럼 쑥쑥 알을 낳아 줄 거라는 예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 따위 필요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장이 전무와 숙덕거리는 소리를 다 들어 버렸다.
‘약 빨았냐고?’
‘누가 이따위 미팅을 주선했냐고?’
끝난 것이다.
이미 사장과 전무가 저런 식으로 결론 낸 사안을 겨우 본부장이 목숨 걸고 관철시킨다는 건 별나라 이야기. 혹시 당장 삼송 핸드폰에 필요한 기술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미래를 위한 투자, 아직 완성되지 않은 OS에?
불행하게도 본부장은 월급쟁이다.
이렇게 미팅은 허무한 결과로 막을 내렸다. 앤드루 루빈과 개발자 6인은 빈손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그로부터 2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앤드루 루빈의 OS를 고골에 매각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앤드루 루빈은 고골의 부사장으로, 나머지 6인의 개발자들 모두 핵심 연구원으로 같이 고골에 들어가는 조건이었다.
자그마치 5억 달러의 빅딜이었다.
발표가 난 다음 날, 삼송의 꼰대가 직접 앤드루 루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 미스터 루빈, 당장 만납시다. 전에 우리에게 했던 제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봅시다.
돌아온 앤드루 루빈의 대답은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저런? 방금 고골과 사인을 마쳤습니다. 아직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네요.
처음 앤드루 루빈이 삼송에 요청한 투자 금액은… 3백만 달러에 불과했다.
삼송의 경직된 기업 문화가 초래한 최대의 흑역사로 기록된 헤프닝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
“네, 회장님.”
“허허허, 기가 막히는군. 3백만 달러면 우리 손에 쥘 수 있었던 세계 최고의 OS를 삼송 회의실에서 날려 버린 것이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합니다.”
“내가 김시혁 회장에게 받은 특명을 완수하려면 필수적으로 안드로이드 OS가 있어야 해. 그걸 고골에게 다시 빌려 써야 한다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죄송합니다.”
“비서실장이 죄송할 일은 아니고, 삼송전자 사장 말이야.”
“네, 회장님.”
“노안이 왔으면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네, 조치하겠습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제주도 농장 관리인 자리 비어 있지? 휴양 삼아 푹 쉬라고 해.”
“넵.”
“만약, 거부하고 사직했다간… 다시는 이쪽에 얼씬도 못 하게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해라.”
유배를 거부하면 사약을 내리겠다는 엄명이다. 그리되면 진짜 개털 된다. 퇴직금은커녕 서초동을 들락거리게 만들 거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탈탈 털어 인생을 찟어 버리는 게 삼송의 방식이다.
* * *
스티븐 잡스는 눈앞에 놓인 작은 핸드폰을 이틀째 노려보고 있었다. 잠도 자지 않았다.
왜 이렇게 친숙한 걸까?
왜 이놈이 마치 내 몸처럼, 내 영혼처럼 느껴지는 걸까?
왜 나는 황제보다 먼저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왜, 왜, 왜?
이 스마트폰이라는 놈은 분명히 세상을 바꿀 게 틀림없다.
황제의 말대로 이놈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다.
스티븐은 걷은 와이셔츠의 팔목을 벅벅 긁었다. 피가 맺혔지만 아랑곳없이 한층 더 세게 긁었다. 그래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소름 끼쳤다.
그는 신인가?
한 사람이 내놓는 발칙한 아이디어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가 쏟아진다. 그렇다고 그 아이디어가 모두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99.9%는 사장되는 게 현실이다.
또 현실화되었다고 다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니다. 잠시 반짝했다가 더 나은 기술에 의해 어둠 속으로 묻히는 게 태반이었다.
광속의 속도로 발전하는 세상.
하지만, 한 번씩 태풍 같은 물건이 세상을 뒤집어엎는다. 그 태풍은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삼키고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다시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게 혁명이다.
스티븐 잡스가 이 물건을 섣불리 만지지 못하는 이유였다. 너무 무서웠다.
테이블에는 스마트폰 샘플과 함께 수표도 한 장 놓여 있었다. 황제가 면담하는 자리에서 직접 끊어 준 수표였다.
