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93
제92장 방학 끝에 찾아오는 것 (2)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여름방학이 끝을 맺어감과 동시에 고향에 갔던 관도와 교관들도 하나둘 복귀를 하며 다시금 떠들썩한 일상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그 가운데 변함없는 습지.
이곳에서 남궁윤호의 눈은 교관을 쉴 새 없이 뒤쫓았다.
“골골골골.”
한동안 게으름 부리지 못한 것을 만회라도 하겠다는 듯, 누워서 뒹굴거리기만 하는 꼴을 보니 게으른 소가 사람의 모습을 한 채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살아 돌아온 것도 기적에 가까운 혈투였다고 들었다. 듣기만 하는 것으로 심장이 철렁했을 정도.
단순히 교관이 게을러서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애써 스스로에 최면을 걸고 있자니.
“뭘 꼬라보냐?”
언제나처럼 기가 막히게 눈치를 챈 교관이 돌아누운다.
“깨어계셨습니까?”
“응. 나 안 잤어. 명상 중이었어.”
눈곱도 떼지 않고, 누운 채로 팔짱을 낀 채 진지하게 말해봐도 별로 신용이 가지 않는다.
“나흘 내내 잠만 자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나 안 잤다니까? 나흘 내내 명상을 했지. 앞날에 대한 생각도 좀 하고.”
“앞날에 대한 생각이요?”
“그래. 진짜라니까. 예를 들면….”
잠깐 눈을 붙인 교관이 버럭 성을 냈다.
“그냥 그런 줄 알아!”
역시나 교관이다 싶었다.
‘이제는 변명으로 둘러대시는 것도 그만두셨군.’
이것을 관계가 가까워진 증거라고 기꺼워해야 할까? 아니면, 너무 성의 없다고 정정을 해드려야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선택은 전자였다.
‘교관님 말이니까 맞겠지.’
수긍하며 휴식, 아니 명상을 방해하지 않으려 멀어지는데, 다시 교관이 불러왔다.
“인마.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생각이 좀 많아져서….”
“아무것도 아니기는. 짜식.”
게으른 몸을 느릿느릿 일으키더니, 한쪽 무릎을 굽혀 팔을 얹은 채로 교관이 물어온다.
“가문에서 여전히 귀찮게 하더냐?”
“!”
“슬슬 제왕검형도 막힌 것 같고. 속이 답답해?”
돌아오는 대답에 남궁윤호는 놀라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본가에 다녀온 일은 말씀을 드렸으니 알고 있으실 테지만. 수련이 막힌 것은 어떻게 알아보신 거지?’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다가, 근래에 생각이 미쳤는데 말이다.
‘여전히 날카로운 분이시군.’
생각하며 남궁윤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부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나아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었는데?”
“방학이 시작되고부터 막힌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캐묻던 교관이 피식 웃었다.
“내가 답을 줄 수 없는 고민이네.”
“교관님께서 답을 주시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까?”
“그러~~~엄.”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교관이라고 믿을 수 없는 약한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벽 같은 것은 느낀 적이 없거든.”
아니다. 다르다.
나른한 가운데 슬며시 일어난 기세에 남궁윤호는 소름이 돋아 오를 것 같았다.
‘여전하시군.’
대체로 건성건성이고, 좀처럼 관심을 갖는 것이 없는 교관이지만, 가끔 이렇게 진지해질 때는 뭐랄까, 존재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성장한 남궁윤호는 이 느낌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위압감.’
존재가 가진 격(格). 혹은 품격.
매사에 흐릿하게 살아서는 절대로 한 자락도 얻을 수 없는 기세.
평생을 신념을 가지고 관철해낸 일대종사들에서나 일부 느껴지는 감각이랄까?
“제법 예민해졌네. 좋은 일이야.”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이라. 줄 수는 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조금 맥없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남궁윤호는 오히려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 지금은 여기까지다.
제갈탄의 환상검법을 보고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을 때 교관은 말했었다.
