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90
제71장 다섯 번째 사도
북마교와 남마교가 대치했던 평원에는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
앞서 걷는 너른 등을 보며,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우뚝.
어느 순간, 갈중혁이 멈춰 섰다.
“사부님?”
뒤따르던 마도사화와 곽가휘는 멈춰선 등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부주의로 납치를 당해 오늘에 이르고 말았으니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터.
어떤 불호령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갈중혁이 입에 담은 것은 질책이 아닌 질문이었다.
“어떠했느냐?”
“어떠했다니.”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설마….”
매가 나서 머리를 숙였다.
“무척 신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꽤 생소한 부류의 사람이지. 쉽게 접해볼 수 없을 정도로.”
“…….”
“마음에 들더냐?”
“네?”
“하하. 아니다. 온통 가는 곳마다 사람을 홀리는 이라 궁금해졌을 뿐이다.”
이번에는 그의 시선이 자신의 대제자에게 머물렀다.
“보았더냐? 천외천의 경지를?”
“…그렇습니다.”
“하늘 위의 하늘은 너와 네 호적수들이 살아갈 세상이다.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저로서는 도무지 자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과연 제자가 그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만마대의 인의 장막을 무인지경으로 돌파하는 신속함.
또한, 과감한 손속에, 압도적인 힘의 격차까지.
곽가휘의 얼굴에는 짙은 패배감이 서려 있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겠지.”
“…….”
“허나. 한 번 해볼 만하다 생각하면 또 못 오를 경지도 아니다.”
“정말로 제가 가능한 일입니까?”
“오만함과 자신감은 일파를 이끄는 종사로서 나쁘지 않다.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는 점이지. 하지만, 전에는 너무 과했다면, 지금은 너무 부족하구나. 제자야.”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의 일은 네게 큰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지쳐 주저앉고 있을 때 너를 나아가게 할 것이고, 끝에 도달해 섰을 때, 앞에 남은 길이 있음을 알려주겠지.”
갈중혁의 눈에 안광이 번뜩였다.
“어떠냐? 포기하겠느냐?”
“제자는….”
곽가휘가 한참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와 나란히 서겠습니다.”
“자신이 있느냐?”
“이를 악물고 따라잡아 종내에는 추월해 내겠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천운이 따라도 어려울지 모른다.”
“부족하다면 동료가 되어서라도 어깨를 나란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결코 뒤에 서지 않겠습니다.”
“맞다. 적을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손을 내미는 것 또한 중요한 지존의 역할이지. 이제야 깨달은 듯하구나.”
곽가휘는 문득 어깨를 짚는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부터 네가 소교주다.”
“!”
“두려움을 알았으니 되었다. 하늘이 높은 것을 알았으니 되었다. 이제 땅 아래를 굽어보는 법만 배우면 되겠구나.”
철혈의 신군은.
더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멍-.
갑작스러운 선언에 놀라는 가운데, 문득 국이 입을 열었다.
작지만 눈치가 빠른 이 소녀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부님. 사부님께 그자는 무엇인가요?”
“나에게 그의 존재라.”
글쎄 뭐였을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던 갈중혁이 입술을 달싹였다.
너무 작아 들리지 않은 목소리에 모두가 눈을 휘동그랗게 뜨는 사이 그가 소매를 흔들었다.
“어서 가자꾸나. 바람이 차다.”
떠오르는 여명 사이로 얼핏 붉어진 그의 볼이 십만대산에서 불어오는 한풍에 조금씩 식어간다.
***
수라혈교의 뇌옥.
이곳에서는 쉬지 않고 비명이 이어졌다.
“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깨끗한 죽음을….”
“아아아아아악! 교주!”
쉼 없이 흘러나오는 비명은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다.
한때 구일소에게 붙어 전횡을 일삼던 이들은 이번에는 자신들이 정적을 처넣었던 뇌옥의 심처에서 끊임없는 고문을 받아야 했다.
숙청의 칼날이 혈교를 휘감았다.
“쉽게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라!”
