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23
제34장 신무강호행 (2)
“…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울적한 한 마디에 여매홍이 어깨를 토닥거렸다.
“참. 근심스러운 일이네요.”
이곳은 팔미로의 구이 맛집.
강호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가지는 조촐한 회식자리다.
“어쩌려고 그래요? 내일이 출발하는 날 아니에요?”
“맞아요.”
여매홍의 말대로였다.
강호행 전문 교관은 미리 임무를 의뢰한 문파에 찾아가, 거점을 확보해야 하기에, 며칠 먼저 출발한다는 모양이니까.
“계획표가 완성이 되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겠다니. 언니, 상급 교관님은 좀 너무한 것 아니세요?”
“글쎄. 딱딱한 분이시긴 해도, 꽉 막힌 분은 아니신데.”
우물. 우물.
내장구이 몇 점을 입에 넣으며 모용선야가 예쁘게 턱을 치켜들었다.
“좋아. 묘진문을 위해서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초 교관님. 계획표 가지고 오셨어요?”
여기요.
슬쩍 내밀자, 어디- 어디- 꼬깃한 종이를 펼쳐 든 두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
“아. 이건 좀.”
“장 교관님의 지적도 일리는 있네요.”
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하고 묻자, 모용선야가 미간을 꾹 누르며 인상을 썼다.
“사실 초 교관님이 아니었다면, 주먹부터 날렸을 듯.”
“사람을 작정하고 놀려 먹을 생각으로 쓴 것은 아니죠?”
그럴리가요.
울적하게 고개를 젓자 모용선야가 빈 꼬치를 들어 한 부분을 꾹 찔렀다.
“애초에 단어 선택부터 문제야.”
“맞아요. 이건 계획표라기보다는 애들 일기 같은걸요?”
“조금만 다듬어도 많이 나아질 것 같기도 한데.”
요컨대.
간장에 꼬치 끝을 찍더니, 종이 위에 짧은 글자를 덧씌웠다.
“첫째 날. 무한성을 나간다. 다음에, 이쪽은.”
만래옥의 주전부리를 지워내더니 새로운 글자가 태어났다.
– 비상용 휴대식량 확보
라는 글귀였다.
“어때요? 좀 낫죠?”
“이쪽은 제가 한번 만져볼까요?”
여매홍 역시 꼬치 끝을 간장에 담그더니 종이에 살살 글씨를 적어 넣었다.
그렇게.
– 다과점에서 전병을 산다.
라는 계획이.
– 망실된 휴대식량 추가 확보.
필수 요소로 바뀌었고.
– 영산철방에서 관광.
이라는 항목이.
– 손상된 무기 점검을 위한 철방 방문.
이라는 글자로 재탄생했다.
심지어 ‘꽃 배 타고 놀기’가 ‘수상전을 대비한 수상생활 적응 훈련’으로 바뀌었을 때는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이건 사기 아닙니까.”
“사기는 본인이 아직 쫓겨나지 않은 쪽이 아닐까요?”
모용선야의 지적에 이어 여매홍도 바람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좋은 말로 포장하는 것은 보통이라고요.”
“그런가요?”
“신무학관 지원할 때 이력서 쓰지 않았어요?”
안 썼다.
‘거지에게 뇌물 주고 뒤로 들어왔으니까.’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 했다고 생각하니, 당시의 결정이 제법 나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글과 관련된 일은 이상하게 의욕이 생기지 않는단 말이지.’
두 사람은 계획표에 달라붙어 자신의 일처럼 이런저런 의견을 채워갔다.
그리고 완성된 것은 기름과 간장 냄새가 범벅이 된 넝마가 된 계획서.
하지만, 내용은 무척 알 차기 짝이 없으니.
“후우. 이렇게까지 했는데, 묘진문 앞에서 박대하면 그냥.”
“진짜 모른 척하기 없기예요.”
두 사람의 투정에 초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누더기가 된 종이가 천고의 보물이라도 된 듯, 잘 말려 고이 접어 챙긴 초운휘가 약속했다.
***
다음 날.
깨끗한 종이에 받아적은 계획표를 제출하자, 장철심은 침묵했다.
단번에 내치던 전과 달리 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더니.
장철심이 풀썩 웃었다.
“자네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닌 것 같군.”
“뭐가 말입니까?”
“무공도 중요하지만, 세상과 사람에 섞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 말일세.”
턱을 괸 장철심이 꿰뚫는 시선을 보내왔다.
