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9
제38장 백묘난행 (1)
드넓은 초원이 내려다보이는 산맥의 한 자락.
붉은 옷의 사내가 절벽 아래를 굽어보았다.
저 멀리 푸른 물결을 만들어내는 초원을 보는 사내의 입가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여름도 한창인가?”
메아리가 되어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훌쩍.
그의 곁으로 붉은 옷의 복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팔천사도를 뵙습니다.”
부복하는 수하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팔천사도가 물었다.
“보기 좋지 않나?”
“…….”
“참 평화로운 광경이란 말이야.”
흐뭇하게 웃던 이를 살피던 적의 복면인은 이어지는 말이 없자, 가지고 온 소식을 꺼냈다.
“각지에 흩어진 고독(蠱毒)의 심령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뚝.
사내의 온화한 기운이 사라졌다.
“세상은 참으로 선하단 말이야.”
인간이라는 버러지들이 없다면 말이야.
중얼거린 팔천사도가 뒷짐을 지었다.
“아쉽군. 조금 더 무림맹을 휘저어주기를 바랐거늘.”
“생각 외로 무림맹의 반응이 빨랐습니다. 또한.”
이어지는 말에 팔천사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개방의 거지새끼들이 이렇게 부지런 한 줄은 몰랐군.”
“지우고자 하신다면 지우겠습니다.”
적의 복면인이 충직하게 말했지만, 팔천사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되었어. 각성석을 위해 너무 많은 손실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무림맹의 명줄을 죄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패들을 너무 일찍 드러내 보였다.
“놈들이 독이 바짝 오른 것도, 위기감을 느낀 것 때문일 테지.”
“…죄송합니다.”
수하의 사죄를 듣는 둥 마는 둥 한, 팔천사도가 입을 열었다.
“각성석의 행방은 찾았더냐?”
“네. 찾았습니다.”
머리를 조아린 수하가 말을 이었다.
“각성석-. 저들이 말하는 혈루석은 현재 무림맹의 엄중한 관리하에 있습니다만.”
몇몇 회의 끄나풀을 심어 행방을 수소문하는 데 성공했다.
“곧 화산파로 옮긴다고 합니다.”
“구파의 이대검문인 화산인가? 나쁘지 않은 판단이로군.”
화산의 험준함에 의지해 각성석을 숨겨볼 생각인가-.
중얼거리며 팔천사도는 화산을 떠올렸다.
화산파가 위치한 화산(華山)은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이라 불리는 험준한 산맥이라.
“화산이라 천신의 검을 아무렇게나 꽂은 듯한 험준함이 절경이었지.”
지세에 의지해 물건을 숨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어쩌면 꿍꿍이를 풀어 놓을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저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들의 결정이 아름다운 화산을 불태울 것이라고는 모르는 모양이야.”
“화산을 치시겠습니까?”
눈앞의 팔천사도가 마음을 먹는다면, 구파일방 중 손꼽히는 강자를 꺾는 것도 가능할 터.
‘팔천사도께서 원하신다면.’
자신은 목숨을 태워서라도, 화산의 몰락을 바치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팔천사도가 고개를 저었다.
“먼저 손을 쓸 필요는 없다.”
각성석이 화산으로 이동할 때는 아직 남았으니까.
또한 팔천사도는 다른 이유도 입에 담았다.
“풍검에서 연락이 왔다. 제단을 다시 만들었다더군.”
“오오-. 드디어.”
“조만간 내게 각성석을 보내온다던데.”
이야기를 듣던 수하의 눈매에 경계가 어렸다.
“풍검은 믿을 수가 없는 자입니다.”
“안다. 알고 있지.”
어차피 팔천의 사도들은 각자 신이 되기를 꿈꾸는 경쟁자들.
“천하에 두 개의 하늘은 있을 수는 없으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겠지.
“…….”
“하지만 신이 될 매개체를 넘긴다면야 잠깐 속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거기까지 말한 팔천사도가 몸을 돌렸다.
“물론 가장 좋은 쪽은 내가 두 개의 각성석을 취하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두 개의 각성석을 취하여, 천하에 다시 없는 신이 되고자 하니.
– 그러니까 명한다.
“화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내가 직접 돌을 회수해야겠다.”
“존명!”
***
백묘난행.
묘진문은 얼마 앞둔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원래라면 소호의 문파로서는 그저 그런, 특별한 취향의 사람들에게나 사랑을 받는 곳이었는데, 최근에 위상이 많이 바뀌었다.
소호의 무가들을 모아, 신무강호행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소문이 돌자, 여기저기에서 교류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소.”