헐렁한 소매를 펄럭이며 숙청을 주관하는 구자극의 서슬 퍼런 외침에, 복권된 마인들이 살기 섞인 외침으로 화답했다.
“존명! 최고로 끔찍한 죽음을 선사하겠습니다!”
피와 비명이 다시금 혈교의 반석을 적시기 시작할 때 즈음.
초운휘는 무너진 혈신전에 있었다.
***
“이제 돌아왔어. 사마 아재.”
조심스레 유골함을 내려놓고 초운휘가 지나가듯 말했다.
“오랜 시간 기다리느라 지루했지?”
손바닥이 유골함의 겉면을 쓰다듬는다.
“직접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더는 잠자코 있지 않을 생각이야. 사마 아재가 말한 대로.”
사마백은 말했었다.
[잡초를 뿌리 뽑는 것은 주인이 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부리면 될 일이지요.] [그저 나아가십시오. 노신은 귀신이 되어서라도 따르겠습니다.] [저희의 등불이 되어 앞서 나아가 주십시오.]절절한 외침이 귓가에 다시금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 잡초를 뿌리 뽑는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어.”
누군가를 잃을까 봐.
어차피 예정된 멸망의 운명에 눈을 돌려 살아가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곁에 있는 모든 것을 힘껏 들어 휘두를 거야. 혼자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휘둘러 잡초를 베어낼 거야.”
모든 것이 멸망한 과거의 삶과는 다르다.
이번 삶에는 암혼흑풍사도 있고, 천마신교와 수라혈교까지 건재하다.
뿐인가?
망천회가 두려워해 가장 먼저 멸문을 시켰던 하오문도 힘을 보태주고 있으며, 철사련 또한 망천회와의 싸움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후일 최후의 맹주로 군림할 화산검존 능풍운과 기라성같은 정파의 협객들 또한 손에 넣을 것이다.
“내가 키우고, 벼려낸 이들 또한 함께 할 테지.”
혼자 뙤약볕 아래 묵묵히 풀을 뽑던 소년은 없다.
모두가 떠나가고 외로움에 죽음을 찾아 헤매던 살귀는 잊혀졌다.
‘진설향.’
무엇보다 홀로 죽음의 강을 건넜던 여인 또한 함께한다.
눈꽃 향을 품은 그녀를 떠올리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켜봐. 누구보다 높은 곳에 있으니, 어떤 누구보다 더욱 즐겁게 구경할 수 있을 거야.”
묵념을 한 초운휘가 몸을 돌려 장내를 빠져나왔다.
“사마 노사. 부디 평안하십시오.”
“언젠가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 안-녕!”
위지극과 진세현, 단야가 바로 따라붙었다.
“율. 천천히 따라와라.”
“주군.”
“앞으로는 바빠질 거다. 다시 오기 힘들지 모르니, 한껏 이야기를 나눠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남겨진 사마율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서야 돌아온 사마율은 무척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십만대산을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
“벌써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모처럼 돌아온 곳 아닙니까? 조금 더 머무르시는 것이.”
“이곳에서의 일은 끝났다. 더 뭉개고 있어 봐야 좋을 일 없어. 이별은 짧을수록 좋은 법이야.”
위지극과 진세현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지만, 봇짐을 싸는 초운휘의 손은 멈춤이 없었다.
진세현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헌데, 다른 흑풍사에게는 어찌 전해야 하겠습니까?”
“각자의 위치에서 망천회와의 싸움을 대비하라고 전해.”
“그리 전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 같이 성격이 드센 탓에 제 말을 따라줄지 모르겠습니다.”
암혼흑풍사는 오직 실력을 기준으로 뽑은 인재들이다.
충성스러운 이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어쩔 수 없이 끌려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진세현은 이들이 불복할 것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
“뭐, 정 필요하면 찾아가서 냅다 엉덩이를 걷어차면 될 일이고.”
거기까지 말하던 초운휘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언제 훔쳐 듣는 못된 습관이 생긴 거지?”
맹렬한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풍객.”
한 줄기 바람이 창틀을 타고 넘는다 싶더니, 풍객의 신형이 불쑥 나타났다.
