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3
제8장 세 번째 관도 (2)
쪼르르륵.
잔을 채워주며 모용선야가 말했다.
“둘이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꽤 활약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백리세가에서 퇴관 결정을 철회하고, 감사를 표했다죠? 워낙 놀라운 일이라 은천관에서도 꽤 화제였어요.”
“흔한 일이 아닌가 보죠?”
“십대검가쯤 되는 곳이 실책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결정을 번복하는 일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경향도 짙고 말이에요.”
그간의 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자니, 문득 모용선야가 머뭇거렸다.
“냠.”
홍소육을 한 젓가락에 세 개씩 집으며 초운휘가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요?”
“고민이라기보다는 아까 이야기한 부탁 때문이에요.”
“냠. 냠.”
한 젓가락에 다섯 개씩 홍소육을 집어 먹고는 술잔까지 비운 초운휘가 크허!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모용선야의 눈이 굉장히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변했다.
“뭐랄까…. 굉장히 아저씨 같네요.”
“방년 스물다섯. 결혼적령기의 아저씨 아닙니까?”
“스무 살은 고사하고 서른 살도 강호인들 사이에서 어린 편 아닌가요? 서른다섯 살이 넘어야 후기지수 딱지를 떼잖아요. 아니, 방금 전은 심지어 한 오십 대쯤 되는 아저씨 같은 반응이었다고요!”
“네, 다음 아줌마.”
“이 사람이 진짜!”
가벼운 담소 끝에 모용선야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을 했다.
‘참 묘하다니까.’
은천관에서도 어지간한 일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이 어느새 웃고 있음을 발견한 그녀는 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본론이 뭡니까?”
“뭐,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새로운 관도를 받을 생각 있나요?”
새로운 관도라.
초운휘의 입장에서는 누구라도 귀찮게 하지 않고 실적만 챙겨 준다면 누구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백리세가의 일을 처리하고 한결 높아진 충현의 기대감은 매일 자신을 들쑤시는 것으로 이어지고는 했으니까.
최근에는 잔소리를 하다 지쳤는지 쓸데없는 잡무를 잔뜩 떠맡기며 압박하고 있었다.
‘누구든 구하긴 해야겠는데.’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은 질색이다.
“여 교관에게 이야기는 들었겠지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믿기지는 않지만.’
모용선야는 뒷말을 삼켰다.
“알고 계시면 다행이네요.”
“자질 자체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아이예요.”
관도가 아니라. 아이라.
친숙한 호칭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모용선야가 덧붙였다.
“본 가에서 온 아이거든요.”
“모용세가의 사람인가요?”
“세가에서도 무척 귀하게 여기는 아이예요. 본가의 귀염둥이라고나 할까요? 모용소혜라고 무척이나 활달하고, 밝은 아이죠.”
“활달한 아이라…. 끄응.”
“왜 그러시죠?”
초운휘가 잔뜩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이미 활달한 인간은 차고 넘칩니다.”
모닥불을 삼킨 고라니 같은 사람이 말이에요.
“어머. 남궁윤호 관도를 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설마, 백리설 관도를 말하는 것인가요?”
끄덕.
야근을 하고 오던 길에 통닭을 샀다가, 포장지가 찢어져 망쳐버린 아버지의 기색으로 초운휘가 고개를 까딱였다.
‘백리설 관도가? 이건 정말 예상 밖이네.’
자질은 있지만 언제나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탓에 주변 관도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백리설이다.
예전에는 령령이라는 시비라도 붙어 있어 나았지만, 최근에 돌아오고 나서는 아예 전력으로 관도들에게 벽을 세우며 경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네.’
궁금함을 삼킨 모용선야는 화제를 돌렸다.
“요는 꽤 재능도 있고, 재기발랄한 아이이건만, 가문에서는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서 문제에요.”
“이유가 뭡니까?”
“소혜의 모친이 강호의 은원에 휘말려 죽고 말았거든요.”
흔히 있는 이야기였다.
강호의 은원은 작은 것이라도 언제 어떤 끔찍한 재앙으로 되돌아올지 모르니까.
‘모용소혜라….’
기억에는 없는 이름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강호에 이름을 알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이 아니거나, 모용세가의 의도대로 안락하게 살다 갔을 운명이라는 뜻이겠지.
‘뭐 상관없나?’
어찌 되든 상관없는 강호다.
지금 자신에게는 적당한 재능만 있고, 실적만 벌어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니까.
“그런데 왜 굳이 제게 부탁을 하는 겁니까?”
가까이는 여매홍도 있고, 다른 능력 있는 이들도 많을 텐데 말이다.
이에 모용선야가 웃으며 대답했다.
“특이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들어서 기대하고 있거든요.”
대체 무슨 소리인지.
냠.
젓가락이 홍소육 일곱 개를 잡았다.
***
모용선야는 보던 것만큼이나, 꽤 행동력이 빨랐다.
다음 날, 날이 밝기 무섭게 한 소녀가 찾아왔다.
“아, 안녕하세요.”
생각보다 작은 소녀였다.
키는 약 오 척(150cm)에도 못 미쳐 보였다.
