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16
제117장 영보산으로 (3)
확실히 이번 강호행은 가벼운 기분이다.
명성을 얻은 탓에 예전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온전히 발걸음이 닿을 곳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자유롭게 강호를 독보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기분이었나?
‘전생에는 갈 곳도 없었는데.’
이번 생에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교관님.”
하산하려는데, 일단의 무리가 기다리고 있다 알은 채를 해왔다.
“윤호냐?”
“벌써 나가시는 겁니까?”
“그래. 너도 함께할 줄은 몰랐는데.”
보물에 욕심이 없는 녀석이 이런 귀찮은 일에 참석하는 것은 분명 가문의 의지일 테지.
“괜찮습니다. 나름대로 저도 허락한 일이니까요.”
“다른 녀석들은?”
“백리 관도와 모용 관도도 동행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제갈탄도 울며불며 따라오는 모양이고요.”
“명가의 자식들은 꽤 힘드네. 어른들 등쌀에 고생을 사서 해야 하니까 말이야.”
“가까이는 접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혹여 싸움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뭐, 경험을 하는 것은 좋지. 이런 든든한 고수들 사이에서 보물을 놓고 다투는 피 튀기는 혈전을 구경하는 것도 꿀 잼 아니냐?”
“하하. 그런 것을 즐겁게 구경할 분은 교관님뿐일 겁니다.”
웃으며 남궁윤호가 말을 받았다.
“교관님께서는 따로 움직이시는 겁니까?”
“응. 아무래도 문파나 가문들끼리 묘하게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손에 넣지도 못한 보물을 두고 벌써부터 경쟁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 덕분에 너희들과 함께 움직이지는 못해. 관도들 전부를 돌봐야 하니까.”
“…꽤 고생이 많으시겠군요.”
“그래도, 진짜 사건이 벌어질 때 즈음이면 같이 있게 될 거다. 영보산에서 총집결을 한다는 모양이거든.”
“네. 알겠습니다.”
히죽 웃는 멀대 같은 녀석의 어깨를 두들겨 기분을 북돋아 주며, 초운휘가 아! 이마를 치며 한 마디를 남겼다.
“조심해라. 강호는 야생이야.”
그에 남궁윤호가 씩 웃으며 화답했다.
“야생은 익숙합니다.”
***
차례로 관도들과 인사를 나누고 산을 내려가는 길에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상급교관.”
장철심이 살짝 눈인사를 하며, 옆을 권했다.
“괜찮습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군.”
“저도 말입니다. 상급교관은 총관주님과 오시는 줄 알았는데.”
“상급자와 동행하는 것이 어디 편한 일인가? 자네라면 몰라도.”
“그런가요?”
“웃지 말게. 정들 것 같으니까.”
피식 웃은 장철심이 걸음을 놀려 성큼성큼 신법을 펼치며 나아갔다.
잽싸게 따라붙자 그가 긴하게 일렀다.
“자네 성격이라면 홀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겠지. 하지만 등주까지는 최대한 맹의 무사들과 떨어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이유가 있습니까?”
“돌아가는 상황이 긴박하네. 돌발상황에 대비하려면 맹의 전언이 닿는 곳에 있는 것이 나아.”
“그렇군요.”
어떤 상황도 감당할 수 있지만, 순수한 호의로 말하는 권고까지 일축할 생각은 없다.
고개를 들어 산 아래를 내려보니, 개방의 거지들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저들은 명천광명전이군.’
묵연성도 저 안에 함께 하고 있겠지.
그들 뿐 아니라, 백호, 현무, 주작, 청룡의 사당은 물론이고, 명문대파의 고수들마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경공을 펼치며 새처럼 나아가는 광경은 가히 절경이었다.
“장관이 아닌가?”
산 아래를 굽어보는 장철심이 뜻 모를 한숨을 쉬었다.
“정파의 고수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본관도 처음이군.”
“그렇습니까?”
“관부에서 경계를 하니까 말이네. 관무불가침이라고 말하지만, 누가 무림인들을 곱게 보겠는가?”