그때 그는 대답했었다.
– 그럼 저는 여기까지군요.
답답한 상황을 돌파할 정답을 얻지 못했지만, 적어도 자신이 마주한 벽이 온전히 존재한다는 것, 지금은 머물며 벽을 넘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럼 온전히 제게 남은 숙제군요.”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교관은 조금 더 자상해졌다는 점이다.
“답을 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 그럼 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벽을 넘을 수 있겠지.”
심지어 성실하게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 정도로.
“그러나 답을 주시지 않겠다고 하신 이유가 있으시겠죠.”
“그래. 지금 네가 막힌 벽은, 초식이나 공력의 기교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것이거든. 무공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심정의 문제랄까?”
“확실히 검법을 펼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수련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내가 검을 제대로 쥔 것이 맞나?
혹은 보폭을 너무 넓게 잡은 것이 아닐까? 조금 더 좁게 잡아야 하나?
검을 쥘 때도 손잡이를 쥔 손가락의 방향이, 손가락에 밀어 넣는 힘의 배분이 펼칠 때마다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하고 만다는 점이다.
고작 기수식을 잡고, 검을 들고 서 있어도 계속해서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니 제대로 된 수련이 될 리가 없었다.
“지금 네가 멈춰선 자리는, 검에 의지를 담는 단계야. 어찌 보면 네 검에 담을 기세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갈무리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지.”
의지를 세운다.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라면, 적어도 검법의 고수들이라면 경악할 일이었다.
검에 의지를 담는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인간으로서 수련해 닿을 수 있는 경지를 넘어, 다음으로 넘어가는 기반에 돌입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남궁윤호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지만,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온전히 제 마음을 정하고, 의지를 품는 것이 중요하겠군요. 오롯이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고요.”
“그래. 내가 답을 주면, 네 의지는 내가 알려준 편법에 오염될 거야. 그래서야 제대로 된 검사라 할 수가 있나.”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흐흐. 쉬우면 개나 소나 다 고수가 되었을 거다, 인마.”
교관이 비죽 웃었다.
“제왕검형의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검에 의지를 담기 시작했으니, 이제 네가 삼류검법을 펼치던, 상승검법을 펼치던 네 색으로 물들일 거다.”
“음.”
“끊임없이 돌아보고, 탐구해라. 모두 네게 도움이 될 테니.”
남궁윤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솔직히 최근 마주친 벽도 문제였지만, 더욱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이 벽에 막혀 다시 정체되고, 과거 동천관의 지박령이라 불릴 때처럼 잊혀질까 하는 점이었다.
무능을 이유로 한때 가문과 혈육에게 버려졌던 과거는, 아직도 마음에 상흔으로 남아 두려움을 키워낸다.
그러나.
‘나아가는 과정의 하나라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단순히 과정이라면, 당장은 괴롭고 힘들어도 언젠가 추월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
교관은 얼마나 실패하고, 좌절할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는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포기해도, 참고 버티는 것은 나의 유일한 장기이니까.’
번잡한 신경을 날리며, 다시 남궁윤호는 수련에 집중했다.
***
수련을 재개한 그를 살피던 초운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벌써 벽을 마주친 건가? 생각보다 빠르네.’
초식을 완벽하게 펼치는 것은 절정에 입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보아하니 초식을 펼침에 공력의 수발이 자유로우니 슬슬 완숙한 절정의 경지에 닿았다고 할 수 있었다.
고작 일 년 남짓한 기간에 얻은 성취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
‘아무리 내가 잘 가르쳤다고는 해도, 재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
놀랍도록 빠른 수싸움.
공세의 흐름을 읽는 안목.
남궁윤호의 장점은 몇 가지나 있지만, 초운휘가 보기에 가장 칭찬할 만한 것은 의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수련에 매진하는 자세다.
신체야 특수한 방법으로 단련하고, 부족한 공력은 영약으로 채우면 된다. 하지만 정신만큼은 그렇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놈은 운도 좋았단 말이지.’
