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72
제68장 관문 돌파 (1)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각종 진법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편집증에 걸린 것 같다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촘촘히 짜인 방벽이다.
다시 진세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예를 들어, 남쪽의 길을 따라 오르다, 관측소와 검문소를 피해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면.”
“무유마참대가 나오겠군.”
“역시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백백폭마대와 마주하게 될 겁니다.”
각기 수백 명의 절정고수로 이루어진 수라혈교의 전투기계들이다.
어느 길로 나아가든 최소 천 명의 마도 고수들과 마주치는 형국이었다.
“뚫으려면 못 뚫을 것은 없습니다만.”
“그렇지. 하지만 모두 상대하는 것은 힘들어. 본교의 고수들은 하나 같이 일당백이니까.”
또한, 이들은 어디까지나 번견이다. 뒤이어 나설 본단의 고수들을 상대하려면 아찔하다.
“다들 알겠지만, 놈들을 부수는 순간, 네 방향에서 이변을 눈치챈 마군들이 모여들 거야.”
동심원처럼 겹치고 겹친 인의 장막을 뚫어내는 순간, 포위를 당하는 형국이었다.
그럼 헛된 피를 무수히 흘려야 하고, 이는 망천회가 바라는 길이겠지.
“다른 길은 없나?”
“또 있긴 합니다만. 이쪽은 좀 까다롭습니다.”
전투부대의 이름과 달리 붉게 적힌 글자는 ‘천령강시’라고 적혀있었다.
“천령강시?”
“마도명가 시혈문을 다시 세우며, 개발해낸 강시입니다. 일반적인 강시와 달리 몹시 예민하고, 광폭하다고 하죠.”
일반적인 검으로 자를 수 없다는 설명도 들어왔지만, 어느 누구도 딱히 감흥은 없어 보였다.
여기 있는 이들 중, 강기를 뿌릴 수 없는 이들은 없으니까.
“강시라. 시체를 토막 내는 일은 어렵지 않겠지만. 주군. 관측소의 위치가 이상합니다.”
“사마 형이 잘 지적하셨군요. 맞습니다. 강시 자체로도 까다롭지만, 설명 드린 대로 충격에 매우 민감하다고 하더군요. 작은 진동만으로 강시가 반응하며 공격한다고 합니다.”
“머리를 썼네. 강시가 움직이면, 바로 다른 이들이 움직이겠지?”
역시나 동심원은 이곳에서도 어지럽게 얽혀 있다.
“맞습니다. 하여, 이곳을 돌파하려면 강시를 무력화시키고 나아가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삼십여 장 거리를 한 번도 땅을 딛지 않고 움직여야겠고요.”
“삼십여 장(구십 미터)이나?”
하늘을 날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이 삼십여 장을 한 번의 도약 없이 넘어갈 수가 있을까?
“이쪽이 좋겠군.”
하지만 초운휘는 바로 미소 지었다.
“내가 먼저 넘어가 강시들을 무력화시키도록 하지. 강시를 제압하는 방법은 있겠지?”
“…정말 가능하시군요. 그럼 간단합니다. 강시를 다루는 술사가 있을 테니, 그만 제압하면 됩니다. 다만, 소란을 일으킨다면.”
“걱정 마라. 호각을 불 사이도 없이 바로 심령을 제압할 테니.”
이어지는 설명에 독고율과 진세현은 기가 막힌 듯 혀를 내둘렀다.
“역시 주군이야. 멋져.”
생각 없는 단야 정도만 붕대로 손을 만들어 박수를 친다.
“본단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것이 끝인가?”
“일차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다만, 본단에 다가가면 갈수록 길과 길이 만나며 경계가 삼엄해지는 탓에 몇 개의 관문을 돌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네 곳은 뭉개버려야 하나?”
가능한 한 피하려고 했지만, 본단으로 이어지는 어지러운 길 어느 곳을 살펴봐도 좀처럼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현아. 진마비영대의 대주가 누구지?”
“대주는 영충이라는 자입니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군. 비영대의 대주가 예전의 그놈이라면 좋았을 텐데.”
“심 대주 말이군요. 그 또한, 불측한 언사로 뇌옥에 갇힌 지 오래입니다.”
이어지는 대화는 복잡하게 얽힌 관문만큼이나 복잡했다.
하지만, 서서히 거대한 철옹성을 뚫고 지나갈 바늘 같은 틈새를 발견해나가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은 본단에 숨어 들어갈 방도인데요.”
지금까지 책략을 내놓던 진세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관문으로 이어지는 작고 험한 길보다, 본성의 방비는 엄중해서 그조차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였다.
초운휘가 물었다.
“예전에 교주만 이용할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었지. 그곳을 사용할 수 있을까?”
위지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려울 겁니다. 치밀한 교주가 가만히 둘리 없을 테니까요.”