“훔쳐 들을 생각은 없었네. 대화 중에 끼어들기 힘들었을 뿐이야.”
“뭐, 그런 것으로 하지.”
자신을 향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의식했는지 풍객이 얼른 덧붙였다.
“아무래도 떠나기 전에 알려줄 것이 있어서 말일세.”
“알아야 할 것?”
“구일소가 제단을 만드는데 다른 사도가 개입한 것 같네. 그자의 흔적을 찾아냈네.”
사도.
묵직한 단어에 초운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다섯 번째 사도인가?”
“그렇네.”
풍객의 턱이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네.”
“물어보고 싶으면 물어봐야지.”
“자네는 망천회와 어떤 관계인 건가?”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인 것을 짐작 못 하지는 않을 테고.”
“말 돌리지 말게. 내가 궁금한 것은 저들이 말하는 마신(魔神). 그 최흉, 최악의 존재가 어째서 자네와 닮은 기운을 가진가 하는 점이야.”
풍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것’이 똑똑히 말했지. 열네 번의 죽음을 경험했다고 말이야. 설명해 줄 수 있나?”
강렬한 시선에도 초운휘는 빙글빙글 웃을 따름이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한 일인가?”
“마신의 씨앗. 망천회의 시작과 끝에 관한 사안일세. 하늘이 망하고, 새로운 하늘을 열, 개천(開天)의 악마가 내 눈앞에 있다면 어찌해야겠나?”
그가 맹렬한 투기를 발하자, 장내에 날카로운 삭풍이 몰아닥쳤다.
“그대….”
슬금슬금 무기에 손을 가져가는 흑풍사의 살기가 바람을 베어갈 때였다.
“흐흐. 개천의 악마가 꽤 잘 생기지 않았어?”
“맙소사. 정말이었군.”
풍객이 바람을 멈추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빌어먹을. 제대로 코가 꿰고 말았군.”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나보고 지독한 놈이래.”
“동감하는 바일세.”
그렇게 말한 풍객은 소매 아래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꺼내 던졌다.
펼쳐 보자 안쪽에는 빼곡한 글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건…?”
“사도가 남긴 흔적이라네.”
풍객이 한숨과 함께 설명을 시작했다.
“제단을 만드는 방법은 망천회 내에서도 오직 몇 명만이 알고 있는 비술일세.”
“알고 있어.”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만들 수 있는 이가 적다 보니 제단에 사용된 재료를 보면 사도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물론, 완전한 밑천을 내어주지 않아 구일소는 역대 교주들의 시신으로 대체하려 한 모양이지만.”
“마신이 불완전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군.”
빠르게 종이를 훑은 초운휘의 시선에 이채가 어렸다.
“제단을 구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네. 인간을 가장 증오하고, 또 사랑하는 존재의 정수라고 해야 할까?”
“후후. 인간을 가장 사랑하고, 증오하는 것이라면….”
“대자연의 정수일세. 폭풍과 폭우는 인간을 죽이는 자연재해이지만, 또한 세상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지. 대자연 그 자체만큼 사람을 증오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어디 있겠나?”
“재미있군.”
“생과 사를 관장하는 것도 만물을 관장하는 자연의 이치. 때문에 대자연의 정수(精髓)는 제단의 가장 중요한 재료라고 할 수 있네. 이것을 추적하면 사도의 대략적인 특징을 유추할 수 있지.”
종이에 적힌 글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수백, 수천 년 동안 가장 깊은 곳에서 정련된 대자연의 정수.”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냉엄한 기운이 깃든 물건이지.”
설명 끝에는 깨진 유리 조각을 닮은 푸른색의 보석이 남겨져 있었다.
“천년빙정(千年氷精).”
오랜 세월 동안, 음기가 응축된 깊은 땅 아래에서 드물게 생겨난다는 전설의 신물.
이것을 얻을 수 있는 이들은 세상에 오직 한 곳뿐이리라.
“북해(北海).”
풍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다섯 번째 빙천의 사도는, 북해빙궁에 있는 모양일세.”
북해빙궁(北海氷宮).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