오직 포기만 강요하는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움직이던 과거가 날개가 되어주었으니.
하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인 모양이다.
‘혼자만의 마음을 넘어, 세상을 상대함에도 흔들리지 않을 신념을 가져야 할 때야.’
동천관의 지박령으로 불릴 때와는 다르다.
실력을 인정받고, 경지가 나아갈수록 그에 대한 구애는 늘어나고 있으니까.
십중팔구 편안한 길로, 찬란한 길로 이끌려는 유혹이 늘어날 것이고, 그럴수록 남궁윤호의 고민도 심마(心魔)도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는 혼자 세운 의지가 아니라, 세상을 상대로도 흔들리지 않을 신념을 세워야 할 때야.”
그리고 나아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이루어 낸다면, 인간을 초월해 다음 경지로 넘어설 발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세인들이 탈인경(脫人境)이라 부르는 단계로 말이다.
그렇기에 초운휘는 조언을 삼간 것이다.
‘암혼흑풍사 때와는 달라. 오직 파괴를 목적으로 의지를 세운 자들과 달리, 더 복합적이니까.’
단순히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 의지를 세운 이들의 심상은 단순하다. 오직 파괴를 위한 맹목적인 순응을 했을 뿐이니까.
반면에 남궁윤호는 검에 힘 대신 다른 것을 얹기를 원했다.
제왕의 강검이 아니라, 소탈한 걸인들의 대변자로 서고자 했다.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이 이행되어야 하는지 그는 알기는 할까?
“지난한 길이겠지. 확실히 정파의 무학은 마공보다 복잡하고 다채롭단 말이지. 귀찮을 정도로 섬세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렇기에 높은 의지를 세워 검에 담아냈을 때 더욱 다채로운 기운을 담아내는 것이다.
“마치 예전의 색시처럼 말이지.”
설풍 같은 검격 속에서, 놀랍도록 찬란한 검광을 흩뿌리던 모습을 떠올리며, 초운휘는 슬며시 웃음이 치밀어 올랐다.
‘과연 얼마나 기대를 충족시켜줄까?’
성장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날 저녁 백리설이 찾아왔다.
“교관님. 뭔가 나아갈 길을 찾은 것 같은데, 무서워서 걸음을 내딛기가 싫어질 때는 어떻게 해요?”
‘요 녀석도 벌써 벽을 만난 거야?’
성실한 관도들 덕분에 교관도 쉴 틈이 없구나.
성장이 신기하면서도 몹시 귀찮은지라 초운휘는 실로 우울해졌다.
***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복귀했습니다. 상급 교관.”
“바로 수업 시작이라니. 작년도 그렇지만 올해도 쉽지 않군요.”
사고 없이 끝난 여름방학은 연달아 터진 사건들로 힘껏 긴장되었던 신무학관의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와중에 말랑말랑한 대신, 눈을 부릅뜨는 인간이 있었으니, 바로 초운휘였다.
‘색시는 어디 있지?’
방학 내내 학관에서 잡무를 하고 있을 진설향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실망했던가.
“복마신니 아줌마는 어디 간 건가요?”
“신니께 아줌마라니. 초 교관님. 너무 하신 것 아니에요?”
오랜만에 들은 여매홍의 잔소리는 반가운 느낌이었다.
“복마신니께서는 좀 늦으신다고 해요. 참. 그러고 보니 진 관도도 따라갔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진설향은 잠자코 있지 못하고, 복마신니를 따라나선 모양이다.
따로 허락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빈털터리인 그녀가 사비까지 털어 따라 나갔다는데야 할 말이 없어졌다.
방학 중에는 개인 시간을 가지는 관도들을 막지 않으니 말이다.
전생에서도 그랬지만, 복마신니와 진설향은 상성이 너무 좋은 것 같다.
‘사제지간을 맺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떨어지지 않는 거야?’
투덜대는 사이.
“다들 주목!”
장철심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럼 교관회의를 시작하지.”
새로운 학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