“흐음…. 어쩐다.”
문득 지도를 살피던 초운휘의 눈에, 흐릿한 글귀가 몇 개 보였다.
“이곳은 어째서 표기가 되어 있지 않지?”
“아. 그곳은.”
바로 진세현이 설명했다.
“얼마 전에 새롭게 만들어진 통로입니다. 따로 확인한 바가 없어 남겨둔 곳인데.”
“새롭게 만들어?”
듣고 있던 위지극이 툭 손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북망문이라고 하던가?”
“북망문?”
“죽은 자들의 시체를 버릴 때 쓰는 문입니다. 원래는 적당히 북문으로 빠져나갔지만….”
“안에서 나가는 시체들이 확연히 늘어났다면, 확실히 주변의 이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
독고율의 말에 모두의 눈에 새파란 안광이 번뜩였다.
“좋아. 한번 알아볼 가치가 있을 것 같군.”
정리하며 초운휘가 몸을 돌렸다.
“오늘 밤에 바로 움직인다. 다들, 마지막까지 알아볼 수 있는 대로 알아봐.”
무려 수라혈교의 본진을 뚫고 들어가는 일.
남북으로 나뉜 마교의 중심을 범하겠다는 선언에도.
“네.”
“네, 주군.”
네 사람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
혈마전에 들어온 풍객은 비릿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야 온 건가?”
하지만, 옥좌의 위에서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에 이내 관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교주. 바라던 대로 마도사화를 손에 넣었소.”
“끌끌. 좋아. 그년들을 어디에 있지?”
“멀지 않은 곳에 숨겨 두었소. 아무리 나라도 쉬지 않고 네 사람과 함께 바람 위로 나는 것은 무리거든.”
“혹여 그년들이 빠져나간다면.”
“급히 교주가 불러, 온 길이외다. 곁에 대원들을 붙여 두었으니 교주께 곧 데려올 거요.”
‘최대한 시간을 벌자.’
하는 생각에 미적거렸지만, 구일소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최근 광기가 한층 깊어진 그는, 사소한 일에도 피를 보기를 서슴지 않는다고 하니까.
하지만, 의뢰로 구일소의 반응은 잠잠했다.
“흐흐. 이미 손에 들어왔다면, 걱정할 것이 없겠군.”
“그나저나 어째서 급히 나를 부른 것이오?”
“천마신군이 천마령을 발동했다고 한다. 놈들도 우리의 짓임을 알게 된 것일 테지.”
“무려 천마신군의 애제자들을 납치한 일이오. 모를 수가 없지.”
“뭐, 상관없다. 바라던 일이니까.”
음습한 구일소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전의가 흘러넘쳤다.
반면에 풍객은 속이 탔다.
‘결국 급히 부른 것은 제단을 만들기 위함인가?’
차일피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피해왔지만, 제단의 축조는 막기 어려운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느릿느릿 만드는 척을 할 수밖에.’
염두를 굴리며, 풍객이 꾀를 쓰며 얼버무렸다.
“천마신교가 움직였다면, 곧 싸움이 임박했다는 뜻. 제단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겠군.”
“흐흐. 그런가?”
구일소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파팟!
순간 묵직한 공기의 파동에 고개를 젓던 풍객이 대경하며 양손을 움직였다.
풍뢰결이 자연스레 일어나며, 눈과 심장을 후비는 손을 튕겨냈다.
쿠웅!
“큭!”
부지불식간에 부딪힌 충격에, 그가 밟고 있던 대리석이 퍽 부서졌다.
“교주! 어쩌자고!”
“흐흐. 왜일까?”
놀랍게도 자신에게 달려와 일격을 날린 것은 구일소였다.
굳은살이 배긴 뭉툭한 손이 먹을 뿌린 듯 어두워지더니, 이내 매캐한 냄새가 풍겨났다.
“고루마수!”
슉!
손날을 세운 손바닥을 고개를 꺾어 피하고는, 양손을 교차해 올리며, 팔꿈치를 쳐올렸다.
‘크윽. 엄청난 반탄력이다.’
풍뢰결을 일으켜 막아냈음에도, 자연스럽게 일어난 구일소의 진기에 손아귀가 아려왔다.
파팟!
어지럽게 사혈을 노리는 수영들 사이로 자욱한 독기를 휘몰아쳤다.
“앙탈을 부리는구나, 풍객.”
촤촤촤촥!
수십 개나 되는 손바닥의 잔영을 보며, 풍객이 빠르게 신법을 펼쳤다.
‘엄청난 독기로다.’
시체의 독과 각종 독물에서 채취한 독에 손을 찔러 넣으며 연성하는 고루마공.
대성한 자가 사람을 때리면, 맞은 자리가 썩어들어가 죽는다는 극악한 무공이다.
‘스치는 것만으로 독기가 침습하는구나.’
