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8
제 32 장 집중교육주간 (2)
왕우가 나선 효과는 굉장했다.
걱정 말라며 빗자루를 기대어 두고는 나가더니, 채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돌아와 말했다.
“앞으로는 괜찮을 겁니다.”
그 말대로 습지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완전한 평화는 아니었다.
다만 멋대로 몰려와 악다구니를 쓰던 전과 달리, 각자 번호표를 들고 얌전히 질서정연하게 찾아온다는 것이 다를 뿐.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변화다.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거지?’
해결책이라고는 ‘정화의 불’ 정도를 떠올리던 초운휘로서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웃으며 사람을 속여 먹는 일은 못 당하겠다니까.’
벌써부터 교관들 사이에서는 독비검객 왕우에 대한 찬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은천관주마저 왕우의 방문에 크게 감격했다던가?
“어떻습니까? 노신도 꽤 쓸만하지 않습니까?”
다 좋은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습지까지 쫓아온 거야?”
모의 훈련장은 담당 교관만 출입할 수 있는데.
“허허. 걱정 마십시오. 은천관주의 허락을 받은 일입니다.”
“……”
손에 들린 패는 무려 은천관주의 직인이 찍힌 출입패.
“이게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던가?”
“시간과 공을 들여 이루지 못할 것은 없지요.”
“…혹 이상한 꿍꿍이를 부린 것은 아니지?”
왕우가 빙긋 웃으며 빗자루를 슥슥 밀며 말했다.
“사소한 제안을 했을 뿐입니다.”
“제안? 무슨 제안.”
“알려 드리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나,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러니, 잠시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것은 어떠신지.
‘나중의 즐거움은 무슨.’
한 소리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교관님. 사영 교관님께서 관도들을 데리고 찾아오셨습니다.”
“아, 그래?”
이미 습지의 입구에서 오와 열을 맞추어 허락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놀랍게도 오만하고 시끄럽던 관도들의 몸가짐이 무척 바르다.
하나같이 왕우를 향해 동경의 시선을 보내기를 감추지 않는다는 점을 보며 초운휘는 깨달았다.
‘선반 위 꿀단지를 바라보는 아기곰 같은 얼굴이네.’
아니나 다를까.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교관이 왕우를 향해 날 듯이 달려와 인사를 박는다.
“사영입니다. 우 노사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혼자 외로이 늙어가던 늙은이일 뿐이네.”
“강호의 대선배. 전설의 맥을 이으신 분께서 무척 겸허하시군요. 크게 배웠습니다.”
“허허. 그렇게 봐준다니 고마울 따름일세.”
굽신거리기를 멈추지 못한 교관 너머로 관도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곤륜의 대선배께서 지켜보는 자리야.”
“무려 강호의 정영을 위해 살겠다 맹세하신 분이지 않나?”
“저분의 눈에 들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제야 초운휘는 왕우의 제안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공으로 꼬셨구만.’
그것도 도굴한 무공으로.
땅 파서 철전 하나 얻어 본 적 없는 입장에서 참으로 부럽기 짝이 없구나.
***
훈련은 빠르고, 엄숙하게 진행이 되었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 훈련에 임한 탓도 있었지만, 애초에 습지를 방문한 관도들은 실력도 평균을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어떻게든 왕우의 눈에 들어보려, 상급 교관들이 관도들을 고르고 고른 인재들을 보낸 모양이었다.
덕분에 바빠진 것은 조교들이었다.
“다음은 늪에서의 훈련이군요. 안쪽에 마련해둔 곳이 있습니다.”
“제갈 오라버니! 함정이랑 제작도구 만들어 뒀어요!”
“어머. 사천산 독물을 경험해보실 분들은 어느 분이시죠?”
“이런. 이것 못쓰겠군. 새로 만들어야겠어.”
수련에 필요한 집기들을 바삐 나르고, 관도들을 인솔하며 네 사람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이것을 한가로이 구경하는 초운휘는 쩍 하품을 했다.
“데려온 보람이 있네.”
잘 키운 실적 나무 하나 열 노예가 부럽지 않구나.
***
훈련이 끝난 것은 해가 은천관의 성벽 너머로 사라졌을 때였다.