“관무검이요. 묘진문과 거래를 하고 싶소.”
“이웃하고 있음에도 왕래가 적었으니, 앞으로 자주 보는 것은.”
사람들이 교류를 청하는 이유는 단순히 묘진문의 이름값 때문만은 아니었다.
– 곤륜파의 전인께서 묘진문에 머무른다.
한때 정파의 전설로 남은 곤륜파.
대곤륜의 진전을 이은 왕우가 머물고 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부디 왕우 노사님께 청을.”
“좋은 차가 있어 가지고 왔네. 왕 노사께 전해줄 수 있겠는가?”
더러는 작은 기대를, 더러는 순수한 대협객에 대한 존경을 이유로.
사람들은 묘진문의 문턱을 빈번하게 넘나들었다.
보통 주목을 받게 되면, 인근 문파의 경계심을 사는 것이 보통.
하지만 묘진문은 이에 자유로웠다.
“본 문은 무공이 보잘것없소. 무공보다 얼마나 고양이를 소중히 여기는지가 중요하지.”
명성은 그럭저럭 있어도, 무림 문파로서 존재감은 거의 없는 수준.
이런 탓에.
“묘진문은 무림 문파가 아니라, 상인이나 관광상인이 아닌가?”
라고 떠드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로군.”
이야기를 들은 묘광이 웃고 넘길 정도였으니, 사람들은 한층 경계를 풀었다.
가벼움 뒤에 숨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말이다.
***
묘진문의 별실.
묘광이 한 묶음의 초상화를 가져다 바쳤다.
“새로 그려낸 것들입니다.”
“이번에는 꽤 늘었네.”
“밤잠을 설쳐가며 그려낸 것입니다.”
팔락. 팔락.
이십여 장에 달하는 그림을 차근차근 살폈다.
하지만, 도통 초운휘의 입가는 풀어질 줄을 몰랐다.
“으음. 역시 없어.”
“그렇습니까?”
묘광이 실망한 기색으로 초상화를 정리할 때였다.
“홀홀홀. 낙심하지 마십시오.”
정성스레 탄 차를 내어주며 왕우, 아니 사마백이 말했다.
“주군의 정성이 절절하니, 분명 하늘도 감동해 인연을 내어주실 겁니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홀짝. 홀짝.
차를 넘기고 있자니, 파르르 공기가 떨리며 허공에서 시커먼 것을 뚝 뱉어냈다.
“주—군. 나 찾은 것 같아!”
들뜬 목소리로 나타난 단야의 등 뒤로 붕대가 춤을 췄다.
“딱 보니 알겠더라. 이 여자 아냐?”
“그래?”
단야가 내민 초상화를 받아 든 초운휘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으-엑.”
“응? 아니야? 멀리서도 확 눈에 띌 외모라 딱인 것 같았는데.”
“당문의 독나비잖아.”
“독나비?”
아차. 아직 당애희는 강호에서 별호를 얻기 전이지.
이전 삶과 달리, 독살스러운 처자가 아니라, 아직 어린 소녀였다.
“이 여자는 아니야.”
사천당가의 당애희.
유독 커다란 나비 모양을 불쾌하게 보며 초상화를 덮었다.
“이 여자도 묘진문으로 오는 건가?”
“어. 그런 모양이야.”
마주치지 않겠다면 좋겠는데.
일단 실망한 단야에 수고했다고 치하하고는 묘광에게 물었다.
“묘광. 백묘난행은 언제쯤 개최할 생각이지?”
“약 닷새 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꽤 빨라졌네.”
“각지에서 생각보다 빨리 마인들을 퇴치한 모양입니다.”
이어지는 설명은, 마인의 출몰에 정파무림이 생각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특히 일좌께서 왕우의 이름으로 활약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잊혀진 곤륜파의 절세고수.
‘강호에서 배분이 가장 높은 이가 누구보다 앞서 움직이니, 엉덩이 무거운 정파의 노괴들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겠지.’
짐작대로였다.
원래라면 체면만 차릴 구파일방과 십대세가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다.
“허허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웃는 얼굴로 찻잎을 우려내는 데 온 관심을 쏟는 이 인간이 정파무림의 정복을 바라는 악당임은 꿈에도 모르겠지.
덕분에 일이 잘 풀렸지만.
“다른 특별한 것은 없어?”
단야가 손과 함께 붕대를 착 쳐들었다.
“새끼발가락에게 편지를 보냈어.”
이놈이 새끼발가락이라 부르는 이는 사마율.