씁쓸한 그의 말에 초운휘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무림인이란 의협심을 빼면 칼을 찬 강도들이나 다름이 없죠.”
그것도 하늘을 날고, 일검에 바위를 쪼개는 사나운 맹수들.
“정량적으로 잴 수도 없는 개인의 양심에 맡겨 두기에는 위험한 존재들인 것도 사실이 아닙니까?”
이전 삶에서는 평화로운 시기에, 고수들의 결집은 꿈도 못 꾼 이유이기도 했다.
“…가만 보면, 자네는 철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냉소적인 구석이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까?”
“보통 자네 나이대의 무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거든. 무공을 특권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의 전권인 양 휘두르기를 서슴지 않지.”
“저에게 처맞은 후기지수들이 들었어야 하는데.”
“껄껄걸.”
한참을 웃고 있던 장철심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말했다.
“이것 참. 혹시나 싶어서 노파심에 조언을 해주려 기다렸더니 오히려 한 수 배우고 말았군.”
“역시 절 기다렸군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네의 인솔 교관이 아닌가.”
어느새 느긋한 걸음으로 돌아온 장철심이 돌아보며 웃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는군. 반면에 자네는 힘이 남아돌 테지. 굳이 내게 맞춰 줄 것 없네. 먼저 힘껏 달려 나가 보게나.”
눈짓을 받으며 초운휘가 마주 웃었다.
“그럼 사양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는 쌩하니 달려 나갔다.
한순간에 점이 되는 뒷모습을 보며, 남겨진 장철심 상급교관이 풀썩 웃어 버렸다.
“엄청난 신법이군. 이제 따라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겠어.”
***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며 펑펑 터져나가는 느낌은 무척이나 상쾌하다.
이전 삶에서는 칙칙한 죽음의 냄새에, 재투성이 비가 내려 어디든 음울했는데 말이다.
“망천의 이름이 다시 준동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날듯한 신법으로 움직여, 우선 지켜야 할 이들을 하나둘 확인했다.
‘백리설과 모용소혜는 같이 움직이는 것 같군.’
보물을 독식하기 위해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문파들이 대다수인 반면, 모용세가나 백리세가 같은 신뢰를 구축한 가문들은 서로 협조를 하기도 했다.
‘이쪽은 안심이고.’
나아가 언호승이나, 다른 관도들의 위치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미파.”
복마신니와 함께 나아가는 여승들의 곁에는, 노란 가사를 입은 무승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소림에서 나온 나한임을 알아본 초운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색시 쪽이 가장 안전한 것 같네.’
안타까운 점이라면, 너무나 고루한 분위기를 풍겨대는 여승과 나한들의 태도에서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사라도 해두고 싶었는데.’
속으로 뇌까린 순간, 복마신니와 나란히 걸어가던 진설향이 이쪽을 휙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인기척을 느낄 수는 없었을 텐데.’
이건 기적인가?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 끝에 내려서 살짝 손을 흔들어주자, 그녀의 눈망울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기적 맞네.’
입을 오므려 인사를 하고, 신형을 박차자 시원한 공기가 폐부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바로 이거지. 환각 공격.’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타나, 슬쩍 심금을 울리고 사라지는 환영.
혹시 꿈인 건지, 그리움에 환각마저 본 것인지 갈등을 하게 되지 않을까?
‘독고율이 전해준 여심을 홀리는 백팔 가지 방법에는 그렇게 나와 있었는데 말이야.’
돌아오는 날에, 성과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
적소일, 적소이 형제는 침묵 속에 계속 걸어 나갔다.
“소일. 소이. 뒤처지지 마라.”
앞서 걷던 중년인의 일갈에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치이. 싫은데.”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것 뭔데.”
두 사람의 칭얼거림에 나아가던 장한 몇이 멈춰 서 으르렁거렸다.
“이 반편이들아. 가주님께서 하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냐?”
가장 앞서 화를 내는 것은 소리친 중년인과 비슷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적일량. 바로 신검적가의 소가주로 불리는 이였다.