“아무리 고민해도 도통~ 써먹을 구석이 떠오르지 않는 자네 같은 이도 인간처럼은 보이게 만드는 것이 동료의 힘 아니던가?”
“글쎄. 무슨 말씀인지.”
모르쇠로 일관할까 했지만.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나? 쓰는 단어부터 틀리던데.”
족집게 같은 인간이라 포기했다.
“좋은 말로 포장했을 뿐이지, 농땡이 피우겠다는 계획은 변함이 없고.”
이렇게 쉽게 탄로가 난다고?
“꽤 머리를 굴린 것 같지만, 내가 이런 서류를 얼마나 본다고 생각하는가? 한번 보면 척이지.”
지독하게 깐깐한 주제에 성실하기까지 하다. 최악의 인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써오란 말입니까?”
경계하며 묻자 장철심이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했지 않은가. 내가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계획서가 반듯한가 정도야.”
통과일세.
앞으로 이 정도 주변머리는 좀 챙겨 두면 좋겠군.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이얏호!”
드디어 귀찮기 짝이 없던 문서 작업이 끝을 맺는 날이었다.
***
“이런. 늦었나?”
임시숙소로 돌아가자, 대부분의 방들이 비어있었다.
“뭐야. 다 어디 간 거야?”
투덜대며 짐을 챙기고 있자니, 홀홀 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잊으셨습니까? 먼저 출발하는 선행조(先行組)를 배웅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그런가?”
“아직 시간은 있지만, 느긋할 때가 아닙니다.”
천만다행이다.
짐이라도 챙길 시간이 필요했거든. 적당히 옷가지를 쑤셔 넣고 있자니, 왕우가 소곤거렸다.
그보다.
“초 교관님을 찾아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평소와 다른 ‘초 교관’이라는 호칭에 초운휘가 말을 낮췄다.
“저를 찾아오신 분이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어깨 너머를 날카로운 눈으로 곁눈질하는 왕우를 보며, 초운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이 사람들은.’
아니나 다를까.
“오랜만이군. 초 교관.”
학사의를 차려입은 중년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전, 제갈세가에 들렀을 때, 감탄스러운 방식으로 뇌물을 주던.
“제갈양소라네.”
제갈 뭐시기였다.
***
“여기에는 어쩐 일로.”
“꽤 바빠 보이는군.”
“보시다시피 짐을 싸고 있어서요.”
흐음.
제갈양소의 억눌린 대꾸가 돌아왔다. 하지만, 능숙하게 표정을 지운 제갈양소가 부드러운 얼굴로 말을 건넸다.
“급한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말하세요.
“이것을 챙겨가게나.”
제갈양소가 내민 것은 각기 색이 다른 세 개의 비단 주머니.
각자 붉고, 푸르며, 하얀 주머니를 손 위에 올려두고 있자니, 제갈양소가 말했다.
“이건 뭡니까?”
꽤 화려해 보이는데.
“하핫. 자네는 제갈무후의 금낭묘계(錦囊妙計)에 대해 알고 있는가?”
“금낭묘계라면 분명.”
딱히 학문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익히 들어 본 것이었다.
워낙 유명한 일이니까.
제갈무후라면 제갈세가의 시초가 되었다는 저 후한시대의 병략가 제갈공명(諸葛孔明).
혹자는 제갈량이라 부르는 인물로, 그가 ‘어려움이 있을 때 꺼내어 보라’며 세 개의 비단 주머니를 무장 조자룡에게 남긴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부채를 살랑거리며 제갈양소가 말했다.
“선조의 위명을 따라 험한 길을 가는 이에 비단 주머니를 내어주는 것이 가풍이 되어서.”
“그렇군요.”
하긴 확실히 이런 화려한 비단 주머니를 보니, 뭔지 모르지만 꽤 있어 보인다.
나중에 주머니만 팔아도 쏠쏠할 것 같고.
“열어 보게나.”
제갈양소가 이르는 대로 주머니를 열어 보자, 각기 다른 색의 세 개의 패가 굴러 나왔다.
“‘제갈’, ‘백리’, ‘모용’이라니, 이거 설마.”
“맞네. 본가와 백리세가, 모용세가의 지인임을 증명하는 패라네.”
물건의 정체를 알았지만, 문득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가문의 패는 외인에게 잘 넘기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보통 가문에 큰 은인이나, 혈족으로 묶인 특별한 존재에게 내어준다고 하지 않았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인간이 가문의 패를 멋대로 휘두를지 모르는데, 쉽사리 내어주겠는가.
잘못하면 패를 내어준 가문이 욕을 먹는데 말이다.