이 두 가지라면 다시 ‘에이플’로 복귀할 수 있다. 단순히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판을 갈아엎어 버릴 수 있다. 자신을 몰아낸 이사회의 보드 멤버들 모가지를 깡그리 쳐 내고 화려하게 컴백할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븐 잡스 스스로 세운 회사가 ‘에이플’이었고, 성공시킨 사람도 본인이었지만, 몇 번의 뻘짓을 하는 통에 쫓겨난 세월이 적지 않다.
절치부심하며 칼을 갈았으나 쉽지 않았다. 그동안 에이플은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황제를 알현하고 보니, 어느새 두 개의 시퍼런 칼날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냥 칼날이 아니라… 단숨에 세상을 엎어 버릴 태풍이었다.
이 태풍을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손에 쥐어 준 황제가 생각났다. 마치 지방 영주에게 엑스칼리버를 쥐어 주면서 반란을 일거에 소탕하라고 명을 내리는 장면과 같지 않은가.
황제는 이 스마트폰이라는 괴물로 일체의 이득을 볼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99%가 완성된 상태에서 삼송과 자신에게 나눠 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을…….
마음만 먹으면 이 괴물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쌓을 수도 있을 것을…….
스티븐 잡스는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하긴, 지금 황제에게 돈이 무슨 소용일까? 그는 이미 세상의 모든 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스티븐은 고민을 멈췄다.
자신이 쓰고 있던 블랙베리 핸드폰을 꺼냈다. 왠지 이 핸드폰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과 비교하자니, 한숨이 나온 것이다.
“데니, 회사로 돌아간다. ‘에이플’ 이사회를 소집해라.”
* * *
“…….”
“프레지던트?”
“…….”
“안 됩니까? 그렇다면 미련 없이 돌아가겠습니다.”
“아, 아니오.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됩니까?”
“…예,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킴 회장님께 그렇게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프레지던트께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대답하셨다고.”
“아, 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라…….”
“아! 답답하네. 좀 똑 부러지는 정의를 내려 주셔야 저도 정확한 보고를 드릴 것 아닙니까?”
‘이 새끼, 새파란 놈이. 국방 장관과 합참의장까지 불러 놓고 한다는 소리가… 미치겠네.’
“잠시만 별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우리끼리 잠시 상의한 후에 바로 답을 드리겠소.”
“네네, 뭐. 저는 심부름 온 것이니까. 상의 끝나면 부르세요.”
깐죽의 끝판왕.
시혁의 앞에서도 도무지 어려운 것을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 래리 퍼지였다. 시혁의 면전에서 ‘록펠러와 샤일록의 합체 괴물’이라고 부르던 놈이었다.
그런 황제에게도 깐죽거리는 판에 대통령이야… 껌값이지.
클린턴에게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같이 봤으면 좋겠다는 메일이 도착하자, 백악관은 반응도 하지 않았었다.
아무리 고골이 인터넷 시장을 씹어 먹는 공룡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감히 미국 대통령에게 명령조라니… 언제 세무조사라도 슬쩍 보내서 박살 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도착한 메일 한통.
[추신: 절반의 빚을 받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회장님이.]클린턴은 콧김을 흥흥거리면서도 참아야 했다.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
“…….”
“말들 하세요.”
“저… 국방부 입장에서는 약간 걱정됩니다.”
“뭐가요?”
“아시다시피 GPS용 위성은 30대, 그걸 운용하는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그걸 아무 조건 없이 민간에 사용 허가를 주는 건 엄청난 특혜 소지가 있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너에게 물어봤냐?’
클린턴은 살짝 짜증이 묻어나는 투로 조용히 있는 함참의장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의장의 생각은 어떻소?”
“경비야 적절히 청구하면 그만이고, 민간과 같이 쓰는 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 그렇소?”
그때 다시 눈치도 없게 끼어드는 국방장관.
“합참의장, 그렇게 쉽게 대답할 말이 아닙니다. 군은 지금 모든 유도 무기를 GPS로 통제하고 있어요. 이를 민간과 같이 쓴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합참의장은 국방장관을 쳐다보지도 않고 클린턴을 향해 대답했다.
“각하, GPS에는 오차값이라는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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