언제나 적손이라는 이유로 서자 출신인 쌍둥이를 무시하는 배다른 형제는 언제나 그들을 매도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럴 때면.
—.
신검적가의 모든 이들이, 적가 쌍둥이들을 차디찬 눈으로 바라보고는 했다.
지레 움찔한 적소일이 고개를 틀었다.
투덜대며 눈칫밥을 먹고 움츠리기를 잠시.
앞서 나아가던 적가 무인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가주님. 앞에 일단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밤중에 말인가?”
다소 불쾌한 기분을 안고 나아간 그가 나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불조차 밝히지 않고 나아가고 있었는데, 횃불을 밝히며 다가오는 이들을 보며, 화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가주 적비소가 물었다.
“나는 신검적가의 가주 적비소요. 그대들은 어디에서 오신 분들이오?”
“아. 신검적가의 적 대협이셨군요.”
회색 무의를 입은 노인이 나서 포권을 해 보였다.
“이 사람은 범용방의 강윤량이라고 하외다.”
“강 대협이었군요.”
범용방이 강서에서 활약하는 무가임을 떠올린 적비소가 경계심을 거뒀다.
“이런 밤중에 어인 일로 행차 중이시오?”
“급히 오는 길에 물자를 모조리 잃어버렸소. 정확히는 어수룩하게 굴다 털려 버렸다고 해야지.”
“하하.”
가끔 이런 이들이 있지.
적일량은 생각했다.
‘강서성 벽지 출신이라면, 딱 속여 먹기 좋은 시골뜨기지. 도시에서 단단히 털려 먹은 모양이야.’
상대가 상인들의 화술에 속아 쩔쩔맨 모습을 떠올리니 적일량은 내심 비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자들이라면 호의를 사두는 것도 적가의 이름을 높이는 방법이지.’
내심 계산을 마친 그가, 짐짓 호탕한 채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처지가 딱하기 짝이 없구려. 괜찮다면 다음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 함께 가면 어떻겠소?”
“저, 정말입니까?”
“사해가 동도인데, 이런 작은 배려조차 못 해서야 쓰나.”
“이런 감사할 데가. 황망중에 어디에 의지할 곳 없었는데, 대인께 감사드리외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범용방의 무사들을 보며, 적비소가 제 일인 양 우쭐댔다.
“바로 이게 정파의 아량이지.”
그러나, 그는 이내 미간을 꿈틀거리고 말았다.
“저러는 거 아닌데. 교관이 그랬는데.”
“맞아. 강호에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다고 했는데.”
괜히 들쑤시는 듯한 발언에 적일량이 역정을 냈다.
“반편이 놈들은 마음이 좁고 편협하기 짝이 없구나. 닥치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협행을 지켜보기나 해라.”
—–.
침묵하는 쌍둥이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
***
동행을 허락하고 난 후, 한 시진.
“슬슬 노숙할 곳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소.”
“저희야 얹혀 쉴 수 있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간단히 담소를 나누며 나아가던 그들의 눈앞에, 저 멀리 일렁이는 화톳불이 보였다.
“선객이 있는 모양이군.”
적일량은 다소 경계를 하며 다가갔는데, 그곳에 있는 것은 달랑 괴나리봇짐을 내려놓고 검에 기대어 쉬고 있는 한 청년이었다.
‘혼자인가? 옷차림을 보니, 딱히 이름 있는 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다가가 보니 청년이 자리 잡은 곳은,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들 사이에 외딴섬처럼 존재하는 데다, 마른 풀이 포근하게 깔린 더없이 야영하기 좋은 땅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건량을 우물거리며, 술병을 기울이는 것이 이쪽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자리를 비키지 않는다면, 좀 윽박질러야겠군.’
생각하며 그가 나아가는데, 등 뒤에서 뾰족한 외침이 들려왔다.
“교관!”
“교관님!”
‘교관?’
적가 쌍둥이들이 반색을 하는 모습에, 방만하게 돌에 기대 술을 마시던 청년이 상체를 일으켰다.
“오. 이런 우연이 있나. 말썽쟁이들. 잘 있었냐?”
간만의 조우였다.