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95
제113장 누가 더 흑막에 걸맞은지 겨뤄보지 (5)
과거라면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초운휘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에라도 주군께서 패하시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나도 알아. 전생의 기억으로 난 더욱 강해졌기도 하고.”
전생에는 뜯어진 봉제 인형 같던 육신으로도 마신의 경지에 오른 자신이다. 새로운 삶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온갖 비술을 얻어 육신을 강화했고, 수많은 기연을 독식해 전생의 무력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무력으로 따지자면 전생에서의 전성기 때를 넘었다고 할 수 있지.”
“그렇습니까?”
“더욱 성장할 여력도 남아 있어. 내 육신은 어리니까. 분명 시간이 흐르고 육체의 성장이 이뤄질수록 나는 더 강해질 거다, 율아.”
“그럼 더 강해진 후에 놈을 죽여도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강해질 거다. 동시에 또 약해질 거다.”
이번에 살귀들을 이끌고 백귀야행을 하며 느꼈다.
“약점을 쥔 것은 우리뿐이 아니야.”
“…설마 대모님과 학관의 사람들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래.”
어째서 일사도가 백리설이나 남궁윤호를 향해 ‘변수’라고 불렀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짐작하는 것은 있다.
“아마. 내 심금을 흔들 열쇠라고 생각한 것일 테지.”
“그들은 몇 번이고 백여든두 번째 후궁이나, 백여든아홉 번째 측실을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기억을 고쳐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만, 일단 짐작을 말하자면 놈은 기다린 거야.”
“기다렸다고요?”
“나와의 싸움을 앞둔 때, 가장 절묘한 기회에 죽여 내 마음을 흔들려 할 것이다.”
그렇기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동시에 과거에 그토록 망천회와의 싸움을 회피해 온 것이기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전생에서 놈들의 수법에 당한 것은 색시 쪽이 컸지. 일전을 앞두고, 아미파의 사람들을 죄다 도륙했거든.”
결론적으로 마음이 깨져 무공을 익히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그녀는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다.
“가장 완벽할 때, 가장 절묘한 순간에 죽이려 할 거야. 내가 지금 그러하듯 말이야.”
“…그렇군요.”
“이럴 줄 알았다면 마음을 쉬이 열지 말 것을 그랬어.”
복수를 위해 돌아온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이를 빼앗아간 이들과, 인연을 맺은 이들을 노리는 적을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가끔 이렇게 막막한 하늘을 보고 있을 때면 좀 생각이 깊어진다.
“학관의 교관으로도 살아보고.”
“애송이들을 교육하며 키우거나.”
“정파의 협객이 꿈인 놈들 뒷바라지할 줄은 몰랐거든.”
색시를 찾기 위해 벌인 일이, 어느샌가 삶에 스며들었다.
과연 자신은 그들의 죽음에 냉정함을 잃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야 워낙 많은 잃음을 경험했으니 버틸 수는 있겠지. 색시를 잃고도 싸움을 멈추지 않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 일사도의 심장을 끊을 때까지는 평정심을 유지할지도 몰라.”
몸이 먼저 반응하리라.
슬픔에 울부짖기보다, 일사도가 달려들 빈틈을 유도하리라.
‘나의 죽음과 상처마저 승부에 이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야.’
하지만 과연 놈을 죽일 때까지도 자신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나라도 무리다.’
이 빌어먹을 정파인의 생활은.
빌어먹게도 느긋하고 멍청하기만 한 무림교관으로서의 삶은, 마음 한구석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전면전을 피한 이유가 있으셨군요.”
“최대한 이쪽의 안전을 도모하는 가운데, 놈의 전력을 깎는 것이 중요한 거지.”
또한, 이번 겨울 안에 싸움을 끝내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일사도를 제거하지 않고는 인연을 맺을 때마다 나는 걱정해야 할 거야.”
이 사람이 나 때문에 잘못되지 않을지.
괜히 나 때문에 죽거나 다치지는 않을지.
상처 입힐 것을 걱정하고, 상처 입을 것을 걱정하며, 과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무리야….”
목소리에 여운이 깊어져서 그럴까? 독고율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천하를 희롱하던 망천회마저 농간하는 흑막의 제왕께서 그런 표정을 하십니까?”