어둑어둑해지는 가운데 지친 기색으로 모두가 돌아왔다.
“이제 막 서른다섯 번째 조(組)가 돌아갔습니다.”
“후우. 지치네요.”
방문자 명부에 이름을 죽죽 긋는 모습을 보며 초운휘가 물었다.
“서른다섯 개조면, 오늘은 다 끝난 것 아니야?”
이제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할까 싶은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한 조가 더 남아 있거든요.”
“어어? 명단에는 없는데?”
심지어 퇴근 시간도 지났다고!
“장철심 상급 교관님께서 긴히 요청하신 건이라.”
“상급 교관이?”
신기한 일이네.
워낙 바쁜데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라, 직접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제갈탄이 덧붙여 설명했다.
“장 교관님께서는 모의훈련의 중요성을 항상 설파하시는 분입니다. 자질이 있는 관도들을 따로 불러내 직접 가르치고는 하죠.”
“공짜로? 귀찮은 사람이네.”
나름 교육열이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의욕이 있는 것은 좋은데, 주변 사람들을 너무 피곤하게 만드는 것 아냐? 사람이 못 됐네.”
“……”
잠깐 주변이 조용해졌다.
돌아오는 것은 따가운 시선뿐이라 기분이 나빠졌다.
“뭐? 왜!”
“어쨌든 이번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요청해오신 건이라.”
“이건 횡포야. 교관은 상급 교관의 무리한 요구는 물러…”
“실점 십 점을 감점해주시겠다던데.”
“받아들여야지.”
암 그렇고말고.
다시 생각해보니 장철심 교관은 의외의 구석에서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란 말이지.
‘응, 받아들이자.’
실점 십 점이면 일주일 동안 무단결근을 해도 괜찮을 점수거든.
수락하자 제갈탄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다행이라면 따로 준비할 것은 없다는 모양입니다.”
“그건 좀 좋네.”
집기를 나르고 훈련장 뒷정리를 하는 일이 꽤 고되거든.
비록 아무것도 안 할 생각에, 실제로 한 것도 없지만, 혼자 멀뚱거리는 것도 못 할 짓이다.
‘특히 장철심 교관 앞에서는 말이야.’
마음의 가책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깐깐한 인간이 어린 조교들을 무한 노동의 현장으로 내모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광분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알겠어. 내 인사고과를 쥐고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셈 치지.”
갑작스러운 야근에 입맛을 다신 초운휘가 중얼거렸다.
“참 번거롭다니까. 이런 것이 사회생활의 쓴맛인 걸까?”
모용소혜가 ‘사회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라고 중얼거린 것 같지만 초운휘는 듣지 않았다.
***
장철심 상급 교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시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미안하네. 앞의 훈련이 길어져서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그건 당신 사정이고.’라며 날라차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초운휘도 참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점 십 점 만회.’
일주일을 농땡이 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이쪽 방문자 명부에 수결 좀.”
방문자 명부의 가장 아래쪽에 장철심의 이름을 적어 넣고 있자니, 은근한 장철심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자네는 운도 좋아.”
“뭐가 말입니까?”
“왕 노사께서 함구하라 하여 말을 못 하지만, 다들 얼마나 자네를 부러워하는지 아는가?”
부러워할 것이 뭐 있나 싶었지만.
“곤륜파 전승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니, 자네는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모양이야.”
영 아닌걸요?
오히려 반대다.
‘나라 몇 개 부숴 먹었지.’
속내를 모르는 장철심은 제 하고 싶은 말만 쏟아냈다.
“허. 내가 자네라면.”
“아니지. 아무리 부러워도 자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
“허. 참. 이것. 쯧.”
부러워하다가 눈에 날을 세우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초운휘는 생각했다.
‘정신 사나우니 한 가지만 했으면.’
묵묵히 명부에 이름을 넣고 도장을 쿵쿵 찍자, 뒤이어 관도들이 나타났다.
“상급 교관님.”
하나 같이 윤기가 좔좔 흐르는 무복을 입은 관도들이었다.
“어때? 상당하지 않나? 내가 가려 뽑은 명문의 제자들일세.”