“나이는 열넷! 동천관 신입 관도 모용소혜입니다.”
열넷이면 백리설보다 한 살 연하.
그런 것치고 키는 머리 반개만큼 작아 훨씬 더 어려 보였다.
‘잘 못 먹고 컸나?’
모용세가에서 아끼는 아이가 그럴 리는 없는데?
‘아니, 아닌가?’
이쪽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백리설 뒤로 걸어가는 비슷한 나잇대 관도들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백리설 쪽이 유독 키가 큰 편이랄까? 이쪽은 좀 작은 편이고.
새삼 깨달은 초운휘는 모용소혜를 향해 물었다.
“좋아. 모용 교관님께 이야기는 들었다.”
“네, 넷!”
바짝 군기가 든 모용소혜가 허리를 펴며 외쳤다.
‘모용선야가 말한 활달한 귀염둥이보다는 잔뜩 긴장한 이족보행 강아지 같은걸?’
잡생각을 무시하며 초운휘는 적당히 근엄한 체를 하며 모용소혜에게 말했다.
“좋아. 한번 배운 것을 보여주련?”
***
모용소혜는 연무장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소심하게 외쳤다.
“시,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지는 것은 관도라면 누구나 익히는 신무검법 전반부였다.
강호에 멀리 떨어트려 두고 싶어 세가의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설명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얍! 얍! ”
혀를 깨문 종달새 같은 기합을 지르며 검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초운휘의 평가는 간단했다.
‘평범하네.’
나쁘지 않은 자질이다.
동천관의 관도들 사이에서 중간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이랄까?
콕 집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딱히 탐이 나지 않는다.
성격이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것 같아 다루기는 편할 것 같지만, 백리설을 보면 화들짝 놀라 초식이 흐트러지는 것이 꽤 겁이 많은 성격 같다.
겁이 많은 강아지는 손을 많이 타기 마련이다.
‘아, 안 되겠다.’
어떻게 둘러대고 돌려보내지?
일반적인 관도라면 모르겠지만, 워낙 술 주머니가 되어주는 묘용선야의 부탁이라 조금 찔린다.
“다른 것은 없나?”
“저…. 암기도 조금 다룰 줄 알아요. 금나수하고 단검술도 살짝 배웠고요.”
“금나수는 몰라도 단검술에 암기술까지?”
보통 정파인들은 암기술이나 단검을 다루는 일은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문의 무공조차 제대로 배우지 않은 모용소혜가 암기술과 단검술을 배웠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유는 바로 나왔다.
“기본적인 호신술은 배워 두는 것이 좋다고 해서….”
아, 그런 거였나?
정식 무공은 몰라도 몸을 지킬 잡기술 정도는 가르친 모양이다.
“좋아. 펼쳐봐.”
“네! 교관님!”
얍얍!
혀 깨문 종달새 소리가 재차 연무장을 울렸다.
***
“끝났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모용소혜를 보는 초운휘의 평가는 여전했다.
‘어중간해-.’
여전히 딱히 눈에 띄는 구석은 들어오지 않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손기술이 나쁘지 않아.’
단검술과 금나수는 그럭저럭 볼만했다.
비록 조악한 잡기술만 익힌 탓에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잘만 가르치면 암기와 단검술에 소질을 보이게 될 것이었다.
모용세가보다는 암기의 명가인 사천당문에서 더욱 빛을 볼 아이라고나 할까?
‘이러니 더욱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하지.’
안 그래도 다칠까 벌벌 떠는 아이가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근접전에 재능을 보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안 되겠어. 너무 손이 많이 간다.’
돌려보내자.
어차피 남궁윤호가 추천한 친구 놈도 있다니, 굳이 목을 맬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
“으음.”
고민에 빠진 교관을 물끄러미 보던 모용소혜는 침울해졌다.
‘틀렸네.’
특출난 재능은 없지만, 언제나 사람들 곁에서 살아왔기에 타인의 심기를 읽는 데는 능숙한 그녀다.
갈팡질팡하는 얼굴에서 모용소혜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아까 검을 펼치려 할 때마다 차갑게 노려보던 무서운 언니나 무뚝뚝한 오라버니와는 다르다.
단순히 ‘경계’나 ‘호의’가 아닌, 자신을 평가하는 ‘부정’적인 감정.
문득 우울해졌다.
‘이번에도 틀렸나 봐.’
발치의 돌멩이를 툭 차며, 윗입술을 세모꼴로 우물거렸다.
특이한 교관이라고 들었다.
관도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구석에 숨겨진 재능을 찾는 괴인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하여, 자신도 기회가 있을까 싶어 모용선야를 졸라 기회를 얻었는데, 자신이 실패하고 말았다.
‘염광 교두님은 싫은데….’
가르침은 나쁘지 않다는 평이지만, 묘하게 자신을 대할 때면 ‘꿍꿍이’가 느껴져 꺼림칙했는데.
‘다시 돌아가야 하나?’
툭.
재차 발치의 돌을 굴리고 있을 찰나였다.
콰앙!
“아차!”