“흐. 그건 그러네.”
“놈은 독 안에 든 쥐입니다. 숭산에서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 놈은 철저하게 분쇄당 할 것이고 종내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주군의 손에 죽을 테지요.”
“흐흐. 걱정 마라. 모든 것은 놈을 죽이면 끝이 날 테니까.”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이 싸움의 끝이 온다면.
“난 완벽하게 행복해질 거야.”
모든 적을 없이 해, 온전히 안정을 되찾을 날은, 멀지 않을 것이다.
***
숭산으로 향하는 망천회의 잔당들은 깎여 나가듯이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애초에 숭산으로 모이리라는 것을 간파한 마당에, 하오문과 살수들이 가진 정보력과 풍객까지 가세한 마당에 이목을 피할 수 있는 놈들은 많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없어졌다고 해야지.”
과거 어디에나 존재하던 망천회의 전향자들은 온 강호의 공적이 되며 씨가 말랐다.
뿐인가?
그들의 뒤를 봐주던 조력자들마저 없어지자, 들판을 알몸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곤궁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은밀함을 잃고, 세상에 드러난 암약자들의 말로는 대게 하나였다.
“흐-. 흐-. 어디 가-아-?”
단야가 이끄는 살수들의 손에 암살을 당하거나.
“뭐 하는 거냐! 절명하지 않지 않았느냐! 멍청한 놈!”
두려움에 떨다 죽어 나자빠지는 것뿐이었다.
살아남았다고 해도, 세상에 하오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더욱이 이 떠들썩한 살육은 예리하게 촉을 곤두세우고 있던 개방을 자극하였으니.
“인방 분타주다! 맹주님께 전서를 보내라!”
음지에서 벗어나 양지로 도망치던 이들은 무림맹의 감시망에 걸려 또 다른 횡액을 당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가세한 무림맹의 공격에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갈려 버린 것.
“하웅이다. 이제야 맹주님의 화근을 제거할 때로구나.”
명천광명전주 하웅이,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네 당을 이끌고, 참살해 나아가니, 은밀히 무림맹의 고수들도 뒤따랐다.
“이놈들! 원통하구나!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정의란 말이냐!”
“아악! 하늘이 무심하구나! 사도께서 건재만 하셨어도!”
마지막까지 한 줄기 희망을 놓지 못하던 이들은, 강호에 대한 복수심에, 개인적인 원한으로 투신한 이들이었다.
일사도의 명을 받아 마지막까지 멸망의 하늘을 꿈꾸던 그들은, 마지막 사도의 예언.
– 숭산에서 시작해 강호는 피에 잠길 것이다.
하늘의 몰락을 보지 못하고 죽어가며, 하나둘 바닥에 몸을 뉘었다.
거기에 대불연을 향하던 정파의 인사들이 하나둘, 맹주의 밀명을 받고 손에 피를 묻히기 시작하니, 바야흐로 완벽한 몰락이 시작되고 있었다.
***
요란은 들어오는 보고에 환히 웃었다.
“완벽히 들어맞았네요.”
한동안 각지에서 움직이는 망천회 잔당들의 종적을 쫓던 그녀는 며칠이나 잠을 자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거의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축하드립니다. 루주님.”
“문주님께서도 치하하셨습니다.”
세상을 본떠 만든 거대한 실물 지도 위에는 거의 모든 검은 돌이 사라지게 되었다.
차르륵.
지도 위 한 구텅이에 놓여 있던 한 움큼의 흑돌을 덜어 놓은 오하잠도가 말했다.
“이제는 스스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개방에 은밀히 소식을 흘렸으니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완벽한 승리입니다.”
“모두가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웃으며 차를 마시던 요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상 주시하던 붉은 돌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붉은 돌은 바로 일사도의 행방.
숭산을 향해 곧장 나아가던 붉은 돌은 얼마 전 들어온 소식과 함께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사도는 어떻게 된 거죠?”
“그게. 갑자기 어느 순간, 경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사라졌다고 합니다.”
“갑자기 말인가요?”
“열두 번째 안가마저 파괴된 것을 발견한 이후라고 합니다.”
가만히 있던 셋째 오하잠도가 말을 보탰다.