“그렇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곤륜의 무맥을 이은 분께 하나하나 소개라도 하고 싶지만.”
잔뜩 부러운 눈으로 매부리코 끝에 주름을 잡은 장철심이 말했다.
“선배님께서 시간을 달라 하셨으니, 어리광을 피울 수는 없겠지.”
그렇게 말을 하는 것 치고는 눈에 사심이 이글거리는 것 같은데.
몇 번의 심호흡으로 청정심을 되찾은 장철심이 어깨를 으쓱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관도들이 뒤로 우르르 따라붙었다.
***
“장 교관. 자네에게 큰 도움을 받았네.”
왕우의 말에 장철심은 황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왕 노사. 곤륜의 웃어른께서 바라신다는데, 무림말학이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 말이라도 고맙군.”
“진심입니다. 선배님께서 부디 제 마음을 알아주시길.”
언제나 완고한 장철심에게 이런 말랑말랑한 부분이 있나 싶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
장철심은 숫제 동경하던 영웅을 만난 아이와 같은 얼굴이었다.
한참을 떠들어대던 장철심이 표정을 굳히며 돌아섰다.
“강호의 대선배님께 선보이는 자리다. 한치의 부족함이 없도록 전력을 다하라!”
“예! 교관님!”
상급 교관의 가르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
딱지치기로 상급 교관을 단것은 아니라는 걸까?
장철심의 가르침은 제법 그럴 듯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무공에 대한 오의.
“신무검법의 초반삼식과 중반오식의 차이를 아는 이가 있나?”
우등생 반답게 관도들이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초식의 난해함에서 차이가 납니다.”
“초반삼식은 십 년 공력, 중반오식은 이십 년 공력이 있어야 비로소 펼칠 수 있습니다.”
“전반부와 달리 중반부는 검기를 운용해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상당한 대답이 들려왔다.
이에 장철심이 반문했다.
“그럼. 초반삼식과 중반오식의 같은 점은 무엇이냐?”
질문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단순해 동천관의 어린아이들이나 익히는 초반 삼식이다.
공력을 본격적으로 운용해 펼치는 난해한 중반오식과의 연결고리를 쉬이 떠올리기 힘들겠지.
더러는 머리를 쥐어짜는 관도도 있었지만.
“틀렸다.”
장철심은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리고는 제가 알고 있는 바를 청산유수처럼 늘어놓았다.
“신무검법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있는 이유를 생각해라.”
“각자 차이만 있고, 같은 부분이 없었다면 왜 하나의 검법으로 엮어 두었겠느냐?”
“무공을 익히기 전에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 무공을 관통하는 무리(武理)임을 잊었더냐!”
질책을 이어가는 장철심이 슬쩍슬쩍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끄덕.
그리고 왕우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화-악.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제야 초운휘는 왜 장철심이 이런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인간. 선배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왔네.’
관도는 핑계가 아닐까?
명문을 귀히 여기는 장철심에게 있어, 이제는 전설이 된 곤륜파(崑崙派)의 맥을 이은 독비검객 왕우는 선망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만나보고 싶은데 기회가 나지 않고, 멋대로 찾아오자니 체면상 눈치가 보여 이런 기회를 만든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이 짠돌이가 실점을 십 점이나 만회해 줄 리가 없잖아.’
어쨌든 왕우의 인정에 잔뜩 고조된 장철심은 신이 나 외쳤다.
“자! 오늘은 심화 가르침으로 넘어가겠다!”
안 그래도 열기가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왕우가 모른 척 충동질을 했다.
“허허. 후학들의 정기서린 모습을 보니, 정말 좋군. 지켜볼까?”
왕우 노 선배께서 보고 계신다.
“모두 전력을 다해 수련에 임하라!”
술책에 걸려든 장철심이 목에 핏대가 서도록 악을 썼다.
‘아주 있는 실력 없는 실력 탈탈 털어 보이겠네.’
강호에서 실력은 최소 삼 할을 숨기라는 격언마저 잊은 것 아닐까?
그때 한 마디로 장철심을 충동질한 인간의 전음이 들려왔다.
[역시 정파의 애송이들을 다루는 것은 손쉬운 일이군요.]역시 전직 대흉성다운 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