굉음과 함께 커다란 오빠의 탄식이 들려왔다.
쿵. 쿵. 쿵.
주르르륵.
이내 발치를 때리는 부서진 허수아비를 보며 모용소혜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허수아비가…. 부서졌어?”
단순한 허수아비가 아니다.
인간을 본뜬 형상에 이마와 가슴에 철목(鐵木)이라고 새겨진 이것은 수련용 허수아비들 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철목으로 만든 물건이 아니던가?
‘어느 누구도 이렇게 부수지는 못했는데?’
직접 때려본 자신도 손만 다치고 말았다.
교관이 타격 시범을 보여준 경우도 있었지만, 이렇게 철목이 부러질 정도는 보여주지 못했다.
실로 박수를 받을 대단한 일 아닌가.
염광이라면 잔뜩 신이 나서 자신의 지도가 뛰어난 탓이라며 한 달 내내 자랑하고도 남았다.
“대단해-.”
한데 고개를 들던 모용소혜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이 자식아!”
방금 전까지 고민에 잠겨 있던 교관이 날라차기를 하고 있었다.
“그건 조심히 다루라고 했지!”
퍼억!
근엄한 오빠가 성대하게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교관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내 월급! 또 시말서!”
성대하게 구르던 근엄한 오빠가 오뚝 일어서더니 항변했다.
“처, 천천히 쳤습니다.”
“그랬어?”
“진짜입니다. 힘 빼고 천천히 쳤습니다.”
“좋아. 믿어줄게. 거기 딱 서 있어. 내가 널 천천히 쥐어패겠다.”
“교관님!”
이게 무슨 일인가.
성취에 대한 찬사는 없었다.
‘징벌’과 ‘좌절’의 기운만이 교관에게서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가장 큰 것은 ‘좌절’의 감정이다.
교관은 진실로 철목이 박살 난 것에 좌절하고 있었다.
“어….”
두 눈을 깜빡이던 모용소혜는 문득 발치에 놓인 허수아비에 시선이 닿았다.
***
“야- 이!”
“교, 교관님! 잘못했습니다!”
한참 남궁윤호가 비명을 지르고, 초운휘가 광분하고, 백리설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초운휘를 응원하는 사이.
“저어기….”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이 고개를 돌렸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제 키만 한 허수아비를 낑낑거리며 들고 있는 모용소혜였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허수아비가 말짱해?”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러진 목이 말짱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세 사람의 시선을 받은 모용소혜가 우물쭈물거리며 대답했다.
“여기 관절부가 살짝 고장 난 것뿐이에요. 부서진 부분을 파내고, 남아 있는 부분에 홈을 내면 어느 정도 고칠 수 있어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부서진 부분을 살짝 들어내고, 안쪽에 있는 장치 몇 가지를 만지는 것만으로 목이 멀쩡해졌다.
“완전히 부서진 것이라면 붙일 때 고생하지만, 이건 특수하게 제작된 물건이라 임시 수리가 가능해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허수아비 안에 내장된 장치를 척척 만지는 손길과 야무진 모용소혜의 얼굴 사이로 초운휘의 시선이 오락가락했다.
“자, 감쪽같죠?”
쨘! 하며 멀쩡해진 허수아비를 내밀자, 초운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 어…. 우세요?”
“내 월급. 살았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또 월봉이 날아가나 싶었는데….”
첫날 철목을 박살 내고 삼 개월 월봉이 날아갔다.
이곳에 취직한 지 석 달.
석 달 내내 땡전 한 푼 받지 못한 것이다.
이제야 간신히 월봉을 받나 싶었더니, 망할 놈이 또다시 집기를 부숴 먹었다.
자칫하면 다시 첫 월봉 수금의 날이 날아가나 싶었으니 감격하지 않을 수가 있나.
“관도님.”
“예? 예….”
뚝. 뚝. 끊기는 걸음걸이로 온 초운휘가 한쪽 무릎을 푹 꿇었다.
“제가 담당하게 해주세요.”
“예? 저, 저는 가진 것은 손재주밖에 없는데요? 이것으로는 허수아비 만지거나, 암기를 직접 만드는 것 정도밖에….”
“그거면 됩니다. 충분해요.”
으드득. 남궁윤호를 돌아보며 초운휘가 이를 갈아붙였다.
“할 줄 아는 것은 부숴 먹는 일과, 돈 나갈 일만 만드는 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죠.”
“어? 어? 저는 무공도 잘.”
“허수아비만 고쳐 주세요. 그까짓 무공. 밖에 나돌아다니는 연놈들을 죄다 쳐죽일 수 있을 정도로 지도하겠습니다.”
모용소혜의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던 탓이다.
“저…, 저…. 그러니까!”
그때였다.
“이게 웬 정신 없는 꼴이야?”
모두의 고개가 다시 연무장 입구 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비단 무복을 차려입은 한 날카로운 얼굴의 청년이 건들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제갈탄.”
그를 알아본 남궁윤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씩 웃은 청년, 제갈탄이 입꼬리만 밀어 올리며 오만하게 웃었다.
“여어. 잘 있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