수라혈교에서도 악랄하기로 이름 높은 독공답게 몇 번의 초식을 나누며 호흡을 한 것만으로도 단전이 욱신거려왔다.
파팟!
빠르게 신법을 펼쳐 물러난 풍객이 이를 갈아붙였다.
“교주. 나를 공격하다니, 정말 망천과 척을 지겠다는 거요?”
당황함에 망천회까지 거론했지만, 의외로 구일소의 신색은 태연했다.
“망천회? 설마. 끌끌끌. 그럴 리가.”
“나를 핍박하면, 회와 절연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단 또한 만들어 주지 않겠소.”
“제단. 제단 말이지? 흐흐흐.”
괴소를 흘리던 그가 격정적으로 손을 뻗자, 황금옥좌의 뒤에 있던 커다란 벽이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
“저. 저….”
혈마전의 황금옥좌 뒤에는 역대 혈마들의 위패와 함께, 그들이 남긴 글귀가 쓰여 있었다.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한때 혈마전의 주인이었던 이들의 유해들.
역대 조사들의 흔적을 모아둔 그곳은 오직 교주에게만이 허락되는 비밀 공간인데, 놀랍게도 구일소는 그것을 공력으로 잡아 뜯고 있었다.
‘광증이 머리까지 미쳤다더니, 조사들의 무덤마저 파헤쳐?’
아무리 마도를 걷는 자라고 한들,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는 법이다.
심지어 수라혈교에서도 역마 교주들의 무덤은 그런 선 훨씬 넘어에 존재하는 금기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너머의 모습이었으니.
콰지직!
벽이 통째로 뜯겨 나가며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역대 혈마의 유해들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언제부터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삼단으로 세워진 거대하고 요사한 석조 제단.
소름 끼치는 요기(妖氣)가 감도는 제단을 본 풍객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통곡의 제단!’
망천회에서도 오직 몇몇 사도에게만 허락된 제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검붉게 빛나는 요기는 그것이 존재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떻게… 벌써 이런 요기를.’
어지럽게 쓰여진 기이한 글귀와 악귀의 형상 위로 떠오른 요기의 운무를 보며 입을 쩍 벌리자 구일소가 광소했다.
“크큭! 벌써 제단을 만들었다는 것이 못 믿기는가?”
“…설마.”
“어째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어, 회에 직접 연락을 취했지. 운이 좋았어. 사도가 직접 연락을 해올 줄은 몰랐으니까.”
“…이런.”
“본교의 사도방문의 비술은 천하제일이다. 이깟 제단을 완성하는 정도는 쉬운 일이지.”
패착이었다.
아니, 어쩌면 너무 구일소를 쉽게 본 자신의 탓이었다.
구일소가 클클 거렸다.
“또한, 본교의 방술사들이 재미난 소리를 하더군. 사기(邪氣)를 모으는 것이 인신공양 뿐은 아니라고.”
“…설마.”
문득 제단을 이루는 벽과 첨탑에 낡고 오래된 해골들이 보였다.
“…설마. 역대 교주들의 시신으로 제단을 만든 건가?”
“하하하! 걸작이 아닌가? 죽어버린 쓸모없는 뼈다귀가 이런 도움이 될 줄은 말이야!”
쩌렁쩌렁 울리는 웃음에 담긴 공력에 풍객이 휘청였다.
돌연 구일소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뭣들 하느냐! 제단이 말라가고 있지 않으냐!”
그의 외침에 혈의를 입은 무인들이 한쪽에서 우악스러운 손길로 아이들을 끌로 제단 위로 몸을 날렸다.
“아악! 제발!”
울부짖는 아이들을 거칠게 제단에 짓누르고는, 이내 단검을 들어 푹 쑤신다.
“컥.”
무심한 손길이 단검을 밀어 넣으며, 뚝뚝 뼈를 가르며 움직이자, 아이가 곧 축 늘어졌다.
그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핏물받이를 타고 흘러내리며, 기괴한 문양과 글귀를 피에 적시자, 그제야 구일소가 다시 광소를 터트렸다.
“하하! 맞아. 그래! 그것이다. 쉬지 않고 제단을 적시는 거다!”
박수까지 치며 웃던 그가 새파란 동공으로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흐. 흐. 마지막 제물은 천마신공을 품은 동녀의 피다. 분명 좋은 제물이 되어주겠지.”
뒷덜미를 스치는 한기에, 풍객이 재빨리 몸을 날리려 했지만.
파파팟!
혈신전 안에 숨어있던 혈교의 고수들에 바람을 타기가 쉽지 않았다.
‘제길.’
진땀이 흐르는 가운데, 제단을 바라보던 구일소가 돌아서고 있었다.
이미 광증이 극에 달한 그의 눈은 몹시 일그러져,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좋지 않구나.’
풍객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