“더는 수습할 수 없다 생각해 자리를 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렇군요.”
“제아무리 경천동지의 고수라 한들, 수족이 모두 끊어지고 없이 된 마당에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쪽에 암존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 이치에 맞는 소리이기는 해.’
저 강력한 고금제일마 천마조사마저 참살한 상공이라면, 일사도조차 두려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무공으로 어찌할 수 없는 존재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수많은 세력을 이끌고 자신을 소탕할 줄은 몰랐겠지.
‘아니. 알았다고 해도 손 쓸 도리가 없었을 거야.’
혈서생 진세현이 오랫동안 꾸며온 일거소탕의 계책은 신속하기 짝이 없어서 그녀 자신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떤 천재라도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그렇기에 애써 불길함을 접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는 않았다.
“막다른 길에 몰렸으나, 강호를 어둠에서 조종하던 자였어요. 맥없이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빠르게 명령을 내리고, 사라진 일사도를 처리하는 한편, 무림맹과 철사련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놈이 나타나는 즉시, 온 강호가 그를 죽일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상공이라면 일사도를 끝장낼 수 있을 테지만, 최대한 놈의 전력을 깎아내는 것이 좋았다.
“생명을 다해서라도, 사도의 한 호흡 숨결이라도, 한 가닥 피로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절대 머뭇거리지 마세요.”
‘상공께서 놈 앞에 나타날 때까지 최대한 힘을 깎아놓는 것. 이제 그것만 남았어.’
흑막과 흑막의 암중 싸움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승부의 추가 기울고 있었다.
아니, 모두가 그러리라 생각할 때였다.
***
그 시각.
철사련의 집무실에서 철무혼은 손에 들린 도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사황도라….”
귀타염이 가져온 보도를 만지작거리며 철무혼은 탐욕을 감추지 못했다.
“진천사황의 신물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없군.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나 꺼림직해.”
가장 먼저 고개를 든 것은 탐욕이었다. 그렇기에 귀타염을 구금해 고문까지 가했지만,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정말 우연인가? 내게 영원한 사파지존이 되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장강에서 구강채에 숨은 사도에게 패해 두 사군을 잃은 날로부터 연이어 망천회와 부딪히며 번번이 물을 먹은 그는 심기가 최근 좋지 못했다.
평생 무림맹 꽁무니나 쫓던 와중에, 해남검각에서의 일로 어떻게 기회를 잡아보려 했으나.
“빌어먹을 백전군도 공손승. 놈만 아니었어도, 황실로부터 단단히 뜯어내는 건데.”
검각이 공납선을 유실한 일을 빌미로 황실과 끈을 만들어두려던 계략마저 수포가 되고 말았다.
덕분에 최근에는 자신에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
“물론, 하찮은 것들의 말이야 내가 관심을 쓸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불쾌하단 말이지.”
특히 자신과 대비되는 암존의 비상도 마음에 걸리고 말이다.
그런 와중에 손에 들어온 전설적인 사파의 지존 진천사황의 신물 진천도의 가치는 상당했다.
“진천사황의 신물이 나를 선택해 찾아왔다라. 딴에는 듣기 좋군. 귀타염에 제법 좋은 복안을 내어 주었어.”
다만 아쉽다.
그가 의자에 몸을 기댈 때였다.
문득 유황 냄새가 코끝을 스치며, 서늘한 인기척이 샘솟는 것에 철무혼의 안광이 스산하게 번쩍였다.
“어느 놈이냐!”
일성을 뇌까린 순간, 손끝에서 튀어나온 붉은 한 가닥 지풍이, 침상을 부수며, 쏘아졌을 때였다.
“!”
이내 문이 열리고 두 명의 호위가 달려왔다.
“련주님!”
“괜찮으십니까?”
“돌아가라!”
당황해 뛰어든 수하 둘을 돌려보내고 몸을 돌렸을 때.
놀랍게도 그가 부순 침상에는 산발의 괴인이 서 있었는데, 그의 손에 들린 것이 꽤 재미있었다.
[그대가 철무혼인가?]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괴인이 입을 열자, 철무혼의 두 눈이 광기로 물들었다.
“이건 또 뭐 하는 개잡종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