제갈양소가 말했다.
“깊이 생각할 것 없네. 자네에게 탄이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니까.”
“모용가와 백리가도.”
“자네에게는 그저 어린 관도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가문에서 애지중지하는 아이들이네. 좀 더 편하고, 안전한 강호행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
“그렇군요.”
대답은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써먹으라는지 알 수가 없네.
싶던 차였다.
예리한 눈으로 속내를 간파한 제갈양소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속삭였다.
“여행 경비 제공에.”
“!”
“안락한 숙소.”
“!!”
“거기에 술과 고기 무제한.”
“!!!”
슬쩍 거리를 벌린 제갈양소가 부채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으로 말이지.”
“비공식…”
“본가와 관계있는 가문에 보이면, 후대해 줄 것일세.”
역시 제갈세가.
이쪽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고생도 경험이라며 경비도 쥐꼬리만큼 쥐여 줬는데.’
이래서 명문 관도, 명문 관도 하는 것일까?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 더없이 따뜻한 후광을 내뿜으며 제갈양소가 말했다.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네. 너무 험하게 굴리지 말아주게나.”
끄덕. 끄덕.
초운휘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정오가 가까워졌을 무렵의 은천관문.
해가 성벽의 꼭대기에 걸리자, 둥둥둥 웅장한 북소리가 울렸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며 정수리를 달궈갈 때 즈음.
오와 열을 맞추어 도열한 교관들 사이에서 여매홍이 근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초 교관님이 늦네.”
언제나 늦는 사람이긴 하지만.
“끙. 오늘 같은 날도 늦을 줄은 몰랐군.”
“정말 배짱도 좋네요.”
양 교두나 조현 교관의 말대로였다.
오늘은 강호행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선행조(先行組)가 출발하는 뜻깊은 날.
이것을 축하하기 위해 보기 힘든 거물들이 모였다.
‘은천관주님도 계시는데.’
평소에는 보기 힘든 은천관주까지 자리한 마당.
선행조의 치하를 위해 축사를 할 무림맹의 빈객들까지 있다.
직장 상사는 물론이고, 평소에는 얼굴도 보기 힘든 거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늦장을 부리다니.
배짱도 이런 배짱이 없었다.
‘에잇. 옆 방이었다면 직접 데리고 왔을 텐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아아–!”
조금도 긴장감 없는 목소리와 함께 단출한 짐을 달랑거리며 초운휘가 나타났다.
후다닥 나타나 순식간에 교관들의 오와 열로 스며들더니, 옆에 선다.
“제가 늦었죠?”
잘못을 알기는 아나 싶었지만.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옆구리가 터진 만두처럼 옷자락이 흘러나온 짐을 보니, 절대 반성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쉰 여매홍이 쌍심지를 세웠다.
“후우. 이런 날도 늦으면 어떻게 하나?”
“틀렸습니다. 늦고 보니 이런 날인걸요?”
양 교두가 끙 비명을 삼켰다.
“말을 말지. 조용하게. 장철심 상급 교관님의 시선이 무척 무섭거든.”
“이크.”
필사적으로 양 교두의 뒤에 숨는 모습에 여매홍이 픽 웃었다.
‘진짜 긴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네.’
문득 그녀의 눈에 흩트려진 앞섬이 눈에 들어왔다.
급히 나온다고 대충 정복을 걸치고 온 모양새였다.
여매홍이 초운휘의 소매를 당겼다.
“잠깐 이리 와봐요.”
앞에 세우고는 정성 들여 옷매무새를 정돈해주는 여매홍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교관들의 오와 열 너머, 화려한 소녀가 소매를 물어뜯고 있었다.
허리에 매달린 소녀가 아니었다면, 당장에 뛰어왔을 기세.
‘풋. 후훗.’
어쩐지 통쾌해져, 한결 천천히 옷매무새를 만져 정돈하고 있자니.
“어머. 낯뜨겁기도 해라.”
“아앗.”
얼굴이 붉어진 여매홍이 착착착 옷자락을 편 후에 물러섰다.
곁에서 한층 더 우울해진 양 교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좀. 상급 교관들께서 이곳을 노려보고 있네.”
주변에 선 교관들의 눈빛도 좋지 않았다.
늦은 주제에 눈꼴시린 짓이나 한다고 눈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죄송해요오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자니.
둥둥둥둥둥!
거대한 북소리가 다시 울리며, 단상 위에 은천관주가 오롯이 섰다.
“선행조의 출정식을 시작하겠네!”
바야흐로 강호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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