독안신검이라는 이름으로 정파 강호의 희망이라 불리는 인간이다.
“혼자 빼놓고 백귀야행을 나섰다고 하니, 백지의 편지가 돌아왔어.”
눈물 한 방울 떨군 빈 종이였다는 알고 싶지 않은 설명도 덧붙였다.
“율이는 알아서 잘하겠고.”
시선을 돌리자, 묘광이 대답했다.
“아직 별다른 상황은 없습니다.”
“감찰부의 흉악한 놈들은.”
“하비성 부근에서 나타났다는 말은 들었지만.”
딱히 없다는 거지?
그럼 다행이다.
“경계해. 색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방해꾼들에게 꼬리를 밟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주군의 명을 받습니다.”
***
일 처리를 끝낸 초운휘가 무방비한 채로 방에서 나왔다.
이내 하늘의 해를 보아 시간을 가늠한 후.
“여 교관님에게 놀러 갈까?”
지금 시간이면,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을 텐데.
중얼거리던 순간이었다.
벌컥!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묘진문의 정문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여럿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심의 교관이고.’
청양현은 지척이니, 묘진문의 백묘난행에 초대를 받은 건가?
뒤이어 한결 가벼운 얼굴의 청수도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이들이 등장해, 말이나 건넬까 하던 순간이었다.
“초운휘 임시 교관!”
그들 뒤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의 중년인이 씩씩거리며 나타났다.
그를 본 초운휘가 검지를 튕겼다.
“아, 맞다. 생각해보니, 지금 낮잠을 자러 가는 게 좋겠어.”
돌아서는데, 또다시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왔다.
“초운휘! 이 새…. 임시 교관!”
잔뜩 억눌린 고함을 들으며, 하나둘 셈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한 초운휘가 몸을 돌렸다.
“아이고. 이거 오랜만이네요.”
너스레를 떨어봤지만, 상대의 얼굴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미간에 핏대가 서는 것을 보니, 오히려 역효과인 걸까?
초운휘가 몸을 돌렸다.
“맞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낮잠이 필요해.”
재빨리 빠져나오려 했지만, 등 뒤를 덮친 그림자가 먼저였다.
와드득.
어깨뼈를 부러질 듯 부여잡은 손이 우악스럽게 몸을 돌렸다.
억지로 시선을 마주하게 된 상대가 이를 앙다문 채로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할 말이. 있지 않은가?”
얼굴도 목소리도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채로 장철심이 말했다.
“글쎄. 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발뺌을 하는군.”
“발뺌이라니 제가 굳이 발뺌할 이유가 있나요?”
적반하장으로 나서 보았지만, 장철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따라 들어오게.”
***
장철심은 황당한 일을 당했다.
막 묘진문의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손을 보태려 움직이던 때였다.
마인의 출몰은 워낙 시급한 일인지라 만사 제쳐두고 나선 길.
다행히 큰일은 면했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허. 왕우 노사께서.”
“사달이 난 것을 보시고, 지체 없이 두 팔을 걷고 나서셨다니, 과연 대협이라 칭해 부족함이 없군요.”
심의의 말에 장철심도 동의했다.
“이런 분들이 강호에 많아져야 하는 것을.”
쓸쓸하게 심의도 동의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부터 정의 이전에 셈법을 계산하는 이가 많아졌는지.”
“앞으로 우리가 더욱 중요한 인재들을 길러내야지요.”
이왕 길을 나선 데다, 묘진문의 승전을 축하해달라는 신무학관의 전서에 그 길로 소호를 향했던 일행이었다.
우상이자 살아 있는 대협객을 다시 본다는 생각에 소호에 이른 때였다.
“장철심. 상급 교관 맞나?”
성문에서 신분패를 보이자, 관병들이 나타나 에워 쌓았다.
“귀하에게 청취할 내용이 있소. 관부로 따라오시오.”
“청성파의 고수분께 무례를 저지르고 싶지 않으니 협조해 주시오.”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하가 장천파를 공격한 일을 모두가 알거늘!”
모른 척 마라.
소호 사람들도 다 아는 일인데.
기가 막혀 외쳤다.
“나는 소호는 일 년 만에 오는 길이요.”
“범죄자들은 다들 그리 말하지.”
긴장한 채로 창을 겨누는 관병들에게 심의 교관까지 나서 설득을 한 끝에 혐의는 벗었지만.
백주대낮에 성문에서 구금될 뻔한 치욕은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
상념을 거둔 장철심이 두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정녕 할 말이 없는가?”
당장이라도 치도곤을 낼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